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전보위부 (약칭 보위부)는 중앙당을 제외한 모든 당 조직과 행정기관과 기업체 사회단체에 공개 비공개 조직망을 두고 인민의 사상감시와 불평불만자와 반체제 분자들을 색출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해외에 나가있는 모든 공관에는 반드시 보위부 성원 한사람이 배치되어 있고, 심지어 어선 상선 화물선에도 보위부 성원이 동승한다. 평양에 있는 외국 공관에 배치된 경비원들도, 외국인들이 투숙하는 호텔의 여자 종업원들도 다 보위부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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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12개 정치범 수용소 관리도 보위부가 담당한다. 중앙당에 속한 모든 조직과 인원들에 대한 사상감시는 특별히 철저하다. 이를 위해 <창광분주소> 라는 가명기관을 두고 김정일이 직접 지휘하였다. 보위사령부는 최고 상부에 <국방위원회>로부터 최하 말단에는 인민군 중대에 이르기까지 군 내부의 사상 감시를 담당하고 있고, 필요하면 민간인들에게까지 손을 뻗쳐 무시무시한 인민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공작 기관으로서는 초창기에 인민군 내에 <정찰국>이 있었고 당내에 <연락부>가 있었으나 점진적으로 대남 적화통일전략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분야별 방대한 조직으로 확장되었다. 어느 것이 우리에게 더 위협적이냐를 분별하기 힘들고 좌우간 대한민국 정부나 국민들은 이들의 활동과, 수법과, 목적에 대해서는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러면 2009년 2월 정찰총국 창설 이후에 북한의 대남공작기구가 어떻게 변화 하였으며 그 기능이 어떻게 강화 되었는지 검토해 보겠다.
가. 정찰총국 창설 이후의 조직개편
국방위원회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무력부 (내각소속이 아니고 국방위원회에 속함)
총참모부
총정치국
후방총국
정찰총국 (신설)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통전부)
내각 (정무원)
225국 (대외교류국)
나. 조직별 기능 (정찰총국, 통일전선부, 225국)
(1) 정찰총국 - (총 병력은 약 10,000명으로 추산된다.)
제1국 (작전국) - 과거 노동당 산하의 작전부 -
병력은 약 5,000명. 사상이 투철하고 신체 강인한 고졸 학생 중에서 선발. 작전국의 임무는 북한 내에 있는 모든 대남 공작기관 요원들과 공작원들을 훈련하는 학교, 즉 가명 <김정일 政治軍事大學>을 운영하며 여러 가지 단기 특별코스가 있으나 정규과정은 3년 내지 6년의 코스가 있다. KAL-858기 폭파임무에 투입되었던 김현희도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 작전국은 또한 대남 침투 공작원들을 위한 작전지원과 기술지원을 제공한다. 공작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기재, 통신장비, 무기, 고성능폭약, 시한폭탄, 암호조직, 쾌속정, 어선 화물선으로 위장한 공작선 제작, 잠수함, 독약, 독침, 야음 쌍안경 등을 해외에서 구입하거나 자체 연구개발하고 제작을 한다. 아웅산 폭파에서 사용한 폭약과 원격장치, 김현희가 사용한 액체 폭약과 라디오 시한폭탄, 강릉에 나타났던 잠수함, 모두 과거 작전부에서 연구 개발한 것들이다. 동해안에 나타났던 공작선 잠수함이 어쩌다 한번 나타난 것처럼 생각하는데, 과거 수십 년 동안 남한을 수시로 들락날락 했으며 북한은 대남공작을 위해서 그런 잠수함 수십 척을 보유하고 있다. 작전국은 그 자체 요원이나 공작원을 남한에 침투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잠수함이나 공작선으로 침투하는 <대외연락부 - 225국으로 개편> 공작원들을 호송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예를 들면 강릉에 나타났던 잠수함의 젊은 <전투원>들은 작전부 소속이었고 그들 자신은 공작원이 아니다. 그들은 공작원을 호송하는 전투임무만 받고 공작내용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과거에 작전부를 총 지휘한 사령관은 사성장군 오극렬 (吳極烈) 이었으며 작전부 대원들은 군관 계급을 받는다. 만일 작전에 실패하면 이들은 자기들이 호송하는 <연락부 - 지금은 225국> 소속 공작원들의 신분을 은폐하기 위하여 군인으로 행세하며, 남한에서 체포되거나 탈출이 불가능할 때에는 무조건 자결 하도록 되어있다.
