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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뿌리인 어머니 이야기, 뜻깊고 행복”

제1회 브레이크뉴스 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 김성애 작품 발표

김성애 수필가 | 기사입력 2008/11/26 [13:56]
**제1회 브레이크뉴스 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소감
 
"왕초보가 수필가 브로치 달았어요!"
 
▲김성애 수필가    © 브레이크뉴스
개학일 하루 전에 밀린 방학 일기숙제를 몽땅 해치웠던 왕초보가 처음으로 글을 썼다. 초자에게는 수필장르가 제일 쉬우니 도전하라는 지인의 격려에 선무당이 사람 잡듯이 무작정 글을 썼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어머님에 대한 수필을 썼다.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는 어머님께 수필당선 소식을 전하였다.  당선된 딸보다 더욱 기뻐하신다.  내 눈에 그려지는 어머님의 모습을 수필 한편 한편에 담으면서 이 나이에 늦은 철이 겨우 드는 것 같다.  대한민국 뿌리에는 유관순열사가 있듯이 내 삶의 뿌리인 내 어머님 이야기를 쓰는 시간은 무척이나 뜻 깊고 행복했다.

수필을 쓰면서 나의 하루하루는 점점 풍요롭게 변했다.  언제나 스치는 조그만 일이나 정경들이 ‘수필의 주제가 되면 어떻게 표현해 볼까?’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냥 지나칠만한 일도 더 눈여겨보며 생각을 담는 내 삶은 한층 아름답고 화려한 꽃밭으로 변하게 되었다.
왕초보에게도 새롭고 행복한 인생 장을 마련해 주신 브레이크뉴스와 심사위원 송현 선생님 등께도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경력.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국제사무학과 졸업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경희대학교 국제경제학 박사과정 수료
전 아메리칸 엑스프레스 은행 소비금융부서 총괄담당
전 인덕대학 전임교수
전 경인여자대학 전임교수
전 팬아시아캐피탈 관리 본부장
현 인터넷신문언론인
 
--저서
현대비서 실무
영어 전화응대(한국 금융연수원 공저) 등

작품 / 송말순 여사님의 ‘썩을 년’ 시리즈(1)
 
1.
올해 84세인 내 어머니의 18번은 ‘썩을 년’이다. 어머니는 33살 젊디젊은 나이에 남편 잃자  한 올 한 올 삯바느질하여 우리 삼남매를 키웠다. 
 
손끝 야무진 어머니가 정성스레 만든 한복과 두루마기의 빼어난 손 맵시는 동대문시장 한복집에서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리고 손끝 매운 자식 교육열은 큰오빠, 작은오빠, 그리고 나를 대학교까지 올곧게 이끌었다. 어머니의 엄한 회초리 덕분에 지금의 우리 삼남매가 있다. 

어머니는 78세 때 위암 절제 수술을 하였다. 그 후 3년 뒤 작은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 충격 때문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오랜 병원생활로 어머니의 몸무게는 무려 30kg이나 빠졌다. 여장부처럼 그 당당한 모습은 간데 온데 없고, 굽은 허리는 더 굽고, 마른 장작처럼 뼈만 앙상해졌다. 너무나도 마른 어머니의 배는 등가죽에 거의 딱 달라붙어 있는 듯싶다. 당신의 몰골이 창피하다며 사람들 많은 곳은 되도록이면 피한다.   
 
30년 넘게 한 삯바느질로 굽을 대로 굽은 허리가 더 휘어져 걸을 때는 앞으로 고꾸라지듯이 걷는다. 당신 딴에는 윗몸이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게 하려고, 이따금 등 뒤로 깍지 낀 두 손을 올려가며 뒤뚱 뒤뚱 펭귄처럼 곧추 세우며 걷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고 애잔하다.
 
2.
일 년에 몇 차례 명절이나 제삿날, 큰아들 집에 다녀 온 후 어머니는 언제나 혼자서 구시렁거렸다.
 
“저 썩을 년! 집안에 사람 오는 꼴을 못 보는 년!”
 
