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송사…왜 그토록 원한 품었을까?
지난 10월 박시환 대법관을 협박한 혐의로 이모씨가 구속되고 윤모씨는 범인도피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바로 이진탁(50)씨와 윤태화(59)씨가 그 익명의 주인공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김주현)는 이씨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상습협박) 등의 혐의로 10월17일 구속기소 했었다. 이씨에 대한 재판은 지난 10월31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11월7일 두 번째 공판, 11월26일 세 번째 공판이 진행됐다. 이씨는 판결에 불만을 품고 현직 대법관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씨는 “사법부가 승패를 조작해 세 사람이 목숨을 잃어 그 책임을 대법관에게 물었다”며 자신의 정당성을 항변하고 있다. 이진탁씨 사건과 관련 사법 피해자들은 이 사건을 작년 1월 발생했던 김명호 전 교수의 석궁사건에 빗대어 '제2의 석궁사건'이라고 부르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관예우 등 현 사법부가 안고 있는 문제의 집약판으로 보이는 이진탁씨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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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탁씨가 구속된 이유는 바로 박시환 대법관에 대해 등기우편물 등을 통해 ‘가장 단호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너를 처단하겠다’며 협박한 사실 때문이다. 이씨는 현직에 있는 박시환 대법관에 대해 왜 그토록 원한을 품었을까?
이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법원의 보도자료에만 의지해 ‘민사재판 결과에 앙심을 품고 대법관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한 고시폐인’이라고 이씨를 지칭했다. 박 대법관의 협박사건과 관련한 그의 체포와 구속에 대해 판결에 불만을 품은 사람의 원한범죄라고 보도한 것이다.
“승패 조작 사법부 문제 있다”
하지만 이씨는 이 같은 언론보도를 단호히 부정했다. 그는 지난 11월7일 있었던 2차 공판에서 “사회와 국가를 보전하는 기본틀에 해당하는 법치를 붕괴시키는 ‘승패조작’을 저지른 행위에 대해 항거한 사람이 ‘고시폐인’인지, 아니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정의의 보루’라는 법관의 길을 선택하고는 동료법관 출신 변호사가 거액의 ‘성공 사례비’를 받아 치부하도록 만들 목적으로 승패를 조작하여 법치를 붕괴시킨 사람이 ‘고시폐인’인지 묻고 싶다”며 자신에 대한 일부 언론의 표현에 거친 불만을 표시했다.
이씨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자신의 행위는 “대법관이 승패조작을 했다면 소송 관련인들은 그 대법관의 판결에 굴복을 하여 비굴하게 살아가야 하느냐, 아니면 항거를 해야 하느냐는 문제에 봉착한다” , “항거의 수단을 선택한다면 그 정도를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를 정해야 하는데 그에는 협박<폭력<극한의 방법이 있다” “극한 방법은 자신과 그 대상을 철저히 파괴하는 야만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기에 그 전단계의 행위로서도 승패조작을 바로잡고 붕괴된 법치를 회복할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 “피고인(이진탁 자신)은 승패를 조작한 대법관에 대해 항거를 선택했고 그 정도는 가장 약한 단계인 공소장 기재사실과 같은 행위였다”며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즉 이씨는 전관예우에 힘입은 정당하지 못한 판결을 내린 대법관과 사법부에게 저항의 가장 낮은 단계인 ‘협박’을 행한 것이라며 검찰의 공소장 기소 내용을 전부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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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탁씨는 왜 구속됐나?> |
이진탁씨 사건의 개요는?
박시환 대법관 관련 협박사건에 연루된 이진탁씨는 원래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사람이다. 이씨는 자신의 친척이 건설사를 경영하던 중, 이 친척이 건축주 구자영씨 등이 1996년경부터 충남 당진에 짓고 있던 10층 규모 상가건축과 관련해 이 사건과 얽히기 시작했다.