작전국은 현재 남한에 공작원들을 침투시키기 위하여 사리원 연락소, 개성연락소, 평강연락소 등 육상침투 대기소를 운영하며, 동해안에 원산과 통천, 서해안에 남포 몽금포 해주 <해상연락소>를 운영하며 호송작전 임무가 떨어지면 일단 영해를 벗어나 공해로 들어갔다가 남한 해안에 경비가 허술한 곳에 접근하여 공작원을 내려놓거나 싣고 돌아간다. 상륙지점은 멀리는 제주도까지 남한에서 활동 중인 공작원들이 사전 답사해서 결정하고 북에 보고한 장소가 된다. 이들이 사용하는 공작선은 잠수함 아니면 어선이나 화물선으로 위장되어 있기 때문에 표면상으로는 알 수가 없으나 반듯이 갑판 밑에는 무반동포나 기관총 같은 자동화기로 중무장 되어있다. 작전국의 임무 중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414 연락소>의 운영이다. <414 연락소>는 남한에서 활동 중인 공작망과의 모든 무선통신을 담당하며, 공작지령을 보내고 공작보고를 받는다. <414 연락소>는 또한 남한의 무선 통신을 감청 하고 암호를 해독한다. 심지어 경찰이나 보안기관이 대간첩작전 중 교신하는 내용까지도 다 포착한다는 것이다. <414 연락소>는 전국 50여 곳에 송수신 연락소를 운영하며 지원본부인 <314 연락소>에서는 공작용 무기, 위조 신분증, 통신장비, 위조화폐를 제작하고 제공한다. 작전국은 또한 평양에 <915 병원>을 자체로 운영한다. 그리고 작전국은 자체로 외화벌이를 위하여 해외에 무기를 수출하는 <청송 연합회사>를 운영한다.
제2국 (정찰국) - 일명 586 군부대.
병력 약 4,500명.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산하에서 이탈하여 정찰총국에 편입 되었다. 원래 임무는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하는 군사정보 수집과 분석이지만 지금은 그 기능에 추가해서 북한이 무력에 의한 한반도 적화통일을 시도할 경우 비정규군 투입과 그 전략과 작전을 지휘하게 될 중요한 기관이다. 남한 내에서의 정찰활동은 전후방에서 <이석기> 식으로 게릴라전투 공격목표가 되는 급소, 즉 유류탱크, 도시가스 시설, 배전 시설, 교량, 지하철, 통신 시설, 핵발전소, 전략 산업시설, 비행장, 항만 시설, 대형 건물 등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정찰하고 산악지대 침투로 개척을 위한 답사를 한다. 이 작전을 위해 현재 <전방지역, 동해안 지역, 서해안 지역> 정찰 파견 기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잠수함을 이용하는 <제22전대>(호송 잠수함 부대)를 운영한다. <22전대>는 현재 상어급 잠수함 (300t) 30 여척과 유고급 잠수함 (80t) 약 45 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신형 잠수함을 계속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197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전방사령부였던 1, 2, 5 집단군 산하에 <徒步偵察所>를 두고 무장 공작조를 남한 전방에 침투시켜 정보 수집과 기습 작전을 일삼던 일을 우리가 기억하는바 그것이 다 정찰국에서 하는 일 들이었다. 현재는 정찰국 직속 4개 저격여단이 있으며 전방 5개 군단에 각 500-600명 규모의 정찰대대 (과거에는 도보정찰소)를 운영하며 해군에서도 1개 정찰대대를 운영한다. <198 연락소>는 첩보수집 분석을 담당하며 <907 군부대>는 남파되는 공작원들이 남한 실정을 훈련하는 소위 <이남화 以南化> 교육을 받는 곳이며, 모두 정찰국의 작전지휘를 받는다. 정찰국은 또한 <마동희 군관학교>를 운영하며 2-5년간의 게릴라훈련을 실시하고 영어 일어 중국어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병력은 현역군 장교 사병들 중에서 우수한 대원들을 차출한다.
