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7시 30분~9시까지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러시아 한인이주 150년을 기념하는 사할린 ‘에트노스’ 소년소녀 합창단 공연이 있었다. 조로수호통상조약 이후 129년을 맞이하여 한반도평화재단 한화갑 총재 이하 많은 분들이 추진한 작은 문화교류의 장이었다. 아코디언 피아노 러시아 민속악기가 등장하는 음악회였다. 소녀 18명 소년 2명, 후덕한 체구의 장년여성 단장과 통역사, 그리고 일반관중과 러시아 노래를 따라 부르는 전문가 그룹 일동이 참여한 어울림은 박수와 앵콜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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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흰 부츠를 신은 소녀들과 갈색 부츠를 신은 소년의 독창과 폴카 춤은 압권이었다. 원래 폴카는 보헤미안의 자유로운 아나키스트적인 무욕과 자유분방함 속에 리드미컬한 탭댄스는 관중을 압도했고, 짝짝 짝짝 박수로 교감하며 잠간 신명이들린 듯한 무아의 혼연일체감을 이루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래서 예술, 특히 음악은 이념과 국경을 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20억뷰, 즉 인류의 30%가 유튜브로 봤다하니 대단한 국격상승의 업적이 아닐 수 없다.
화려한 민속의상을 입은 20여명의 합창단원은 하얀 얼굴에 다소 마르고 키가 큰 편이었다. 민속악기 연주와 독창 합창 등이 골고루 진행되었으며, ‘아, 러시아! 까자끄 군인 노래’에서 출발하여 우리에게도 다소 익숙한 곡조의 ‘명예’라는 곡을 끝으로 아쉬운 초여름 밤의 공연은 끝났고, 사람들은 뭔가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동서남북으로 돌렸다.
그만그만한 합창단원 중에 유득 키가 크고 검정머리에 납작한 코를 가진 소녀 단원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우리와 똑같은 까레이스키였다. 나는 궁금해서 행사관련자 분에게 물었다. 한국인 후손이라고 귀띔해줬다. 나는 공연시간 내내 편의상 이름지은 박 안겔리나에게 홀린 듯이 시선을 고정했다. 러시아의 심장 한 복판에서 러시아 민속음악으로 열심히 부르는 한 까레이스키에게서 우리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위대함에 가슴이 멍울멍울 기쁨과 슬픔의 눈물이 나도 모르게 눈가에 주르르 흘러내렸다.
◆사할린! 일제의 징용을 피하지 못하고 동토의 땅에 솥과 괭이 하나로 팽개쳐진 잔혹한 유형의 땅! 동토의 한복판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억새풀밭을 일구어 전답으로 만들고 순수혈통을 지키며 150년을 건너 모국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는 박 안겔리나! 일제가 짐짝처럼 배에다 실어 탄광에 버리고, 스탈린이 소수민족 소개정책으로 사상검증하여 만주 사할린 동포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옐친 고르바 민주화투쟁을 거쳐 겨우 맨몸으로 다시 돌아와 극동 연해주와 사할린에 터를 잡고 부활한 우리민족의 강인함! 저 까레이스키 박 안겔리나는 화려한 러시아 민속의상을 입고 러시아 말로 노래 부르지만 갈색의 피부와 납작한 코는 숨기지 못하는, 150년 연해주 이주사 한국인의 후예로서 20여명 단원 중에 홍일점으로 우뚝 선 까레이스키 소녀에게서 코끝이 찡한 감동과 자부심이 가슴을 벌렁거리게 했다.
연해주와 사할린의 잡초와 추위를 이기고 소련 민속공연단원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선 저 소녀야말로 진정한 그레이트 코리언이다. 일제의 학정과 스탈린의 비인간적 소수민족 탄압정책으로 중앙아시아 사막의 한복판에서 선인장처럼 살아남은 한민족의 위대함은 우리가 생각해볼 문제이다.
◆박 안겔리나, 우린 너의 선조들을 일제와 소련에 팔았다!
우린 150년 만에 작은 몸으로 고국에 돌아온 박 안겔리나에게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부패의 처음과 끝을 보여준 세월호와 구원파 논쟁에서 월드컵을 앞두고 우린 응원마저 숨죽이며 해야 되는 죄인들이다. 때가되면 우릴 용서해주길 바란다.
하기야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과 친일파와 미군정에 사면 받아 신분 세탁하여 우리사회의 기득권으로 성장한 보수세력들은 조상들의 과오에 대한 사죄로 나눔과 공존에 동참해야 한다. 동토의 땅에서 잡초와 싸우며 삶의 터전을 일군 연해주 사할린 동포들에 대해서 정부가 나설 때이다. 모국어를 잊지 않도록 중국의 동북삼성에 거주하는 동포들처럼 학교를 세우거나 한국문화와 역사 언어를 잊지 않도록 지원해주는 소임이야말로, 그 수혜자 후손들이 대한민국과 러시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거목으로 성장할 것이다. 중국이 경제대국이 된 것은 세계 각국에서 집단으로 거주하며 모국어를 지켜냈고, 건물 하나를 사더라도 계를 만들어 공동구매하여 자본을 외부로 나가지 못하도록 근검절약한 까닭이다.
