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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4월 21일 군대생활 경력이 거의 없는 <김정일>이 일약 <원수>의 계급장을 달고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되었을 때 엘리트 군 간부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고 1992년 말-1993년 초에는 소련 <프룬제> 군사대학 출신이 중심이 된 11명의 장성들이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그들이 국가지도자로 옹립하려고 했던 <오극렬>대장이 배신하고 d-day 하루 전에 김정일에게 보고하여 가담자 모두가 희생 되었다.
1995년 초에는 청진주둔 제6군단이 반 김정일 음모를 계획한 반란 사건이 있었으며 이때에도 <김정일>이 가장 믿었던 국가보위부의 간부들이 주동을 했고 수많은 군과 당 간부들이 숙청을 당했다. 1998년 말에는 보안담당 노동당 비서 <계응태>의 사위가 <반 김정일 음모>에 가담하여 총살을 당하였다. 그때 이후로도 <반 김정일 음모사건>이 계속 발생하였고 매년 군/민 합해서 약 300명 정도가 공개처형을 당했다.
1974년 2월에 <김정일>이 당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고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되고 나서 노동당 내부에 엄청난 반발이 계속적으로 일어났고 그 이유로 숙청되고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진 고급 간부들만 해도 수십 명이 되었는데 그중에 중요인사들은 아래와 같다.
1975. 9. 정치국 후보위원 <유장식>
1977. 10. 부주석 <김동규>
1982. 1. 국가보위부 부장 <김병하>, 부총리 <김경연>
1986. 2. 부총리 <홍성룡>
1988. 12. 내각총리 <이근모>
(기타 하급 간부 - 수천 명)
1994. 7. 8. <김일성>이 사망하고 중앙당 일각에서 특히 당 정치국에서 <김정일> 거부운동이 일어났고 <김평일> 옹립세력이 싹트기 시작했을 때 이를 재 빨리 <김정일>에게 보고한 사람이 <김용순>이었다. 그래서 <김용순>은 권력 제2인자가 되었고 당내 <김정일> 거부운동은 좌절되었으며 <김정일>은 인민군 총정치국 산하 일개 국 이었던 <보위국>을 <보위사령부>로 승격 재편하고 군 내부와 자기를 배신한 당을 철저히 통제하는 <선군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그때 이후로 당 정치국은 유명무실한 <국방위원회>의 시녀에 불과했고 이번 (2010. 9. 28) 제3차 당 대표자회의 때 까지 <김정일>은 당 중앙위원회와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정비하지 않았다.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경우는 5명중 <김일성, 오진우, 김일, 이종옥> 4명이 죽고 자기 혼자만 남았던 것을 이번에 <김정일, 김영남, 최영림, 조명록, 이영호>로 정비한 것이다. 이번에 새로 짠 지도세력의 성향을 분석해 보면 얼마 전에 1차적으로 국방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부상했던 <오극렬>과 <장성택>이 소외되었고 초강경파 <최현>의 차남 <최용해>와 <이영호, 김영철>등이 전열에 배치되고 <장성택>의 경우는 부인 <김경희>가 정치국 위원이 된 반면에 그는 후보위원에 하향배치 되었다.
이번 새로운 지도부에 개혁성향의 인사는 겨우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배치된 전 내각총리 <박봉주>와 전 내각 사무국장 <김영호>등 극소수이며 나머지는 <1983. 1. 8.생 만27세의 새로운 지도자>를 보호해야할 강경파 일색이다. 이번 대회에서 <노동당 규약>을 개정했는데 <공산주의>용어는 삭제가 되었으나 <대남적화통일>의 목표에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으며 대미정책에 있어서도 un총회 기조연설에서 외무성부상 <박길연>이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욱 강화하겠다고 발언한 것처럼 강경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지금 2008년 6월에 해체했던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복구수리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대회에서 <당 중앙 군사위원회>를 새로운 체제주도세력으로 설정하고 27세 풋내기에게 일약 <대장>의 계급을 주고 <김정일> 다음 제2인자의 자리에 앉혀놓고 그 배가 계속 순탄하게 항해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극렬과 장성택>이 이번에 찬밥을 먹게 된 이유에는 아래와 같은 내력이 있다. <오극렬>이 당중앙위원회 작전부장 재임 시 운영자금 일부를 해외에 예치해 놓은 것을 <김정은>이 39호실에 귀속시키고 관리할 것을 주장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김정일>은 스위스 은행에 예치되어있는 39호실 비자금의 비밀구좌번호를 <김정은>에게 이미 인계했다고 알려져 있다. <장성택>의 경우는 그가 전에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오랜 기간 재직했고 공안기관을 담당하는 행정부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당내에 막강한 세력을 구축해 놓았다고 해서 그가 일정한 수준 이상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했다는 판단이 우세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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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숙명적으로 망해야하며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게 아무리 좋은 옷을 갈아입혀도, <김정은>의 추종자로 권력구조를 개편하여도, 65년 동안 비참한 세월을 보낸 인민들의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북한의 9.28조치는 피 냄새가 나는 작업이었다. 북한의 강경노선은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대북정책을 새로운 형태의 압박으로 격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최근에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김정일>의 퇴진을 위한 조급한 준비 작업이며 <북한의 종말>이 아주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다. 조선 역사에서 태종 <이방원>이 셋째아들 충령 (세종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를 보았는가, 북한에서도 셋째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를 봐야 할 것인가. <김정일>의 퇴진 이후에 분명히 발생할 내부혼란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될 것인가.