건물은 imf 등의 사태와 맞물리며 건설중단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부도 등의 사유로 인해 다섯 차례에 걸쳐 건설사가 바뀌기도 했다. 이씨의 친척은 첫 번째 시공사였다. 하지만 이씨의 친척은 자금조달 등이 여의치 않자 건축공사를 포기한 후 투입된 건축비만 나중에 인계받은 건설사로부터 정산받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산은 복잡한 사정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이씨는 친척의 공사대금을 받고자 이 사건에 깊숙하게 개입하게 되었다.
그는 건축주 구자영씨 등이 건축자금과 관련해 한 상호저축은행에서 대출했다는 32억원의 대출진위 여부를 다투는 민사소송에서 건축주 구씨 등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이 사건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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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상호신용금고는 건축자금으로 1997년경 32억원을 피고 구자영씨 등 건축주들에게 대출을 일으켜 줬다며 그 돈을 갚으라는 소송을 2000년 제기해 승소했다. 판결에 기해 원주상호신용금고는 건축이 중단된 10층 건물과 대지를 경매에 넘긴 후 대출금 중 일부를 회수해 갔다.
하지만 2003년경 원고인 원주상호신용금고가 불법을 저질러 대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씨는 구자영씨의 소송서류 작성 등을 도와주면서 사건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 이씨의 노력에 의해 2004년경부터 진행되었던 대출금 관련 민사소송의 2심 재판부는 2006년 1월26일 있었던 선고에서 피고인 구자영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완벽한 구자영씨 등 건축주들의 승리였다.
당시 2심 재판부는 2006다15649호 사건의 제1심 사건이었던 원주지원이 2000가단7706호 사건과 원주지원 2000가단7720호 내렸던 판결 '원고 원주상호신용금고의 전부 승소'에 ‘대출문서 등이 위조되었다’며 이를 전부 취소했다.
이에 따라 건축주 구자영씨 등이 원주상호신용금고에 갚아야 할 돈은 '32억원'이 아닌 '237만원'으로 판결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대법원에서까지 확정되었던 모든 사실이 뒤집혀 버렸던 것. 또한 2심 법원은 경매로 이미 넘어갔던 '짓다 만 10층 건물'의 경우 '미등기 부동산'인 관계로 등기 전 경매를 진행할 수 없다는 규정을 들어 건물을 돌려주라는 판결까지 내려졌다.
2006년 2월 원고인 원주상호신용금고는 이 같은 재판결과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상고사건은 박시환 대법관에 배당되어 박 대법관이 주심 대법관으로 정해졌다. 박 대법관은 이 사건에 대해 상고 후 2년이 넘은 지난 2008년 3월14일에야 선고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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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이나 소송 매달린 사연은?> |
2년 미루던 재판결과는 이씨측 패소
2008년 3월14일 대법원 민사2부(재판장 박일환·주심 박시환 김능환)는 이씨 사건과 관련해 "원심판결 중 대출내역표 12 내지 15번 대출에 관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는 주문을 내렸다.
이날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이 잘못 되었다며 파기한 두 건의 대출은 바로 이 사건 문제의 핵심 대출건이었다. 대법원은 바로 피고 구자영씨 등이 원고 원주상호신용금고에서 행한 31억 4600만원의 대출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또 공교롭게도 대법원 선고가 내려지던 이날 대법원 경비관리대장은 이씨가 수개월에 걸쳐 박시환 대법관을 협박을 했다며 이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씨 측에 불리한 선고가 내려져 반발이 예견되자 박 대법관은 대법원 경비관리대장을 시켜 미리 고발을 했던 것.
이에 앞서 이진탁씨는 2006년 2월 상고되어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갔지만 선고가 계속해서 미루어지자 진정서 등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선고를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박 대법관에게 진정서 등을 통해 “관련 사건에서 저질러진 연속적인 승패조작으로 인해 발생한 절박하고 심각한 피해자들의 상황을 알아달라. 제발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해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계속해서 접수했다.
