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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화가상이 있다면 김원준 화백을 추천

17년간 대문을 걸어놓고 그림에만 몰두, 득도경지에 이르다!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10/12/09 [23:28]
소호(小昊) 김원준 화백(61세)의 창작정신은 남달랐다. 40대 때 화가로서 명성을 날렸던 김원준 화백이 갑자기 화단에서 사라졌다(?). 시골로 떠나 칩거하며, 그림만 그리는 생활로 자신의 몸을 은둔 시켰기 때문이다.
 
▲ 김원준  화백   ©브레이크뉴스
1993년, 그는 경기도 가평군 상면 수목원로 262-10(옛 주소는 상면 행현리 546-1번지. 미술관 전화 010-5558-1312)으로 이사를 했다. 대지 1백 50평에 60여평의 한옥이 있는 집이었다. 한옥은 말 그대로  폐가였다. 그는 대문을 안에서 잠가 걸고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했다. 그가 시골 마을의 이웃에게 얼굴을 내민 것은 이사 온 지 17년만이었다고 한다.
 
“그간 마을 이장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그 이유는 문을 잠가 걸고, 두문불출하며 그림만을 그렸으니까요. 지난 5월에 '소호 아트 미술관'이라는 간판을 걸고 제 집의  대문을 개방했습니다. 그때서야 마을 이장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조차도 제가 화가인 줄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김 화백은 지금까지 2,0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칩거하는 기간에 1,000여점의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 기간에는 그림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가난과 청빈이 그의 벗이었다. 
 
▲ 김원준  화 ©브레이크뉴스
▲ 김원준   화   ©브레이크뉴스
김 화백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우리나라의 전통색인 오방색을 자신의 그림에 도입했다. 물감도 스스로 개발, 사용해왔다. 30년이 지난 작품의 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아 금방 그린 것처럼 선명하다. 김 화백은 자신의 그름을 '세계 최초의 일필추상'이라고 소개한다. 한 번의 붓놀림으로 작품을 큰 구도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 김원준 화     ©브레이크뉴스
▲ 김원준   화   ©브레이크뉴스
▲ 김원준   화   ©브레이크뉴스
무문관에서 수년간씩 수행했던 스님들이 있다. 무문관이란 출입하는 문(門)이 없는 수행처를 뜻한다. 일체 방 밖을 나오지 않고 방 안에서만 수행한다. 무문관에서 수행하는 수도승들은 자신이 도를 깨쳤다고 생각되면 그때서야 문을 열고 나온다. 김 화백은 어쩜 무문관에서 수행해온 수도승을 닮은 화가이다. 17년간이나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칩거상태로 그림을 그렸으니까. 그래서 그의 그름은 득도의 경지에 다달아 특출나다. 고통어린 창작 기간을 거쳐 화사하게 핀 환희의 기쁨이 화폭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한 작품 한 작품이 이 세상에는 없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김 화백은 지난 5월 28일 '소호 아트 미술관(www.sohoartgallery.net)을 오픈했다. 자신이 칩거하면 그림 작업을 해온 한옥을 1년여 간 고쳐 그곳에 미술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미술관에 30여전에 그렸던 작품 50여점을 걸었다. 60이 넘은 나이에서야, 검은 머리가 흰머리로 변한 그때서야, 그간 그가 창작의 고통 기간을 거쳐 잉태한 그림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화단이나 그림 애호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미술관은 한옥의 대들보와 서까레가 그대로 드러나는 실내이다. 100여년이 훨씬 넘는 연륜의 오래된 세월의 때가 묻은  대청마루도 있다. 고가구들도 설치되어 있다. 옛 스런 내부 분위기와 김 화백의 그림들이 어울려 있다. 한마디로 아름답다. 세계에 하나뿐인 미술관인 셈이다.
 
김 화백의 작품만을 전시하는 소호 아트 미술관은 가평의 '아침 고요 수목원' 근처에 있어 이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방명록을 보니 “우연히 들렸다가 좋은 작품 많이 보고, 배우고 갑니다” “멋지고 개성 있는 그림 잘 보고 갑니다”라는 글들이 쓰여져 있다. 방문객들이 그림 감상을 담은 메모들은 문장이 수려하진 않지만, 그 메모에 순수함이 담겨 있다. 방문자 모두가 순수한 평론가들인 셈이다. 
 
▲ 김원준 미술관    ©브레이크뉴스
▲ 김원준  미술관   ©브레이크뉴스
김 화백의 그림은 한국 화단의 수준을 세계화-국제화 하는데 기여했다고 평할 수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은 그를 두고 한 말일 수 있다. 김 화백은 가평에 숨어 살면서 세계 그 어디에도 그 어떤 화가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sk 최태원 회장이 그의 그림에 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미술관 외부 전경     ©브레이크뉴스
12월 9일 오후, 김 화백의 미술관이 있는 시골 마을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마을 전체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숨 쉬고 있는 '소호 아트 미술관'. 그 미술관에 걸려 있는 김 화백의 그림을 모두 감상하고 나와 쳐다본 하늘은 더욱 더 아름다워 보였다.
 
“노벨 화가상이 있다면, 한국인 화가로서 득도경지에 이른, 소호 김원준 화백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moonilsu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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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바지 2010/12/18 [10:28] 수정 | 삭제
  • 역시 문일석 도인은 그러한 경지에 이미 올라있구먼 !

    소호 김원준 화백의 그림은 "일필휘지" 대신 "일필추상" 즉 글과 그림이

    같은 정신으로 완성도를 높혔다는 뜻일것이다.

    그림도 도가 트이면 정점에선 고수들의 그림이 같은 느낌이 오는걸까 ?

    어떤그림은 분명 우리색에 우리느낌 이면서도 외국의 명화를 보는듯했다.

    소호 선생님도 훌륭하지만 소호선생님의 그림세계를 알아보는 문일석 도인의

    시야 또한 넓고 깊은 오묘한 경지에 와있구려 허허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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