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정치권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한·미fta, 추가경정 예산안, 비정규직 법안 등을 놓고 팽팽한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3대 쟁점 가운데 가장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는 한·미fta 비준의 경우 한나라당과 야3당의 입장차가 워낙 커서 합의 도출이 쉽지 않아 보인다. 여야간 대척점에 있는 의제들 중 어느 것 하나도 녹록한 게 없다. 4월29일 재·보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가 대승적 정치력을 발휘해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에 귀추가 쏠리고 있다.
1. 한·미fta 재협상 논란
정부와 한나라당은 당초 합의대로 4월 국회에서 한·미fta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야권은 이해 당사자인 미국 측에서 재협상 불가피론이 제기된 만큼 국내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아예 “처리 시기를 논의할 수 없다”면서 ‘무기한 유보’ 움직임까지 비쳐 제2의 외통위 파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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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박상천 의원은 지난 3월12일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한·미fta 비준은 빠를수록 좋다”면서 양국 의회의 조속한 비준을 위해 '비공개 추가협상'을 제안했다. 박 의원은 “한·미fta에 대한 미국의 수정의지가 확고한 이상, 우리는 비공개 추가협상을 통해 양국의 이견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아울러 한·미fta 원문을 수정하지 말고 외교라인을 통해 비공개 추가협상을 하고 부속서류를 덧붙여 자동차 문제 등 미국 측 요구사항을 포함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농산물 등 우리측 요구사항도 함께 포함시켜 한·미 양국이 모두 윈-윈 하는 전략을 취하자는 것.
박 의원은 “추가협상의 시기는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내정자가 취임한 이후가 적당하며, 최대한 조용히 진행시켜야 한다. 한·미fta 비준 문제가 계속 지연되면, 국내의 fta 반대론자들에게 투쟁의 빌미만 주고 한·미 동맹에도 손상이 간다”고 했다.
박 의원의 제안에 대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한나라당 간사인 황진하 의원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재협상 얘기를 안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추가협상을 제안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한·미fta 재협상론을 거론했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지난 1월 장관 인준 석상에서 “만약 한국이 원한다면 한·미fta를 재협상할 수가 있다”고 발언했다.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는 상원 재무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 자료에서 “한·미fta 비준 동의와 관련해 해결이 필요한 이슈들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미fta를 전반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커크 지명자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 9일 “현 상태로는 한·미fta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한 답변에서 상당 부분 완화된 것이다. 커크 지명자는 한·미fta의 경제적 혜택과 관련한 질문에 한·미 fta의 이행이 미국의 노동자·농민·기업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상원 재무위원장인 맥스 보커스 상원의원(민주·몬태나주)은 “한국은 반드시 연령에 관계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그러고 난 뒤에야 한·미 fta가 광범위한 어젠다를 통한 양국 관계발전의 초석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맥스 보커스의 발언은 그가 한·미fta 비준 동의 문제를 다룰 재무위 위원장에 유임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의 지역구는 대표적인 비프 벨트(쇠고기 생산·수출이 많은 지역)인 몬태나주다.
정부는 이같은 이유로 현 단계에서 보커스 의원의 요구를 미 의회의 공식 입장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도 온도 차가 있고, 지역구에 따라서도 입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쇠고기 수출업체들이 어렵게 대(對)한국 수출을 재개해 순조롭게 쇠고기를 팔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민감한 사안을 꺼내 역풍을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정부 내에 있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본부장은 막스 보커스 미국 상원 재무위원장의 미국산 쇠고기 연령 제한 해제 발언에 대해서 “30개월령 이상으로 갈 때는 우리 소비자의 미국산에 대한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아직은 우리 소비자들의 인식이나 시장상황이 조심스러운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30개월령 제한을 풀었을 때 가져올 수 있는 상업적인 의미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이익에 부합할지는 (미국이)"잘 생각해서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30개월령 미만으로 제한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해제하려면 국내적으로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 번째 요건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부칙에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신뢰가 개선될 때까지 품질체계평가프로그램(qsa)에 따라 생산된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만 한국으로 반입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의 신뢰가 개선됐는지를 판단할 방법이나 기준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 미 의회가 한·미fta 비준의 전제조건으로 쇠고기 월령 제한을 풀도록 요구한다면 이 조항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두 번째 요건은 국회의 심의다. 가축전염병예방법상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할 경우 국회 심의를 받아야한다. 이 역시 구체적인 심의 절차나 방법 등에 대한 규정이 없는 상태다. 문제는 커크 지명자가 밝혔듯 한·미fta를 진전시키기 위한 미국 내 구체적 추진 원칙인 ‘벤치마크’가 아직 결정되지 않아 미측 요구가 재협상의 모습을 띨지, 추가협상의 형태로 올지, 아니면 fta 틀 밖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담아내는 방식이 될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fta와 상관없이 한·미간 협상이 있더라도 ‘사실상 fta 재협상 의혹’이 불거지면 국내에서 제2의 촛불집회가 일어날 수 있어 정부의 입지가 안팎으로 불리한 여건에 처하게 된다.
