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대전 패전국인 일본정부가 지난46-47년에 독도와 울릉도를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각종 홍보물을 제작해 미국을 비롯한 전승 연합국들을 상대로 집요한 로비를 벌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일본정부가 이미 1946년부터 독도를 비롯한 인근 다른 나라 도서지역에 대한 영토 야욕을 드러냈으며 해방직후 한국의 혼란한 정국을 틈타 울릉도까지 자국 영토로 편입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본의 이중성을 그대로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사실은 정병준(40)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교수가 지난달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한 자료를 발굴해 27일 공개함으로써 밝혀졌다.
이자료에는 일본 외무성은 패전 이듬해인 1946년에 벌써 일본이 확보해야 할도서와 소도ㆍ암초에 대한 각종 팸플릿을 ‘일본본토에 인접한 소도서(minor islands adjacent japan proper)’라는 제목으로 발간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배포했다는 것 이다.
이 팸플릿은 제1부 ‘쿠릴(千島)열도, 하보마이스, 시코탄’(the kurile islands, the habomais, and shikotan· 1946년 11월 간행) 제2부 ‘류큐와 기타 난세이도서’(ryukyu and other nansei islands· 1947년 3월 간행) 제3부 ‘보닌제도, 볼캐노제도’(the bonin island group, the volcano island group· 1947년 3월 간행) 제4부 ‘태평양 소도서, 일본해 소도서’(minor islands in the pacific, minor islands in the japan sea· 1947년 6월 간행)로 구성돼 있다.
독도는 물론 울릉도까지 자국영토가 돼야 한다는 내용은 이 팜플렛들중 제4부에 포함돼 있다.
이중 흔히 서양에는 ‘리앙쿠르암’이라고 알려진 독도는 물론이고 ‘다줄렛섬’(dagelet island)으로 알려진 울릉도에 대해서는 허위정보까지 곁들여 일본영토임을 주장하는 등의 가증스러움을 보였다.
울릉도에 대해 팸플릿은 『조선왕조는 1400년대 이래로 오랫동안 이 섬에 대한 공도(空島) 정책을 고집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이 섬이 한국정부에 의해 실질적으로 포기되자, 일본인 상당수가 이 섬에 무상출입을 계속했으며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한국 원정은 이 지역에서 일본인 활동을 급증케 했고, 그후 약 1세기 동안 이 섬은 모든 면에서 일본 어업기지로 남아 있었다』는 억지주장 까지 곁들여 적어놓았다.
나아가 울릉도의 산업이라는 제하에는 『주민 대부분은 기껏해야 수십 년 전에 입도한 사람들』이라는 말도 덧붙혀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울릉군민을 비롯한 경북도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같은 일본의 침탈야욕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향후 정부의 독도문제와 관련한 대일본 대응책을 봐가면서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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