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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는 뉘우침과 반성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참회의 진정한 뜻은 다시는 그 같은 허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다짐이죠. 아무리 잘못을 진실하게 뉘우쳤다 하더라도 다음에 다시 그런 잘못과 실수를 저지른다면 진정으로 참회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육조혜능(六祖慧能) 스님이 “참회의 참(懺)이란 전비(前非)를 뉘우치는 것이고, 회(悔)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다짐”이라고 하셨습니다.
참회라 하는 것은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개척하는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악도(惡道)를 놓고 선도(善道)에 들어오는 첫 관문이죠. 사람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여 날로 선도를 행한즉 구업(舊業)은 점점 사라지고 선도는 날로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악도는 스스로 멀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전심 작 악(前心作惡)은 구름이 해를 가린 것과 같고, 후 심기선(後心起善)은 밝은 불이 어둠을 파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죄는 본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멸(滅)을 따라 죄는 반드시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업(業)은 무명(無明)인지라 자성(自性)의 혜 광(慧光)을 따라 반드시 없어집니다. 그러나 죄업(罪業)의 근본은 탐진치(貪瞋痴)라 아무리 참회를 한다 할지라도 후일에 또다시 악을 범하고 보면 죄도 또한 멸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도(修羅 餓鬼 地獄)에 떨어질 중죄를 지은 사람이 일시적 참회로써 약간의 복을 짓는다 할지라도 원래의 탐 진 치를 그대로 두고 보면 복은 복대로 받고 죄는 죄대로 받게 되는 것이지요.
참회에는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이 있습니다. 사참이라 함은 삼보(三寶 : 佛法僧) 전에 죄고(罪苦)를 뉘우치고 날로 선(善)을 행함을 이름이요. 이참이라 함은 원래 죄 성(罪性)이 공(空)한 자리를 깨쳐 안으로 번뇌 망상(煩惱妄想)을 제거해 감을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영원히 죄악을 벗어나고자 할진대 마땅히 사참과 이참을 쌍수(雙修)하여 밖으로 모든 선업을 계속 수행(修行)하는 동시에 안으로 자신의 탐 진 치를 제거해 가지 않으면 완전한 참회라고 할 수 없지요.
이와 같이 우리가 성심으로 참회수도 하면 적적성성(寂寂醒醒)한 자성 불(自性佛)을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의 자유를 얻은 사람은 천업(天業)을 임의(任意)로 하고 생사를 자유로 하여 취(取)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람은 삼계육도(三界六道)가 평등일미(平等一味)요, 동정역순(動靜逆順)이 무비 삼매(無非三昧)라, 항상 자성의 혜광(慧光)이 발하여 온 세상이 이 도량(道場)이요, 온 세계가 이 정토(淨土)입니다. 그래서 내 외(內外) 중간에 털끝만한 죄상(罪相)도 찾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참회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러나 이렇게 이참하고 사참을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죄악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없어 언제까지나 죄고에서 시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어느 정직한 환경미화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와 작은 노점상을 운영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입고 들어온 고급 청바지를 보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며칠째 다그쳤습니다.
“어디서 난 옷이냐?” “어서 사실대로 말해 봐!” 부모님들의 성화에 아들은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죄송해요. 버스정류장에서 남의 지갑을 훔쳤어요.” 아들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내 아들이 남의 지갑을 훔치다니!” 잠시 뒤 아버지가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지요. “환경이 어렵다고 남의 돈을 훔쳐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경찰서로 데리고 가서 자수를 시켰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아들의 범죄 사실이 하나 더 들어났습니다. 결국 아들은 법정에 서게 되었죠. 그 사이에 아버지는 아들의 범죄사실을 가슴 아파 하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재판이 있는 날 법정에서 어머니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남편의 뜻대로 아들이 올바를 사람이 되도록 엄한 벌을 내려주세요.”
아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지가 저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그리고는 하염없이 흐느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지요. 드디어 판결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불 처분입니다! 땅 땅 땅!” 벌을 내리지 않는 뜻밖의 판결에 어리둥절해 하는 모자와 방청객들에게 판사는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죄 값으로 이미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그 이상 더 큰 형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청바지 하나를 훔친 소년도 죄 값을 치루지 않고서는 세상의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소년은 참회는 물론 죄 값으로 아버지까지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천문학적인 횡령을 하고, 하늘만큼 죄를 짓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저 재벌총수들은 여생이 평안할 수 있을까요? 죄는 죄대로 받고 복은 복대로 받는 것입니다, 언제 받아도 진리가 무심치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이치이고 천지의 공도(公道)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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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덕권. 시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