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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가 무엇인지 멋있게 가르쳐준 사나이

<박삼중 스님 대증언>수감된 깡패두목에게서 배운 자비

김성애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0/01/29 [19:32]
배 아무개 대법관 실을 나오면서 삼중 스님은 덩실덩실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 길로 사랑하는 사나이, 정나와를 면회했다. 배 대법관과의 대화를 처음부터 배웅하는 모습까지 소상하게 늘어놓았다. 정나와는 담담하게 들었다.

청탁에도 불구, 판결문은?

“대법관이 자네의 기록을 잘 읽어보겠다고 약속했으니 분명히 좋은 결과가 나올 걸세. 내 교도소 출입 경력으로 자네의 형량을 가름해 보면, 5년형이 아마도 3년형에 집행유예 5년이 내려질 걸세.”
 
정중한 태도를 믿었다. 그래서 정나와 앞에서도 확신했다. 자신이 현실적으로 진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 그런데 정나와에게는 이상한 찬바람이 불었다. “큰스님! 큰스님 얼굴을 뵈올 수가 없습니다. 결국 주심 판사에게까지 가셨군요. 그런 데 가셔서 추한 부탁을 왜 합니까? 다 압니다. 저를 위해 가셨다는 것을, 그러나 저를 정말로 좋아하신다면, 그런 부탁은 원치 않습니다. 저는 죄 지은 만큼 형을 받을 각오가 된 놈입니다.” 정나와의 당당한 눈빛에서 삼중 스님은 그의 큰 그릇을 재차 확인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아니 나부터도 이런 도움에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판인데, 과연 사나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런데 그리도 기대했던 판결문이 이상했다. 형량이 이상했다. 처음부터 정나와가 말했던 5년형으로 결정되었다. 믿겨지지 않았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삼중 스님은 실망스러웠다. 그것도 잠시 뭔가 깨달음이 있었다. 이성을 잃어버린 기대치란 역시나 물거품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깨끗한 배 대법관이 존경스러웠다. 개인적인 청탁에 얽매어서 서류의 기록들을 왜곡하지 않았다. 판결의 서운함은 사라지고 배 대법관에 대한 존경심은 깊어졌다. ‘암~ 우리나라 대법관이라면 그래야지!’

삼중 스님은 이런 감정에 젖게 한 현직 판사가 기억났다. 10년 전 쯤 제주지방법원에서 직원들의 친절교육 강연을 삼중 스님에게 의뢰했다. 그 시절에 만났던 제주지방법원장 김 아무개 판사는 중풍으로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대구 고등법원장을 거쳐 현재는 변호사 개업을 한 아주 특별한 분이었다.
▲ 삼중  스님   ©브레이크뉴스

“스님! 제가 사형선고를 많이 해서 부처님한테 벌을 받아서 이리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억울한 사람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건강이 좋지가 않습니다. 삼중 스님!”

교도소를 제 집 들락거리듯 지낸 오랜 세월동안 삼중 스님은 많은 판검사들을 만났다. 그런 삼중 스님이 입을 딱 벌리게 하는 말을 들었다. 이리 솔직하게 자신을 들러내 놓는 현직판사는 처음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그 후 다른 일로 김 판사를 다시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도중에 제주도에서 건넸던 대화로 이어졌다.

“저는 판사님의 말이 참으로 좋아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 솔직한 마음을 담은 말을 했던 현직 판사님은 처음이었습니다.” “내가 그 때 한 말이 맞는 말이죠. 벌을 받아서 이리 아프지 않습니까? 하하하”

김 판사는 자신의 판결에 대해 조금이라도 억울했던 사람들의 원망을 지우지 않았다. 사람이니 기록만 가지고 어찌 100% 진실을 가릴 수 있겠는가? 이런 김 판사와 동일하게 배 대법관도 기록을 면밀히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의 신념으로 내린 판결에는 정나와와 삼중 스님  모두 깨끗이 받아들였다.

보안과장에게 매달린 청탁?