이씨의 진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건보다 훨씬 앞서서 접수되었던 다른 사건들의 선고는 이루어졌지만 자신의 사건만 계속해서 미뤄지자 급기야 간청형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2002다 72347호 사건 등에서 대법관이 저질렀던 승패조작을 2006다 15649호 사건에서 다시 저지른다면 결코 가만 놔두지 않겠다”며 강력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씨의 진정이 거세지자 박 대법관은 자신의 비서관 권아무개로 하여금 2007년 11월7일경 이씨를 만나게 했다. 이날 대법원 구내식당에서 권 비서관을 만난 이씨는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절박함을 호소했고 권 비서관은 이 같은 사정을 박 대법관에게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법관측과 이씨의 사이는 당시를 기점으로 우호적인 관계로 돌아서며 2007년 크리스마스 시점에 권 비서관은 이씨의 핸드폰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merry christmas!'라는 인삿말을 남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2008년 1월부터였다. 이씨의 주장에 의하면 “권아무개 비서관이 나에게 ‘안타깝다’는 말을 거듭하기에 박 대법관 측에서 무엇인가 나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또 그 당시 원고 측 소송대리인 변호사 등이 인맥과 학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또 다른 승패조작이 고안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어 그 시점부터 ‘2006다 15649호 사건 판결에서도 승패조작을 저질러 마지막 남아 있는 최소한의 권리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박시환 대법관을 살해 할 수밖에 없다’, ‘제발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해달라’는 협박성 절규를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년 넘게 질질 끌던 선고 내려지던 날 대법원 경비가 이씨 검찰에 고발
이진탁씨 “불리한 선고 반발 예견되자 대법관이 직원시켜 미리 고발조치”
“대법관 살해할 수밖에 없다” 우편물은 공정재판 해달라는 협박성 절규
이진탁씨 “불리한 선고 반발 예견되자 대법관이 직원시켜 미리 고발조치”
“대법관 살해할 수밖에 없다” 우편물은 공정재판 해달라는 협박성 절규
검찰 체포조 이진탁씨 검거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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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7일 있었던 공판에서 이씨는 자신은 “3월 14일 대법원 선고와 관련 ‘대법원이 썩어도 너무 썩었다’, ‘사법개혁을 해야겠다고 판단해’ 그 일환으로 승패조작과 관련된 박 대법관이 포함된 법조인 26명을 피고로 삼아 이들이 전관예우를 위한 목적에서 승패를 조작하고 구자영 등 건축주 등에게 손해를 발생케 했다는 이유를 들어 ‘손해배상청구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소송을 준비중이던 4월2일 새벽 6시경 검찰은 체포조 3명을 구성해 주거지를 급습했다” “그때부터 나는 10월1일 체포 당시까지 동네 pc방과 고시원을 전전하는 도피생활을 계속하면서 박시환 대법관이 포함된 26명에 대한 민사소장 작성을 시작해 실제 지난 6월에는 윤태화씨를 시켜 접수하는 등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4월25일 건축주 중 구자영씨가 사망했다. 구씨의 사망과 관련해 이진탁씨는 11월7일 진술에서 “승소를 하면 마지막 남은 최소한의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고 투병생활을 해오던 구자영은 2008년 3월14일 선고된 판결로 인해 그것마저 짓밟혀 버렸다는 사실을 피고인으로 부터 전해 듣고는 끝까지 쥐고 있던 희망의 끈을 놓아 버렸다”, “그 시경부터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4월 25일 사망했다”며 그 경과를 설명했다.
