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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야 열에 아홉이 산목숨 돌아와"

<늘 푸른 샘물>오대혁, 절집을 태워 어부를 구하듯

오대혁 수필가 | 기사입력 2009/09/01 [18:12]
당 나라 원화 연간에 살았던 단하선사(丹霞禪師)는 나무로 만든 불상을 태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비웃자 불상을 태우면 사리가 나올 줄 알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더 비웃었다. 우상을 섬길 것이 아니라 참된 부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이야기다.

이보다 더 나아간 상상력을 서춘기의 <부처꽃 필 무렵>이라는 시에서 발견한다. 바닷가 열 길 벼랑 위에 자리 잡은 절집은 뱃사람들의 등대와 같았다. 어느 해 부처꽃이 붉게 피어오를 무렵, 거센 비바람으로 바다가 미쳐 날뛰어 뱃사람들이 무명의 바다를 헤매고 있었다.

야뇨증에 잠이 깬 노스님이 번갯불이 희번덕이는 바깥세상이 걱정스러워 마당에 관솔불을 피우려하지만 비바람이 불을 계속 꺼뜨렸다. 그러자 이 노스님 불쏘시개를 토방으로 옮겨 불을 붙여 활활 대웅보전을 태웠고, 마침내 뱃사람들이 작은 포구에 닻을 내릴 수 있었다. 도량을 태워서라도 타인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작품이다. 

 
▲ 귀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1877)

 
자본주의는 언제나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산업자본가들이나 친기업적 권력자들은 부자에겐 세금을 덜어주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없는 주머니까지 털어내려 한다.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한다. 매서운 비바람을 뚫고 나갈 등대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이 331억 4200만 원을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누군가의 찬사마냥 현직 대통령이 거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것은 국내외에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가 펼쳐질 기대도 해 보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기부’인가, 하고 갸우뚱거릴 내용들이 뒤에 이어진다는 점이다. ‘기부’는 맡길 기(寄)에 붙을 부(附)자를 써서,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음”을 뜻한다.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하는 단체가 참으로 많은데, 따로 ‘청계’라는 아호를 딴 재단을 설립하고, 그 사업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사람들로 구성한다고 한다. 과연 아무런 대가 없이 내놓은 것인지를 의심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바닷가 노승이 절집을 태워 뱃사람들을 구하듯 기부를 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붉고 큰 부처꽃은 처음이었어 난생 처음이었다니까 / 간신히 새벽녘에서야 열에 아홉이 산목숨으로 돌아와 …(중략)…뱃사람들이 / 부처꽃 필 때마다 두고두고 말했다지.” 그 아름다운 불꽃을 피워 올리는 기부여야 진짜 기부다. 

 
◇ 오대혁 프로필




동국대 강사. 국문학박사 

월간 신문예 시 등단

<서울문학인> 편집위원

著書 <금오신화와 한국 소설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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