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간 오케스트라단을 소재로 다룬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이하 베바)의 방영 이후 클래식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이 같은 ‘베바’의 열풍에 힘입어 악기 판매가 급증한 것은 물론 이런저런 사정으로 음악도의 꿈을 접었던 직장인 또는 주부들이 악기를 다시 잡고, 현실 속 ‘베바’를 꿈꾸기도 한다.
그런데 ‘베바’는 비단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실제로 민간 오케스트라단이 국내에서 설립됐다가 재정적인 이유 등으로 해체된 바 있다.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활동한 부산의 ‘을숙도 교향악단’은 국내최초의 민간 오케스트라단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은 당시 ‘을숙도 교향악단’의 공동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이호준씨를 통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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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12일 창단 공연 시작으로 약 2년 동안 200회 정도의 크고 작은 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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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숙도 교향악단 악단원들은 음대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들어온 단원들로 구성...콘트라베이스 주자는 사회에서 물건배달 일을 하다가 오디션 거쳐 입단해 화제 모아"
<베바 : 음악에 꿈을 가진 9급 공무원인 지아는 음악 오케스트라 아이디어를 내게 되고 석란시 시장에 의해 채택, 오케스트라단을 추진하게 된다>
지난 2004년 국내는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경기침체와 제조업체의 해외 이전에 따른 ‘산업공동화 현상’이 발생한 것. 이에 정부는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을 제정해 운영했고 부산시는 해마다 부산지방 노동청과 협력해 부산시 ‘실업해소대책’을 수립해 추진하는 상황이었다. 노동부는 ‘고용보험기금’을 이용해 지난 2005년부터 ‘청년신규고용촉진장려금제도’를 본격 시행했다.
이호준씨에 따르면 을숙도 교향악단은 부산지방노동청의 공무원 유모씨가 낸 아이디어를 토대로 설립됐다. 당시 취업상담을 주요업무로 하던 유씨가 부산문화회관에서 시민을 위한 해설음악회를 진행하던 정모(ooo대 겸임교수, △△중학교 음악교사)씨에게 노동부가 지원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홍보, 제의한 것.
그는 “정oo시가 ‘12년을 공부하고 비싼 레슨비를 들여 대학에 들어가 보통 수천만원짜리 악기로 4년, 16년을 공부해도 사회에 나가 전공을 살리는 사람은 몇 안 된다’는 말을 했고 이 말을 들은 유씨가 을숙도 교향악단 설립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고 설명했다.
부산지방노동청 부산종합4고용안정센터는 2004년 11월 부산지역의 불특정다수의 음악전공 청년구직자 300명을 대상으로 취업설명회를 개최하고 구직등록을 실시했다. 이에 조모씨는 장(초대 단무장)씨, 조(◇◇대 음악학과장·교수)씨 등과 함께 기업형태의 교향악단 설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한다.
을숙도 교향악단 설립을 추진해 12월부터 창단단원 모집 공고를 내고 응시생 300여 명을 대상으로 서류전형, 필기논술 테스트, 현장활동 능력 테스트 등을 거쳐 75명의 연주자를 선발했다는 게 이씨의 설명. 이들 중 62명을 대상으로 2005년 4월 조기채용창단 기념연주회를 준비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섰다는 것.
“을숙도 교향악단은 문화예술 분야의 일자리창출과 지역문화의 저변확대를 목적으로 창단됐다. 음악인은 음악적 목적을 위해, 정치인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악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벗
<베바 : 다양한 연령대의 음대전공이 아닌 사람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수재민들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고 감동적인 연주를 선보인다>
이씨에 따르면 을숙도 교향악단의 악단원은 대부분 부산지역 음대 졸업생들로 구성됐다. 음악에 뜻이 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청년들이 주가 됐다는 것. 그는 “음대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들어온 단원들도 있었다.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사회에서 물건배달 일을 하다 오디션을 거쳐 들어왔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4월12일 창단 공연을 가진 을숙도 교향악단은 ‘생태·시민자치’ 운영철학을 바탕으로 약 2년 동안 200회 정도의 크고 작은 공연을 했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 또는 그들이 모인 지역을 찾아다니며 연주를 선보인 것. 이들은 창단초기부터 동전 10원, 폐건전지, 헌책 등 폐품을 관람료로 받는 식으로 공연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에 부산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청년실업 해소라는 획기적인 일자리창출 프로그램이자 서민들에게 있어 문화향유를 돕는 매개체로서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이씨는 “찾아가는 음악회라는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동했기 때문에 지역민의 반응은 대단했었다. 한번은 치매병원에서 공연을 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운영자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했다. 운영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나중에 간호사들이 말은 고사하고 의사표현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한 번 와달라고 했다”고 당시 오케스트라의 감동적인 공연과 관객들의 뜨거웠던 호응을 회고했다.
“을숙도 교향악단 단원들은 음악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노력했고 시민자치라는 공익적인 철학을 지키기 위해 힘썼다.”
실패 그리고 배신
<베바 : 연주회에 늦은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는 길거리 공연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지만 결국은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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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에 따르면 을숙도 교향악단은 처음부터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다. 노동부에서 업체의 임금지급 내용을 검토한 이후에 ‘신규고용촉진장려금’을 지원한 것. 단원들의 월급뿐 아니라 직원들의 고용보험료 역시 사업주가 부담해야 돼 운영자는 상당한 금융 부담을 안게 됐다고 한다.
