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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셋 안타까운 자살선택과 마지막 집세

“공과금 밀려 죄송해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김덕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4/03/05 [15:15]
요즘엔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네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며칠 전 중앙일보를 비롯한 각 매체에 “공과금 밀려 죄송해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집주인에게 70만원 봉투 남겨」「동반자살 일주일 만에 발견」「모녀 셋 안타까운 선택」이라는 보도가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복지의 사각(死角)지대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월 28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오던 박모씨네 집에서 박모씨와 그의 두 딸이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전했습니다. 30대 두 딸을 돌보던 60대 박모씨는「주인아주머니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흰 봉투와 현금 70만원을 남긴 채 두 딸과 동반 자살을 했습니다. 박모씨는 당뇨병 투병을 포기한 큰딸과 카드빚에 신용불량자가 된 둘째딸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세 모녀의 시신을 가장 먼저 발견한 집주인 임모씨의 신고로 경찰은 곧바로 사고 현장에 도착했고, 현장에서 임씨는 “1주일 전부터 방안에서 텔레비전 소리만 나고 인기척이 없어 의심스러운 생각에 신고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방 창문은 청색 테이프로 막혀 있고 바닥에 놓인 그릇에는 번개탄을 피운 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죠. 방문도 침대로 막아놓은 상태였으며 기르던 고양이도 모녀 옆에서 함께 죽어 있었습니다.
 
박모씨의 남편이 1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둘째 딸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어 딸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놓았죠. 그래서 둘째는 취직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고혈압과 당뇨가 심했던 큰딸은 병원비 부담에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박모씨가 잠실놀이공원 근처식당에서 일해 번 돈과 둘째가 종종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생활비와 병원비를 충당해왔다고 하네요. 
 
그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그동안 월 38만원 집세와 매달 20만 원 정도인 전기료, 수도료 등 공과금을 밀린 적이 없었답니다. 그러나 한 달 전 박모씨가 식당일을 마치고 귀가하다 길에 넘어져 팔을 크게 다쳐 식당일을 그만두게 되었죠, 그나마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끊기면서 한 달간 고민 끝에 아마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왜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하는 것일까요? 자살하는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극도의 절망감이고 또 하나는 극도의 죄책감,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두가지중에 절망감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합니다. 하지만 죄책감에 빠질 때는 자살을 결심하고 결행 하는데 더 용이 하다고 하네요. 
 
요즘 사회에서는 죄책감으로 자살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살인을 저질렀다든지 아주 못된 범죄가 들통 나게 되어버릴 경우죠. 그때 가서야 죄책감과 심한 공포감과 두려움에 빠져 잠깐 사이에 순식간적으로 자살을 하는 경우를 보도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엔 절망적인상태에서도 자살을 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만큼 사회가 너무 각박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 해도 절망감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살은 자해로 실패해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 자살을 결심하는데도 무수한 시간이 지나고 의지가 약한 사람은 아무리 절망스러운 경우에도 자살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정신병에 걸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하네요. 그럼 왜 죄책감에 시달릴 때 자살이 용이 할까요? 심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리기 때문이죠. 자살함으로서 공포로부터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쉽게 자기목숨을 끊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 절망 보다 무서운 것은 실상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공포가 더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포감이 오래 지속되면 아무리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도 자살을 스스럼없이 선택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절망적인 삶에서도, 사(死)의 공포 속에서도 세상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내일을 향해 더욱 분발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느 가난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실직, 빈 쌀독, 설상가상 아이가 생겨 배는 만삭으로 불러왔습니다. 당장 저녁끼니도 문제였지만 새벽마다 인력시장으로 나가는 남편에게 차려줄 아침거리조차 없는 게 서러워 아내는 그만 부엌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버렸습니다. 훌쩍훌쩍 아내가 우는 이유를 모를 리 없는 남편입니다. 아내에게 다가가 그 서러운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울지 마! 당신 갈비 먹고 싶다고 했지? 우리 외식하러 갈까?” 외식할 돈이 있을 리 없었지만 아내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남편의 밝은 목소리가 좋아서 그냥 피식 웃고 따라 나섰습니다. 
 
남편이 갈비를 먹자며 아내를 데려간 곳은 백화점 식품매장이었습니다. 식품매장 시식코너에서 인심 후하기로 소문난 아주머니가 이 부부를 발견했습니다. 빈 카트, 만삭의 배, 파리한 입술, 아주머니는 한눈에 이 부부의 처지를 눈치 챘습니다. “새댁 이리 와서 이것 좀 먹어봐요. 임신하면 입맛이 까다로워진다니까...” “여보 먹어봐.” “어때?” “음..잘 모르겠어.” 다른 시식코너의 직원들도 임신한 아내의 입맛을 돋궈줄 뭔가를 찾으러 나온 부부처럼 보였던지 자꾸만 맛 볼 것을 권했습니다.
 
부부는 이렇게 넓은 매장을 돌며 이것저것 시식용 음식들을 맛봤습니다. “오늘 외식 어땠어?” “좋았어!” 그리고 돌아가는 부부의 장바구니엔 달랑 다섯 개들이 라면묶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에겐 절망은 없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요. 세상에서 몰라준다고 한탄할 것이 없습니다. 진리는 공정한지라 쌓은 공(功)이 무공(無功)으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하늘은 짓지 않은 복은 내리지 않고, 사람은 짓지 않은 죄는 받지 않는 것이죠. 현실이 절망적이라면 지은 복을 아직 만나지 못해서입니다.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며 더욱 복 짓기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 박모 여인의 깔끔한 심성(心性)으로 보아 좋은 날이 올 것인데, 참으로 절망적으로 여겨지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duksan4037@daum.net
 
*필자/김덕권.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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