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는 한국의 국립묘지와 같다. 일본은 화장문화여서 봉안만 설치한 봉안당이 있는 곳이 사찰이며 신사다. 야스쿠니 신사는 전쟁으로 말미암은 영령을 모시는 곳으로 2012년 현재 246만 6천의 봉안을 모시고 있다.
1869년 창건된 이후 국가를 위한 영령의 의식을 치르고 있다. 특히 1947년부터 매년 7월 13일부터 16일은 미다마 마츠리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죽은 영혼이 이날 참석한다고 하여 많은 등을 켠다. 등은 기업과 개인의 보시 금으로 이루어지며 보통 4만에서 5만의 등을 밝힌다.
전쟁에 나가는 사람에게 육체는 사라져도 영혼은 야스쿠니에 돌아온다고 굳게 믿게한 의식을 바탕에 깔고 일본인은 죽어도 영광스럽게 죽었던 것이다. 사실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어린 학생들에게 죽음이란 필사가 아니었음에도 전쟁에서 죽었다. 그 사실을 믿거나 말거나 일본인 전체는 죽은 자가 매년 7월 13일부터 16일에 돌아와 자신의 국가와 가족을 본다는 의미 있는 날이다.
일본의 마츠리는 여러 의미가 있다. 특히 미다마 마츠리는 국가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행사임에도 도쿄의 오봉과 겹쳐 유카타를 걸치고 아무 생각 없이 야스쿠니 신사에 놀러 나온 정신 나간 젊은 아베크와 죽은 자들의 가족과 상반된 날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마냥 즐겁지 않은 야스쿠니신사의 미다마 마츠리에 흥청망청 노래 부르고 고성방가, 술을 마시면서 즐기는 젊은 쌍쌍의 저들은 어떤 영혼을 마음에 모시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
인간은 누구나가 죽는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산자는 죽음을 맞이한다. 과거 일본인에게 가장 영광스런 죽음이 무엇일까? 생각하면 역시 전쟁에서 국가를 위하여 장렬하게 죽으면서 야스쿠니에 돌아온다 믿었던 그 460만의 순수한 혼령들이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전쟁 때문인 많은 희생자를 내고 목숨을 바친 까닭에 한국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죽어야 하는가?
쉽게 가볍게 자살하려는 자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의의가 있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는가에 반대의 대답이 될 수도 있다. 요즘은 쉽고 간단하게 때로 이기적으로 자기 한 몸 지키기 힘들다고 부모를 두고, 부인, 남편을 두고, 자녀를 두고 온갖 핑계로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 현생의 인연을 가혹하고 끊고 가는 모질고 매정한 이기적인 자들과 달리 비교되는 숭고한 죽음이다.
목숨을 경시하고 쉽게 죽은 자들과 죽으려는 자들에게 오히려 왜 죽어야 하는지 또는 사는 동안의 당위도 올바르게 가르치는 좋은 죽음을 본보기다. 우리는 지금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죽는다. 훗날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사라져간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마음도 함께했으면 한다.
일본의 미다마 마츠리의 뜻을 제대로 아는 젊은 유카타 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흘 내내 불을 밝히면서 죽은 영혼을 맞이하는 야스쿠니 신사의 밤은 산자가 느낄 수 없는 비애와 슬픔과 할 말 다 못한 억울한 영혼들의 눈물과 한숨소리를 가슴으로 느낀다. 그것이 국가를 위한 일이었다며.
julietcounsel@hanmail.net*필자/줄리. 본지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