국제적 환경에서 배타적인 중국
중국의 경우, 우리가 북한 문제를 말할 때 중국의 문제가 항상 변수로 떠오른다. 북한은 벌서 오래전에 망해야 했고 또 그렇게 되었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중국이 뒤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아직 까지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6.25 전쟁 당시에도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그때 남북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온갖 못된 짓을 자행 했음에도 중국이 감싸고돌았으며 그토록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북한의 명맥을 연장시켜 주었다. 그러나 중국도 이제는 한계점에 도달하였다. 왜냐하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미묘하게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미 언급 했지만 천안함 사건 이후에 미국은 중국을 새로운 전략으로 압박하고 있다. 첫째는 군사적인 압박이요 둘째는 경제적인 압박이다. 현재 중국이 항공모함을 건립 중에 있으나 2012년 목표로 하는데 완성이 되어도 실전배치는 14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중국이 미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군비증강을 시도한다 해도 도저히 미국을 넘볼 수 없는 국력낭비로 끝이 날것이다. 1차적으로 중국은 미국에게 군사적으로 위압을 당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이 서해에서 합동훈련을 하게 될 때 미국의 항모함이 동원되는 것을 그토록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중국의 경제발전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주요국가 경제지표 (2009) (출처-세계은행)
국가 구매력 기준 gdp 일인당 국민소득 군사비용
미국 $14조2,600억 $46,400 (gdp의) 4.06%
일본 $4조1,370억 $32,600 0.8%
한국 $1조3,560억 $28,000 2.7%
북한 $400억 $1,900 7.6%
중국 $8조7,890억 $6,600 4.3%
러시아 $2조1,160억 $15,100 3.9%
둘째로는 경제적인 이유다. 무식한 학자들이 중국의 경제발전에 겁을 먹고 <g2>운운하며 마치 머지않아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대국이 될 것이며 우리나라도 중국에 붙어야 살아남는다고 착각들을 하고 있는데 중국이 그동안 경제성장을 달성한 이유는 미국시장 덕분이다. 수출주도의 중국경제는 거의 모든 자산관리를 $표준으로 해왔기 때문에 미국경제가 흔들리면 중국경제도 동시에 흔들려야 한다.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하여, 특히 세계적인 상호의존도에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이 시대에 공존공영의 원칙을 무시하고 자국의 이익에만 몰두한 중국이 <유안>화의 환율을 국가통제로 고정시켰기 때문에 미중무역불균형이 초래되었고 그 악영향이 전 세계에 미치는 <경제 불균형>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번에 미 하원에서 미국만 계속 손해를 보는 무역관행을 퇴치하기 위하여 <보복관세법>을 통과 시켰다. 미국이 wto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법을 발동한다고 하면 중국의 경제는 <주차장>으로 가야한다. 그뿐만 아니다. 미국은 중국이 이란과 북한에게 핵무기개발을 돕는 경제지원을 했다는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으며 이를 구실로 중국에게 금융압박을 가하게 되면 중국의 경제는 <중환자실>에 들어가야 한다.
중국은 14억 인구 중에 9억7천만이 절대빈곤층이며 55개 소수민족간의 갈등과 엄청난 빈부격차에서 오는 사회적 모순과 국제사회에서 지켜보는 중국의 저돌적인 이기주의에 대한 증오 등 극복해야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동안 돈은 잘 벌었다고 하지만 중국은 아직도 공산주의 국가이며 사회적 불만과 모순을 해결하기에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고 중국이 향후 100년 동안에는 미국을 추월하는 국가가 되기 힘들다는 이론을 제기한 학자들 중에는 영국의 전략가 <제럴드 시갈>, 일본의 평론가 <마스무라 쓰도무>, 미국의 미래학자 <george friedman>, 이대 겸임교수 <이춘근 박사>등이 있다. 그중에 <george friedman>이 저술한 <향후 100년>이란 책에는 구체적인 이유들이 열거되어 있다.
