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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지의 항구향해 출항의 닻 올렸다”

제1회 브레이크뉴스 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정 진영씨 작품

정진영 수필가 | 기사입력 2008/11/27 [14:12]
**제1회 브레이크뉴스 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소감
 
이 기쁜 날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어제 뜻밖에 브레이크뉴스 제 1회 문학상 당선 통지를 받고나니, 사람 마음이 간사해 그런지 이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늘 예사로 보던 관악산 원경(遠景)이 더 가깝게 보이고, 거실의 행운 목 잎이 더 새파랗게 보이고, 내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애완견 삼순이가 오늘따라 강아지로 안 보이고 어린애처럼 보이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 정진영  수필가   ©브레이크뉴스
그러다가 내 마음이 갑자기 우울 모드로 바뀌었다. 내 유년의 눈물겹고 힘겨웠던 순간순간들이 떠올랐다. 그 때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고난과 역경들이 많았는데 어떻게 좌절하지 않고 용케 헤쳐 왔는지 지금 생각하니 꿈만 같다. 내 삶의 흔적과 편린들을 글로 써놓고 보니 내 눈에는 드라마가 따로 없고, 시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기쁜 날 왜 웃음이 나오지 않고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나는 이제 미지의 항구를 향해 출항의 닻을 올렸다. 앞으로 얼마나 큰  파도와 풍랑을 만나야 하며, 얼마나 많은 낯설고 새로운 항구에 정박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출항하는 내 마음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호기심으로 한없이 들떠 있다.
 
새로운 인터넷시대를 열어가는 브레이크뉴스에서 국내 최초로 문학상을 제정하여 내게 좋은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경력

정  진영 (여). (응모시 필명 정 혜숙)
1963년생 서울 

약력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 전공
         한국민속문화연구회 대표
         해돋이문학동인회 회원
 

작품/ 꽈배기, 내일은 꼭 사주마
 
1.
그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정치적인 무슨 사건에 연루되어 피신 중이었다. 우리 엄마는 돐박이 막내만 데리고 아버지가 피신하고 있는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아버지 뒷바라지를 했다. 그 바람에 나와 두 동생은 뜻하지 않게 천덕꾸러기가 되어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마침 우리는 꽈배기 공장 옆에 살았다. 꽈배기 공장에서 꽈배기를 튀기면 온 동네에 꽈배기 냄새가 진동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다섯 살 박이 막내 여동생이 말했다.

“언니?”
“응?”
“돈 있어?”
“왜?”
“그냥...”

동생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동생이 뭔가 할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뭔데? 말해봐!”

동생은 고개를 숙인 채 자기 발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한참 뒤에 동생이 입을 열었다.

“언니는 꽈배기 안 먹고 싶어?”
그 순간 꽈배기를 먹고 싶어 하는 동생의 마음이 전해져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미안해. 나중에 언니가 돈 많이 벌어 사주께” 

발을 만지작거리던 동생이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언니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언제 돈을 벌어서 사 줄 건데?”
 
그 무렵 나는 비누 장사를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가방 속에 책과 공책을 꺼내놓고 가방을 비우는 일이었다. 그렇게 빈 가방을 들고 비누 도매 집에 가서 도매로 비누를 사서 가방에 채워 넣고, 집집마다 팔러 다녔다. 유난히 체구도 작은 초등학교 4학년짜리 여자애가 비누를 팔러 다니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딱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차곤 했다. 그래서 동네 아주머니 중에는 당장 비누가 필요하지 않아도 한 두 개 정도를 사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우리 담임선생님이 대신 내주었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내게는 육성회비를 받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비누를 판돈을 모아 동생의 육성회비를 내곤 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였다.
 
“네 언니 육성회비 내고 돈 남으면 그때 꽈배기 사 주마. ”
 
막내 동생은 고개는 끄덕였지만 내 말을 믿지는 않는 눈치였다.
 