5년형을 받은 정나와는 대구교도소로 며칠 뒤 이관될 예정이었다. 이관되기 전에 삼중 스님은 대구교도소로 쫒아갔다. 어느 누구도 부탁하지 않는 청탁을 하러 갔다. 힘발 있는 보안과장을 만났다. 2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터놓고 부탁했다. 세상 잣대로는 좋지 않은 거래를 했다. 나쁜 짓인 줄 알지만 삼중 스님의 이성은 정나와를 위한다는 전제에서는 다시금 흐려졌다.

“나를 봐서 편의 좀 봐주시오.”
삼중 스님은 숨어서 선행을 하는 정나와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이번 부탁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게 꼬였다.

“주먹 쓰는 애들한테는 그런 편의는 봐 줄 수 없습니다. 스님!”
친한 사이라 부탁만 하면 으레 들어줄 사람인데 뜬금없이 정색을 했다.
“내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와서 부탁하는데, 뭘 그리 하는가? 이 안에서 봐 줄 수 있는 거야 뻔하지 않겠는가? 법을 어기라는 것도 아닌데.”
좀 언짢았지만 그래도 부탁하는 입장에서 말꼬리를 내렸다. ‘이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의문이 얽혔다.

“딴 죄목들은 다 봐주어도 그 범죄만은 못 봐줍니다.”
보안과장은 조직깡패의 악랄함을 꼬집었다. 이유가 이상했다. ‘이 놈이 나한테 이리 강하게 이러다니, 정말로 깡패들한테 당하기라도 한 것인가?’ 어쨌든 보안과장의 냉대에 초라해졌다. 
“............”

“스님, 이번에는 절대로 안 되겠으니 바빠서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보안과장은 목숨을 내걸듯이 강경하게 대처했다. 오랫동안 잘 지냈던 사람에게 거절을 당해 놓으니 삼중 스님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교도소 내에서는 좋은 일을 하는 스님이 이런 청탁이나 하다가 거절을 당했으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참 도와주려는 마음이 너무 크다보니 여기서 또 걸렸구나.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하는 위안으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이런 창피한 뒷이야기를 정나와에게는 꺼내지 않았다.

꽃밭에서 물주는 일

며칠 후 삼중 스님은 대구교도소로 이관된 정나와를 면회하러 갔다. 아! 그랬더니, 정나와가 교도소의 꽃밭에서 물을 주고 있었다. 24시간 갇혀 있는 감옥에서는 꽃밭이라는 곳은 천국이었다. 국회의장이나 재벌총수 정도라면 꽃밭의 일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런 천국같은 자리에 정나와가 배정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리 해 주었을까? 삼중 스님에게 냉정히 거절했던 보안과장이 해 주었다는 것은 눈을 감고서도 알아 맞혔다. 삼중 스님은 뒤통수를 맞은 꼴이었다.

‘네놈이 이익을 챙기려고........, 못된 놈!’ 삼중 스님은 속으로만 생각할 뿐이지 자신이 원했던 자리에 정나와가 딱 버티고 있으니 따질 일은 아니었다. 낙동강의 오리 알처럼 삼중 스님이 정나와를 돕고자 하는 일은 매번 빗나갔다. 사랑하는 그를 위해서 그저 면회를 자주 가는 일뿐, 다른 도울 거리는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삼중 스님은 보안과장과는 어색해졌다. 삼중 스님이 교도소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기 무섭게 언제나 달려왔던 사람이 변했다. 보안과장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일부러 슬슬 피하는 듯싶었다. 어느 날 정나와가 뜻밖에도 중재에 나섰다.

“큰스님! 보안과장이 딴 데로 전근을 간답니다. 삼중 스님에게 인사라도 꼭 하고 떠나고 싶다고 하는데요.”

이런 대목에서 교도소의 비리가 나올 수 있다. 보안과장은 정나와에게 간청을 했다고 한다. 그때서야 정나와도 삼중 스님의 뒷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너 자리를 스님이 부탁할 때 안 봐준다고 해놓고, 너를 봐주었지 않니? 니가 이야기 잘해 둬. 내가 직접 인사하면서 풀고 싶으니, 부탁한다.’ 삼중 스님은 속뜻을 이내 알았지만 굳이 인사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그가 권하는 자리를 피하지는 않았다. 사실상 정나와로 인하여 보안과장과 어색해졌으니 그도 중재자로 나설 만 했다.

