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 우리 삶에서 우연, 필연이든 ‘그냥’과 ‘그저’는 없다. 그래서 특별한 플러스알파가 없는 대부분 ‘범인(凡人)’들은 대개 나름의 ‘대가’를 치르며 산다. 그러나 무작정 노력한다 해서 모두가 원하는 걸 취하진 못한다. 반면 또 일부는 타고난 ‘알파’를 쥔 채 풍요로운 삶을 영위한다. 그 알파는 대개 ‘복(福)’이란 이름으로 치부된다.
‘복’을 단상으로 부류가 대개 두 갈래로 갈린다. 한 쪽은 다른 이들에게 갈 ‘복’이 모아져 자신이 누리고 있다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갖고 누리는 모든 걸 다른 이들과의 ‘나눔’을 통해 상생의 공덕을 쌓는다. 그 나눔은 다름 아닌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다. 반면 다른 쪽은 누리는 모든 게 지극히 당연하다 생각하며 더욱 쌓고 모으는 ‘이기’에만 치중한다. 이들에게 나눔은 오직 자신들 테두리 안에서의 ‘욕(慾)’ 확장개념뿐이다.
문제는 후자의 이기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신들 리그·세계 안에서 스스로만 잘 먹고 잘살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일부는 갖은 위·탈법의 변칙을 행하면서 ‘사회도덕불감증’ 양산에 주범역할을 한다. 타인들 삶에 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업보’로 까지 잇는다. 건전한 희망과 성실한 노력으로 ‘복’을 염원하는 대부분 이들에게 깊은 ‘괴리’와 ‘허탈감’을 안긴다. 작금의 대한민국엔 전자의 경우도 많지만 후자 역시 상존한다.
대통령, 고위각료, 대법관,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의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자녀 이중 국적 등 포괄적 도덕불감증이 국민들을 깊은 괴리와 한탄으로 몰고 있다. 여기에 ‘현대판 음서부활’ 논란을 일으키며 이웃 일본네티즌들한테 까지 조소를 받은 채 ‘국격(國格)’ 훼손에 일조한 유명환-유형선 부녀의 ‘부전여전 후안무치(厚顔無恥)’까지 더해졌다. 한마디로 총체적 ‘탈(脫)모럴’이 팽배하면서 ‘상식·통념·법정의’ 등 사회근간이 휘청거리고 있다. 그 틈새에서 평범한 대한민국 아버지들과 청년, 대학생, 서민가계는 깊은 한탄 속에 신음 중이다. 한마디로 ‘염치(廉恥)’없는 부류들이 대한민국에 너무 많다.
일부 네티즌들의 극단적 한탄이 이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범죄인 사기꾼 집단이 가장 높은 자리에 우글우글, 거기다 국민들은 애국자보다 매국자를 더 좋아하고, 우리가 뭐가 아쉬워 저런 ×같은 집단의 지배 통치를 받아야 하는지”. “중국처럼 부정부패관리 사형제도 있었음 지금 권력 자리에 앉아있는 이 중 몇이나 살아남을까. 대한민국에 산다는 걸 감사 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라. 송구, 죄송하다 몇 마디 툭 던지고 사퇴하면 알아서 이쯤에서 알아서 덮어주고 무마해주는 좋은 나라 아니냐? 대한민국 만세지?”.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사회지도층에게 그 사회에 대한 책임 및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함의한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사회에선 오히려 사회지도층이 제대로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비판에 통용되는 실정이다. 마치 옳지 않은 게 오히려 옳은 걸 밀어내거나 맥 못 추게 하는 ‘그레샴의 법칙(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bad money drives out good)’이 횡행하는 나라가 돼 버렸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근간인 ‘헌법 제1조’의 훼손은 물론 기본척도인 언론의 위축 등 마치 민주주의가 파탄 난 형국이다. 특히 현 정권 들어 부유층·대기업 등 대한민국 ‘2%’는 더 살기 편해진 반면 서민경제는 그지없이 옹색해지고만 있다.
