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일 국방부 차관이 지난 80년 5.18 당시 20사단 62연대 3대대장(중령)으로 광주에 투입돼 신군부의 작전지시에 따라 송정비행장 시위 진압, 광주시청 일대 진압 등 주요 `충정작전'에 적극 참여했으며, 교도소 주둔시 구금자에 대한 극심한 가혹행위가 저질러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유 국방차관이 “광주 외곽지역 봉쇄 임무만 수행했다”는 해명과는 달리 정면 배치된 것으로 유 차관의 행적은 당시 군이 자체 작성한 작전일지와 교도소 구금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24일자 전남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80년 당시 작성된 `20사단 충정작전 보고'와 `전교사 전투상보'에 의하면 유 차관이 지휘한 62연대 3대대는 5월 21일 오전 8시58분 광주에 배치된 후 22일 오전 7시22분 송정리 일대에서 벌어진 버스시위 현장에 처음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3대대는 비행장 입구에서 시위 저지에 나섰지만, 총격전은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시위 진압 후 3대대는 이날 오후 4시50분께 부터 송정리 전역에서 위력시위를 벌이며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주었고, 이때 인근 화정동 광주통합병원 일대에 배치된 2대대는 주택가 등에 총기를 난사하는 `통합병원 확보 진입작전'을 전개 중이었다.
유 차관의 3대대는 23일에는 신군부 지휘부로부터 `봉쇄선 작전 지침'을 시달 받고 `반항자 사살, 폭도 탈출 적극 방지'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유 차관의 3대대를 비롯, 62연대 전체가 교도소 경비와 외곽 차단을 담당했던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광주교도소 내에서는 구금자들에게 진압봉 타격, 원산폭격 기합 등 가혹행위가 극심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김재언 광주교도소 생존자동지회 회장(당시 37세.전기공)은 “24일부터 일반 보병부대가 교도소에 들어온다고 해 구금자들이 이제 살았구나 생각했지만, 더욱 심한 매질이 진행됐다”며 “전남 담양으로 나가려던 사람들이 잡혀와 갈비뼈와 팔이 부러질 정도로 두들겨 맞아 병원에 실려갔다”고 말했다.
62연대는 5월27일 새벽 교도소에서 나와 도청진압작전에 참가해 계림초등학교, 광주고등학교, 광주시청 등지 점령임무를 부여받고 작전에 나섰다.
20사단은 당시 `62연대 전투결과 보고를 통해 사살 3, 포로 20, 방독면 1, 칼빈 8, 무전기 피-77 1' 등의 전과를 올렸다고 보고했다.
유 국방차관은 최근 시민단체로 부터 사퇴압력을 받자 "당시 시민군과의 충돌 등 직접적인 진압작전은 전혀 없었다"며 "5.18 당시 20사단 62연대 3대대장으로서 광주와 외곽지역을 연결하는 극락교 및 선창다리 두 곳을 봉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국방부도 "62연대 전체가 교도소 경계임무를 수행했지만 임무 수행과정에서 시민군과 충돌하거나 진압작전을 직접 수행한 것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5.18 기념재단 등 4개 단체들은 최근 △대대장으로서 과거행적 △광주진압 공로로 있었을 인사특혜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군 관련자료 공개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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