“그 동안 수고가 많았네. 다른 데 전근해서 언제쯤 퇴직하는가?”
삼중 스님은 쑥스러워서 말을 꺼내지 못하는 보안과장에게 말을 풀었다.
“전에 일은 죄송했습니다. 스님!”
“뭘요! 나도 사내요. 우리 다 털어 버리세나.”
딴 말이 필요 없었다. 이리 죄송하다는 한 마디에 속에 있는 좁쌀 같은 마음은 그냥 녹아내렸다.

원하지 않는 청탁을 다시

2 년 뒤쯤, 정나와는 대전교도소로 이관되었다. 삼중 스님은 그 곳도 쫓아다녔다. 다행스럽게 대전교도소의 소장은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양동수 사형수를 살려 낼 때, 그 형무소의 소장이었으니 정말 친한 사이였다. 어느 날 면회실에서 정나와의 얼굴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큰스님! 제가 나가서 좀 멋있는 일을 큰스님을 따라서 하려 했는데, 여기서 인생을 끝내야겠습니다.”

좀처럼 그런 말을 꺼내지 않을 사람이 무슨 일이 있었다. 삼중 스님은 눈이 동그래졌다.
“무슨 일이 있느냐?”
“의무실에서 진찰을 해 봤더니 간이 안 좋아서 얼마 견딜 수 없다고 합니다.”

삼중 스님은 자신이 아픈 것처럼 큰 충격에 싸였다. 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인양 가슴이 미어졌다. 소장한테 달려갔다. 사정이야기를 했다. 주먹 쓰는 사람들은 형무소 밖의 병원진료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매달리는 삼중 스님에게 답답한 소장은 ‘제 소관이 아닙니다. 스님!  본부 결제가 필요한 사항이에요. 제가 보고해서 허가를 받아보겠으니 그만 좀 찾아오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충남대학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삼중 스님의 발은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나와의 병을 담당하는 병원의 과장실로 쫒아갔다. 의사는 운이 좋게도 독실한 불자였다. 다른 종교보다는 스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무슨 짓을 못하겠느냐는 심정으로 부탁을 드렸다. ‘좀 봐주시오. 병이 좀 심각하다고 소견서에 좀 써 주십시오.’ 스님의 신분을 빌어서 좋지 않은 청탁을 다시 했다.
삼중 스님은 그렇게라도 뛰어다니면서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아무튼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지만 마음을 담는 일을 몇 번 거들게 되었다. 정나와도 삼중 스님을 위하여 부인을 통해서 후원금을 전달했다. 군부대의 무궁화 헌장, 대가들이 기증한 그림의 표고를 위한 후원금을 연이어서 건네주었다.

진짜 사나이의 숨은 선행
  
정나와는 5년 형기를 다 마친 후 사회로 나오게 되었다. 감옥에서 나와 보니 재산은 상당히 기울어졌다. 그는 잠을 안자고 사업을 열심히 해서 다시 일어섰다. 인도네시아만의 원양사업가로 우뚝 재기했다. 그의 선행은 교도소를 들어가기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감옥에 있을 때에도 부인을 통하여 부산 용두산 공원의 노인들에게 점심을 매일 대접하고 있었다. 삼중 스님에게만 후원금을 도와드린 게 아니었다. 이런 선행들을 숨어서 했다. 신문 등 일절 외부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감사장은 질색하며 거절했다. 단체에서도 감사패를 가져다주면 얼굴색이 변했다. 한마디로 진짜 사나이였다.

사업이 잘되는 터라 정나와는 삼중 스님을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봉투를 건넸다. 삼중 스님은 사정했다. ‘제발 괜찮으니, 이젠 이런 봉투는 그만하자.’ 그래도 봉투를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삼중 스님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가 좋아서 만나는 마음을 여지없이 뭉개 버렸다. 삼중 스님은 부산에서 내로라하는 원양 사업가를 이제는 만날 필요가 없었다. 만나면 돈이나 받고 추해지기가 싫었다. 그래서 삼중 스님은 점차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일 년에 한번 정도 만났다. 또 얼굴을 대하면 용돈을 건넸다. 초파일에 절에 찾아오는 그를 그때나 만났다.
한 3년 전 쯤, 1년이 지났는데도 그는 절에 찾아오지 않았다. 삼중 스님은 그의 소식을 알아보았다. 그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삼중 스님은 그에게 쫒아갔다. 전통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2층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2층에 올라오면서도 그는 주변을 살피면서 올라왔다. 또 돈부터 내놓았다.