다음 날도 학교에서 돌아오자 오늘은 막내 동생에게 꽈배기를 꼭 사줘야지 하고 보통 때보다 더 부지런히 비누 팔러 온 동네를 종종 걸음으로 돌아다녔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와서 그 동안 모은 돈과 오늘 번 돈을 합쳐서 몇 번이나 세어보았으나 겨우 동생 육성회비 낼 돈밖에 되지 않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막내 동생이 물었다.
 
“언니, 꽈배기 살 돈 벌었어?”
 
나는 대답을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초저녁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저 많은 별들이 다 돈이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2.
그 이후, 나는 꽈배기 공장 앞을 지나가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우선 꽈배기 냄새가 내 코를 찌르는 것이 고통스러웠고, 막내 동생에게 꽈배기를 사 주지 못하는 처지도 고통스러웠다. 집에 돌아오니 막내 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 꽈배기 사왔어?”
 
나는 동생을 번쩍 들어 올려 볼에 입을 맞추면서 말했다.

“미안해. 내일은 꼭 사줄게”
“거짓말! 언니는 맨 날 내일이야”

그 다음 날도 부지런히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비누를 열심히 팔았다. 그러나 막내 동생에게 꽈배기를 사줄 돈은 없었다.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꽈배기 공장이 가까워지자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꽈배기 공장 앞에 이르자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 눈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숨을 한번 깊게 몰아쉬고 꽈배기를 훔치려고 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내 머리채를 잡아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아무도 없었지만 차마 꽈배기를 훔칠 수는 없었다. 어느새 내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숨을 할딱이며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기다기고 있던 막내 동생이 내 빈손을 보면서 말했다.

“언니. 꽈배기는?”
“미안해, 내일은 꼭 사올게”
 
3.
다음 날 비누를 팔러나가는 등 뒤에서 막내 동생이 말했다.

“언니, 오늘은 꼭 꽈배기 사와.”
“응, 오늘은 꼭 사올게.”
 
그날도 꽈배기 살돈은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꽈배기 공장 앞을 지날 때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뒤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꽈배기를 훔치려고 했다. 그런데 도무지 꽈배기를 집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꽈배기를 훔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더 이상은 꽈배기를 먹고 싶어 하는 막내 동생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날은 어떤 일이 있어도 꽈배기를 훔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꽈배기 공장 앞에 이르렀다. 그날도 주위에 사람이 없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잽싸게 꽈배기를 한 개 집어 들었다. 누가 볼까 싶어 훔친 꽈배기를 품 안에 감추었다. 그리고는 잰 걸음으로 집으로 달렸다. 막내 동생을 찾았으니 놀러 나갔는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꽈배기가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그러나 막내 동생이 오면 주어야 한다. 동생을 기다리는 동안 혹시 꽈배기 공장 아저씨가 나를 뒤따라 와서 꽈배기를 빼앗아갈까 봐 어디엔가 깊숙이 숨길 곳을 찾아보았다.  내 딴에는 이불 속에 숨기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아서 잽싸게 이불 속에 꽈배기를 숨겼다. 잠시 후에 동생들이 들어왔다. 막내가 코를 킁킁거렸다.

“언니 꽈배기는?”
“눈 감아, 내가 꽈배기 줄게.”

동생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제비새끼처럼 기다렸다. 나는 재빨리 이불 속에 숨겨두었던 꽈배기를 꺼내어 두 동강을 내었다.

“자, 눈 떠”

동생들은 내 손에 들린 꽈배기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 진짜 꽈배기다!”
내가 말했다.

“애들아, 언니가 오늘은 돈이 없어 하나만 샀지만 다음에는 하나씩 사 주마”

동생들은 꽈배기 반 동강을 먹은 것이 아무래도 양에 차지 않는지 손가락을 몇 번이나 쫄쫄 빨았다.
 
4.
나는 다음 날 꽈배기를 두 개 훔쳤다. 나도 모르게 간이 켜져 일주일 동안 매일 꽈배기를 두 개씩 훔쳤다. 세 개를 홈치면 나도 하나 먹을 수 있었지만 끝내 세 개를 훔칠 용기는 없었다.

