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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세워 허공을 건너는 저 길손"

<새벽을 깨우리로다> 목천의 시 폭포수

시인 / 沐川 정 병 렬 | 기사입력 2009/06/09 [03:29]
   
   


      < 폭 포수 > 

 
   보라  

   천길 벼랑길을 가는 

   저 길손

 
   위기의 순간

   직립의 표백문자로 삶을 독경하며

   온몸을 투신한다

 
   아 보라, 한없이 부드러워져서 

   뼈를 세워 

   허공을 건너는 저 길손 



  물에게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그 간단(間斷)없는 유연함과 도도함일 것이다. 머무를 사정이 아니라면, 만사를 제치고 그의 길을 간다. 물 자체가 곧 길인 것이다. 가두면 터뜨리고, 맞서면 부수고 스며서, 뭇 생명으로 깨어나는 물, 마지막 한 방울까지 길을 가는 물, 한여름 가뭄일수록 목마름을 통해서 물은 생기로 부활하지 않던가.

  풀도 나무도, 사람도 짐승도 스며나는 물의 변신을 보라. 그렇듯 생명수가 가는 길, 폭포수에서 배우느니. 보라, 위기의 순간 어떻게 길을 가는 지를.

  서늘하리만치 전신을 투신하는 저 벼랑길 길손에게서 그 유연함에 담대함과 도도함까지 배울 수 있다면, 이 시는 더없는 장쾌한 울림이자 한 편의 그림일진대, 투명하게 스스로의 삶을 독경하며 하얗게 일도(一道)의 표백(漂白)문자를 몸으로 새기면서 허공을 건너는 저 폭포. 그침 없는 그 부드럽고도 시원한 길손을 본다는 것은 그 어떤 예술품보다도 장엄 뭉클하다 할 것이다.

  물처럼 폭포처럼 사는 삶이라면 과연 엎드려 올려다 볼만하다. 유연함이란 지혜이자 힘이요, 담대함은 용기이며, 도도함은 변덕이 없는 품격일 것이니. 타고난 물 본연의 길을 끝까지 지켜가는 데에 무슨 토를 달랴. 궁극적으로 노여워하거나 불평하지 않으리라.

  산으로부터 비롯된 물길. 적막을 쌓아올린 산이 장구한 침묵의 식사 끝에 삭여낸 영혼의 한마디가 환희로 흘렀으니, 물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산이 발을 내어 뚜벅뚜벅 걷는 또 하나의 구도의 길을 찾아 나선 것임에 틀림없다.

  산에서 졸졸 흘러나는 물. 논에 들면 벼를 살리고, 목구멍에 들면 생명의 꽃을 피운다. 독사에겐 독을 만들고, 젖소에겐 젖을 만든다. 그렇듯 물은 물의 길을 간다. 도도히 그침이 없이 주어진 시간 타고 난 본성을 피워나간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부서져 스며서 다시 깨어나는 얼굴, 이슬방울로도 땀방울로도 굴러서 허공 속 길을 가듯,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유유히 유유히 흘러가는 저 강물!

  우리가 물처럼 강물처럼 가는 인생이라면, 무슨 여한이 있으랴. 답답한 오늘 철철 쏟아지는 폭포수 앞에 서서 저 새하얀 물줄기 속에 잠시 나마 몸을 맡겨보자. 대지에 부서져서야 다시 깨어나는 얼굴, 인생도 저와 같은 것이려니. 태초부터 우리 몸속에도 이미 폭포수 하나 흐르고 있지 않았던가. 

 
오월도 푸른 수무사흗날 이른 아침, 봉화산 부엉이 바위를 타고 폭포수 한 줄기 흘러내리다.
 
 오월도 푸른 수무사흗날 이른 아침, 봉화산 부엉이 바위를 타고 폭포수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도도하고 서늘한 남자, 노무현 전직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평생을 정의롭게 살 것을 외쳐왔던 자신이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몰리자 땅을 치며 통탄했으리라. 그러나, 그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모든 이에게 자기를 지워버리라며 봉화산 폭포가 되어 도도히 그의 길을 갔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 정병렬 시인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표현 신인작품상 수상 
  詩集 등불 하나가 지나가네 
  물 길어 가는 새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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