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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일은…다음해 나는 진학을 했다”

<土 曜 隨 筆> 수필가 조문자, ‘부싯돌 아침

수필가 조문자 | 기사입력 2009/07/11 [00:59]
산중에 날이 저물었다. 지등(紙燈)에 불을 켠다.

느닷없는 소리에 화들짝 놀래서 움츠린다. 좁은 다락을 드나드는 들쥐들이 제 세상을 만난 양 기세가 등등하다. 산에서 먹이를 뒤지던 들쥐들이 몰려와 호두나무와 지붕을 그네 타듯 옮겨 다니고 있다.

나는 눈알을 굴리며 옴짝달싹도 못한 채 생쥐처럼 쪼그려 앉았다. 어둠은 어둠대로 공포를 주며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게 하였다. 마치 세상을 복원하는 일은 우리 손에 달렸다는 듯이. 

“와장창”  

와락 소름이 돋는다. 들쥐들은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어 무언의 시위를 하는 듯 찍찍거리는 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깨진 이빨과 쥐벼룩이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이 방안 공기를 흔들었다.

쥐 터럭이 날아다니는 것 같아 목구멍이 막혀 오고 얼굴이 시뻘게졌다. 방안에 감도는 정적조차 으스스 하여 숨소리는 나의 것 하나뿐이었다. 
 
   
▲ 침묵하기 좋은 곳도 어둠이었다. 희망이 없어도 절망이 필요 없는 곳도 어둠이었다. 어디론가 떠나기 좋은 곳도 어둠이었다.


한때, 삶이 오리무중이었다. 오이 빛 피부에서 풋내가 나는 스물두 살은 학생도 아니고 직장도 없었다. 행거하나 덩그렇게 놓여 있는 외딴 방, 햇빛이 들지 않아 겨룸의 세계에서 밀려난 무능한 인생이 더는 내려갈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어둠이 그렇게 사람을 평화롭게 감싸주는 것 인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으니 경쟁이 없는 곳이었다. 침묵하기 좋은 곳도 어둠이었다. 희망이 없어도 절망이 필요 없는 곳도 어둠이었다. 어디론가 떠나기 좋은 곳도 어둠이었다.

어둠속에서는 보기 싫은 내 모습도 그 모습을 감추고 마치 빛나는 앞날의 흔적인양 엎드려 있을 수 있었다. 어둠에 묻혀 내가 어둠인양 어둠이 나 인양 극에 닿을 때까지 눈을 감고 있으면 입에서 쓴 냄새가 났다. 삶이 백색 지대로 침몰하여 가는 듯 하여도 어둠이 좋았다. 

벽에 등을 기대어 앉은 채 막막히 12시가 넘어갔다. 잠을 청하였지만 정신은 초롱초롱 해지고 시선은 창문 밖 어둠 속을 배회한다. 오늘따라 어둠은 거대한 휘장처럼 드리워져 전깃불마저 겁먹은 듯 흐릿하다.

피로한 눈을 손으로 문질러보았다. 영영 밝아지기는 글렀다는 듯 살아있는 나의 몸도 비틀어 통째로 삼킬 것만 같은 어둠은 송곳 하나 박을 틈이 없이 꽉 틀어 찼다. 

스물두 살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삐뚤어지는데 성공한 셈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네 조각의 벽이 에워싼 방 한 칸에 갇혀 서까래처럼 드러누워 손바닥만 한 유리를 통하여 세상을 볼 따름이었다.

몇 달째 사람을 피하며 괴상스런 침묵을 하고서 이렇게 하는 것이 시시한 자존심을 유지할 유일무이의 비결이었다. 잡히지 않는 불투명한 앞날, 그것은 잘못 탄 버스와도 같았다. 재해지를 닮은 독방 생활에 낯익어가면서 나는 삶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었다.

존재와 의식이 합쳐지는 것은 어둠과 빛이 만나 즐거운 소꿉장난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 배가 고픈 것도 목이 마른 것도 느낄 수 없는 세계로 떠나고 싶었다. 죽음을 생각 하니 빛이 없어도 길은 훤했다. 

사방은 정적 속에서 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어둠에 쩍쩍 금이 갔다. 어둠은 사선 직선 빗금으로 갈라지고 흩어졌다. 어둠이 뒷걸음을 치며 부서졌다. 어둠과 빛이 교차 되는 찰나이다.

새벽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짐작했다. 새벽이 깃을 치며 검푸르게 깨어나고 있었다. 새벽녘의 체온은 쥐에게 긁어 먹힌 듯 차가웠다. 산이 기지개를 켜며 새벽 몰이를 하는지 어슴푸레 흐릿하던 산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어둠의 미세한 알갱이들이 끈적끈적하게 엉겨 붙어 있어 창문이 희붐하였다. 차고 비린 새벽안개가 몸속으로 들어왔다. 이윽고 공포가 끝난 장엄한 아침이 오려는 것이다. 쥐새끼들은 어둠에 암살되었을까, 스스로 물러갔을까, 어젯밤의 일은 너무도 말끔하였다.

동쪽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점점 아래로 밀려나 풀밭을 가로질렀다. 그것은 빛이었다. 빛을 본 순간 어제 밤부터 참은 오줌이 마려웠다. 

방에 드리워진 어둠이 갑자기 사라졌다. 환한 직사각형 창문으로 빛이 비추었다. 빛을 본 것이 너무도 오랜만이라 마치 밤이 끝난 것이 아니라 겨울이 끝나기라도 한 듯 반가웠다.

마음 깊은 곳에서 수면의 가장자리에서 백지의 여백에서 새싹이 나는 것 같았다. 몹시 울고 난 뒤의 맑은 하늘이 보고 싶어졌다. 필요한 것은 외출이었다. 지금 당장, 밖으로 저 황무지로 나가고 싶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내 창문을 통째로 가리고 있는 오래된 소나무를 누군가가 일부러 잘라버린 것이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세상에 펼쳐진 순백색의 체도가 서서히 달라지면서 아침이 왔다. 발밑에 바스락거리는 풀잎에서 햇살이 반짝였다. 산꼭대기에서 폭발이라도 하는 듯 반짝이는 빛들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부서지는 빛의 가루들이 수억만 개로 반짝였다. 부싯돌 같은 아침이었다. 아무리 맞이하여도 질리지 않을 아침이었다. 언제 이러한 빛이 숨어 있었던가. 밤을 꼴딱 새워 맞이하는 아침은 나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어둠의 찌꺼기까지 말끔히 쓸고 간 아침 앞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아침은 밤이란 어둠이 지나간 다음에야 찾아온다는 것을. 

다음해 나는 진학을 했다.



◇ 수필가 조문자

한국문인협회 회원

제 4회 농촌문학상

제8회 한국여성문화원 문학상

제23회 가을날 편지쓰기대회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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