두 개씩 꽈배기를 훔친 지 일주일 쯤 지난 어느 날 꽈배기 공장 앞에 선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꽈배기가 담겨 있던 상자 옆에 낯선 소쿠리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소쿠리 안에 부스러진 꽈배기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그 동안 내가 꽈배기를 훔친 것을 주인아저씨가 안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불쌍해 보여 일부러 나 가져가라고 소쿠리에 바스러진 꽈배기를 담아놓은 것이구나.--
 
그 순간 나는 그동안 꽈배기를 훔친 것이 들켰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해서  소쿠리 안에 담겨있는 부스러진 꽈배기조차 집을 수가 없었다. 나는 꽈배기 공장 아저씨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워 잰 걸음으로 집으로 달려왔다.
 
그 뒤 나는 꽈배기 공장을 지날 때마다 주인아저씨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주위를 살핀 후, 주인아저씨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도둑고양이처럼 잽싸게 지나다녔다. 이상하리만치 동생들도 꽈배기 타령을 하지 않았다.
 
그런 지 일주일 쯤 지난 어느 날 난데없이 우리 집에 꽈배기 공장 아저씨가 꽈배기를 한 소쿠리 담아들고 왔다. 나는 겁이 나서 어디라도 숨고 싶었지만 숨을 데가 없었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않고 내게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꽈배기 소쿠리를 내 앞에 두고 갔다. 나는 잘못했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멀어져 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서 있었다.(2008. 10)
 


▲정진영 수필가. 그는 수상소감에서 "지금 출항하는 내 마음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호기심으로 한없이 들떠 있다"고 말했다.     ©브레이크뉴스
작품/“엄마, 둘이 합치면 온도가 몇 도야?”


지난 여름, 단골 미용실에 갔을 때 일이다. 이름난 미용실이라 그런지 언제가도 손님이 북적댔다. 대기용 소파에 앉아 한겨레신문을 뒤적이며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내 옆 자리에는 삼십대 후반의 주부가 여성잡지를 뒤적이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1학년 사내아이의 머리를 자르려고 온 것 같았다. 이때 사내애가 갑자기 말했다.

“엄마, 사람 온도가 몇 도야?”

나는 그 사내애가 사람 온도를 왜 묻는지 궁금해서 사내애를 쳐다보았다. 피부가 하얗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어린이였다. 읽고 있던 잡지를 넘기며 엄마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36.5도!”

엄마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러자 사내애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둘이 합치면 70도가 넘네?”
“으응”

엄마는 또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사내애가 또 물었다.
 
“오늘 온도는 몇 도야?”
“아마 30도 쯤 될껄”

“엄마, 난 30도도 뜨거워 죽겠는데, 두 사람이 사랑하면 70도가 넘어서 엄청 뜨겁겠다.  근데 어떻게 사랑을 하는 거야?”
 
나는 그 순간 엄마가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해서 읽고 있던 한겨레신문을 접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나라면 뭐라고 대답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사내애 엄마 쪽을 쳐다보았다. 이때 사내애 엄마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오늘처럼 30도면 뜨겁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합쳐서 70도가 넘어도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따뜻해지는 거야.”
 
나는 그녀의 대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두 사람이 사랑을 하면 뜨거워서 서로 데이는 것이 아니라 따듯해진다는 해석은 참으로 지혜로웠다. 그러자 사내애가 말했다.

“아하, 그래서 엄마와 아빠가 사랑을 해도 데이지 않는구나!”

그 순간 대기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 웃었다. 사내애는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물었다.
 
“그럼 엄마, 내가 커서 결혼해서 우리 색시와 아빠랑 엄마랑 같이 살아도 아무도 데이지 않고, 더 많이 따뜻해지겠네?”

“그래, 네 말이 맞아. 사랑을 하면 아무도 데이지 않고 서로 따뜻해지는 거야.”
“나도 빨리 사랑하고 싶다.