옛날 어른인 어머니는 사람 사는 집에 사람들이 북적거려야 복이 온다고 굳게 믿고 있다. 어머니 집에서 제사를 지낸 시절에는 가족들과 친척들이 오랜만에 둘러 앉아 서로의 사는 이야기 소리와 어머니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하였다. 그런데 제사를 큰아들 집으로 옮긴 후  부터는 친척들이 하나 둘씩 오지 않았다. 언젠가 술 한 잔씩 하며 이야기하고 있는 친척들을 보며 큰며느리는 나에게 말했다.
 
“고모, 아니 사람들이 제사 끝났으면 집에 가야지. 왜 갈 생각을 안하지!  여기서 잘 생각인가?”
 
친척들에게 내비쳐지는 큰며느리의 불편한 행동들을 보다보다 참지 못한 어머니는 큰아들과 큰며느리에게 욕을 싸잡아서 퍼 부었다.
 
“이 썩을 놈아, 내가 서른셋에 남편 없이 살면서 큰아들을 남편처럼 믿고 살았는데......, 저 썩을 년이 사람 사는 집에 사람 오는 꼴을 못보고, 우리 집안을 다 망치는 저 썩을 년!”
 
당신의 설움과 분함이 함께 뒤섞인 어머니의 신세타령은 목이 쉬도록 길게 울었다. 어머니의 서러운 울음은 상여가락에 장단 맞추듯이 서럽게 곡을 하곤 한다. 손으로 땅바닥을 탁탁 치면서 끄윽 꺼억 곡하다가, 큰아들의 길게 내뿜는 한숨 소리에 당신 스스로 진한 울음을 참고 접었다.
 
“내 새끼 가엾어서 내가 분해도 참아야~지 끄~윽 꺼~억, 저 썩을 년이랑 사는 내 새끼가 무슨 죄~냐!  끄~윽 꺼~억,  그래~도 끄~윽 꺼~억, (손으로 방바닥을 탁탁 치면서) 네놈이 못나서 저 썩을 년이랑 살~지. 이 썩을 놈~아, 끄~윽 꺼~억”
 
3.
어머니는 한평생 부지런히 절에 다녔다. 언젠가 아버지 제사를 지낸 며칠 뒤, 딸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저 썩을 년이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시아버지 제사는 지낸다고 있는 생색은 다 내고, 시퍼렇게 살아있는 시에미에게는 편안하게 따뜻한 밥 한 그릇 안 해주는 년. 저년 미워서 이제는 절에 안가고 성당에 나갈란다. 성당 다니는 사람들 말들어보니 죽으면 자식새끼들 없어도 다 치워준다더라.”
 
어머니가 평생 지켰던 종교를 불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겠다고 말하면서 더불어 당신의 유언까지 남겼다.
 
“만약 내가 죽고 난 뒤 저 썩을 년이 제사 지낸다고 밥이라도 올리기만 해봐라. 내가 귀신 되어 저년 손가락을 확 물어 뜯어버릴 테니! 내 죽으면 저년 제사지내는 꼬락서니 보기 싫으니깐 내 몸뚱이는 불에 꼬실라 버려라. 이게 내 유언이니 꼭 지켜라.”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늙어서 짧디 짧아진 당신의 이빨로 손가락을 힘 있게 물어뜯는 시늉까지 했다.
 
4.
어머니는 평생 삯바느질을 하면서, 아껴 아껴서 용산구 서부이촌동 연립주택을 한 채 사고, 다시 한 채 구입하고, 구입한 한 채를 전세 놓아서 또 한 채 구입하고, 도합 3채를 구입하였다. 위암 수술을 하기 전에 연립주택 3채를 삼남매에게 각각 한 채씩 상속해 주었다.
 
그러자 상속 분배 문제로 어머니와 큰며느리는 다퉜다.

“어머님은 큰아들에게 한 채, 장손에게 한 채, 두 채를 우리한테 주기로 약속 했잖아요? 분명히 약속 해 놓고 왜 한 채만 줘요?”
 