또 ‘국민-정치’간은 물론 ‘국민-정부’간 신뢰도 무너졌다. 사회일각의 건강한 목소리는 어느 덧 사그라진 채 정치냉소주의만 만연하고 팽배한데다 ‘8·8개각-비리백화점 공직 후보자’를 대통령이 마치 국민과 상거래 하듯 일부는 또 결국 임명했다. 지난 권위주의 정권에서나 있었던 ‘민간인 사찰파동’이 재연되는 등 전혀 예측불가하고, 공정치도 않은 당혹스런 일들이 버젓이 전개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중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란 이는 여전히 ‘국격’과 ‘정의-공정사회’를 버젓이 논하며 목청마저 돋운다.
아무리 혼자 목청을 드높여도 지속된 ‘일구이언-언행불일치’로 신뢰가 이미 깨졌는데 국민들 가슴에 와 닿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일갈도 서슴지 않은 채 ‘나는 바담 풍(風), 너흰 바람풍’이라며 주인인 국민을 ‘졸(卒)’로 보는 이율배반적 행보를 지속한다. 대통령의 치적에 함께 채색되는 한나라당이나 그 주변동색, 추종무리들의 엇비슷한 작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초록은 동색’, ‘유유상종’ 아닌가. 야권 역시 마찬가지다. ‘죄 없는 이만이 돌 던지라’하면 야권이나 현 제반 정치인들 중 과연 몇이나 돌을 집을 수 있을까. 아마도 거의 전무일 것이다. 그래서 현 민주당 등 야권 전반은 ‘반mb-민심이반’의 수혜자가 될 자격이 없다.
여기엔 정치인들의 네거티브전략(지역 색)에 여전히 함몰된 일부 어리석은 국민들과 지난 07년 대선에서의 530만 표심이 업보로 작용한다. 국민들을 정략적으로 지속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악마성’이 더 큰 업보로 작용하지만 것에 오랜 세월 휘둘리는 국민들의 우매함이 대한민국을 끝없는 ‘추락블랙홀’로 빠져들게 한다. 2012총·대선을 앞두고 도덕적 정치대안체 부재도 딜레마지만 국민들의 정치인에 대한 제대로 된 안목과 선택이 요원한 실정이다.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축의 훼손도 문제지만 뭣보다 대한민국 존재근간인 ‘헌법 제1조’도 심각히 위협받고 있다. 나라의 지도층이란 이들이 부끄러움을 모르는데 국민들이 어찌 법의 두려움을 알겠고, 나라자체가 어디 온전할 수 있겠는가.
지난 해방이후 한국현대사의 대부분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피와 땀으로 얼룩졌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또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귀한 목숨도 잃었다. 바로 헌법 제1조를 지켜내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하며 싸운 고된 여정이었다. 그 ‘헌법 제1조’가 재차 수난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그레샴 법칙의 대한민국을 국민들은 현재 목하 지켜보는 서글픈 상황에 직면했다.
최근 모 사석에서 한 지인이 지적했다. “현 상황에서 사실상 언론이 마지막 보루인데 제대로 역할을 해야 되지 않느냐”고 했다. 망설임 없이 즉답을 날렸다. “인정한다. 하지만 일부다. 정치인들은 원래 그런 부류들이라 치자. 그런데 지속 그런 부류들을 정치권에 유입시킨 건 바로 국민들이다. 자업자득이다. 아직 업보를 면하려면 멀었다”고 했다. 반박은 했지만 한편으론 ‘속’이 심히 쓰렸다.
그렇다. 되먹지 않은 정치인들과 기득권층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이들에게 ‘권(權)’까지 쥐어준 국민들의 ‘자업자득’이 상존한다. 마치 도둑고양이들한테 생선을 지속 맡긴 격이다. 그래서 ‘답’이 없다. 아마도 특별한 천재지변의 변수가 없는 한 ‘2012총·대선’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싶은데 지켜봐야 할 일이다. 다만 누가 재차 ‘졸(卒)’이 될지 여부는 2년 반 후 판가름 날 것이다. 갖은 시행착오는 그간의 세월이면 충분한 것 같은데 여전히 ‘글쎄?’란 의문부호가 찍힘은 왜 일런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