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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뒷산 차가운 흙속에 누어있는 어머니

<시>주린배 띠로 조르며 소같이 일 하시던…사무친 사모곡 (思母曲)

이명산 시인 | 기사입력 2013/04/15 [07:19]
불러보고 그리고 또 불러 봐도 정다운 이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격스러운 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진실 된 단어, 사랑과 조건 없는 희생의 대명사, 어머니. 그 순수한 가슴의 땀 냄새를 맡으며 옷고름 풀어 헤친 포근한 품에 안겨 내가 젖을 빨던 그 여인, 어려서나 젊었을 때나, 늙은 후에라도, 그리고 내가 죽어 흙이 된 후에라도 영원히 사모하는 그분, 나의 아머니! 찢어지게 가난한 농가에 시집와서, 젊어서 과부가 되어 사남매를 키우고, 한 번도 영화를 누리지 못했고, 자식들을 위하여 눈물만 흘리시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1968년 7월 24일, 74년간의 고난과 수고와 희생을 끝내고 가셨다. 나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서 울지를 못했다.
 
▲ 이명산     ©브레이크뉴스
이를 악물고 울지 않았다. 한이 맺힌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나온다는 것은 얄팍한 거짓말이다. 우리의 한이 극에 달했을 때 울을 수 있다면 그것은 사치다. 그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집 부엌에서 함지박에 꽁보리밥과 콩밭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듬뿍 넣고 비벼서 나와 둘이서 할머니 몰래 먹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나의 코를 풀고 앞치마로 닦아주시던 어머니의 손 모습이 지금도 내 눈 앞에 어른거린다. 나는 그 후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시를 썼고 1994년에 출판한 첫 시집에 그 시를 실었는데 전국 각지에서 위로의 전화가 왔고, KBS 방송국에서는 그해 어버이날에 주제 시(主題 詩)로 방송되어 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축축하게 적셔 주었다.
 
나의 어머니, 지금은 아버지 곁으로 가셔서 고향뒷산 차가운 흙속에 누어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내가 쓴 이 시(아래)를 읽고, 그때 울지 못했던 눈물을 이제 흐느껴 운다.  
 
어머니

소나무 껍질같이 거친 손으로
보리방아 찧어
꽁보리밥 애호박 잎 된장
저녁상 물리고
석유등잔 툇마루에
새 다리보다 가는 무릎 치켜세우고
밤늦도록 모시길쌈 하시던
어머니 
 
장날 모시판돈
삼베치마 속주머니에
꼬깃꼬깃 숨겼다가
큰아들 술빚 갚고
밀린 월사금 달라고 조르던 나를 껴안고
땀 냄새 찌든 홑이불 속에서
소리 없이 우시던
어머니

한 많은 홀어미의 쓰라린 씨앗
이마 주름살, 이랑 이랑에 뿌리고
자식들 잘되라고
엄동 추운 밤
얼음물에 목욕재계하고
주린 배를 띠로 조르며
소같이 일만 하시던
어머니

가난 끝내 등에 지고 그가 세상 떠나던 날
동네 과부들이 슬피 울고
큰아들 큰며느리 시집간 딸들이 슬피 울 때
나는 울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울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나를
불효자식이라고
수군수군 하였다. pswoodson@yahoo.com
 
*필자/시인. 북한 전문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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