약속한 상속분을 고집하며 큰소리로 대드는 큰며느리에게 어머니는 죽을힘을 다해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말하건대 나는 네년한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절대 없어. 설령 내가 약속 했다손쳐도 내 집을 내 자식들에게 한 채씩 준다는데 네년이 왜 나서서 감놓아라 배놓아라 하냐! 이 우시랄 년아! 네년이 시집올 때부터 집안이 잠잠한 날이 없는데, 시집와서 뭐를 잘했다고 두 채나 달라고 해! 이 썩어 죽일 년아! 한 채 준 것까지 빼앗아 버리면 속이 후련하겠다.  에이~ 이 썩을 년아!”
 
6년 전 큰며느리 표현으로는 게딱지만한 집 한 채 때문에 싸운 후, 명절이나 어머니 생일 때 조차에도 큰며느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 게딱지가 용산 국제금융타운 발표로 6억~7억 원 시세로 부동산에서 거래되고 있다.
 
5.
3년 전 작은아들 잃은 충격으로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뇌졸중 후유증세로 목이 쾍쾍 막힌 채 서글퍼했다.
 
“저 썩을 년은 얼굴도 본적이 없는 시아버지 제사 지낸다고 유세 떨고, 시퍼렇게 살아 있는 시에미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몇 달 째 병실에 누워 있는데, 찾아와서 물 한 모금 안 떠다 준 저런 썩을 년이 사람 년이냐! 독한 년! 못 먹고 못 입고 뼈 빠지게 모아 산 집까지 주었더니, 저 썩을 년이 내가 뭐를 잘못했다고 나를 안본다고 해! 지년도 환갑 넘었으니 내 장담하건데, 되질 내 나이 곧 된다!”
 
어머니는 너무나도 슬프고 원통하여 동아일보에 찾아가서 당신의 억울함을 기사로 올려 하소연하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신문사 이름을 동아일보만을 기억하고 있다.
 
6.
큰아들이 어머니 집에 빈손으로 올 때에 어머니는 오랜만에 만난 큰아들 앞에서는 당신의 속내를 감추지만 딸에게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가 못 먹어가며 뼈 빠지게 저놈을 키웠는데 모처럼 에미 집에 오면서 빈손으로 털레털레 오는 꼴이란…….쯧쯧. 내가 저리 키우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선생질까지 한 놈이 몇 천원 아까워서 손부끄러운 줄도 모르나?  저놈이 못나서 그 썩을 년이랑 살지!”
 
여전히 오지 않는 큰며느리 욕은 하면서 큰아들의 옹색함을 못마땅해 했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어머니는 큰아들을 변명했다.
 
“저 썩을 년이 우리 아들이 선생질한 돈까지 다 뺏어 돈을 움켜주고 시에미한테 어거지 썼던 것처럼 또 어거지 쓰는 게야!  그러니 저놈이 에미 집에 오면서 하다못해 과일쪼가리 하나라도 못 사오는 게지…….”
 
며칠 전 큰아들이 사온 삼계탕을 먹었다면서 어머니의 목소리는 밝아졌다. 교편생활에서 은퇴한 후 왠지 모르게 어깨가 축 쳐져 보이는 큰아들 생각만으로도 당신의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요사이 부쩍 늙어가는 큰아들 뒷모습을 보며 애처로워 한다.
 
“어째 내 새끼가 저리도 늙었을까!  자랄 때 제대로 못 먹여서 저리도 작고 초라하나....... 내가 저리 키우지 않았는데……불쌍한 내 새끼!”
 
자식사랑으로 한평생 살았던 어머니는 늙어가는 큰아들 걱정에 혹여 당신이 죽기 전에 큰며느리와의 화해를 기다리는 듯싶다. (2008년 10월)



▲김성애 수필가의 모친(오른쪽). 입원 중 자신의 이야기가 딸의 수필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된 것을 기뻐했다.    ©브레이크뉴스     
송말순 여사님의 ‘썩을 년’ 시리즈 (2)

 
1.
자식사랑으로 한평생 홀로 살았던 어머니가 변했다. 

“인생 후딱 지나가니, 니는 재미지게 살아라. 혼자 자식새끼들 잘 키웠다며 누가 열녀문 세워 주냐?  아니 죽어서 열녀문 세워주면 금이 나오냐~ 은이 나오냐~.”

