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드디어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 지역에 도착하였다. 피라미드를 보러 가는 길목에는 1043년 11월 22일,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개석이 모여 우리나라의 독립을 논의 했던 건물 앞을 지난다. 카이로 회담의 장소이다. 지금 이 건물은 외관상으로는 아파트로 개조되어 쓰이는 것 같다.
모퉁이를 돌자 그렇게 보고 싶던 세계불가사의 중 그 첫 번째인 피라미드가 나타났다. 인류가 지금까지 수없이 던진 질문이 있다. 누가 무엇 때문에 왜 만들었는가. 나 또한 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가이드가 밝히는 쿠퍼 왕이 석 달 만에 만들었다거나 파라오의 무덤용이라거나 하는 주장은 증좌가 부족하다.
증좌란 상식적인 선에서 제시해야 이해가 된다. 또한 상호 이해를 해야만 인정할 수 있는데 누가 그 말을 인정하겠는가. 인정받지 못하면 많은 억측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그 억측이 바로 우주인이 만들었다거나 인류가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또 다른 문명이 있었다거나 하는 억측만 난무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것은 분명 있다. 지금 내 앞에서 펼쳐지는 저 장엄한 피라미드의 형상이다. 나는 못 믿겠다고 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있기에 기록을 살펴본다.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의 역사2권에는 이 피라미드는 10만 명이 3개월 공사로 20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가이드는 3개월에 완성하였다고 하였으나 내가 찾은 기록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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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550년 고왕국 제4왕국 시절 쿠퍼 왕이 완성하였고 그의 아들 카프레 왕이 다음을 지었고, 그의 손자 멘 카우레 왕이 그 다음을 지었다. 이 세 개의 피라미드 꼭짓점을 하늘로 이어보면 어느 지점에서 일치하며 하늘에서 보면 오리온자리와 일치한다고 한다.
이 쿠퍼 왕 피라미드는 밑변의 길이가 230.3m 높이는 146.5m 부피는 25만9천 세제곱미터, 무게는 65만 톤이다. 2.5톤에서 10톤짜리 화강암 바위가 168만여 개 들어갔으며 멀리 850km 떨어진 아스완에서 나일 강을 통하여 운반해 왔다. 계단은 210계단이었으나 현재는 203계단만 남아 있고 표면은 평면처리 되어 있었으나 아랍과 터키의 점령 하에서 건축자재로 쓰기 위하여 뜯어가서 거친 계단으로 남아 있다.
이런 것은 그냥 겉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피라미드를 연구한 학자들은 이 거대한 구조물의 방향, 즉 각 능선은 거의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그 각도의 오차전은 진북 쪽에서 5분밖에 벗어나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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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것은 105m 높이의 상승통로는 완벽한 배열에서 1cm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피라미드는 해시계의 기능과 달력의 기능과 천문대의 기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원래의 높이는 147m이지만 이 피라미드는 동지 무렵에는 80m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봄에는 그 길이가 거의 0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그림자의 길이를 이용하여 하루의 시간을 재었다. 이렇게 하면 다가올 계절을 예측할 수 있으며 한 해가 지나가는 것을 측정하여 기록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65만 톤의 무게를 어떻게 사막의 땅에서 지탱하고 있을까. 그것은 이 지대가 암반지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쿠퍼 왕은 친절하게도 어머니 피라미드도 함께 만들었다. 조그마하게, 그 친절함은 지금 우리들이 거대한 피라미드 안을 들어가 보지 않아도 그의 어머니 무덤을 통하여 무덤 안을 간단하게 볼 수 있게 한다. 현대인이 관광 수입을 위하여 가파르게 만들어 놓은 우리들은 일렬로 나란히 개미들처럼 허리를 굽히고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가니 대여섯 평 남짓한 석실이 나왔다.
이곳이 관을 놓은 자리이고, 이곳이 유물을 놓은 자리이고, 모두들 확인되지 않은 상상을 한다. 여기에는 경비병이 없다. 슬슬 카메라를 꺼내어 사진을 찍어 댔다. 무슨 증거사진을 만드는 것처럼 마구 찍어 댔다. 환한 백열등은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꽤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속삭이는 것 같다. 확 불을 꺼 버려! 불을 끄면 너희들은 다 죽는다 하면서.
이 세기적인 인류의 유물, 피라미드를 지키는 이집트인들은 어떠한가. 경비를 맡은 이집트 경찰은 권총을 차고 앉아서 졸고 있다. 하긴 이 돌덩이를 누가 떼어 메고 가겠는가. 낙타를 끌고 나온 이집트인들은 관광객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 혈안이 되어 있다.
그 아래를 졸졸 따라다니는 꼬맹이들은 원 달러를 외쳐 댄다. 사방에 쓰레기가 날리고, 아무데나 낙타와 사람이고, 오물을 내갈겨 불결하기 짝이 없다. 그 어디도 이 유물을 소중하게 지키려는 노력은 없다. 고단한 카이로 시민들의 삶을 보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우선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이다.
피라미드 사방을 촬영하느라고 일행과 떨어져 늦게 걸어나온 나는 더욱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2달러를 주고 낙타를 혼자 탄 것이 화근이었다. 나를 낙타에 태우고 내려놓지 않고 끌고 가려는 것이다. 높은 낙타 위에서 나는 ‘플리스 고’를 외치고야 내려올 수 있었다.
멀리서 멀거니 나를 쳐다보던 경찰은 달려와 자기와 사진 촬영을 하고 1달러를 달라고 한다. 나는 기가 막혔다. 시간이 늦어져 급하게 일행과 합류한 나는 가이드의 핀잔 속에 일정에 예정되어 있는 낙타타기를 비로소 즐길 수 있었다. 사막의 바람만큼이나 씁쓸함 속에 나는 피라미드와 이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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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모는 / 전북 장수 산서출생. 전주농고,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수필시대에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어라> <짐바탱이>를 출간했으며,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다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전주시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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