경제성장의 4대 기본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 그리고 기술>이다. 중국은 방대한 토지와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자본은 거의 외부에서 들어온 투자성 자본이며, 기술은 거의 전부 royalty 를 지불하는 외국기술이다. 경제운영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기술인데 중국은 기초과학에 입각한 <원천기술 또는 자체개발 기술>이 없다. 1900년대 전후해서 세계최대 기술선진국은 영국이었고 20세기 중반 까지는 독일이었으며 세계2차 대전 이후에는 미국이다.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과학기술을 100분율로 했을 때 중국의 자체기술은 하나도 없다. 현재 세계경제에서 활용하고 있는 세부첨단기술 364개중에서 미국이 270개, 유럽연합이 60개, 일본이 34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은 단 한건의 세계최고첨단기술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모두 <모방, 응용, 변형, 유사> 기술이다. 5년 후에는 미국이 275개로 증가하고, 유럽연합이 55개로, 일본이 33개로 감소하며, 중국이 의료분야에서 1건을 갖게 된다고 한다.
지금은 값싼 노동력 때문에 중국경제가 고공비행을 하고 있지만 경제성장은 언제나 <포화상태> 또는 성장 <임계선>(critical point)에 도달한다. 그 때가 언제냐, 노동생산성이 저하되기 시작할 때이다. 성장 <임계선>에 도달하면 임금상승의 압박이 일차적으로 나타나고 기술선진국과의 시장경쟁에서 뒤 떨어지기 시작 한다. 그 때에 <수확체감의 법칙>에 따라 <diminishing return>의 현상이 나타나고 이미 전개해 놓은 경제구조는 오히려 국가경제를 자해하는 <white elephant>가 되어버린다. 중국의 경제는 지금 그 길을 가고 있으며 안보 외교 면에서도 국제사회에서 미운 짓만 골라서 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중국의 태도, 최근 <센가구도>에서 일본과의 마찰 등이 그런 것 들이다. 머지않아 중국은 북한을 돌봐야하는 여력을 상실하게 된다. 오는 11월에는 중국근해에서 <센가구도>를 중국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미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한다는데 국제사회에서 중국은 점점 <미운오리새끼>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일들이 왜 발생하느냐, 중국이 인류평화와 공영에 기여하는바가 없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chauvinistic nationalism>에 급급하였고 북한과 같은 <문명파괴세력>을 비호해왔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경우
러시아의 경우는 어떠한가. 러시아는 74년간의 공산주의 중병에서 깨어나 민주화 및 시장경제를 도입하는데 상당한 회복기간이 필요하다. gdp 표준으로는 중국의 경제가 앞서가고 있으나 민주화작업에서는 러시아가 중국보다 앞서가고 있다. 과거 오랜 기간 공산주의 체제에서 굳어진 관행으로 사회구조나 분위기가 경색되어 있지만 최근에 <medvedev> 대통령이 집권하고 부터는 경제발전과 기술선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핵무기의 90%를 부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안보문제에서는 전략적 가치를 인정해야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국가부담이 되어 있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는 그 피해가 심각하다. 그래서 두 나라는 2010. 4. 8.에 2차 <전략무기감축조약>을 체결하고 배치허용 핵탄두를 2,200 에서 1,550기로 각각 감축하고 전달매체를 배치허용 1,600 에서 800기로 각각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북한과의 전통적인 관계로 인하여 남한과의 관계가 소원했으나, 러시아의 지도부가 경제발전을 국가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나서 세계2차전쟁 이후 모든 어려운 조건들을 극복하고 짧은 기간 내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발전에 가장 성공한 <대한민국>을 모델로 삼기로 결심 하였다. 지난 2010-09-9/10 러시아의 고도 <야로슬라블>에서 러시아주도로 개최되는 <세계정책포름>에서 <medvedev> 대통령이 참석한 많은 다른 나라 지도자들을 제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조연설을 시킨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며 양국이 2008년도에 체결한 <전략적협력동반자>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자고 강조한 것은 한-러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의미한다. 2010-09-21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서 <현대 자동차>가 년산 15만대를 목표로 자동차공장을 준공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며 시제품에 <정몽구> 회장을 태우고 <푸틴> 총리가 직접 운전을 했다는 것은 두 나라 관계의 밝은 면을 보여준다. 같은 날 <푸틴> 총리는 <용인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푸틴> 총리는 2012년 대선에서 다시 대통령으로 당선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한다.
한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러시아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단독조사결과를 한국정부에 통보하지 않았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만, 지난 8월에 <토론토>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서 <medvedev> 대통령은 <obama> 대통령 앞에서 분명히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시인을 했다.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러시아의 <자연가스 파이프라인>을 한국 까지 끌어오는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결국 경제적인 이유로 두 나라는 접근하고 있으며 반대로 북한은 점점 러시아의 안목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러시아의 경제 수준은 아직도 낙후하며 wto 에도 가입이 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한-러 관계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다. 이런 것을 우리는 <역사의 자정능력>이라고 한다.
