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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고려인들이 사는 나라 카자흐스탄에 19년 째 거주하고 있는 전남 신안 출신 김병학 시인이 2010년 4월에 두 권의 번역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재소고려인 3세 시인 이 스따니슬라브씨의 시를 한 데 모아 번역한 『모쁘르마을에 대한 추억』(서울, 인터북스, 2010)과 카자흐스탄 최고의 고전시인 아바이 꾸난바예브(1845-1904)의 시편들을 엄선하여 번역한 『황금천막에서 부르는 노래』(서울, 인터북스, 2010)가 바로 그것이다. 두 권 모두 한국어 번역문과 원문이 나란히 실려 있다.
고려인 시인 이 스따니슬라브씨의 번역시집 『모쁘르마을에 대한 추억』에는 총 7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거기에는 강제이주 이후 고난과 비극의 삶을 살아온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꿈과 좌절과 희망, 정체성에 대한 고민, 모국을 향한 그리움 등이 수준 높은 서정으로 승화되어 있다. 한국의 독자들은 이 시편들을 통해서 역사의 진실과 삶의 본질을 찾아 나선 한 디아스포라 시인의 독백에 가슴 시린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고려인 3세 시인 이 스따니슬라브씨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는 번역자 김병학 시인이 가장 먼저 카자흐스탄에 들어가 고려인들과 한데 어울려 살아오면서 그들의 아픔과 정서를 가장 잘 헤아리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김병학시인의 번역을 통해서 비로소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내면과 시문학을 접하고 그들의 진심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시집은 제1부[되돌아가지는 못 하리 언젠가 두고 떠나온 해변으로], 제2부[초원에 피어난 진달래꽃], 제3부[안개 위의 영원한 꿈 마냥…], 제4부[바람에 흔들리는 이삭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집에 실린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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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4 >
우슈또베…
바스쮸베* 언덕.
시간도 모래도
토굴집의 자취들을
평탄하게 지우지 못하리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상들의 용감함에
무릎 꿇으려
우리 자손들이 나아간다.
가득히 더 가득히
술을 붓게
그리고 낮게 더 낮게
엎드려 절하게
또한 기억하게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는 건
1937년 그때에 조상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임을…
(* 우슈또베는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을 때 가장 먼저 부려진 읍단위의 지역이고 바스쮸베는 우슈또베에 소재한 조그만 언덕인데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이 첫 해 겨울을 그 언덕 아래에 토굴을 파고 살았다. 지금도 토굴의 흔적이 남아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은 이곳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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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5 >
고려사람 이름이 없어졌다
짧은 우리의 성(姓)만
남았다
여전히 우리 음식은
맵기만 한데
지난날에 대한 물음에
할아버지는
그냥 침묵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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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 10일에 출간된 번역시집 『황금천막에서 부르는 노래』는 김시인이 카자흐스탄 최고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아바이 꾸난바예브의 서정시 100편을 모아 번역해낸 역작이다.
중앙아시아 대초원의 고전시인 아바이가 우리나라에는 생소하지만 그는 지난 1995년에 유네스코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을 만큼 훌륭한 지성이며 카자흐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구소련권에서는 오래전부터 탁월한 시문학을 이룬 인물로 최고의 존경받고 있으며 20000년대에 들어 그의 시편들이 유럽권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등지에도 그의 진면목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아바이 시인의 시가 100편이나 번역되어 묶여 나온 건 그의 사후 106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카자흐스탄과 지정학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긴 역사와 언어를 공유해온 러시아에서도 아바이의 시가 수없이 번역되곤 했지만 100편이 한꺼번에 번역된 전례가 없다고 하니 이 작품을 번역해낸 김시인의 노고가 가히 어떠했을 지를 짐작해볼 만하다.
