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박물관(CASA MESEU gaudi)
구엘공원 안에는 구엘공원을 지으면서 가우디가 생활을 했던 집에 자리잡고 있는 가우디박물관이 있다.
내년에 한국에서 순회전이 열리게 되는 가우디전의 전시물 일부가 이곳에도 전시가 되어 있다.
가우디가 만들었던 지금 봐도 세련된 느낌의 가구들과 장식물들. 그가 사용했던 세면대와 화장실과 기도실 등을 보고 있다 보니 그의 숨소리가 들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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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가우디박물관은 가우디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사그라다파밀리아를 짓기 시작하면서 그곳에서 줄 곳 생활을 했지만 구엘공원을 지으면서 이곳에 거처를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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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피타를 그리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가우디에게는 참 안성맞춤인 곳이 아닐 수 없다.
구엘공원의 그리스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그의 집에서 보면 바르셀로나 시내와 지중해가 발 밑에 하염없이 내려져 있다. 어쩌면 가우디는 저 바르셀로나 시내를 굽어 보며 평생을 페피타를 그리워했을지 모를 일이다.
가우디가 젊은 시절 알고 지내던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가우디는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겼으며 앞으로 그녀와 함께할 시간을 꿈꾸고 있었다. 유부녀였던 조세피나 모레우는 교사로서 이혼소송을 5년동안 계속하고 있었다. 가우디는 그런 그녀를 흠모하며 거의 매주 그녀의 집에 찾아가 식사를 하곤 했다. 그렇게 그녀의 이혼소송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가우디는 마침내 모레우의 이혼 소송이 마무리 되던 날 청혼을 하였다.
그러나, 모레우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해버린 뒤였다. 모레우도 가우디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기다림에 지쳐 다른 이의 청혼을 받아 들인 뒤였던 것이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근 5년 이상을 짝사랑했던 가우디는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게된 계기가 된 것이다.
모레우는 비록 가우디에게서 멀어졌지만 가우디에게 있어서 모레우는 창조의 씨앗 즉 페피타(스페인어로 ‘씨앗’이라는 뜻)가 되었다. 일본의 유명한 만화가이자 작가인 이노우에 다케이코는 가우디의 발자취를 따라 떠난 그의 여행기의 책 제목을 그런 의미에서 <페피타>라고 지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가우디박물관의 2층 창밖으로 보이는 바르셀로나 시내와 지중해는 어쩌면 또 다른 페피타 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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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놓여져 있는 가우디의 가구와 소품들은 지극히 가우디스럽다. 딱히 어떤 것이 가우디 스타일이라고 정의하긴 어렵겠지만 반대로 그의 피조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스타일이라고 짐작하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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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바로 가우디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자연이 아닌가 싶다.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가까이 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자연.
항상 가까이 있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자연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다음편에는 "꽃보다 할배"의 백일섭씨가 극찬을 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의 관람기가 이어집니다.
원본 기사 보기:jejubreak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