청와대, 괜히 ‘긁어부스럼’ 만드나?
'수도권 규제완화'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한 수도권 대 비(非)수도권의 초당적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수도권 규제완화에 반발하는 의원 60여 명이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수도권 규제 철폐반대 국회의원 비상모임(가칭)’ 발족식을 열고 수도권 규제완화 철회를 촉구했다. 비상모임에는 한나라당의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여의도연구소장 김성조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16명이 뜻을 함께했다. 이로 인해 한나라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더구나 박근혜 전 대표까지 직접 나서서 반대입장을 표명하다 보니 당론 분열과 계파갈등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더구나 지방 지자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정치권을 넘어 수도권 대 비수도권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을 계획대로 추진할 계획이어서 파장이 예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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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지역구도로 확산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한 수도권 대 비(非)수도권의 초당적 대결구도다.
급기야 지난 6일에는 수도권 규제완화에 반발하는 의원 60여 명이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수도권 규제 철폐반대 국회의원 비상모임(가칭)’ 발족식을 열고 수도권 규제완화 철회를 촉구했다. 민주당·자유선진당·민주노동당은 물론 지방출신 한나라당 의원 16명도 가세했다. 이날 비상모임은 “정부의 지방 죽이기로 절망에 빠져 있는 지역주민에게 즉각 사죄하라”며 관련 법안 입법 저지와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 헌법소원 제기, 대규모 장외투쟁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수도권 규제완화 철폐 즉각 철회 △지방과 사전협의 없는 일방적 정책추진 반성 △지역주민에 즉각 사죄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추진 촉구 등 정부에 대한 4개 요구를 담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수도권 규제완화' 반대 여야 뭉쳤다
특히 비상모임은 여야의 내로라 하는 의원들이 가세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쉽게 종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비상모임 대표는 이낙연 민주당, 박상돈 자유선진당,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공동으로 맡기로 했고, 참여한 의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민주당 이시종·이용섭·최인기 의원과 자유선진당 류근찬·이상민 의원 등 무게감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더욱이 한나라당의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여의도연구소장과 지역균형발전연구모임 등 5개 국회 연구단체를 이끌고 있는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까지 가세해 규모는 물론 화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회의 시작 직전 김성조 의원이 한나라당 의원들만 불러 회의를 한 뒤 “모임 취지에 공감해 나왔지만 회의 결과 뜻은 같이 하되 정부안을 지켜본 뒤에 행동방향을 결정키로 했다”며 “여당으로서 정부안을 지켜봐야 하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한 후 전원 퇴장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수도권 규제완화를 둘러싼 논란 확산을 막기 위해 비상모임에 동참한 김 의원 등에게 경고하며 ‘집안단속’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요 당직자가 수도권 규제완화 반대에 앞장서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질타가 터져나온 것이다. 타깃은 그동안 ‘선(先) 지역균형발전’을 주장한 김 의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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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막론하고 '수도권 대 비(非)수도권' 초당적 대결구도로 |
공성진 최고위원은 “여의도연구소장은 당의 핵심 정책브레인인데, 정부의 공식 정책에 반기를 드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혼선을 빚지 않겠느냐”며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도 “조만간 지방 살릴 정책이 나온다는 것을 뻔히 알지 않느냐”며 “그 집회에 참석하려면 당직을 사퇴하고 가라. 나라면 원내대표직은 사퇴하고 간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 등 친박계와 당내 지방출신 의원들은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어 한나라당 지도부의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해석이다.
