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31일 양일간 익산에 있는 원불교 중앙총부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평소 존경하고 따르던 성타원(聖陀圓) 이성신(李聖信) 종사님이 91세를 일기로 거연히 열반상(涅槃相)을 나투셨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 소태산(少太山) 부처님의 권유로 14세에 출가를 단행 하셨습니다.
평생 원불교 정녀교무(貞女敎務)로 가는 곳 마다 교화에 꽃을 피우셨습니다. 오늘날 원불교를 반석위에 올려놓으신 장본인 중의 한 분으로 추앙받을 만한 대단한 도인이십니다. 그런 도인의 삶을 편편(片片)이나마 더듬어 보는 것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데 큰 귀감(龜鑑)이 될 것 같아 전합니다.
첫째, 이별여행(離別旅行)입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성타원(聖陀圓) 종사님에 오래간만에 우리 여의도교당에 오셨습니다. 평소 인연이 깊거나 미진한 일이 남아있는 곳, 아니면 충분히 챙기지 못하셨던 교당을 두루 방문하시는 중이라는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열반 전에 미리 유루(有漏) 없이 인연을 갈무리하시는 이별여행 얼마나 멋진 여행인지요!
둘째, 좌우명(座右銘)입니다.
원불교 총부 중앙수도원 성타원 종사님 방에 걸려있던『좌우명(座右銘)이 생각납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이승과의 이별을 착착 준비하고 계신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갈 길이 바쁘구나 노자는 준비되었는지. 법계에 맡겼다가 돌아올 때 찾으리.」
셋째, 활인도사(活人道士)이셨습니다.
성타원 종사님과 저는 아마도 전생에서부터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 봅니다. 종사님께서는 오래전, 그러니까 제가 입교 10년째를 맞아 말 못할 신앙의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섰을 때 저를 위험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마치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으로 새파란 원망의 불길을 토해내는 필자의 불같은 성정을 다독거려 주신 것이죠.
“네가 이처럼 어려움에 처한 것은 진리께서 너를 크게 쓰시려는 시험이니, 이 진리의 시험을 잘 통과해야 한다.”고 감싸 안아 주셨습니다. 이렇게 성타원님은 어려움에 처한 인연들을 하나같이 거두어 새 삶을 살아가게 하는 용기와 희망을 주신 어른이셨습니다.
넷째, 일심법(一心法)의 전수(傳授)입니다.
또 그 무렵 성타원 종사님께서는 저를 데리고 영산(靈山) 성지 ‘삼밭재 마당바위’에 올라 일심을 이루는 법을 특별히 전수해 주신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기나긴 경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일이관지(一以貫之) 할 때까지 큰 소리로 외우는 수행법입니다. 이 일심법이야 말로 진리와 하나 되게 만드는 최적의 수행법일 것입니다.
다섯째, 유언(遺言)을 내려주셨습니다.
“덕산! 내가 죽으면 장례식을 지내지 말라고 해! 3일 출상도 하지 마. 숨을 거두면 즉시 시신을 원광대학교 의과대학에 실험용으로 기증하고, 천도재도 지낼 필요 없어. 다만 영모전(永慕殿)에서 7주 동안 예감이 천도법문만 읽어주면 좋겠어. 천도법문이 얼마나 굉장한 법문인 줄 알아? 요즘 법강 항마 위 도인이 되었다고 천도법문도 읽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크게 잘못된 일이야. 나는 그걸 유감스럽게 생각해, 이 몸을 바꾸는 일이 중대한 일이야.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워. 그러니 꼭 천도범문을 읽어주어야 해.”
“수도인은 올 때 갈 때 흔적 없이 거래해야 돼. 예를 들어 내가 정읍교당 초대교무인데, 지금이 27대 교무이니, 내가 죽으면 26명의 교무와 정읍에서 인연 맺은 많은 교도님들이 다 와야 되지 않아? 당대는 몰라도…, 그뿐이 아니야. 내가 교단에 60여년을 봉직한 원로교무라고 교단전체장(敎團全體葬)을 치를 거야, 그런데 내 장례식을 위해 바쁘기 짝이 없는 전국의 교무들과 인연 있는 교도들이 모두 모인다는 것은 보통의 낭비가 아니야.”
“수도 인들의 죽음이 세속화되면 교단에 엄청난 폐단으로 나타나. 조선 500년의 유가시기(儒家時期)의 관혼상제가 결국 나라의 망조로 이어졌어. 새로운 종교인 원불교에서 참으로 경계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 나의 이러한 유언을 어쩌면 교단이나 형제들이 관행이라며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는지 몰라. 그때를 대비해서 출가 쪽에서는 월간 <원광>에게, 재가교도에게는 덕산과 연산 김원도 회장에게 이 뜻을 전하는 것이니 후일 증인이 되어 내 뜻을 관철시켜 주면 좋겠어…”
이 얼마나 장엄하며 신선한 선언입니까? 종사님의 이 유언대로 열반 즉시 시신을 원광대 의과대학에 기증되었습니다. 장례식도 치르지 않았습니다. 공식으로 부고(訃告)도 내지 않았습니다. 3일출상도 안하고 2일 만에 원불교 중앙총부 반백년 기념관에서 간소한 영결식(永訣式)만 거행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도인의 죽음은 이런 것입니다. 집착을 여의고 해탈을 얻는 것입니다. 불가(佛家) 최고의 이상인 열반에 드는 것이죠. 이것이 구경열반(究竟涅槃)의 경지가 아닐 런지요!
성타원 종사님께서 열반송(涅槃頌)을 남기셨습니다. 성타원 종사님께서『이별여행』을 시작하시면서 남겨주신 친필 열반송입니다. 이를 낭송하는 것으로 부족하나마 종사님을 향한 추모(追慕)의 정을 올립니다.
《귀향사근(歸鄕辭謹)》
「군중성신문하지(群衆聖信問何之) 위거청산채채지(謂去靑山採采遲)
동방일출오불환(東方日出吾不還) 갱귀본처행책무(更歸本處行責務)
성신이가 어디 갔느냐 군중들이 묻거든/ 청산에 들어가 나물 뜯는데 좀 늦는다고 이르고/ 동녘에 해 다시 떠올라도 나 돌아오지 않거든/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가 책임과 의무를 다하리라.」duksan725@hanmail.net
*필자/김덕권. 시인. 원불교문인협회 회장.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