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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춤꾼 이애주 교수가 언제부터 그 어려운 『주역(周易)』까지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것인지 의아스럽기도 한데, 춤의 제목은 ‘천명(天命)’이라 붙이고 구경 오라고 초청장을 보낸 것으로 보면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호기심으로 춤 구경을 갔습니다. 『중용(中庸)』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에서 나온 ‘천명’이라니, 그 심오한 춤의 제목부터가 사람을 끌게 하였습니다. 대학로의 극장에 당도해보니 구경 온 사람들 또한 대단한 사람들만 눈에 띄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얼굴만 보아도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당대의 명사들이 로비에 가득하게 서 있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완판승무’, ‘본살풀이’, ‘터벌림태평’의 춤이 차례로 공연되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답게 세 판의 춤은 극장을 가득 메운 관중을 천상으로 날아가기에 충분하도록 흥분시켜주고 말았습니다. “얇은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라던 시의 구절이 절로 떠오르게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해주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춤은 사람의 몸짓이요, 사람의 염원을 빚는 몸짓의 총화(總和)이다. 그 특징은 피해받는 사람의 상채기를 달래고 일그러진 사람의 꿈을 몸으로 빚어 실현하는 경지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춤의 특징임과 동시에 삶의 염원을 형상화하는 측면에서 세계 인류 문화의 특징이다.”라고 설명하고, 이애주의 춤이 한국의 춤이자 세계 모든 인류의 춤이라고 해설의 글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다산도 춤에 대한 높은 경지의 이론을 열거했습니다. 그의 「원무(原舞)」라는 글은 춤의 생성과정과 그 공효(功效)를 정확히 밝혔습니다. “춤이란 이뤄진 일을 상징한다[象成]. 상성(象成)이란 어떤 뜻인가. 할아버지·아버지 등 선조의 공(功)과 덕(德)이 이뤄진 것을 상징한다는 말이다.”라고 말하여, 이룩된 공덕을 소리로 읊으면 음악이요, 몸으로 표현하면 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요순의 악(樂)이 있으면, 요순의 춤이 있어, 악과 무가 함께해야만 성인(聖人) 정치의 공덕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게 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후세로 내려오며, 공덕을 이룬 정치가 이룩되지 못하자, 원망하고 염원하는 노래와 춤으로 바뀌면서 애주춤에까지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해받은 사람의 상채기를 달래고, 일그러진 사람의 꿈을 몸으로 실현하는 춤’이 애주춤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요순시대가 다시 돌아와야만 다산의 주장대로 요순의 공덕을 읊고 춤추는 '소무(韶舞)'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애주춤은 언제 그런 세상을 만나, 그런 춤으로 바뀔 것인지 요원하기만 합니다.
*필자/박석무. 전의원. 다산연구소 이사장.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