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천(沐川) 정병렬(鄭炳烈)은 자연사물을 통하여 시를 발견하고자 할 때에는 일단 정관의 자세로 교감 신호를 타전한다. 이렇다 할 응답이 없으면 대상을 내부로 불러들여 그 자신의 교감신경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런 행위가 여의치 않을 때에는 대상에 침투하여 사물의 내면세계를 샅샅이 탐색할 마음 자세로 돌연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깊이 숨어 있는 존재의미와 신비세계를 시라는 언어 형식을 통하여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태도와 정신은 그가 자연에 귀의하여 자연과 한 몸이 됨으로써 홀로 유유자적하며 자연주의자를 닮고자 하는 시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그는 완전자유를 자기구원의 방편으로 수용하려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데, 이는 자연과의 친화관계를 뛰어넘어 자연과 일체이고자 하는 그의 정관(靜觀), 명상의 시가 그 같은 특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에 쉽게 파악되는 문제이다.
그의 시에는 영원을 쓸고 가는 잔잔한 산바람소리가 있다. 가슴 아픈 산새소리도 살고 있다. 하늘의 깊은 침묵이 익어 터지는 소리가 강물로 흐르는 듯싶을 때쯤이면 마침내 푸른 영혼의 가시에 찔린 쑥국이(뻐꾸기)가 쑥국, 쑥국 목이 쇠어 울어대고, 그래서 오월이 오면 찔레꽃은 하얗게 피어나고야 만다. 하늘의 악보를 통해 침묵을 연주하는 산줄기를 본 사람이라면 그의 시속에 큰 산이 들어앉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목천은 시와 재미있게 논다. 그처럼 자연사물과 일체가 되어 교감한다. 사람만이 아니라 그의 명상의 묘태(妙態)가 자연스럽고 언어 역시 자연스럽다. 그보다는 더욱 자연과 한통속이 되어 자연계의 오묘한 신비세계를 가슴이 아플 만큼 아름답게 해석해낸다. 그것이 자연주의 시인이 풀어내고자 하는 의도이고 목적일 것이다.
그 때문에 독자들은 도사나 처사다운 그의 시적인 품새와 내면의 깊이에 푹 빠져 헤엄쳐 나오려면 한참 동안 허우적거려야 할 것이다. 자연과 함께 숨쉬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교감의 장면 그 하나, 하나는 해석적 상상력을 통하여 경건한 엄결성(嚴潔性)과 정밀한 감수성으로 다져 있기 때문에 숨조차 크게 내쉴 수가 없다. 그렇게 그의 시를 뒤쫓아 조심조심 따라가다 보면 나 자신 자연의 일부임을 은연중에 느끼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러한 자연 친화적 동일성은 그의 직관 감각과 순수 서정, 그리고 새로운 발견을 꿈꾸는 언어에 의하여 뜨끔뜨끔 감지된다. 그의 「찔레 향기」가 그렇고, 「산이 소리를 내다」가 그렇고, 「명상」이라는 시가 그러한 느낌을 안겨준다.
목천의 시력(詩歷)은 올해로 46년(196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을 헤아린다. 오랜 세월에 걸쳐 농익은 완숙미가 자연계의 중심을 관통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 비로소 자연의 경이로운 숨소리를 전언(傳言)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면 시적 긴장으로 표상(表象)된 언어와 직관 감각을 어떻게 소화해내고 있는지 살펴보자.
오월 푸르른 산하는
가슴이 아프다
쑥국이라는 놈
찔레한테 갔다가 찔려서
쑥국 쑥국
찔레라는 연
쑥국이한테 쑥국 쑥국 찔려서
푸르륵 푸르륵
산하가 게워내는 푸른 영혼의 가시
내 가슴 쑥국 쑥국
그대 가슴 푸르륵 푸르륵
태양도 찔려 터져서 눈이 부신 날
오월의 몸에서는
하얗게 찔레꽃이 터진다
<찔레 향기> 전문
오월의 신록은 너무나 아름답다. 가슴이 아플 지경이다. 때마침 쑥국이(뻐꾸기)가 앞산 숲에서 흐느낀다. 뻐꾸기는 무슨 까닭에 서럽게 우는 것일까. 서정적 자아는 ‘찔레한테 갔다가 찔려서’ 운다고 말한다. 이는 엉뚱한 설화적 발상이다.
엉뚱한 발상이 새롭고 신선하다. 뻐꾸기와 찔레와의 관계 설정은 매우 낯설다. 서로가 무관한 상대이다. 다만 오월에야 뻐꾸기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오월에야 찔레 새순이 돋아나는 계절적 공통성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시인의 직관은 보편화된 인식을 초월하여 엉뚱하게 발설한다. 찔레 새순을 꺾다가 가시에 찔린 손이 얼마나 아팠던가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뻐꾸기 울음소리가 얼마나 가슴 아픈 사연을 토하고 있는지 느껴봤을 것이다. 그는 뻐꾸기의 울음소리에 이와 같은 아픈 사연을 함축해 놓고선 ‘쑥국, 쑥국’ 운다고 암시한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뻐꾸기를 남성인 ‘나’와 ‘놈’으로, 찔레를 여성인 ‘그대’와 ‘연(년)’으로 대조시켜놓고 있다. 그래서 ‘쑥국이라는 놈’은 ‘찔레한테 갔다가 찔려서/쑥국 쑥국’ 울고, ‘찔레라는 연(년)’은 ‘쑥국이한테 쑥국 쑥국 찔려서/푸르륵 푸르륵’ 운다고 해석하고 있다.
아주 신묘한 발상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이룰 수 없는 남녀(‘놈’과 ‘연’)간의 아픈 사랑과 슬픈 사연을 말하고자 하는 점에 숨은 의도가 있다. 이것이 시의 주제의식이며 키포인트이다.
오월은 새 생명들이 젊음을 구가하는 때이다. 신록은 환희에 차서 짙푸르기만 하다. 아름다운 사랑의 계절인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사랑은 영영 이루어질 수 없다 하였던가! 자연의 질서체계도 그와 다르지 않으리라는 해석적 상상력, 그것이 이 시인의 남다른 통찰력이고 개성이다.
특히 마지막 연(聯)의 직관 감각은 이 시의 완결성을 돕는 백미이다. 뻐꾸기도 ‘찔려서/쑥국 쑥국’, 찔레도 ‘찔려서/푸르륵 푸르륵’ 운다고 진술하였는데, 이로부터 연상된 태양도 햇살에 ‘찔려 터져서 눈이 부신 날’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화자는 지상의 뻐꾸기와 찔레에 이어 천상의 태양까지 ‘찔림’의 이미지로 통일시켜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는 상상력을 보여줌으로써 시정신이나 세계인식의 높이와 깊이와 무게를 이해하기에 충분한 시적 장치를 엿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