한나라 계파 갈등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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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표는 지난 3일 “지방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든지 지방 투자환경 개선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먼저 내놓고 수도권 규제 완화를 해야 하는데 대안없이 전면적으로 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것”이라면서 “지방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책이 반드시 전제돼야 된다”고 말했다. 지방발전 대책을 세우지 않고 수도권 규제완화를 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정책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실제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정치권과 한나라당에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동안 잠잠하던 한나라당 계파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도 보인다. 수도권 규제완화를 둘러싼 갈등은 수도권에 많이 포진돼 있는 친이계와 영남을 비롯한 지방 출신이 많은 친박계의 대립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친박계 한 의원도 “수도권 규제완화는 수도권 대 비수도권 뿌리 깊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계파갈등이 재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내 상황이 어수선하게 돌아가자 친이계 공성진 최고의원이 박 전 대표를 비판하고 나섰다.
공 최고위원은 지난 6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그동안 가만히 계시다 왜 이런 소리를 하시나 하고 좀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라며 “그동안 식품위기라든가 촛불시위라든가 여러 가지 국난이 지난 8개월 동안 많았는데 그동안 박 전 대표께서는 소리를 안 내고 잠잠했다”고 비꼬았다.
이어 “우선 박 전 대표도 자신의 지역구가 지방에 소재하고 있다”며 “많은 분이 지방이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상대적 위축감을 느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라고 해석, 비판의 수위를 조절했다. 친이계 한 중진 의원도 “이 대통령이 힘들 때 도와주지도 않더니 딴지를 걸고 있다”며 박 전 대표를 질타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출신 위원들 간에 설전이 오갔다.
허태열 최고위원이 “주말에 지역에 다녀왔는데 수도권 규제완화로 지방에선 난리가 났다”면서 “국감 때만 해도 장관들이 ‘선 지방발전, 후 수도권 완화’를 한결같이 얘기하더니, 입에 침도 마르기 전에 수도권 규제를 완화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홍 원내대표는 “(수도권 규제완화는) 수도권과 지방이 윈-윈 하는 국토 동반발전의 개념으로 짜고 있다”면서 “경제가 다급한 현실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박순자 최고위원이 “(수도권 규제완화는) 수도권과 지방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기 위한 조치”라며 당위성을 역설하자 다시 설전이 오갔다. 송광호 최고위원이 “정부의 선 수도권 규제 완화 방침에 지방의 국민들이나 자치단체장들은 배신당했다는 말을 한다”면서 “지방은 영양실조에 걸려 휘청거리고 수도권은 비만에 걸려 뒤뚱거리고 있는데, 민심을 모르는 한시적 국무위원들이 정무에 대한 이해가 있겠느냐”고 비판한 것이다.
이처럼 내홍이 일자 한나라당에서도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 부족’을 지적하고 나섰다. 최고위원회의에서 내각의 정무적 판단 능력 부재에 대해 지적한 것이다. 전언에 따르면 최고원위원회에서 “지방경제를 살리는 정책을 내놓고 나서 수도권 규제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책 발표시기 등 내각의 정무적 판단이 잘못됐다는 게 당이 갖는 기본 인식”이라고 임을 모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으로 ‘수도권 대 비수도권’으로 갈라져 설전을 벌인 후폭풍은 고스란히 청와대와 이 대통령에게 밀어닥치고 있다.
