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jks Museum(레이크스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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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jks는 총 5개층에 여러 주제의 전시관과 100만점이 넘는 작품을 가지고 있는 유럽의 대표적인 미술관 중의 하나이다. 물론 세계 3대 미술관인 루브르, 우피치, 프라도에는 미치는 못하는 컬렉션이겠지만 세계5대 미술관에는 손색이 없는 콜렉션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특히나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렘브란트컬렉션은 그 어느 미술관에서도 쫓아오지 못할 위대함과 그 마티에르에서 뿜어져 나오는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다.
아침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매표소에는 벌써부터 줄을 서고 가방을 맡기는 보관소에서는 연신 바쁜 손놀림이 있었다.
우리 꽃중년들은 공항에 대부분의 짐들을 보관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어깨가 무거운지라 가방이며 외투를 맡기기로 하고 보관소에 짐을 맡기려는데 보관소 훈남 청년이 "잠깐만요" 이러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동남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류의 열기가 분다는 동유럽의 어디도 아닌 유럽의 심장부에서 저 금발머리의 파란 눈동자 훈남 청년이 갑자기 "잠깐만요?"를 외치니 순간, 우리의 정신이 유채이탈을 하듯 "잠깐" 멍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훈남 청년은 한국이 좋아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소개를 하고는 연신 자기 일에 열중하며 우리 짐과 옷을 받아 들고 번호표를 나누어 주었다. 그 우리말 한마디에 절로 어깨에 힘도 좀 들어가고 괜한 으쓱함도 생겨났다.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우리 꽃중년들은 그 우쭐함을 유지하며 관람을 하려했으나 이내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어로 된 리플릿이나 안내문구, 도록 등 아무리 찾아 보아도 한국어는 단 한 단어도 찾을 수 가 없었다. I AMSTERDAM 조형물 앞에서는 적어도 4-5팀의 한국인들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안내 리플릿이나 오디오가이드 등이 없다는 것은 한국 관광객의 잘못일까 무능하고 관심없는 외교관의 잘못일까?
아무튼 회화는 물론이고 여러가지 소장품을 가지고 있다는 rijks에 첫발을 내디뎠다.
지난번 프라도미술관을 방문하면서 단 하루만에 도대체 8000점의 작품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눈에 넣고 머리 속에 집어 삼킬지 고민하다 일단은 어찌되었건 다 본다는 결심하에 달리기를 하듯 모든 작품을 다 보았던 기억을 되살리며, 이번에는 최대한 천천히 관람을 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비록 소장품은 프라도미술관보다 많지만 전시된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해서 그런 방법이 가능할 수 있었다.
유수의 미술관이라는 것들이 루브르이 모나리자가 아니라 모나리자의 루브르가 되고 우피치의 다빈치가 아닌 다빈치의 우피치가 되는 것처럼 보통은 그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나 작가가 있기 마련이다. rijks도 워낙 렘브란트와 베르메르가 강력해서 거의 그들의 미술관처럼 되어버린 듯했다.
'꽃보다 중년'들도 어쩌랴 일단 우리도 렘브란트와 베르메르를 부지런히 찾아 떠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는 뜻밖에도 프란스 할스의 유쾌함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그의 가족사나 재정 상태가 어떠했든, 저렇게 유쾌하고 발랄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음에는 필시 그의 핏속에 엄청난 양의 웃음꽃 바이러스가 숨어 있었음이 분명할 것이다.
웃음의 화가라 불리는 프란스 할스는 황금시대라 불리는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사 최초의 거장으로 요즘의 스냅사진과도 같은 자연스러운 구성과 활력있는 필체의 초상화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과 함께 탁월한 업적을 남긴 화가이다. 그는 초상화 이외의 다른 장르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예비 드로잉을 거의 하지 않은 상태로 바로 캔버스에 작업이 들어가 빠르고 경쾌한 붓터치로 빠른 속도로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의 뒤를 이은 렘브란트와 베르메르는 그 시대 네덜란드의 3대 거장이 된다.
당시에는 스페인의 국력이 워낙 대단해서 네덜란드까지 침공을 한 스페인과의 독립 전쟁(80년 전쟁이라고 한다)에서 이제 곧 승리를 하여 네덜란드 공화국이 설립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던 시기였다. 시대의 흐름을 잘 타고 난 할스의 유쾌하고 쾌활한 그림은 네덜란드의 독립이라는 기쁨과 함께 네덜란드 동시대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시대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그가 지엽적인 인기에 불과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사후에 여러 비평가들로부터 너무 가벼운 작품이라고 평가절하되며 잊혀져 갈 즈음인 1865년 경매에 그림 ‘웃는 기사’를 두고 하트포트 후작과 로스 차일드 남작 사이에 구매 경쟁이 벌어져 이 작품이 사상최고치의 가격을 기록하며 프란스 할스에 대한 평가가 극적으로 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Rijks에 있는 몇 몇 할스의 그림들을 보라.
특히 저 <기분 좋은 술꾼>의 손짓은 한잔 더 하자고 하며 금방이라도 지나가는 관람객을 낚아 챌 듯 생생하고 의기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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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평생을 가난하게 살고 심지어 72살에 모든 재산을 날리고는 80대 중반에 죽을 때까지 연금으로 근근이 삶을 이어간 사람의 그림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저 유쾌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원본 기사 보기:jejubreak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