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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 무한경쟁, 젊은 카이스트생들의 슬픔

건강한 삶에의 계획표를 스스로 점검해 주기를 당부

오정인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1/04/08 [13:56]
가치의 충돌일까? 제도적 족쇄로 느꼈던 것일까? 서릿발같이 살벌한 무한경쟁에서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영재들은, 천재들은 어이없이 사라져 간다. 벌써 4명의 죽음, 정말 아까운 청년들의 잇단 자살이 오늘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프니까 청춘임은 누구나 다 겪는 삶의 통과의례다. 그런데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죽음은 그렇지 않아도 잔혹한 4월에 우리의 마음을 더없이 시리게 만든다.
 
▲ 오정인     ©브레이크뉴스
베르테르 신드롬으로 자살은 이미 연기처럼 스며든 학습효과가 되어가는 것인가? 안 된다.이제 이들의 어두운 그늘을 베껴내야 한다. 그들이 섣부른? 체념으로 나약하게 생을 던져버린다면 그들을 일단은 구해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더 건강한 방법으로 그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그리고 그런 나쁜 학습효과에 물드는 나약함은 그 후에 나무라야 할 필요가 있다. 정신과 전문의는 우리 사회의 철학의 부재를 저 깊은 밑비닥 부끄러움의 기저에서 방금 적출해낸 벌건 장기처럼 끄집어낸다.
 
인생의 성공이 무엇인가? 그러나 그런 성공을 향한 무서운 학업 또한 지구촌의 무한경쟁에서 분명 필요하지 않은가? 가치의 충돌은 어느 시대나 있다. 그런 것의 건강한 조화가 인류를 또 문명적으로 문화적으로 진화 발전시켜 나온 것도 사실이다. 징벌적 등록금제? 총장이 바뀌고 제도가 바뀌었다고 총장에게 모든 책임을 다 물을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다. 어차피 단순한 흑백논리란 현실적으로 무모한 시대다. 그러나 철학의 부재라는 지적은 특히 카이스트와 같은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곳에서는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정확한 진단이고 비판일수 있다.
 
한 명이었을 때와는 다르다 이미 같은 환경의 상황에서 4명이라면 이는 베르테르 신드롬으로 볼 수 있다. 포기와 죽음이라는 부정적 학습효과가 이미 그들에게 스며들어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주검을 심리적 부검을 해 본다면, 결국 현실 환경의 벽에 부딪히는 자신의 존재의미와, 사회적 여건과, 그런 것에 쫓기듯 내달려야 하는 자신의 혹독한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마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앞으로만 내달려야 하는 피나는 노력을 순간적으로 그대로 탁 - 놓아버린 , 결국 그 자신에 대한 모든 가치를 자의든 타의든 완전 상실해 버린 상태에 다다랐을 공통점이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진단이다. 그리고 그들은 누구보다 자존심 강하고도 우수한 두뇌의 스스로 몇 배 더 아픈 청춘이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대들은 선택받은 dna로 이 시대의 극소수 인생들의 대열에 아주 일찍 진입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만큼 더 힘들고 치열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그들의 명복을 빈다.
 
남은 학생들에게는 좀 더 건강한 삶에의 계획표를 스스로 점검해 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세상에서 빛나고 있는 그 누구의 청춘도 인생도 다 아팠고, 치열했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지독한 외로움을 이겨낸 이후의 더욱 신선한 바람과 찬란한 햇살이라는 것을 우리의 아픈 청춘들은 알아 둘 필요도 있을 것 같다. inioh@naver.com
 
*필자/소설가, on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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