이씨는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악단이 아니다 보니 많은 부분을 후원금과 노동부 또는 시 지원금에 의지해 운영해야 했다. 그런데 노동부는 처음부터 주식회사 형태는 지원금 집행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지원금 집행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보니 정씨는 자금압박에 시달렸고 임금체불 등으로 단원들에게 불신감을 주게 됐다. 이때 을숙도 교향악단의 열렬한 팬이며 후원자이자 노동부직원 유씨의 친구였던 건설회사 소장 서모씨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모든 사업을 인수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자금난에 시달려 □□□의료재단에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을숙도 교향악단은 2006년 11월 □□□의료재단에서 맡게 되지만 부산지방노동청의 ‘사회적 일자리 지원사업’ 심사에서 탈락, 재정난에 시달리고 결국 지난 2007년 3월에 도산했다.
“을숙도 교향악단은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억울함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공대위를 만들어 활동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서 보도됐고 그에 따라 지역의 몇몇 분(기업)이 관심을 표명해 만나보았다. 하지만 잿밥에 관심이 있다 보니 성사되지 않았다.”
그는 “2대 대표 서oo씨가 을숙도 교향악단을 담당했던 때의 일이다. 사회에서 물건배달을 하다 오디션을 통해 합격한 콘트라베이스 주자는 얼마 되지 않아 연주를 하던 중 배가 아프다고 호소해 병원에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는 위에 병이 나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고 서oo씨는 사비를 털어 수술비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고 했다.
이호준 “을숙도 교향악단 규모의 악단을 창단하는데 약 200억의 예산이 든다. 연간 80회 정도 공연을 하는데 들어가는 예산 또한 최소 20억...민간 오케스트라단 성공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
노동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베바 : 석란 시장은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공연을 추진한다>
지난 2005년 10월 부산지방고용지원센터는 노동부장관에게 을숙도 교향악단의 사례를 보고했다. 이들은 2006년 4월 부산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고용서비스선진화 우수시범사례로 보고, 청와대 브리핑 룸에서 맞춤형 취업지원 서비스라는 혁신사례로 소개했다. 그 후 2006년 11월 부산지방노동청은 한국메세나 협의회에서 문화예술전문 인력육성 및 지원 기업·단체에 주는 ‘메세나대상창의상’을 수상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노동부는 을숙도 교향악단을 자신들의 홍보단체인 양 이용했다. 잘나갈 때는 노동부의 치적으로 하곤 잘못될 기미가 보이니까 지원금을 막는 등 도산에 일조했으며 도산된 후에는 부정수급단체로 규정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도산에 따라 발생한 임금체불과 고용보험피보험자격상실처리의 지연으로 실업급여청구가 곤란해진 일부단원이 노동청에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을숙도 교향악단은 창단과정 중 인 지난 2005년 3월2일부터 23일까지 합주테스트 전형기간을 가졌었다. 그런데 노동청에서는 일부단원들의 불확실한 진술을 근거로 합주테스트 기간을 수습기간으로 해석했다.
또한 창단단원들의 입사일자를 3월24일에서 3월2일로 정정 처리했다. 이로 인해 을숙도 교향악 사업주가 지난 2년간 부정수급을 목적으로 횡령한 것으로 처리했다. 공개모집을 통해 단원들을 채용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중간에 감사까지 나와 조사를 했었다. 행정상의 착오를 일으켜 부정수급이라고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2006년 11월 2대 사업주 서씨에서 3대사업주 김모씨로 전체사업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사업주 명의변경을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2대 사업주 서씨에게 2007년 6월 총 14억이라는 배액추징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그는 “부산지방노동청은 서류상 명의이전이 안 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2대 사업자 서oo씨에게 책임을 물었다. 결국 서oo씨는 지난 2월 사기죄로 구속되고 유oo씨 또한 부산지방노동청에서 해고, 같은 죄목으로 구속됐다. 현재는 두 사람 다 형사사건의 죄목의 일부 묵리한 점이 인정돼 출감한 상태이며 14억 추징금에 대한 민사소송을 진행중이다”고 밝혔다.
드라마는 허구일뿐
<베바 : 그들은 결국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직장도 없어졌지만 그래도 그들은 행복해한다>
이씨는 “드라마는 허구일 뿐 현실은 아니다. 지금에 와서 궁금한 것은 드라마를 보고 그렇게 감동을 하면서 드라마속의 악단보다 더 드라마 같은 공연을 했던 을숙도 교향악단의 도산사태에 있어 시민들이 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를 토로했다.
그는 또 “을숙도 교향악단은 노동부의 정치적인 목적과 몇몇 음악인의 음악적인 몽상이 맞아떨어져 만들어진 단체였기 때문에 언제든지 공중분해의 위험성이 있는 단체였다. 물론 실현 가능 선까지 성장을 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자금압박으로 인해 사업주가 변경됐다”며 “을숙도 교향악단 규모의 악단을 창단하는 데 약 200억의 예산이 든다고 한다. 연간 80회 정도 공연을 하는데 들어가는 예산 또한 최소 20억이라고 한다. 과연 아무런 이익이 없는데 그 많은 돈을 내놓을 사람이 있을까? 민간 오케스트라단이 성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민간 오케스트라단의 한계라고 한다면 자금이다. 자금이 충분하다면 누군가의 제약이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문제가 생겼을 경우 똘똘 뭉쳐서 해결해야하는데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예술가들인지라 그렇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을숙도 교향악단의 공동대책위원장을 맡아 정oo, 서oo, 유oo씨와 참 외롭고 서러운 투쟁을 했다. 결국 모두가 예술을 위해 힘쓰려다 사회와 도덕 앞에 범죄자 또는 동조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옳은 결정이었고 앞으로도 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그러한 만큼 나는 투쟁을 선택했다. 그저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을숙도 교향악단의 민사사건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취재 / 김문수 기자 ejw020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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