당신이 힘겹게 지낸 세월의 한을 딸에게 털어 놓는 어머니에게 ‘썩을 년’ 시리즈(1)를 읽어 드렸다.
 
“어쩜! 니는 하~나도 거짓말 안하고 그리도 잘 썼냐? 내 딸이 있어 이런 글을 써주지 누가 써 주겠냐!”
 
딸이 글을 읽는 동안 어머니의 눈에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당신의 한을 이해해 주는 딸이 고마워서 눈물이 나오고, 고생하고 살아온 옛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눈물이 저절로 나온다고 했다. 어머니는 고생한 옛날이야기만 나오면 언제나 눈물바람을 한다.
 
2.
33세에 홀로 된 어머니는 동대문시장 한복집에서 삯바느질하여 어린 삼남매를 키웠다.  그 시절 젖먹이 딸을 데리고 하루 종일 바느질하여 번 품삯으로, 그날 저녁 먹을 식량을 샀다고 한다.

“니 등에 업고 보리쌀 5홉, 쌀 2홉 사들고 집에 오면 어찌 그리 좋던지……. 어린 새끼들 먹이려고......”
 
어린 자식들 굶기지 않고 저녁밥 지여 먹을 생각에 마냥 행복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에 쌀이 조금 더 섞인 보리밥을 두 아들 도시락에 싸주고 나면, 당신 먹을 밥은 없었다고 한다. 솥 밑에 누른 보리밥에 물 넣고 끓이다가 밀가루 휘~이 푼 죽으로 당신의 아침밥을 먹었다고 한다.
 
“동대문시장에서 바느질할 때, 니는 착해서 온종일 조그만 다라 안에서 놀았어.  얼마나 나와서 기어 다니고 싶었겠냐. 나오려고 발을 살짝 들면 쉬~소리에 얼른 발이 내려가고......”

착하디착한 딸이 불쌍하게 자랐다면서 또 눈물을 흘렸다. 동대문시장 알록달록 바느질감이 펼쳐진 구석, 조그마한 함지박 속 젖먹이 딸 옆에서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코끝 찡하게 그려져 딸도 함께 울었다.
 
3.
어머니는 30년 넘게 바느질하느라 마음껏 집밖 구경 못해보고, 자식들 키운 젊은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딸한테 비췄다.
 
“니들 키우면서 내가 바느질 안하고 밖에 나가 포장마차 했더라면, 아마 니들은 고아원에서 자랐을 게야.”
 
이리 멋쩍게 말하면서 검버섯과 주름살이 가득한 손등을 내려다보며 당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는 듯싶다. 사진 속에 있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은 정말 곱고 연약한 모습이었다.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 난 어머니의 여린 모습은 홀로 삼남매 키우면서 드센 여장부로 변하였다. 딸 기억에 남겨져 있는 젊은 시절 어머니의 모습은 정말 무섭고 힘이 센 사람이었다.

분명 어머니도 젊은 시절 고왔던 연애담도 있을 법도 한데……. 딸이 어머니에게 아버지 그리워 어찌 50평생 홀로 살았는지 넌지시 물어 보았다.
 
“어린 새끼들만 남겨 놓고 먼저 죽은 놈을 내가 왜 그리워하냐? 이 세상에서 가장 못된 놈이 그놈인데......”
 
그래도 정이 많았던 아버지가 이웃에게 먹을 식량 주었던 이야기들은 어릴 적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  1950년 대 그 당시 먹을 게 없는 이웃에게 곡식 주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덧붙여 이야기했던 어머니이다.
 
홀로 사는 동안 멋있는 아저씨가 눈에 보이지도 않았느냐는 딸의 장난기 있는 말에 어머니도 웃으면서 맞장구쳤다.
 
“사내놈들은 내가 사나워서 그런지 내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해!  오면 내가 잡아먹는지……. 니도 내 이빨 좋은 거 알지........ 아마도 니 애비도 물어뜯기기 전에 그래서 빨리 죽었나?”

크게 웃으면서 어머니는 자식들 끼니 걱정, 학비 걱정에 그런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4.
어머니는 50평생 구석구석 옹알이처럼 박힌 한을 딸에게만 속내를 비춘다.  당신의 속내를 이해해 주는 딸을 좋아한다. 
 
