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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중년'들이 바르셀로나에 입성한지 이틀이 흘렀다, 겨우 이틀이지만 지나온 여정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감기 몸살에 지병에 중년들은 앓기 시작하고 청년들은 날기 시작했다. 하루에 적어도 3-4개의 일정을 소화해내야 하는 강행군. 이틀쨰인 금일도 안토니 타피에스 미술관과 미로재단 그리고 가우디의 까사바트요와 까사밀라까지...
| ▲ 까사바트요 위를 지나는 비행기와 초승달 © 강욱 기자 | | 바르셀로나의 거리는 아무리 둘러봐도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밝고 활기차다. 그러나 쇼핑의 거리 그라시아를 누리고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광객이라는 얘기를 듣고서야 그 활기참 속에 숨어 있는 내면의 어두움이 그려졌다. 청년 실업률이 60%에 다다르고 성인 실업률은 그리스보다 더 높다는 스페인. 그러나 지중해가 전해 주는 따뜻함에서 오는 그들이 누리고 있는 여유로움과 낭만은 이러한 경제 위기 속에서도 웃음을 띠고 살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 같다..
가우디가 사그라다파밀리아의 건축에 매달리기 시작하면서 다른 건축물들을 짖지 않기 시작했으며, 1918년부터는 전적으로 사그라다파밀리아의 건설에만 집중하기 위해 거처를 아예 성당으로 옮기기까지 했다. 까사바트요는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서 명성을 얻고 사그라다파밀리아에 온 힘을 기울이기 전에 섬유업자이며 덴디보이였던 바트요의 부탁으로 재건축을 하게 된 집이다. 최고가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하던 덴디보이 바트요는 이 건축물이 완공되고 나서 주변의 여러 시선과는 별개로 완전하게 만족하였다고 한다.
우선 우리 “꽃중년”은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까사바트요를 찾았다. 1906년 2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다는 까사바트요는 ‘뼈의 집’으로도 불리운다. 처음 이집이 지어졌을 때 사람들은 동물의 뼈 모양을 하고 있다면서 무서워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였다고 한다. 항상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은 당시에는 그런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인 모양이다. 바트요씨는 구엘 그리고 밀라씨와도 교류가 깊었던 사업가였다. 바트요는 가우디에게 그의 허름한 집을 새로 지어 줄 것을 부탁하였고, 가우디는 멋지게 바다를 모티프로 한 까사바트요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1984년 유네스코문화유산이 된 이 건물은 입장료가 20유로가 넘고 야간이 되면 29유로의 입장료를 내야만 한다.그러나 그 입장료의 값어치를 충분히 하기에 주저없이 입장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까사바트요이다.
| ▲뼈의 집 까사바트요, 기둥이 마치 포유동물의 관절같이 보인다. © 강욱 기자 | | 왜관은 뼈의집이라는 별칭처럼 언뜻 보기에 해골같기도 하고 뼈의 관절들을 잘 다듬어서 기둥을 세운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앙의 홀은 다섯가지의 채도를 가진 타일을 붙여 시간과 계절에 따른 색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게 해 주고 있는데 이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바닷속의 어울거림이 스스럼없이 온몸으로 느낄 수 가 있다. 가우디는 도대체 어디까지 상상을 하고 어디까지 예측을 하였을까?
밤이면 조촐한 클래식 파티가 열리고 가끔은 그라시아 거리에서 건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멀티미디어쇼를 하는 바트요. 과거의 그 흉측했던 건물은 지금 멀티미디어쇼를 해도 전혀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없는 미래의 건축물이 되어 있다.
| ▲ 까사바트요의 물결같은 계단 © 까사바트요 도록 | | 원본 기사 보기: jeju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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