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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역사의 해설과 교육은 역사를 전공한 학자들의 몫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교육하는 곳이 없으므로 소개차원에서 소개해 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고구려 전성시기(5세기) 최대 강역은, 초등학교 사회과 부도 지도에 나와 있는 강역도 처럼 현 중국 요령성 요하 동쪽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고구려 전성기도 아닌 초기 즉 고구려 모본왕( ad48~53:고구려 5대왕, 대무신왕의 장자) 2년, 즉 서기 49년에 고구려 군사가 북경 서남쪽 산서성 태원을 공격한 기록이 있어 우리를 당황케 한다.
그러면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모본왕 2년(49년)의 기록을 살펴보자.
[원문]
二年 春 遣將襲漢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祭肜 以恩信待之 乃復和親
三月 暴風拔樹 夏四月 殞霜雨雹 秋八月 發使賑恤國內饑民
[해설]
2년(서기 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쳤으나, 요동태수 제융(祭肜)이 은혜와 신뢰로 대우하였으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3월에 폭풍으로 나무가 뽑혔다. 여름 4월에 서리와 우박이 내렸다. 가을 8월에 사신을 보내 나라 안의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하였다.
본문에 나오는 지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일부 이설이 있다.)
* 북평 : 현재 하북성 부평
* 어양 : 현재 하북성 북경 북쪽 회유
* 상곡 : 현재 하북성 탁록
* 태원 : 현재 산서성 태원 (산서성 서남부 끝 이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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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명을 지도에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5세기 고구려 전성기 시절에도 요하를 넘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 하는데, ad49년에 고구려가 중국 대륙 깊숙한 산서성 태원을 공격 하였다는 사실이 적시되어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하여 고구려 역사를 자국에 편입하는 작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 시점에, 정사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 조차도 교육하지 않는 현실은 시정되어야 한다.
ad49년에 고구려가 북경을 지나 산서성 태원까지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였다는 것은 고구려 강역이 지금보다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ad49년 북경유역이 고구려 영향권에 있다는 사실을 삼국사기는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을 누군가 바르게 정리하여 올바른 역사교육을 실시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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