1960년대 중반 전라북도 진안에 침투했던 283군부대 무장게릴라가 정찰국 소속이었고, 1967년 고랑포에 기습하여 미군과 국군을 사살한 사건도 정찰국에서 한 소행이며, 1968년 1월 21일 124군부대의 김신조 31명 특공재가 청와대를 기습하려던 사건과 그 해 11월 2일 울진 삼척에 약 120명의 게릴라가 침투한 것도 다 정찰국에서 작전한 것이었다. 1983년 아웅산 테러사건도 정찰국의 소행이었다. 특히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해에서 한국해군 천안함 (PCC-772)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 폭침되었고 장병 40명이 전사하였으며 6명이 실종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것도 북한 정찰국의 소행으로 판명이 되었다.
1969년 인민군 지상군이 개편될 때 이전까지는 17 공수여단이 <정찰국>의 작전지시를 받는 특수부대로서 남한에 사회혼란이나 민중봉기 같은 <결정적 사태>가 조성되면 남한 후방에 투입되어 비정규전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가 되어 있었다. 1969년 1월에 17 공수여단은 해체된 124 군부대와 283 군부대의 병력을 흡수하여 <특수 8군단>으로 개편되었고 <특수 8군단>은 총참모부 <작전국>이 아니라 <정찰국>의 작전지시를 받는 비정규전 특전대로 남한후방 교란작전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부대원들은 남한의 국군 복장과 국군 편제무기를 가지고 훈련을 하였다. 이 부대는 세계최고의 정예 자살특공대이다.
이 <특수8군단>은 1978년에 병력을 15,000에서 41,000명으로 증강하였고, 1983년에 병력을 다시 80,000으로 증강하면서 단대호를 <경보병 교도지도국>으로 바꾸었다. 지휘부는 평남 덕천에 있으며 예하에 총 25개 특전여단이 있고 총병력은 약 120,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인민군 총병력의 10%에 해당한다. 25개 여단 외에도 공군 저격여단, 해상 저격여단과, 여군 특수공작대인 <38 항공육전여단> (펑양시 상원군), 그리고 스키여단 (양강도 혜산시)이 있다. 여단장의 편제계급은 고참 대좌 아니면 소장 (한국군의 준장에 해당)이다. <경보병 교도지도국> 직속 25개 여단의 배치는 아래와 같다.
1군단 (강원도 지역) = 1 x 경보병여단, 1 x 정찰여단
2군단 (개성, 황해도 지역) = 3 x 경보병여단, 1 x 정찰여단
3군단 (평안남도 지역) = 2 x 공수경보병여단
4군단 (황해도 지역) = 1 x 상륙경보병여단, 2 x 경보병여단, 1 x 정찰여단
5군단 (황해도 강원도 지역) = 2 x 경보병여단, 1 x 정찰여단
6군단 (함경북도 지역) = 1 x 공수경보병여단
7군단 (함경남도 지역) = 1 x 경보병여단, 1 x 공수경보병여단,
1 x 상륙경보병여단, 1 x 제병연합여단
8군단 (평안북도 지역) = 2 x 공수경보병여단, 1 x 상륙경보병여단
9군단 (평안남도 지역) = 2 x 공수경보병여단
전에 북한의 대남공작 총책인 김용순과 인민무력부장 김일철이 제주도를 다녀간 사실과 네 척의 북한 상선들이 유유하게 제주도 북쪽 우리영해를 통과했는데 정부나 국군은 아무 대응조치도 없이 어물쩍하고 있었던 일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 그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자들이 판단해보기를 원한다. 북한은 우리 국군의 대응태세와 속도를 시험했고 국민반응을 탐색한 것에 틀림이 없다. 제주도는 지금 우리나라 영토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안보취약 지역이다. 제주도는 북한의 대남공작 정찰국이 최우선 표적으로 작전계획을 세운지 이미 오래되었다. 과거에도 1945년 일본 압제에서 해방된 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좌익 폭동이 일어난 곳이 제주도이다. UN 감시 하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실시한 1948년 5월 10일 총선을 방해하려고 김일성 지령과 남로당 합작으로 제주도 좌익세력을 동원하여 4.3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그때 진압작전 중에 희생된 暴徒들의 명예를 회복한다고 보상금까지 주는 특별법을 통과 시켰다. 김대중 집권당시와 노무현 정권이 하는 일들이 북한과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지었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국민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제3국 (해외정보국) - 과거에는 35호실