그 순간 엄마는 사내애를 꼭 껴안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손님들이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두 사람을 향해 손뼉을 쳤다. 나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그날 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내내 “뜨거움”과 “따뜻함”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누구나 “사랑을 하면 뜨거워서 화상을 입는 것이 아니라 서로 따뜻해진다”라는 그 엄마의 절묘한 해석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미용실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 모자가 한 이야기는 두고두고 내 가슴에 남아 있었고, 그 장면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내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졌다.(2008.10)
 


작품/삼식이 짝꿍 삼순이

 
1.
나는 개를 끔찍이 싫어한다. 어느 날 이웃 동네에 사는 수철이 엄마가 우리 동네에 볼일이 있어 온 김에 우리 집에 들렀다.

“정 선생. 개 좋아해요?”
“저는 개 싫어해요.”

수철 엄마는 한숨을 쉬면서 난감해한 뒤 한참 망설이던 끝에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 아들이 버림받은 개를 주워 와서 불쌍하다고 키우자고 떼를 써 할 수 없이 한 달을 키웠는데, 다른 가족들이 너무너무 개를 싫어하여, 그만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른 집에 줘야겠는데, 한 달밖에 안됐지만 정이 들어 아무에게나 줄 수가 없어서, 생각 끝에 정 선생을 찾아온 겁니다.”

나는 수철 엄마의 절절한 사연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서 잘라 말했다.
“안됩니다. 저는 개를 싫어합니다. 더구나 집에서는 어떤 개도 키울 수 없습니다.”

찬바람이 쌩쌩 날 정도로 단호하게 말을 해서 그런지 수철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차 한 잔을 마시고 일어서면서 풀이 죽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강아지를 한 번 만이라도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건데...”

그래도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볼 것 없습니다.”
 
2,
사흘 뒤, 수철 엄마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오늘은 무슨 용무로 수철 엄마가 왔을까 궁금했다. 대문을 따주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녀는 새까만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 수철 엄마는 기어이 내게 강아지를 선보일 참이었던 것이다. 문전박대를 하듯이 내가 말했다.

“수철 엄마, 강아지 때문이라면 우리 집에 한발도 들어오지 마세요!”
말은 이렇게 단호하게 했지만 아무래도 너무 심한 것 같았다.
“강아지 이야기는 하지 말고 차 한 잔 하고 가세요”

수철 엄마는 휴! 하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너무 단호하고 쌀쌀맞게 말해서인지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놓을 생각도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차를 마셨다. 수철 엄마는 차를 마시면서도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 순간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다. 풀이 죽은 강아지의 눈빛이 너무나 애처로워 보였다. 간절하게 무슨 말을 하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엉뚱한 말이 나오고 말았다.
 
“어머, 강아지의 저 눈빛 좀 봐! 너무 맑고 슬퍼”

수철 엄마는 이때다 하고 강아지를 내 쪽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안 무니까, 한 번 만져 보세요.”
 
나는 엉겁결에 강아지를 만졌다. 뜻밖에도 손끝에 전해오는 감촉이 참 따뜻했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챈 듯이 강아지는 내 손바닥을 살며시 핥기 시작했고 어느 새 나는 손바닥을 맡기고 있었다. 그러자 강아지는 잘근잘근 내 손가락을 물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전해오는 느낌이 신비했다. 마치 나에게 프로포즈라도 하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강아지를 안고 싶었다. 그러자 내 마음을 용하게 읽은 수철 엄마는 자연스레 내게 강아지를 넘겨주었다.
나는 강아지를 안았다. 이 광경을 본 수철 엄마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더니 차에 실고 온 강아지 용품을 죄다 싸 들고 들어왔다. 그 순간 모든 게임은 끝나고 말았다. 나는 이제 강아지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수철 엄마! 얘 이름이 뭐예요?”
“삼식이예요.”
“이름은 참 촌스러운데 강아지는 귀티가 나네.”
 