이씨는 도피중 박 대법관과 직접 통화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9월6일 박 대법관의 집으로 전화해 5분여간 통화했다. 당시 통화에서 이씨가 박 대법관을 격렬하게 비난하자 박 대법관은 “이진탁이 너는 의견차이로 인해서 결론이 달라진 것을 승패조작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너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이씨는 이틀 후인 9월8일에도 박 대법관의 대법관 사무실로 전화해 1시간여 동안 통화하면서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밝히며 박 대법관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씨는 당시 통화에서 박 대법관에게 “전관예우에 기댄 퇴직 법관들이 1년에 수십억 원의 수입이 보장되기 위해 행한 법리와 사실을 놓고 내리는 판결이 아닌 ‘승패조작’의 수법과 내용에 대해 그리고 그로 인한 심각한 피해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소송을 준비중이던 4월2일 새벽 6시경 검찰은 체포조 3명을 구성해 주거지를 급습했다” “그때부터 나는 10월1일 체포 당시까지 동네 pc방과 고시원을 전전하는 도피생활을 계속하면서 박시환 대법관이 포함된 26명에 대한 민사소장 작성을 시작해 실제 지난 6월에는 윤태화씨를 시켜 접수하는 등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4월25일 건축주 중 구자영씨가 사망했다. 구씨의 사망과 관련해 이진탁씨는 11월7일 진술에서 “승소를 하면 마지막 남은 최소한의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고 투병생활을 해오던 구자영은 2008년 3월14일 선고된 판결로 인해 그것마저 짓밟혀 버렸다는 사실을 피고인으로 부터 전해 듣고는 끝까지 쥐고 있던 희망의 끈을 놓아 버렸다”, “그 시경부터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4월 25일 사망했다”며 그 경과를 설명했다.
이씨는 도피중 박 대법관과 직접 통화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9월6일 박 대법관의 집으로 전화해 5분여간 통화했다. 당시 통화에서 이씨가 박 대법관을 격렬하게 비난하자 박 대법관은 “이진탁이 너는 의견차이로 인해서 결론이 달라진 것을 승패조작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너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이씨는 이틀 후인 9월8일에도 박 대법관의 대법관 사무실로 전화해 1시간여 동안 통화하면서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밝히며 박 대법관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씨는 당시 통화에서 박 대법관에게 “전관예우에 기댄 퇴직 법관들이 1년에 수십억 원의 수입이 보장되기 위해 행한 법리와 사실을 놓고 내리는 판결이 아닌 ‘승패조작’의 수법과 내용에 대해 그리고 그로 인한 심각한 피해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두 번의 통화에도 불구하고 박 대법관이 자신의 주장을 부인하자 “9월10일까지 대법관직을 사퇴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 그리고 사법정의를 위하여 거꾸로 뒤집힌 법치를 바로잡기 위해 가장 단호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너를 처단할 것”이라는 내용이 적힌 등기 우편물을 보냈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했다.
이씨는 이 같은 우편물을 보낸 직후 승패조작과 그 폐해를 국회에 알리면서 탄핵소추의결을 해달라는 청원을 준비하던 중 추적을 피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벤치에 숨겨 놓았던 휴대폰 배터리 교환을 하려다가 잠복 중이던 경찰관에게 체포되었다.
1시간만 따지면 진실 밝혀질 것
체포된 이씨에 대해 검찰은 대법관을 협박했다면서 형법 제286조의 상습협박죄로 구속기소했다. 범인을 도피한 혐의로 윤태환씨는 불구속 기소되었다.
지난 10월31일 1차 공판에서 이씨는 “두 명의 증인만 재판관께서 채택해 주시고 제가 1시간씩만 이들에게 진실을 묻는다면 모든 진실은 밝혀진다. 만일 제가 증명을 못해낸다면 재판부는 동 형법상 최고의 형으로 다스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자신했다.
이씨의 청구에 대해 재판부는 11월7일 2차 공판에서 두 명의 증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이씨는 두 명의 증인은 “박시환 대법관과 강신욱 전 대법관”이라고 답했다. 이씨의 증인 신청에 대해 재판부는 “다음 기일에 증인 채택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즉답을 피했다.
현직 대법관을 협박한 이씨의 사건을 맡은 재판부의 곤혹스러움이 읽히는 대목이었다. 사법피해자들 사이에서 '제2의 석궁사건'으로 불리는 '이진탁씨의 대법관 살해 협박사건'이 향후 재판과정에서 뜨거운 공방을 일으킬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과연 대법관 살해협박 사건의 진실이 어디에 있는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11월7일 공판에서 이씨가 자신의 사건과 관련한 사실부분을 비교해 설명한 내용을 이해한다면 쉬울 것 같다.