병력 약 500여명. 원래의 명칭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대외정보조사부> (약칭 조사부) 이었으나 35호실로 개칭되었다가 청찰총국이 창설되고 그에 흡수 되면서 <해외정보국>이 되었다. 기본 임무는 말 그대로 대외정보, 특히 남한의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움직임과, 미국과 일본의 대한정책, 대북정책, 한미유대관계, 한반도문제를 위요한 국제정세와 동향 등을 파악하고, 그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조사부>당시 최고 책임자는 전에 모스코 주재 북한 대사를 역임한 권희경 이었으나 KGB와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1997년 11월에 처형된 후 조사부가 <35호실>로 명칭이 바뀌었다. 지금 현재는 내부에 남한, 아시아, 일본, 구라파와 미국을 담당하는 네 개의 공작 부서가 있고, 정보분석, 암호처리, 자료정리를 담당하는 세 개의 분석 부서가 있고, 인사, 조직, 검열, 자료연구를 담당하는 네 개의 지원부서가 있다.
해외 공작거점은 도꾜, 오사카, 북경, 연길, 상해, 심양, 마카오, 뱅콕, 홍콩, 쿠바, 시리아, 인도네시아, 비엔나, 파리, 에치오피아, 탄자니아에 있고, 미국 일본 남한에는 정보를 수집 제공하는 첩보망 점조직이 있다. 대원들은 주로 평양 외국어대학이나 군사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한 학생들 중에서, 그리고 각급 군부대의 무술군관들 중에서 선발한다.
공작 교육훈련은 대체로 점조직 초대소에서 실사한다.
북한간첩으로 체포되었던 <모하마드 깐수>도 이 기관 소속이었다. 35호실 (현재는 정찰총국 제3국 해외정보국)의 또 다른 중요한 임무는 대남 테로 공작이었다. 1977년 <자그레브>에서 백건우와 윤정희를 납치하려고 시도한 것과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폭파공작으로 한국정부의 고위직 17명과 현지인 네 명이 폭사를 당한 것도 과거 <조사부>의 테로 공작이었으며, 1987년 11월 29일 KAL-858기를 폭파하여 115명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은 행위도 <조사부>의 공작이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먼 타국에서 피땀 흘려 일하던 노동자들이 고향에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 이 하늘이 용서할 수 없는 범행을 지시한 사람이 김정일인데 그 증인이 아직도 살아있고 미국 정부가 확인 재확인해서 국무성과 의회가 1988년 2월 4일 전 세계에 발표했으나 남한의 친북 세력들은 아직도 KAL-858기 폭파 사건이 남한의 조작이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 더 구체적인 것을 알고 싶으면 1988년 2월 5일부 서울의 중요일간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를 읽어보면 될 것이다. 북한 인민을 자기 체제에 거슬린다고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고, 매년 수백 명씩 처형을 하며, 자기는 초호화생활을 하면서 인민은 몇 백만씩 굶겨 죽이고 말로는 같은 동족이라고 인정하는 남한국민의 생명을 그토록 무참히 살해한 김정일을, 김대중은 노벨 평화상의 공동 수상자가 안 된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는데, 그분의 정신상태를 우리가 한번 분석해 봐야하며, 남한 언론에서는 꼬박꼬박 김정일 살인마를 <국방위원장>이라고 정중하게 경칭을 달아주는 데에는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3대 세습으로 철없는 어린자식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그가 2011년 12월 17일에 사망하였지만 북한은 아직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제6국 (기술국) - 110호 연구소, 일명 전자정찰국 또는 사이버테러 지도국
2013년 헌제 전문인력은 약 3,000명. 추가로 30,000명을 양성중. 북한은 1980년대부터 구 소련에서 장비를 도입하여 자체로 개량형 장비를 개발하기도 하고 중동국가들에 수출도 하였다. 평양에는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로 위장하여 해커부대를 운영하다가 1990년대에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정찰국 산하에 <110호 연구소>를 창설하고 <백설 무역회사>의 중국 심양대표부와 흑룡강성, 산동성, 북경지역에 대남 사이버테러 거점을 운영 하였다. 2009년 2월 국방위원회 인민무력부 산하에 <정찰총국>이 창설 되면서 제6국으로, <110호 연구소> 는 정찰총국의 4대 기능국의 하나로 승격 편입 되었다.