청와대 자성…규제완화는 고수
첫 번째 희생양은 청와대 박병원 경제수석이었다. 지난 6일 국회 ‘글로벌 금융 충격과 서민경제’ 조찬 강연에서 강연자로 나선 박 수석은 여당 의원들의 질타를 맨몸으로 받아야 했다. 박 수석이 강연을 마친 뒤 질의응답이 이어지자 참석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여야 국회의원 16명이 참석했지만 오히려 여당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대통령에게 조언할 수 있는 경제수석이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 때문에 국론이 분열될 위기에 와 있는데 다른 얘기만 했다”며 “노련한 박 수석한테 당한 느낌”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수도권 대 비수도권으로 갈리면 굉장히 어려운 길로 간다”며 “지방경제 부양을 위해 우리도 깜짝 놀랄 정도의 대책을 내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중요한 정책을 지방발전 대책과 같이 발표를 하던가 포장을 해야지 정무기능에 펑크가 났는데 수석이 그런 것 막는 것 아니냐”며 “오늘 대통령에게 바로 가 면담 신청을 해 이런 정서를 보고하라”고 다그쳤다. 배영식 의원도 “지방대책 나온다 하면서 지방소득세, 지방소비세나 흘리고 있다”며 “5+2 광역 경제권 개발을 지방 대책으로 이미 발표했는데 무슨 지방대책이 또 나오겠느냐고들 한다”고 비판했다. 이한성·정해걸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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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싱크탱그 여의도연구소장 김성조 의원 등 16명 동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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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방지원 종합대책 발표가 이달 말로 예정된 상태에서 굳이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을 먼저 발표할 이유가 없었다”며 “정책의 파급 효과나 당과의 협의과정 등 여러 가지 면이 정교하게 고려돼야 하는데, 중구난방 식으로 정책이 발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수석들 간의 역학관계를 적절히 조정하는 역할을 소홀하다보니 명확한 구심점이 없는 참모진이 제각각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수도권 규제완화 논란을 정면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박형준 홍보기획관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수도권과 지방이 싸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접근을 하면 이해관계 집단의 투쟁으로 변질돼 오히려 더 꼬이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도권 규제를 일방적으로 다 풀거나 법을 바꿔 푼 것이 아니고 기존에 시행된 것 중에 바꿔주면 기업들이 외국에 투자하지 않고 수도권에 투자하려고 하는 잠재적인 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박병원 경제수석도 국회 강연에서 “수도권 규제를 이대로 두면 투자 유치가 안 된다”면서 “투자에 제약되는 모든 장애 요소를 이번에는 작심하고 제거해야 한다”고 말해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6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각 지자체가 요구해온 지방소비세·소득세 도입여부와 관련 “내년 상반기에 수도권 규제완화에 따른 수도권의 추가 세입을 지방으로 돌리는 방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지자체 공동 대응 모색
문제는 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한 지자체의 반발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어 국론은 이미 수도권대 비수도권으로 나뉘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권 규제완화를 주장해온 김문수 경기지사와 이완구 충남지사의 대결구도는 이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엔 정우택 충북지사가 “수도권 집중화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최대 실정이 될 수 있다. 조만간 비수도권 광역단체장들과 만나 일일 단식을 포함한 투쟁 방안을 논의할 생각”이라며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5일에는 호남권 3개 시도지사들은 전남도에서 정책협의회를 갖고 “현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은 특정 지역에 특혜를 주는 대신 지방을 죽이는 정책”이라고 밝히고 강력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지역 간 불균형을 심화하고 호남권의 열악한 성장 기반을 고착화하는 불합리한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부산시는 부산발전연구원을 통해 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한 대응논리 개발에 들어갔고 비수도권 13개 시?도와 연계해 당장 필요한 실천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시민단체들은 대규모 수도권 규제완화 저지 총궐기 대회를 준비하고 있고 헌법소원도 고려하고 있다. 대전과 충남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방안 저지를 위해 공동 대응에 나서 조만간 단식투쟁과 함께 전국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에 대한 폐해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원도에 이전을 약속한 수도권 기업들이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이 발표된 뒤 이전 계획을 철회하는가 하면, 이미 들어온 기업도 수도권 유턴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강원도측은 “평창 제2농공단지를 비롯해 도내 시·군이 추진하고 있는 산업단지 조성 사업도 기업유치가 불투명해지면서 원점 재검토에 들어갔다”며 “수도권 규제완화가 지방 경제를 뿌리 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지자체들의 반대여론이 거센 가운데 한나라당은 10일 전국 16개 시·도지사들과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반발을 가라앉히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수도권과 지방 간의 의견 불일치 문제를 논의하고 지방의 소망을 들어보려고 당과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를 열게 됐다”며 “의견을 수렴해 27일로 예정된 지방발전 종합대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진화에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취재 / 설원민 기자 sinclair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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