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연락 없던 친모, 전남편 사망 후 보상금 노리고 아이들을 다시 데려가겠다며 양육권 소송을 걸었다? 지난 10일 <사건의내막>은 한 독자로부터 양육권 소송과 관련된 제보를 받았다.
제보내용인즉슨 올해 1월7일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로 숨을 거둔 a씨 앞으로 2억7000만원 가량의 보상금이 나왔는데 전처인 b씨가 이를 가로채기 위해 5년간 나몰라라 했던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을 주장하고 나섰다는 것.
a씨의 어려운 형편을 알고 대신 아이들을 돌봐왔던 a씨의 큰형 내외는 b씨를 상대로 친권상실선고를 제기해 올해 10월 “청구인 k씨(a씨의 큰형수)를 양육자로 지정한다”는 판결을 얻어냈지만 b씨는 이에 불복하고 고등법원에 항고했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은 제2의 조성민.최진실 양육권 분쟁을 방불케 하며 법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a씨 큰형 내외와 b씨의 양육권 소송 전말을 담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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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사건의내막>은 제보자 s씨와 a씨의 자녀들을 만났다. s씨는 k씨의 올케언니임을 밝히며 “사돈지간이지만 생전의 a씨는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직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야 했던 고인의 마음은 오죽했겠느냐”고 눈시울을 붉혔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들은 낯선 사람의 방문에 어색함을 보이더니 주변을 맴돌며 사진기에 관심을 보였다.
양육권 분쟁 소송
s씨는 담임교사가 보내온 가정통신문을 보여주며 “아버지를 잃은 후 아이들은 정서불안증세와 우울증을 보였지만 시누이와 가족들의 노력으로 밝고 명량한 모습을 회복했다”면서도 “유가족과 친모 간의 갈등으로 재판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이 상처를 입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그간 있었던 사건정황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는 “b는 자신의 지병(간질병) 등을 이유로 위장이혼을 요구해 a씨와 헤어졌으나 이후 5년간 아무 연락이 없다가 a씨가 화재사고로 숨지자 고인의 보상금을 바라고 아이들의 양육권을 요구하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하고 있다”며 “아빠의 죽음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다독이기는커녕 돈에 눈이 멀어 아이들을 이용하려 한다. b는 결코 친모로서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s씨는 a씨의 큰형수 k씨가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친권상실선고에 대한 판결문을 근거로 제시했다. 판결문에는 a씨와 b씨의 이혼과정과 a씨 사망 후 재판이 진행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있다. △△지방법원 제1가사부는 지난 10월31일 “사건본인들(a씨 자녀)에 대한 양육자로서 청구인(k씨)을 지정한다”며 “상대방(b씨)은 매월 넷째 주 토요일 12:00시부터 다음날 18:00까지 상대방이 원하는 장소에서 사건본인들을 자유로이 면접?교섭할 수 있고 매년 1월과 8월에 각 상대방이 희망하는 7일 동안 원하는 장소에서 사건본인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 “사건본인들에 대한 양육자로 청구인 k씨 지정…상대방 b는 매월 넷째 주 토요일 12:00시부터 다음날 18:00까지 면접?교섭, 매년 1월과 8월 희망하는 7일 동안 사건본인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 판결
재판부는 “a와 b가 이혼하며 사건본인들의 아버지인 a가 양육자로 지정됐으나 a의 사망 전부터 청구인이 사건본인들을 양육하였으므로 청구인을 넓은 의미에서 부(父)측으로 볼 여지가 있는 점, 민법 제909조 제6항에서 자의 4촌 이내의 친족에게 친권자의 변경을 구할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는 취지 등에 비추어 보면 사건본인들의 큰어머니인 청구인에게도 당사자 적격이 인정된다고 보인다”고 판결이유를 설명했다.
판결문을 토대로 사건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a씨와 b씨는 2000년 10월 혼인신고를 마치고 이듬해인 2001년 2월 쌍둥이 남매를 낳았으나 2002년 1월 협의이혼하면서 a씨가 자녀에 대한 친권자로 지정됐다. 이혼 후 한동안 b씨는 아이들을 양육하다가 2004년 6월경부터는 a씨가 양육하게 됐다. 그러나 a씨가 혼자 자녀를 양육할 여건이 되지 않아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긴 사실을 큰 형수였던 k씨가 알고 아이들을 데려와 양육하기 시작했다.
a씨는 이혼 이후 b씨에게 재결합을 요구하거나 아이들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으나 b씨는 거절했고 다른 남성인 d씨와 재혼해 2005년 1월 혼인신고를 마치고 그해 8월과 2007년 2월 두 아이를 출산했다. 하지만 b씨는 사건본인인 자녀들과는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a씨는 올해 1월7일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사망해 자녀들 앞으로 보험금 및 손해배상금이 나왔다. 사건 심문이 진행 중이던 6월20일 k씨와 b씨는 손해배상금은 아이들을 보험계약자 및 수익자로 하고 b씨를 피보험자로 하여 각 8500만원씩 보험(적금)에 가입, 손해배상금을 k씨와 b씨가 공동으로 수령해 수령 당일 l손해보험(주)과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당일 위 회사에 보험료를 전액 지급할 것을 합의했다.