기본 임무는 대남 정보수집, 해킹, 바이러스 유포다. 현재 <110호 연구소>의 조직은,
<31소> - 기술정찰 해킹, 전문인력 약 60명
<32소> - 프로그램 개발, 전문인력 약 50명
<56소> - 군 지휘통신 프로그램 개발, 전문인력 약 60명
<기초자료 조사실>
<사리원 GPS Jammer 기지>
<204 사이버 심리전 부대>
<해외 작전기지> -흑룡강성, 산동성, 북경, 심양, 연길, 단동, 그중에 단동이 제일 활발
국가정보원의 보고에 의하면, 2004-2010년 사이에 북한은 남한의 중요전산망에 총 48,000 건의 사이버 공격을 가했으며 2010년 한해에만도 남한의 정부기관에 총 9,200여건의 사이버 테러를 감행 하였다고 한다. 또한 국방부의 보고에 의하면 2007년 1월부터 2010년 6월 사이에 해킹을 통해 북한에 유출된 군사기밀이 총 1,763건이나 되었다고 한다. 지난 2010년 8월에는 서해안 일대에서 항공기와 선박의 위성항법 시스템 (GPS)이 매일 1-2시간씩 간헐적으로 수신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2009년 7뤌 7일에 청와대와 국방부에 1차 DDoS 고격이 있었고, 2011년 3월 4일에 2차 공격이 있었으며, 2011년 4월 12일에는 남한의 농협전산망에 DDoS 공격을 가했다.
2004년 8월 2일에 노무현 정권은 남북합작 <하나 프로그램 쎈터> IT 개발용역회사를 설립하고 북한에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였다. 그때 한국의 <OOO>목사와 <OOO>목사가 390억원을 제공하고 노무현이 남북협력기금에서 10억원을 제공하여 도합 400억원으로 2009년 9월 16일부터 평양과학기술대학을 건축하고 2010년 10월 25일에 준공 개교하였다. 학교의 수용능력은 학부 2,000명, 대학원 600명으로 컴퓨터 전문인력과 국방과학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그 후 포항공대 학장출신 <OOO>가 평양과학기술대학에 가서 1회에 30명씩, 9차례, 총 270명에게 컴퓨터 전문교육을 실시하였다. 그 졸업생 대부분이 정찰총국 6국 (110호 연구소)에 배치되었다.
(2) 통일전선부 - 약칭 통전부 - (노동당 중앙위원회 소속)
북한의 대남 공작기관 중에서 가장 방대한 기구로서 통전부가 하는 일은 아래와 같다. 총체적으로는 한반도 적화통일을 위한 국내적 국제적 여건과 분위기 조성을 목표로, 주로 해외에 있는 교포사회에 침투하여 친북세력 확보를 기점으로 하고 모든 형태의 남북 교류와 대미협상의 전략을 수립하고 조정한다. 통전부의 임무를 부문별로 세분하면 아래와 같다.
