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라디오도 고물이고, 남편도 고물이고”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본 다큐멘터리 '워낭소리'

김동열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9/03/12 [12:24]
한국을 방문하면 빠트리지 않고 하는 일과 중에 하나가 영화감상이다. 이곳에서도 가지만 영어 끈이 짧아 영화를 잘 보고 나서도 줄거리 파악을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맛은 느끼기 힘들고 그저 눈요기만 할 때가 적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꼭 챙기고 싶은 것이 영화 보는 일이다. 미국 영화건 유럽 영화건 한글이 있으니 90% 정도는 이해가 돼 그런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지난달 잠시 한국 방문 중 어느 영화가 좋으냐고 물으니 ‘워낭소리’를 보라고 한다. 더욱이 외국에 사니 지극히 한국적인 내용이 좋겠다는 강한 권유까지 받아 구경 갔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통해
 
▲ 독립영화 사상 최초로 전국관객 50만명에 도전중인 영화 '워낭소리'     ©스튜디오느림보
하여튼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를 근래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름이 얼굴을 덮은 최 노인 부부와 소가 얽히고설킨 이야기로 시작해서 끝이 났지만 그 속에는 한국 아버지들의 중심을 볼 수 있었고, 부인이 남편 뒤에서 하는 잔소리 속에서도 따듯함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이 다큐의 대미는 다른 소와는 달리 너무 오래 산 소가 죽음을 예견이나 한 듯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통해 피할 수 없는 찐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소(牛)라는 동물은 탄생에서 부터 죽음까지 모든 것을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고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다른 어느 동물보다 많이 부려먹고 마지막엔 가죽까지 벗겨 먹는다. 아마도 착취에 가까울 만큼 잔인하게 다룬다.

우리가 소를 동물 가운데 영물로 보는 것은 그런 인간을 너무나도 잘 아는 소가 인간과 떨어져서는 살기가 힘들고 떨어지면 그 빛이 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다.
라디오도 고물이고, 남편도 고물이고…
 
이 다큐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할머니의 애교가 담긴 불평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불평은 흘러간 유성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이조시대의 어머니처럼 깊이 괴인 정과 사랑을 몸으로 느끼게 했다. “라디오도 고물이고, 남편도 고물이고, 소도 고물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할머니의 잔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그러나 그 속엔 남편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깊이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워 부인의 불평은 잘 듣지는 못해도 소의 목에 달린 ‘워낭소리’에는 귀가 번쩍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비록 40살 먹은 소였지만 지난 30년 동안 자신과 함께해온 그 소는 자식이나 다른 없는 소였다. 소가 너무 늙어 일하기 어려워 젊은 소를 데려왔지만 여전히 ‘워낭소리’를 들으며 늙은 소와 논으로 나간다. 소 마차가 정 운기 같은 역할을 하고 최 노인이 술 취해 길을 잃어 버려도 소는 노인을 집 앞에 데려다 준다는 믿음이 인간과 동물 사이의 막을 허물어 버린다. 그는 소의 먹이를 위하여 불편한 다리를 쩔룩거리면서 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오는 장면에는 소에 대한 사랑이 물씬 담겨 있다. 이 다큐는 겨우 2억을 투자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제까지 수입은 6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영화도 힘든 한국에서 다큐로 성공한 것은 그 작품을 국민들이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기 드물게 실례를 보인 작품이기도 한다.
 
‘워낭소리’ 성공 뒤엔 고통도
 
‘워낭소리’는 경상북도 첩첩 산중 봉화에서 일어난 일이다.  80순의 두 노인의 삶을 그린 이 다큐가 성공하기에는 한국인의 기질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집쟁이 남편에게 쉴 시간도 없이 잔소리 하는 부인. 그렇게 60년 이상을 살아온 팔순 노부부가 만들어낸 사랑.
부인을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쉬지 않고 말하지만 마지못해 대답하는 남편. 두 노부부 사이에는 대답이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워낭소리’에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동조차 힘든 노인과 평생을 논, 밭에서 살아온 노인 부부가 외딴 곳에 버려진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욕하는 관중도 있다고 한다.

왜 저렇게 내버려 두나. 유명해진 영화 덕분은 졸지에 자식들은 불효자로 각색돼 고통을 겪고 있다. 인터넷에는 자식들에 대한 악플이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두 노인들이 스스로 택한 삶을 인위적으로 변경시키려 한다면 그것이 더 불효일 수도 있다. 오직 논과 밭 밖에 모르는 최노인 부부가 메마른 현대식 아파트에서 살 수 있을까. 맨발로 뛰어 나가 밭에서 채소를 뜯어다가 저녁을 먹고 장을 만들어 먹던 그런 노인들에게 갈비가 마음을 기쁘게 할수 있을까. 살던 그곳에서 그들이 거동할 수 있는 마지막 날까지 살게 하는 것이 가장 효자의 모습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도 상영되면 다른 마음으로 다시 볼 수 있을텐데… dyk47@yahoo.com
 **필자는 미국 주간현대 발행인이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