“아이고, 내가 늙어서 호강하려고 니를 낳았나 보다.  내 딸이 없었더라면 내 어찌 살았을꼬?”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은 내 딸을 낳은 거라며, 딸 자랑을 끝도 없이 한다. 언제나 내 편인 어머니의 끝없는 칭찬에 이 세상 살 맛 난다. (2008년 10월)



▲김성애 수필가.  그는 당선 소감에서 “내 삶의 뿌리인 내 어머님 이야기를 쓰는 시간은 무척이나 뜻 깊고 행복했다”라고, 그 감정을 피력했다.    ©브레이크뉴스 
송말순 여사님의 ‘썩을 년’ 시리즈 (3)

 
1.
“저 썩을 년들은 밥도 안 처먹나!”

창문으로 밖을 몇 번 씩 기웃거리며 어머니는 욕을 한다. 

“저 썩을 년들은 할 일 없으면 집에서 잠이나 자지.  왜 저리 하루 종일 퍼질러 앉아서 남 지나가면, 그 집 숟가락 몇 개까지 일일이 세고......”

어머니의 연립주택 골목 길가에는 5~6명의 할머니들이 언제나 앉아 있다.
 
어머니는 3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되도록이면 사람들 많은 곳은 피한다.  통 크고 당당하였던 어머니를 기억하는 동네 할머니들이 ‘왕언니, 왜 이리 말랐어! 또 병원에 있다 나왔어?’하는 소리 듣기 싫다며 좋아하는 목욕탕에도 가지 않는다. 
 
그런데 어머니의 연립주택 골목에는 그리 늙지 않은 젊은 할머니들 사랑방이 있다. 이 골목에 사는 할머니들이 길옆에 앉아서 하루 종일 이야기도 하고, 야채도 다듬고, 가지고 나온 고구마도 함께 먹는다. 어머니는 몇 번이고 창문바깥 동정을 살피며 하는 수 없이 노인정가려고 집을 나선다.
 
“한 명 빠졌으면 내가 낄까?”

농담하면서 당신 딴에는 복띠 두른 배 힘주어 굽은 허리 곧추 세우고, 싫은 내색 비추지 않고 골목 사랑방을 지나친다고 한다.
 
2.
사리분별이 분명한 어머니는 40년 넘게 산동네에서 ‘왕언니’로 통한다.  비좁고 오래된 어머니의 집은 항상 따스한 사람 온기가 있다. 어머니는 ‘사람 집에 사람들이 넘쳐야 복이 온다.’며 집에 놀러온 할머니들에게 새로 지은 따뜻한 밥 대접하며 정을 준다.
 
동네 어른들은 어디서나 ‘우리 왕언니가 껴야 재미져~’하며, 어머니의 넉살좋은 농담을 지금도 좋아한다.  며느리 눈치 보느라 집밖 길가에 쪼그려 앉아 있는 할머니라도 보면, 언제나 할머니 손에 몇 천원을 쥐어 준다.  당신은 지금도 용산역 가는 마을버스 요금 900원 아까워서, 쪼그려 앉아 여러 번 쉬며쉬며 용산역까지 걸어 다닌다.
 
어머니 집에는 동네 어른들의 정들이 넘쳐 난다. 한강변 공터에서 키운 무농약 채소, 쑥떡, 참기름, 호박, 과일 들이 검정봉지에 담긴 채 옹기종기 어머니 집 거실에 놓여 있다.  어머니는 병문안 오는 할머니들을 반갑게 맞으며 고마워한다.  할머니 갈 때에는 굳이 사양하는 할머니 손에 다른 할머니가 가져온 과일이나 참기름을 쥐어 준다.  딸이 있을 때 할머니가 놀러 오면, 어머니는 할머니 용돈 드리라고 딸에게 눈을 껌벅껌벅한다.
 
어머니 동네에 들어서면 송말순 여사님 딸이라 환영받는다. 어쩌다 어머니 친구 분을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말을 건넨다. 

“아이고~ 엄마 보러 왔구나. 지금 막 성애 온다며 집에 들어가셨다. 착한 딸 왔다고 왕언니가 좋아하겠네.”
 