3.
삼식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일 년이 지났다. 어느덧 삼식이는 완전한 우리 가족이 되었다. 가족이 모두 외출하면 온종일 삼식이가 집을 지켰다. 삼식이 혼자서 온 종일 집을 지키는 것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삼식이에게 짝꿍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가족들에게 이런 뜻을 말하자 만장일치로 찬성하였다. 나는 삼식이 단골 동물병원으로 가서 원장에게 이 뜻을 말했더니 원장은 반색을 하였다.
 
“정 선생님, 마침 삼식이와 같은 종의 암놈이 있어요.”
“한 번 보여 주세요”
 
원장은 안으로 들어가더니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나와 내려놓았다. 강아지는 꼬리를 배 밑으로 돌돌 말아 넣고 바닥에 오줌을 질금질금 싸면서 사람들을 경계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 얘가 왜 이리 이상한 반응을 보여요?”
“사실은....”
 
원장은 말 꼬리를 흐렸다.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병원 앞에 버려진 강아지입니다.”
나는 찜찜하여 조심스레 말했다.
 
“제가 한 사흘만 데리고 있어보지요. 그런 뒤에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좋아요. 정 선생님 같이 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이 얘를 키웠으면 좋겠어요.”
“제가 개를 사랑하는지 안하는지 어찌 아세요?”

“삼식이에게 하는 것을 보면 다 알아요. 그렇게 개를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4.
그러구러 사흘이 지난 뒤 강아지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갔다. 원장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얘를 데리고 왔어요?”
“도저히 얘를 키울 수가 없어요.”
“왜요?”
“24시간 내내 짖어대는 바람에 옆집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거기다가 보는 사람마다 무는 통에 도저히 안 되겠어요..”
 
나는 강아지를 원장에게 건네주려 했다. 그때 강아지는 마치 원장과 나눈 이야기를 다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원장에게는 절대로 가지 않으려고 했다. 참 뜻밖이었다. 독한 마음을 먹고 강아지를 병원에 두고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날 밤. 가족들에게 동물병원에 갔다 온 이야기를 했다. 강아지가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장면을 설명할 때엔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 그때 상황을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고 훌쩍 거리자 동생이 말했다.
 
“언니, 우는 것 보니 틀렸고, 내 눈에도 그놈이 밟혀. 아무래도 그놈을 다시 데리고 와야겠어. ”
 
옆에 있던 막내가 거들었다.
 
“언니, 우리가 좀 힘들어도 그놈을 데려와서 키우는 것이 좋겠다.”
 
다음날 날이 새자마자 나는 동물병원으로 갔다. 원장은 내 마음을 읽고 강아지를 잽싸게 안고 나왔다. 강아지는 금세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 어쩔 줄 몰라 설레 발이를 쳤다. 내가 그놈을 안자 그놈은 내 얼굴을 미친 듯이 핥았고 내 볼에는 어느새 눈물이 타 내리고 있었다.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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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자무식 2008/11/29 [01:26] 수정 | 삭제
  • 꽈배기에 얽혀있는 사연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일부러 치장한 글이 아님에도 작가님의 글에선 진실과 애잔한 감동이 느껴지는군요.
    강아지를 사랑하시는 마음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밝으시니 앞으로 작가님의 글들이 기대됩니다.
  • 이실짱 2008/11/28 [10:20] 수정 | 삭제
  • 언제나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보듬기도 바쁘신 분이 언제 이런 준비를 하셨는지...
    간만에 마음이 훈훈해지는군요. 삼식이, 삼순이와 더불어 따뜻하고 행복한 겨울을 맞이하시길... ^^*
  • 브레끼독자 2008/11/27 [17:17] 수정 | 삭제
  • 남의 글을 읽고 눈물 흘리기는 첨임니다. 수필 한편한편이 사람을 이렇게 진하게감동시키는 것을 오늘 처음 봤다. 대단한 가능성이 있는 작가의 탄생을 축하한다.
  • 친구의 친구 2008/11/27 [17:12] 수정 | 삭제
  • 따뜻한 인간애를 내면에
    가득 담아서 가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크게 성공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크게 대성하시길
    성황님께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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