- 모든 대남 선전을 위한 간행물과 방송을 검열 지휘하고, 노동신문에 실리는 남북대화나 통일과 관련된 기사는 반듯이 통전부의 사전검열을 받아야한다.
- <조국평화통일위원회 - 약칭 조평통>의 사무국은 통전부 내의 조직이며 적십자 회담을 포함한 모든 정치 경제 문화 체육 이산가족문제를 다루는 남북 회담의 전략을 수립하고 작전을 지휘한다.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 사이 남북 기본 합의서를 도출한 총리급 회담도 통전부의 전략과 시나리오대로 진행됐으며, 지난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회담도 통전부의 전략과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다. 다시 말해서 모든 형태의 남북회담은 남한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북한에서는 대남공작차원에서 진행한다. 조평통 사무국 국장은 1999년 4월 10일자로 안병수 (본명 안경호)가 임명되었고 전임자 한시해는 처형되었다.
- 북한에서 납치해 간 남한사람 그리고 자진해서 월북한 남한사람들은 통전부가 처리한다. 일단 철저한 심문을 진행하고, 사회주의 사상교양과 충성을 다짐한 후 사회배치와 사후감시 조직을 통전부가 맡아서한다.
- 해외 교포사회에 침투하고 친북단체를 조성하여 운영하며 국내국외에서 북한의 통일전선 전략에 동조하고 지원하도록 한다. 공개 비공개 공작을 진행하여 필요한 인재를 포섭하고 남한 내 친북세력을 지원토록 한다. 해외 교포사회 침투대상은 미국, 캐나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구라파 전역, 동남아세아, 호주, 아프리카, 그리고 중남미 지역이다. 해외 교포사회에 배포되는 선전물은 <문화연락소-일명 101 연락소>에서 제작하며, 해외 동포가 북한을 방문할 때에는 통전부 산하 <해외동포엽접국>에서 초대, 영접, 관광 안내, 호송을 담당한다.
- 범민련 (凡民聯)과 범청학련 (凡靑學聯)의 활동을 주관하고 지휘한다. 사람들은 고 문익환 목사가 애국충정에서 통일에 이바지하겠다고 활동한 줄 생각할지 모르지만 북한 통전부의 전략 안에서 이용만 당한 것이었다.
- 일본에서 북송된 북송교포를 따라간 일본인 처와, 1953년 정전 후 포로교환 때 북으로 송환된 인민군 포로들, 그리고 러시아와 중공에서 살다가 들어간 귀환 동포들을 통전부에서 특별히 감시한다.
- 남민전, 과거 남로당처럼 남한에 지하당을 구축하기 위해 시도했던 통일혁명당 (약칭 통혁당)이 남한에서 적발되어 와해된 후 북에서 그 후신으로 새로 조직한 것이 <남조선민족해방전선 - 약칭 남민전>이었다. 마치 남한의 지하조직인 것처럼 위장하고 실제로는 북에서 공작원을 양성하여 해외에 파송하는데 통전부가 그 일을 담당하였다. 통전부는 또한 대남 지하방송국인 <구국의 소리> 방송을 관리 지휘하였다.
- 북한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체포되어 장기간 복역을 마친 미전향 장기수들의 북송문제를 통전부가 다룬다. 1993년 3월 19일 이인모가 북송될 때 북측에서는 통전부의 강창일, 남한에서는 당시 통일원장관 하던 한완상 사이에서 이뤄진 작업이었다. 남북정상회담 후 이뤄진 미전향 장기수들의 북송도 모두 통전부의 요구에 응한 것이었다.
- 통전부의 <조국통일 연구소> 에서는 남한의 TV 방송을 모조리 시청 분석하며, 일간신문과 주간월간 잡지들을 수입하고, 남한관계 주요 출판물과 참고서적들을 구입하고 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이 남한의 <한겨레신문>이라고 한다.
- 통전부는 대남공작차원에서 몇 개의 유령조직을 운영한다. 조직의 명칭과 의장단만 임명이 되어있고 하부 조직이나 국내활동이 전혀 없는 소위 유령단체는 사회민주당, 천도교 청우당, 조선기독교인 연맹, 조선불교도 연맹, 그리고 천주교인 협회이다. 그 조직의 간부들은 노동당의 핵심당원 들이며 100% 통전부의 지시대로 움직인다.