또한 아이들 명의의 보험은 아이들이 성년에 이를 때까지 해지할 수 없고 만기 또는 해지환급금은 아이들이 아니면 수령하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됐다. 그러나 b씨는 이 사건 심문종결일인 10월31일까지도 조정 내용의 이행을 거부했다.
한편, b씨는 a씨의 사망 이후 재판부의 조정안에 따라 k씨의 집 근처에서 아이들을 수회 면접?교섭했다. 또한 지난 8월에는 아이들을 하루 정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으나 아이들이 이를 거부해 성사되지 못했다. 사건본인인 아이들은 사건 심문기일에 출석해 ‘k씨와 함께 살고 싶다’고 진술했다. 현재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이들은 b씨가 친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k씨를 엄마라고 부르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k씨는 아이들의 생활비 및 교육비 등을 모두 부담하고 있다.
재판부는 양육자 지정과 관련해 “상대방(b씨)은 a의 사망으로 인해 사건본인들의 유일한 친권자가 되었지만 2004년 이후로 사건본인들과 거의 접촉이 없었던 점, 상대방은 재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새로운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비록 친어머니라 하더라도 가정형편이나 주변상황으로 보아 사건본인들을 헌신적으로 양육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판단했다.
또한 “사건본인들의 경우 만 3세경부터 청구인(k씨)이 양육해 와서 상대방보다 청구인과 정서적 유대감이 더 강하고 청구인을 엄마라고 부르며 현재 평온하게 성장하고 있는 점, 사건본인들의 나이 및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한 심리상태 등을 고려할 때 급작스러운 양육환경의 변동은 정서적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상대방보다는 청구인에게 양육을 맡기는 것이 사건본인들의 원만한 성장과 복지를 위해 더 바람직하다고 보인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면접교섭권과 관련해 “사건본인들의 양육자로 청구인이 지정된 이상 상대방은 사건본인들의 친어머니로서 민법 제837조의 2 규정에 의한 면접교섭권이 있고 심문과정에 나타난 여러 제반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면접교섭의 횟수, 시간, 방법 등을 정하는 것이 사건본인들의 심리적 안정 및 원만한 성장과 복지를 위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제보자 s씨는 “지난 11개월 동안 재판을 진행하면서 k씨 가족과 아이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 수 없다”며 “가사부 조정위원들이 한 달에 두 번, 방학 동안 20일 정도 아이들이 친모와 면접?교섭할 수 있도록 했지만 b는 정해진 기간에만 찾아올 뿐 진심으로 애들을 대하지 않았고 k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직접 아이들을 b에게 데려다주기까지 했지만 아이들은 k곁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으려 해 할 수 없이 집으로 데려오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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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위해 욕심 버려야”
s씨는 판결문에 기록되지 않은 숨은 이야기가 많다며 몇 가지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에 따르면 2002년 이혼할 당시 b씨는 a씨에게 ‘자신은 지병(간질병)도 있고 이혼 후 아이들을 맡아서 키우면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보조금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위장이혼을 요구했다고 한다.
a씨도 이를 받아들여 낮에는 일용직 근로자로 일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해 아이들의 양육비와 생활비를 부담했다는 것.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b씨는 a씨에게 ‘사람들이 집에 오는 것을 알면 위장이혼 사실이 알려진다’며 오지 말도록 요구했고 a씨도 수긍했다는 것이다.
s씨는 “b는 1년 반 동안 아이들을 키웠는데 b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을 알고 a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며 “양육권 소송이 있기 전까지는 a가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긴 걸로 알았지만 재판과정에서 a의 친구는 ‘b가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겼고 a가 이를 안 후 어떻게 엄마가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낼 수 있느냐며 눈물로 한탄했다’고 자필로 증언했다”고 탄식했다.
a씨는 이혼 후 큰형수인 k와 함께 고향인 전북 ☆☆에서 포장마차를 했고 이후 경기도 이천에 있는 냉동물류센터에 취직된 지 3달 만에 화재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s씨는 a씨 사망 이후 과정과 b와 소송이 불거지게 된 내막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화재사고로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처음에는 형제들의 dna와 대조했으나 판명이 안 돼 아이들의 dna로 검사한 결과 사고발생 20여 일 만에 a씨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b씨는 사고가 난 지 3일 후인 10일 경 k씨에게 전화를 걸어 “형님이 아이들을 잘 키워 달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는 것. 그러나 유가족들이 a씨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는 사이 b씨는 a씨 앞으로 나온 보상금과 산재보험금을 받기 위해 사망자들의 보상금 지급을 총괄했던 담당자에게 여러 차례 문의를 하고 보상금을 청구했다는 게 s씨의 주장이다.
a씨 사망 이후 아이들 앞으로 보상금 1억7000만원과 산재보험금 1억300만원이 나왔다.