진화하는 역사와 자정능력
우리는 <지구촌>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은 한 마을이다. 서로 평화롭게 잘 살아야한다. 이런 이상과 철학을 추구하는 것을 <cosmopolitanism>(세계주의) 라고 하며 그런 일을 실천적으로 이행하는 조직은 <기독교>가 선봉이고 국가로는 <미국>이 선봉이다. 반면에 인류의 공영과 평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자국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무모한 배타적 입장을 고수 하는 것을 우리는 <chauvinistic nationalism>(배타적 민족주의)라고 하며 중국이 그 대표적인 국가이다. 그리고 자국의 이익도 제대로 챙기지 못 하면서 인류사회에 해를 끼치며 기존질서를 위협하고 문명파괴에 앞장서는 저돌적이고 호전적인 사상을 <jingoism>이라고 하며 현재 북한이 그 대표적인 집단이다.
그러나 역사는 진화하고 <진화론>에서 주장한 대로 <적자생존과 자연도태>의 <자정능력>이 있다. 우리는 지난 2010-3-26 천안함 사건 이후로 역사의 진화작용을 현실적으로 목격하고 있다. 바로 국제환경의 급속한 변화이다. 그 중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사건은 미국의 대중국전략의 변화이며 한-러 관계의 급속한 발전이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 속에서 역사의 진화과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2차 대전 직후에 (1945-1947) 미국은 유럽 국가들의 경제발전을 돕기 위하여 120억불의 원조를 제공 했는데 1947년 6월 당시 국무장관 <george marshall>의 하버드 대학교 연설내용을 수용한 미국정부는 소위 <marshall plan>으로 130억불을 <1947-1951>에 걸쳐 추가적으로 지원 했는데 1948년 현재 미국의 gdp는 2조5,800억불에 불과했다. 그 혜택으로 유럽 국가들은 오늘날 까지 평화롭게 잘 살고 있다.
미국은 또한 세계2차전쟁 이후에 <marshall plan>과 유사한 경제 원조를 중남미 국가들 (latin america)에 제공하려고 했으나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티토>와 북한의 <김일성>과 쿠바의 <카스트로>가 주동한 제3세계 (3rd bloc) 형성에 중남미 국가들이 가담하고 소련의 <크레무린> 지령에 따라 반미노선을 지향하게 되자 미국은 그 경제원조 계획을 전면 취소했고 그렇다고 그들은 소련으로부터 크게 혜택을 받은 일도 없다. 그때이후로 미국은 국가대국가의 정상적인 경제교류는 지속하고 있지만 <marshall plan>과 같은 경제 원조를 중남미국가들에게 제공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계속 경제후진국의 탈을 벗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다.
1973-1974년 유류파동 때 세계 최대유류소비국가인 미국의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고 미국정부는 중동에서 기름을 수입하는 양을 줄이고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양을 대폭 증가하기로 결정했다. 이 기쁜 소식을 들은 <멕시코>는 정유공장을 대대적으로 건설 하였고 대미수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후에 <carter> 대통령이 <멕시코>를 방문했는데 당시 <멕시코> 대통령은 사회주의 성향이었고 국가수반에 대한 의전상의 예의도 갖추지 않았고 <carter>를 심하게 홀대했다. 귀국 후에 <carter>는 국무회의에서 <멕시코>기름 수입계획을 완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그 이유로 <멕시코>의 경제가 난관에 봉착했고 불가피하게 <imf> 차관을 도입했고 그 부채를 갚는데 12년이 걸렸으며 그 후유증은 아직도 <멕시코>를 괴롭히고 있다.
필립핀의 <luzon> 섬에 주둔했던 미국의 <clark> 공군기지 (1903-1991)는 필립핀의 국가안보와 경제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필립핀의 반미주의자들이 아우성을 치며 미군 공군기지를 추방하고 나서 필립핀의 정치경제는 3류국가로 전락했고 다시 와 달라고 애원을 해도 미국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은 6.25 전후 20년간 (1952-1972) 미국으로부터 37억2,560만 불의 무상원조와 34억6,400만 불의 차관과 200억불이상의 간접지원 (출처-한국무역연감)을 받았고 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부흥이전의 대한민국을 지탱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20세기 후반부터 특히 21세기에서는 국가간의 상호의존이 국가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와 같은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중국은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국가로 변화해야하며 북한은 하루속히 망해야한다. 그런데 북한은 스스로 망할 짓을 서두르고 있다. <적자생존과 자연도래>의 <역사의 자정능력>을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pswoodson@yah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