오래된 가게에서 과일사면 주인 할머니가 왕언니 좋아하는 과일 덤으로 준다며 봉지에 더 넣는다. 길에서 만난 어머니 친구 분에게 과일 사드렸다고 어머니에게 말하니,

 “그 썩을 년은 치매 걸려 억지 쓰더니 너는 알아보더냐?”
 
하며 친구 분 욕을 한다. 조금 전에 노인정에서 그 친구 분하고 다투었다고 이야기하면서 금세 ‘그래 잘했다.’하며 환하게 웃는다.
 
3.
오늘도 손녀딸이 선물한 감색 볼터치로 화장을 곱게 마무리하고, 창밖을 기웃거리며 욕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입가에 미소 지어진다.

“저 썩을 년들은 밥도 안 처먹나?”
 
내 어머니의 이야기로 사는 재미를 듬뿍 맛 볼 수 있어 정말로 행복하다.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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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꽁치 2010/01/02 [19:12] 수정 | 삭제
  • 다음에서 보고 왔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큰 며느님 하고도 화해 하셨으면 좋겠네요..
    울 엄마가 구수하게 욕하는것과, 시어머님이 그러시는건 차이가 있으니..
    며느님 마음도 조금 알아주시면 좋을꺼 같아요...
    앞으로도 썩을년 씨리즈 계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대둔산 2009/12/17 [20:12] 수정 | 삭제
  • 참 놀랐습니다. 검색엔진에서 브레이크뉴스를 치고 이름을 검색해 보고, 수필가 김 쳐보고, 순수하며 진솔한 아름다움을 알았습니다. 직접 보는 모습과 마음속에 그 크신 사랑과 정이 있씀을...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짱아 2009/10/23 [15:47] 수정 | 삭제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깊은 착함에서 우러나오는 어머님에 대한 그림움을 보면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사랑을 느낍니다..
  • 가야 2008/12/01 [19:38] 수정 | 삭제
  • 아주 편하게 잘읽었어요..
    눈물이 나올려고 해요.........
    천천이 음미 하면서 여러번 읽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글 많이 써주세요..
    계속 응원 할게요..
    수고 조치원에서
  • 깐돌이 2008/12/01 [19:33] 수정 | 삭제
  • 글 잘읽었습니다
    너무 리얼하게 잘 쓰셨네요...
    이글은 우리들에 어머니상 입니다. 이런 글을 쓴 사람이 많이 있질 안아요......
    사실 다 알면서도 글로 리얼하게 쓴다는것이 쉽지만은 안코요.
    앞으로 좋은글 많이 쓰세요...ㅎ ㅎ
    수고 많이 하세요...
  • 정정희 2008/11/28 [23:09] 수정 | 삭제
  •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모두 재미있게 읽고 감동받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의 모든 어머님을 대표하시는 우리 송말순 여사님 빨리 완쾌 하시고, 송말순 여사님의 썩을년 시리즈가 오래도록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 성직자 2008/11/27 [18:14] 수정 | 삭제
  • 밀알이 썩어지지 않으면 새싹이 나지 않아요. 어머니의 헌신적인 희생이야말로 모성애의 큰 표본이십니다. 그런 어머니를 가졌다는 것은 김교수에게도 좋은 일이었지만 우리 사회에도 귀감입니다. 좋은 수필, 잘 읽고 갑니다.
  • 뽕나무 2008/11/27 [17:42] 수정 | 삭제
  • 큰 며느리가 매번 듣는 썩을 년 소리는 교수님 말처럼 어머니 18번인가 보네요. 그래도 큰 아들 사랑하는 맘을 며느리에 대한 큰 관심과 욕으로 표현하신 것 아닌가요. 계속 아름다운 글들을 풀어 주세요.
  • 실크인간 2008/11/27 [16:10] 수정 | 삭제
  • 누에는 이슬처럼 깨끗한 뽕잎 만을 먹고 자라 인간을 위해 곱디고운 명주실을 토해내어 따뜻하고 아름답게 감싸줍니다. 김교수님의 글은 정말 명주실 보다 아름답고 간결하며 삶의 질곡을 흔들어 그 속에서 새로운 사랑의 아름다움 으로 모든이를 감동시켰습니다. 앞으로 누에처럼 명주실 토해내듯 줄 줄 줄 더 좋은글 기대합니다.
  • gloria900 2008/11/27 [04:38] 수정 | 삭제
  • 밝고 맑은 미소뒤에 어머니의 솔직하고 담백한 사랑이 있었구나
    한국의지의 여인답게 병환중 이신데도 참 건강해 보이신다 썩을년 시리즈를 읽고
    웃기도 했지만 외??마음이 숙연해 질까 나도 홀로 되었을때 난 우리자식들 에게
    참 이기적이였던 이유 때문일까? 벌기는 커녕 있던 재산도 나의 무능함으로 없어졌으니까 새삼 내 자신을 돌아 보게한 너의 당선작 축하한다
  • 늙은 팬 2008/11/26 [17:13] 수정 | 삭제
  • 김 교수를 좋아하는 올드 보이 팬인데, 이젠 수필가 됐으니 팬들이 더 많아지겠군요. 수필 읽고, 엉뚱한 데가 더 많아 더욱더 팬이 됐습니다. 이젠 팬 관리 좀 잘해 주세요.
  • 과객 2008/11/26 [17:09] 수정 | 삭제
  • 수필 속의 주인공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썩을년“이란 말은 누구를 미워함이 아닌,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안타까워하는 그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 뒤에 웅덩이처럼 고인 인간애가 그립습니다.
  • 딸내미 2008/11/26 [17:05] 수정 | 삭제
  • 엄마 맨날 밤늦게까지 컴퓨터 자판두드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10번씩 읽어줬던 글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네요~
    축하하고 다음 글엔 내 효도 좀 같이 풀어줘요~
    엄마 너무 자랑스럽고, 사랑해!!
  • 서기친구 2008/11/26 [16:57] 수정 | 삭제
  • 삭막하고 치졸한 요즘 세상을 한편의 어머니에 대한 삶의 여정으로 따뜻하게 녹여주신 김성애 교수님의 글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더욱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글로 모두를 즐겁게 해 주십시오. 또한 송말순 어머님의 남은 여생에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ojabal 2008/11/26 [16:50] 수정 | 삭제
  • 그 어느 문학 작품 보다 진솔하고, 그 어느 뛰어난 소설보다 저 진지하며, 그 어떤 글로 표현 하지 못할 아주 감명 깊은 작품이라 생각이 듭니다.