보상금 수령인은 아이들이지만 미성년자인 까닭에 이에 대한 보상급 지급 여부를 놓고 아이들의 친모인 b씨와 아이들을 실질적으로 양육해왔던 k씨 및 유가족간의 법정분쟁으로 불거졌다. s씨는 “b가 애들 앞으로 나온 보상금을 가로채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유가족들은 1차로 변호사를 선임해 ‘지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두 번째로 ‘친권상실선고’를 구하는 재판을 걸었다”며 “가사부에서 재판관들이 심사숙고해 양육자로 k씨를 지정했지만 b는 이에 불응해 12월3일 고등법원에 항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양육권 분쟁이 법정싸움으로 비화할 경우 아이들이 법정에 서야 하고 유가족들의 정신적 고충이 클 것을 우려해 재판 전에 자신이 직접 b씨를 찾아가 협상금액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s씨는 “b한테 ‘보상금은 아이들을 위해 써야 할 돈이니 욕심내지 마라. 대신 3000만원을 줄 테니 이 돈으로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차비로 써라. 아이들과 친해진 후에 같이 살겠다고 하면 그때는 말없이 보내주겠다’고 제안했다”며 “하지만 b는 ‘보상금의 절반을 달라’며 거절해 언쟁만 하다 나왔다”고 허탈해했다.
"수억대 보상금 없었다면 5년 만에 다시 나타났겠나"
k씨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 b는 욕심버리고 친모로서 양육도와야”
그는 재판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화재사건 후 경기도 이천시에서 1억7000만원이 나와 유가족 측에서는 재판부에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본인들이 직접 찾아서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구한 반면, b씨는 ‘이 돈을 왜 묶어두느냐, 이 돈으로 펀드나 주식투자를 해 돈을 늘려서 아이들한테 쓰면 어떠냐?’고 재판부에 말했고 판사들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게 s씨의 주장이다.
또한 산재보험금 1억300만원에 대해 유가족 측에서는 법정대리인인 b씨에게 서명해 줄 것을 요구, 아이들의 양육비로 쓰겠다고 밝혔지만 b씨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날인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
s씨는 “b가 전화로 보험금 1억원을 갖겠다기에 유가족 측에서 양육비를 달라고 했더니 ‘5000만원은 적금을 들고 나머지 5000만원은 애들 앞으로 보험을 들겠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뒤로는 고등법원에 항고했다. 재판에 승소하면 모든 보상금을 자신이 갖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고 혀를 찼다.
s씨는 “b의 행동이 너무 괘씸해 유가족 측에서 ‘양육비청구소송’을 제기, 지난 5년 간 아이들을 양육했던 비용을 합산해 5300만원을 청구했는데 b씨 측에서도 ‘이의신청’을 제기해 내년 1월20일 소송이 진행될 예정이다”며 “유가족 측은 양육권은 받았다고 하지만 보상금에 대한 권한이 없기 때문에 18일 ☆☆법원에 a씨의 큰형 이름으로 ‘후견인 선임 심판청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1년여간 소모적인 재판을 진행하면서 유가족과 아이들은 말 못할 고통을 받았다. 보상금이 없었다면 b씨가 5년 만에 나타나서 자식들을 찾겠다며 요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지금이라도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이 아빠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s씨의 소개로 사건당사자인 k씨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 16일 <사건의내막>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k씨는 “내가 비록 큰엄마지만 부모된 심정으로 아이들을 맡아 5년째 키워왔다”며 “아이들을 데려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b가 딱 한 번 전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다시 재결합하길 바랐지만 b는 아이들도 보기 싫고 시동생한테도 정이 없다는 식으로 냉정하게 얘기했다. 그 후로는 b가 전화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동생이 위장이혼한 후 b가 한동안 아이들을 맡아 키웠는데 시동생한테 집에 오지 말라고 했을 때는 이미 다른 사람이 생겼던 것 같다”며 “b는 법정에서 자기 입으로 현재 재혼해 살고 있는 남편을 인정시키기 위해 그 남자한테 애들이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삼촌’이라고 부르도록 했다고 말했다”고 씁쓸해했다.
k씨는 b씨가 ‘친권상실선고’에 대해 항고한 것과 관련해 “b가 친모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b와 아이들 간의 교류가 없다 보니 친엄마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이 없는 것”이라며 “갑자기 엄마라고 나타나서 ‘나가서 놀다 오자,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어떤 애들이 따라나서겠나. 면접?교섭기간에도 그 기간만 찾아올 뿐이고 판결 이후에는 아주 가끔 전화만 할 뿐 친해지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b씨가 양육권을 주장하며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b씨의 경제적 여건상 아이들을 맡아서 키울 형편이 안 되고 의붓아버지 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클 애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토로했다. 그는 “애들을 키울 상황이 안 되는 데도 양육권을 주장하는 것은 다분히 돈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며 “25일은 시동생이 죽은 지 음력으로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고인이 맘 편히 갈 수 있도록 b가 생각을 바꿔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임민희 기자 bravo15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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