농림수산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30개월령 제한을 푸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미 의회가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의 신뢰다. 현재로선 30개월령 제한 해제 요구가 정치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등 외교부 관계자들은 그동안 "한·미fta는 협정 내용이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는 선에서 타결.서명된 것"이라며 "특정분야로 인해 재협상을 요구하면 상대방도 문제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만약 미국 측의 주 관심사항인 자동차, 우리 측의 관심사항인 농산물, 개성공단, 지적재산권, isd 등에 수정을 가하려면 협정문에 손을 대야 하는데 이 경우 협상의 균형이 깨질 수 있는데다 양국 의회나 여론의 반발 때문에 한·미 fta 비준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반면 협정문에 손을 대지 않고 추가협상에 나설 경우 양측이 실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2. 추가경정예산안 논란
정부와 한나라당은 최근 당정협의를 통해 30조원 안팎의 추경예산을 편성키로 하고 지난 3월11일 대통령에 보고했다. 그러나 이미 국회가 올해 국고채 발행 한도를 74조3000억원으로 정해 놓은 상태에서 30조원 추경예산의 대부분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한다면 ‘국채 100조원’이라는 부담을 떠안게 되는 셈이다. 심각한 재정 건전성 악화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추경예산을 10조원 편성할 경우 재정적자는 gdp 대비 5.3%, 20조원이면 6.3%, 50조원이면 10% 가까이 된다.
한나라당은 30조원 안팎의 추경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30조원을 투입하면 2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세수 보전용 적자국채 발행에 소요되는 12조원을 제외한 18조원이 일자리 창출, 사회안전망, 수출기업 지원 등에 쓰인다. 이번 추경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자리 창출 사업과 관련해서는 고용유지비, 실직자 취업 훈련비, 청년 인턴 임금 등에 4조~5조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저소득층의 소비진작을 위한 생계보조현금 및 소비쿠폰 발행에 2조~3조원, 일선 학교 시설의 증·개축 등 학교 설비 개선 사업에 2조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지원, 지방 경기 활성화 대책 등에 10조원 가량의 예산이 배정될 전망이다. 4대강 살리기 및 과학뉴딜 사업에 각각 5000억원을 배정하는 등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도 추경안에 포함됐다.
대규모 추경에 대한 부담감과 관련해선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에서 여론 조사를 했더니 추경 규모 30조 원이 적당하다거나 더 많아도 좋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국유 재산을 매각해 추경 재원을 마련할 경우 부동산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국채 발행으로 추경 재원을 마련할 방침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30조원 추경 편성시 재정적자가 65조원으로 gdp의 6.7% 수준이 되고, 국가 채무는 393조원으로 gdp의 40% 수준이 된다”(박병석 정책위의장), “크다고 좋은 게 아니라 ‘스마트 추경’을 해야 한다”(김효석 의원)며 20조원 수준의 자체 추경안을 마련했다.
민주당은 20조~25조원 규모의 잠정 추경안 대안을 마련했다. 민주당이 마련한 대안은 정부가 경제성장률을 -2%로 하향 조정한 데 따른 10조원 안팎의 세수 감소분을 반영하고 중소기업 지원, 일자리 및 실업구제, 서민 생계지원 등의 대책을 골자로 한 세출내용을 담았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4조5,000억원을 추경안에 넣을 것임을 밝혔다. △기술신용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 출연 2조8000억원 △지역신보 재보증 3000억원 △중소기업 긴급 경영안정융자 7000억원△소상공인 융자 4000억원 △수출보험기금 출연 3000억원 확대 방안이 핵심이다.
정 대표는 이와 별도로 고용유지 지원금 3000억원과 신규고용촉진장려금 2000억원도 책정했다. 민주당은 일자리 대책의 세부 내용으로 노인 돌보미, 간호·간병인 등 사회적 서비스 분야와 상담교사·특수교사·방과후교사 등에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올해 안에 18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방안도 마련했다. 긴급 실업구제 대책의 경우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3~8개월에서 4~12개월로 연장하고 수급자격은 근속기간 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하는 동시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금 제도를 시행하는 등 2조원가량을 소요비용으로 책정했다.
3. 비정규직법 개정안 논란
노동부는 지난 3월12일 기간제·파견 노동자의 고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핵심 골자로 한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노동계는 곧바로 ‘비정규직법 개악 철회’ 투쟁에 들어간다고 밝혀 노동계와 정부의 정면충돌이 예상된다. 노동부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13일 입법예고하고 다음달 임시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비정규직법 시행 2년이 되는 7월을 앞두고 사용기간 2년 제한 때문에 비정규직들이 대량 해고되고 있다”며 “경제위기 상황에서 사용기간을 4년으로 재설정하는 것이 비정규직 고용 유지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오는 6월 시행령을 개정해 파견허용 업무도 현행 32가지보다 더 늘리기로 했다. 차별시정 신청기간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된다.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중소기업에 대해 사회보험료 50%를 2년 동안 감면해 주는 내용의 ‘비정규직 고용개선을 위한 특별조치법’도 3월13일 입법예고했다. 346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비정규직 20만명의 정규직화를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양대 노총은 이같은 정부 당국의 조치에 곧바로 항의성명을 내고 ‘비정규직법 개악 철회’ 투쟁을 선포했다.
민주노총은 “정부안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모든 노동자를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기간 제한 강화, 원청 사용자성 인정 등 법을 보완하기는커녕, 기간 연장이 마치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인 양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대규모 파업을 경고하며 악법 저지 강력 투쟁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한국노총도 “정부안은 비정규직 고용안정 대책이 아닌 비정규직 방치·확산 촉진 법안에 불과하다”며 “비정규직 개악 강행은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없는 친기업적 정책의 결정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노동부 장관 퇴진 요구를 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민주노동당의 반대와 노동계의 거센 반발로 입법 과정에서 정부안의 내용이 대폭 수정되거나 통과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손창섭(정치전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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