그는 “우리가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의 사회에서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현상 중에서 그 어느 하나를 재판장이 선택을 하고 그에 기해 결론을 내리는 경우는 ‘견해 차이에 의해 결론이 달라지는 것’이고 이는 법관의 고유 권한인 ‘판단재량’에 해당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의 사회에서 발생이 불가능한 현상, 예컨대 수심이 100미터나 되는 바다 위를 맨발로 걸어서 건넜다는 불가능한 주장을 사실이라 간주하여 승소판결을 하는 것은 ‘승패조작’에 해당한다”, “이러한 ‘승패조작’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의하여 사실인정을 해야 한다는 민사소송법 제202조에 위반하는 불법행위”라고 비유해 설명했다.
한편 이씨는 지난 11월10일 서울구치소에서 있었던 기자와의 면회에서 “세 번째 공판에서 재판부가 두 명의 전 현직 대법관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으면 또 다른 방법이 있다”며 사건의 진실에 대해 세상에 알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취재/추광규(인터넷 신문고 기자)
이씨는 이 같은 우편물을 보낸 직후 승패조작과 그 폐해를 국회에 알리면서 탄핵소추의결을 해달라는 청원을 준비하던 중 추적을 피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벤치에 숨겨 놓았던 휴대폰 배터리 교환을 하려다가 잠복 중이던 경찰관에게 체포되었다.
1시간만 따지면 진실 밝혀질 것
체포된 이씨에 대해 검찰은 대법관을 협박했다면서 형법 제286조의 상습협박죄로 구속기소했다. 범인을 도피한 혐의로 윤태환씨는 불구속 기소되었다.
지난 10월31일 1차 공판에서 이씨는 “두 명의 증인만 재판관께서 채택해 주시고 제가 1시간씩만 이들에게 진실을 묻는다면 모든 진실은 밝혀진다. 만일 제가 증명을 못해낸다면 재판부는 동 형법상 최고의 형으로 다스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자신했다.
이씨의 청구에 대해 재판부는 11월7일 2차 공판에서 두 명의 증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이씨는 두 명의 증인은 “박시환 대법관과 강신욱 전 대법관”이라고 답했다. 이씨의 증인 신청에 대해 재판부는 “다음 기일에 증인 채택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즉답을 피했다.
현직 대법관을 협박한 이씨의 사건을 맡은 재판부의 곤혹스러움이 읽히는 대목이었다. 사법피해자들 사이에서 '제2의 석궁사건'으로 불리는 '이진탁씨의 대법관 살해 협박사건'이 향후 재판과정에서 뜨거운 공방을 일으킬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과연 대법관 살해협박 사건의 진실이 어디에 있는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11월7일 공판에서 이씨가 자신의 사건과 관련한 사실부분을 비교해 설명한 내용을 이해한다면 쉬울 것 같다.
그는 “우리가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의 사회에서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현상 중에서 그 어느 하나를 재판장이 선택을 하고 그에 기해 결론을 내리는 경우는 ‘견해 차이에 의해 결론이 달라지는 것’이고 이는 법관의 고유 권한인 ‘판단재량’에 해당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의 사회에서 발생이 불가능한 현상, 예컨대 수심이 100미터나 되는 바다 위를 맨발로 걸어서 건넜다는 불가능한 주장을 사실이라 간주하여 승소판결을 하는 것은 ‘승패조작’에 해당한다”, “이러한 ‘승패조작’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의하여 사실인정을 해야 한다는 민사소송법 제202조에 위반하는 불법행위”라고 비유해 설명했다.
한편 이씨는 지난 11월10일 서울구치소에서 있었던 기자와의 면회에서 “세 번째 공판에서 재판부가 두 명의 전 현직 대법관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으면 또 다른 방법이 있다”며 사건의 진실에 대해 세상에 알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취재/추광규(인터넷 신문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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