    비록 문학 평론가는 아니지만! 뭐 문학 평론가가 따로 있습니까? 독자들이 보고 읽으며 마음에 와 닿는다면 그것이 곧 문학 작품인것을!

    어떤 문학인들은 어렵고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잘 이해 하지 못하 소설 같은 것을 베스트 셀러라고 평가 하곧 하지만 김성애 작가가 쓰신 이 두편의 수필은 그 어떤 작품 보다 더 감동적이고 진실이 담겨 있어 정말 수필가로서 하나도 손색이 없으십니다. 이제는 수필가로서 첫발을 디디셨으니 종종 좋은 작품 기대 합니다.

    잘 읽어 보았습니다.
  • 제자 2008/11/26 [15:24] 수정 | 삭제
  • 교수님! 증말 증말 축하드려요. 교수님께 강의 들을 때도 교수님 분위기가 예술가틱했더랬어요. 다음 주 중으로 전화 드리고 한번 찾아뵐께요. 교수님 추카해요.
  • 친구 2008/11/26 [15:04] 수정 | 삭제
  • 친구가 새롭게 작가로 태어나는 것을 보고 나도 기뻐. 이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고 키워낸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를 친구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금 볼 수 있게 되어 나도 감동물결이야. 축하해. 작가로서 이 세상에 우뚝 서길 빌어.
  • 외로운 백성 2008/11/26 [14:43] 수정 | 삭제
  • 어머니 이야기가 절절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젊어서 홀로되어 자식 키운, 수필 속의 어머니는 위대한 분 같습니다.
    김교수, 수필가로의 새 출발, 정말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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