그들의 임무는 해외에서 대등한 단체나 조직과 접촉하여 한반도 통일문제에서 북한의 주장을 선전하고 지지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은 한국의 종교단체 대표들이 뻔질나게 해외에서 또는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의 종교단체 대표들과 만나고 선교가 어떻고 통일이 어떻고 경제원조가 어떻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들은 완전히 통전부의 꼬임과 속임수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종교는 없고 김일성 왕조의 체제가 무너질 때까지는 선교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어느 교인들을 만나고 어쩌고 하는데 그것들은 다 통전부에서 조작하고 교육을 시킨 가짜들이며 대남공작의 한 개 기계장치에 불과하다. 북한에는 오로지 민족의 태양 “김일성” 종교가 존재할 뿐이며, 김일성 이외의 어떠한 종교나 신을 일체 배격한다. 남한의 기독교 대표단이 평양에 체류하는 동안 봉수교회 문을 열고 그들이 떠나면 계속 문을 닫아둔다. 남한의 기독교 인사들과 접촉하기 위한 이유 외에 성경을 소지하거나 예배행위를 하거나 신앙생활을 하면 반드시 정치범수용소에 가야한다. 남한의 교회들이 말하는 북한의 지하교회라는 것들은 전부 통전부가 위장한 대남공작 세포조직이다.
- 1970년 3월 31일 일본 JAL기 <요도호>를 북한으로 납치한 <적군파> 잔당들이 통전부의 지시를 받으며 지금현재 평양 삼석구역에 집단 수용되어 살고 있고 <아세아문제 연구소>라는 간판을 걸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진 바가 없다.
- 통전부 내에는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의 씽크탱크 역할을 했다는 고 송호경이 지휘하던 소위 <18과>라는 것이 있고 이 18과의 임무는 해외 VIP를 상대하며 그들과의 회담이나 협상에서 전략을 세우고 추진하는 일을 한다. 가령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외국의 중요 인사를 만나 회담하고 협상할 때 영접이나 대우를 포함한 의전상의 문제와 일체 회담 방향과 전략을 수립하며 사후처리를 담당한다. 과거 정주영, 김우중, 문선명, 카터 대통령, 빌리 그래햄 목사가 평양에 갔을 때 이들을 영접하고 배후에서 회담 내용과 방향을 제시한 것이 바로 이 통전부 18과이었다.
(3) 225국 (대외교류국) -지금은 (내각 소속) - 과거에는 (중앙당 대외연락부)
과거에는 대남연락부, 대남사업총국, 또는 사회문화부, 대외연락부 등으로 야릇한 명칭을 사용했으나 지금은 내각 (정무원) 소속 225국으로 바뀌었다. 주 임무는 공작원을 양성하여 남한에 침투시키고 소위 그들이 말하는 <남조선 혁명역량>을 구축하는데 있다. 지금 일반적으로 언론에서 말하는 <반미친북세력>을 북한에서는 <남조선 혁명역량>이라고 부른다.
이 기관에서 파송하는 공작원들은 일명 <선생>이라고 하며 최소한 3년 내지 6년 간 고도의 훈련을 받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군사 국제정세 사상 이론학습 모든 분야에서 엘리트 급에 속하는 자들로, 남한의 모든 분야에 침투하여 지도역할을 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다. 이들의 선발 기준은 철두철미한 김일성-김정일 신봉자이어야 하고 뼈가 가루가 되어도 사회주의 이념과 <남조선 혁명완수>를 위한 목표에서 변절하지 않을 자들, 그리고 대부분 남한에 연고가 있는 자들이다.
우리가 말하는 <북한 간첩>하면 기본적으로 이 사람들 또는 이들에 의해 포섭된 자들을 말하는 것이며 과거 60여 년간 우리사회를 혼란시켜온 자들이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체포된 간첩들은 대부분 이들에 의해 포섭된 자들이었고 지도역할의 <선생>들이 체포된 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의 남한침투는 <적전부>의 지원을 받는 비합법 해안침투가 기본이나 제삼국을 통한 합법침투를 많이 이용한다.