“아니! 이게 무슨 봉투냐? 부도가 났다면서 오자마자 이리 해도 되느냐?”
“큰스님! 받으십시오. 저를 비참하게 만드시지 마십시오. 제가 슬퍼집니다.”
그는 부도난 이야기를 자세하게 털어 놓았다. 사내답게 너무 크게 벌리다 보니 부도가 났다는 소리에 삼중 스님의 가슴은 저렸다.
“큰스님! 얼마 전에 제가 자살하려 했습니다.”
“아니~ 자살하다니? 사내가?”
그 정도로 심각했다니 삼중 스님의 마음은 더 찢어질 듯 아팠다.
“자살하려 했지만 죽지 못할 이유가 있더군요. 큰스님! 스님은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어려운 시절이 억울해서 못 죽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다 견딘 지금 죽기는 억울하다는 사나이의 눈물에 삼중 스님도 울었다. 쥐어 준 돈 봉투는 다시 그의 손에 쥐어줄 수가 없었다.

부도난 사업가 선행은 여전

정나와는 다시 재기했다. 그래도 그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 보였다. 고통은 밀려왔지만 워낙 신용하나로 버티면서 사내답게 살았다. 그는 삼중 스님과 일본을 3번이나 함께 했다. 일본의 이만리에서 조선 도공들을 위한 천도제를 올렸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은 도공들을 잡아가는 부대가 따로 배치했다. 도자기에 관련하는 수많은 조선인들은 모두 일본의 이만리로 끌려갔다. 옥석을 가린 뒤 재주가 없는 어린 도공들은 밥을 굶겨서 죽인 골짜기가 있었다. 그 곳이 바로 이만리였다. 절을 하면서 흘리는 정나와의 눈물이 진정한 사나이 모습이었다. 사나이의 눈물에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가 엿보였다.

얼마 전에는 그가 상당히 어렵다는 소식이 들렸다. 삼중 스님의 가슴은 메어졌다. 무척 궁금했다. 무슨 일이 또 일어났는지 쫒아가고 싶었다. 만나면 그 어려운 가운데도 돈을 만들어 올 사람이라는 생각에 꾹 참았다.

‘내가 그를 짝사랑하고 있구나. 진짜 사나이이니, 내가 이리 마음이 아프구나. 그 상황을 알아도 어찌 할 수 없지만, 이 사람 참 무심하게 내게 알리지도 않는구나. 아니다. 바꾸어서 생각하면 내 마음이 아프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알리지 않는 것이겠구나.’

삼중 스님은 애가 탔다. 드디어 통화가 되었다. 긴 시간 동안 힘들었다고 하면서 삼중 스님을 뵈러 오겠다고 했다. 삼중 스님은 극구 말렸다.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편해졌으니 찾아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또 돈을 들고 오는 그를 조금이나마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없을 때 아무도 모르게 봉투를 건넸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부탁해 본 적이 없는 사나이였다. 본래 사나이들이란 조금 거들어 준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불교에서는 보시 ‘베풀어 준다’는 줄 때 잘 주어야 합니다. 깨끗이, 멋있게 주어야 해요. 언제 누구에게 무엇을 베풀어 주던 간에 준 것은 잊어버려야 진정한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최재만, 양동수, 모두들, 부모자식 간에도 계산하는 세상인데. 정나와처럼 보시해야 합니다. 보시가 뭔지 참으로 아는 사나이, 내가 그 사나이에게 반했습니다. 정나와와 연락이 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게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정나와를 사랑합니다.”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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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산 2010/01/31 [10:21] 수정 | 삭제
  • 글을 잘못 쓴것인지...?
    삼중스님은 마음으로 중생을 지도 하는 줄로 알고 있는데
    주 얘기가 청탁이나 돈이 오가는 얘기인거 같아 씁쓸 합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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