더구나 번역된 시들은 태반이 장시라서 소설책처럼 두툼하고 묵직하다. 김시인의 유려한 필치로 번역된 이 시집을 읽노라면 눈앞에 카자흐스탄 대초원이 펼쳐지고 거기서 초원이 분노하도록 말이 달리며 하늘 높이 사냥매가 날아들고 천막집의 유목민들이 천진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이 시집에는 중앙아시아의 독특한 유목문화와 카자흐스탄 고유의 전통이 풍부하게 소개되어 있다. 한국의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독특하고 생동하는 유목문화의 정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 번역시집은 제1부[자연(풍경)에 대한 서정시- 깊고 부드러운 눈밭으로], 제2부[철학의 서정시- 공작꽁지깃 빛깔을 띤 나비들이], 제3부[사랑의 서정시- 너의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을 구기고], 제4부[비애의 서정시- 가여운 심장아 뛰지 마라], 제5부[8행시- 말을 탄 채, 또 말을 타지 않은 채], 제6부[풍자시- 길가에 외로이 선 나리새]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집에 나온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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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대한 묘사
짙은 앞머리와 갈대 같은 귀를 가지고
긴 목과 흘겨보는 눈길은 정녕 야성적이어라.
드센 목덜미와 명주 같은 갈기,
목덜미 아래에는 큰 보조개가 있구나.
콧구멍은 넓고 입술은 크고 두툼하며
또 척추는 산줄기마냥 강하구나.
살진 근육으로 장난치며 가슴도 넓어
이를 포획한 매 마냥 억세고 거칠어라.
점토지대처럼 고르고 둥그런 말굽에
넓게 벌려 드리워진 종아리,
경쾌한 긴 다리로 걸음을 내딛는데
어깨뼈는 세상처럼 넓기도 하지.
갈라진 궁둥이, 오목한 몸통, 넓은 옆구리는
아무리 봐도 말안장에 제격이로구나.
메마르고 짧은 꼬리엔 뻣뻣한 털,
꼬리 밑은 불룩하고 튼실하게 살이 쪘구나.
낮은 복사뼈와 네모난 살덩어리,
잘 뛰고 튼튼한 둥근 엉덩이 좀 보게.
배 밑은 반듯하고 얇고 홀쭉한데
다리 사이에 눌려있는 통통한 고환주머니.
뼈마디는 유연하고 종아리는 넓어라
달릴 때는 바람처럼 경쾌하여라.
나는 그를 붙잡아 천막에 매어두고 싶네,
그가 눈을 흘기는 걸 홀로 보며 즐기려고.
그는 초원이 분노하도록 이를 갈며
곧장 달리고 그 주력은 빠르고 강하지,
경주에선 경쟁적이지만 달릴 땐 충직하고,
이런 말이 없다면 망신 아닌가.
말은 어찌나 빠른지 털모자가 치솟고
꾀꼬리처럼 절로 하늘을 오른 듯하여라.
이 귀한 말 타타르 산양보다 빨라
이것만 생각하면 기분이 나른해진다네!…
***
공작꽁지깃 빛깔을 띤 나비들이
여름 골짜기마다 분주히 날리라.
튤립 꽃 시들어 목을 구부리면
그 나비들도 죽어 없어지리라.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사랑하고 느끼고 슬퍼하며
움직이고 바삐 서두르는 것
생각하고 현명하게 말하는 것이니.
시간은 우리 모두를 이끄는 자
저 세월을 다스릴 자 누군가?
덧없는 인간이 촌음에 매여 사느니
우린 시간이 이기는 반죽 같은 것
***
역자 김병학 시인은 전남 신안출신으로 전남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카자흐스탄에서 한글학교 교사, 고려일보 기자등을 역임하고 카자흐스탄 알마틔시에서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센터’ 소장직을 맡고 있다.
2005년에 시집 『천산에 올라』를 펴내면서 시인으로 등단했고, 2007년에는 재소고려인 구전가요를 집대성한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1 ․ 2』를 펴내 국내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2009년에는 에세이집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를 내놓았다.
전남 = 이학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