합법침투의 경우는 남한에 여권을 갖고 드나드는데 문제가 없는 자들로 대개 포섭된 간첩들이며, 이런 합법적 근거가 없는 소위 <선생>들은 비합법 침투방법을 이용한다. 그동안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알기 쉽게 통혁당 사건, 이선실-김낙중 사건 등이 과거 <연락부> 계통의 활동이었으며, 남한 사회 각계각층, 즉 정부, 국회, 학원가, 노동단체, 언론계, 학계, 종교단체, 연예계 등에 침투하여 <지하역량>을 구축했고 이들을 관리하여 <유사시>에 민중봉기 내지는 민중혁명으로 남한사회를 전복시킬 세력으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남한 사회에서 정신박약자가 아니면 북한의 대남공작에 의해 침투되고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전위역할을 하고 있는 단체들이 어떤 것인지 그들의 행동으로 봐서 다 파악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일본에 있는 <조총련>이 북한의 정부나 당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이 종전의 <대외연락부>에 의해 운영되었다. 원래 조총련 운영의 최고 책임자였던 강주일 (본명 강관주)이 통일전선부 부장으로 있을 때에는 조총련이 통전부 산하였으나, 통전부는 김용순이 맡고 강주일이 대외연락부 부장이 되면서 그때 조총련은 대외연락부 산하로 들어갔다. 조총련이 단순한 친북 교민단체라고 생각하면 큰일이다. 자체 자금이 있고 조직화되고 합법적 기반이 있는 대남 공작 전초기지인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225국 (고거의 대외연락부)는 북한의 대남공작기관 중에서 가장 무서운 기관이다. 슬픈 일은 한국의 지성인들이나 국민들의 안보 감각이 마비가 되어있고 이들 자칭 <민주세력, 진보세력, 통일지향 민족주의자들>은 역사에 역행하는 이론과 활동으로 공공연하게 난무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을 파멸로 이끌어가고 있다. 저들이 말하는 통일은 김일성-김정일이 원했던 일인독재 수령절대주의 통일이며 우리가 말하는 <민족의 번영과 안녕>을 위한,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명시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 절대로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왜 저들이 국가보안법을 기를 쓰고 철폐하라고 하는지 이제 깨달아야 한다. 자기들의 활동을 합법화하자는 것이고 <사회주의 혁명역량> 구축의 속도를 빨리 하자는 것이다. 이 조직이 과거에 우리사회를 괴롭힌 사건들은 대개 아래와 같다.
지하당 인민혁명당 (인혁당) 사건 - (1964)
동백림 사건 - (1967)
지하당 통일혁명당 (통혁당) 사건 - (1968)
경남 부산지역 간첩단 사건 - (1974, 8)
조총련경유 간첩단 사건 - (1974, 9)
학원침투 민청학련 사건 - (1975)
지하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남민전) 사건 - (1979)
지도핵심 간첩단 사건 - (1983)
자수간첩 오길남 사건 - (1986)
중부지역당 사건 (일명 이선실-김낙중 사건) - (1992)
지하당 구국전위 사건 - (1994)
부여침투 간첩 김동식 사건 - (1995)
부부간첩 최정남-강연정 사건 - (19970
지하당 민주민족혁명당 (민혁당) 사건 - (1999)
대만화교 간첩단 사건 - (2006)
지하당 일심회 사건 - (2006)
왕재산 간첩단 사건 - (2011)
고 황장엽이 경고하기를 지금 남한에서 활약하고 있는 북한 간첩은 약 50,000명 정도라고 하였으며 북한을 동경하고 추종하는 종북세력은 약 500만 이상이라고 지적하였다. 우리 정부와 애국시민들, 제발 정신을 좀 차려주기 바란다. pswoodson@yahoo.com
*필자/이명산. 시인. 북한전문가.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