등소평 개혁개방 이후 화교들은 펀드를 만들어 모국에 집단투자를 하여 핸드메이드로 우선 모국의 허기를 해결해줬다. 이젠 뉴욕과 동경 서울은 중국어 통역을 가게마다 내세워야 하는 여행업계의 큰손이 된지 오래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탈세를 하는 기업들이 이 정부 들어 규모가 더욱 커졌다하니 기업윤리를 알만할 지경에 이르렀다. 국가개조는 기업의 조세피난처 페이펴컴퍼니 탈세 기업가들에게 철퇴를 내리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미안하다, 박 안겔리나!
농노제가 끝물이던 조선 말엽 고향과 친지를 버리는 단장의 아픔을 안고 연해주의 갈대밭 한복판에 내팽개치게 했던 우리 조상들을 대신하여 용서를 빌고 싶구나. 행여 너의 부모 조상에게 원망은 말거라. 짓이겨진 역사의 구렁텅이를 벗어나려고 애썼으나, 다시 일제가 인신매매 노예처럼 부려먹고 스탈린이 전답을 빼앗고 중앙아시아 사막 한복판에 내팽개쳤어도 너의 조상님들, 아니 우리선조들은 다시 연해주 사할린으로 돌아와 너와 같은 꾀꼬리를 탄생시켜 모국방문 음악회에 홍일점으로 우뚝 선 모습이 장하고 장하다. 너는 단순한 까레이스키(고려인)이 아니다. 그레이트 코리언임을 자부심으로 알고 나중에 모스크바에서 소련을 대표하는 음악가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소련 말이라 알아듣진 못했어도, 귀에 다소 익은 곡들이 그러 가락울림으로 모국의 청중들을 박수치게 하고 앵콜을 소리쳐 부르게 했으니 박 안겔리나 너는 위대한 한국인의 긍지를 소련에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처럼 짐승처럼 끌려간 너의 조상님들 도한 위대한 대한민국의 한핏줄임을 자랑스럽게 간직하며 살아야 한다. 시간과 언어가 허락한다면 빚을 내어서라도 김치찌개 모국의 서민음식을 대접하지 못하고 보낸 것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모처럼 온 할머니 할아버지 나라에서 온 힘을 다하여 노래를 불러라! 너는 이미 러시아의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후예로서 우뚝 선 우리들의 표상이 되었다. 하얀 피부와 오똑한 콧날의 러시아 소녀들 틈에 숨은 듯이 검게 빛나는 머리와 납작한 코는 틀림없는 한민족의 후예다.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자라나 모스크바의 한복판에서 노래부를 너를 위해 기도하고 기원해주마. 너무 즐거웠고 가슴 뿌듯하고, 세파에 찌든 머릿속을 말끔히 청소해준 너에게 감사를 전한다.
◆박 안겔리나야, 신촌엔 김 나타샤도 계신단다!
너와 같이 사할린 출신이다. 환갑이 넘었고 온통 흰머리인 할머니인데 갈색으로 염색하고 행주치마 두르고 라면집에서 10여 년째 일하고 계신다. 뚱뚱하게 살이 찌셔서 후덕하게 생기셨고 소탈한 언어를 쓰시는데 꼭 식당아줌마 스타일이란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셔서 모스크바에서 대학을 나왔고 교사생활 하시면서 홀로 두 아들을 역시 대학을 보냈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아파트를 한 채씩 사주었단다. 이젠 아들들이 사업가 회사 간부로 뿌릴 잡았고 손자손녀들도 여럿 두었단다. 난 그 할머니 겉모습만 보고 예부게니오네긴 시인을 안다고 떠들었다가 조용히 혼났단다. 예브게니오네긴은 시인이 아니라 푸쉬킨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라고 조용하고 호되게 혼났단다.
*드라라는 작은 가게인데 최루탄해장라면과 계란말이를 막걸리와 함께 파는 학생들이 즐겨 찾는 학사주점 같은 곳이란다. 하루 12시간 맞교대로 10년 넘게 근무하며 그 매운 청양고추 섞인 라면으로 두 아들을 가르치고 집까지 사줬단다. 우리 민족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렇게 살아왔단다.
이제 소련에도 자유주의가 범람하여 백인들과도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오늘 저녁에 본 네 얼굴은 순수한 까레이스키(고려인, 대한민국인)였다. 너는 오늘 사할린을 대표하는 소련 민속공연단원 20명 중에서 제일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후예임을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져라. 바이칼처럼 맑고 투명하고 기품 있는 합창과 폴카춤을 공짜티켓으로 봐서 미안하다. 내 생전에 사할린에 갈 일이 있으면 ‘에트노스’ 아동합창단 자료를 뒤져서라도 빚진 너의 노래에 감사를 표하마.
박 안겔리나! 그레이트 코리언. 사할린에서 150년 만에 귀환한 작은 새. 소련의 심장 모스크바를 거쳐 세계를 향한 힘찬 날개를 펼쳐라. 너는 모르겠지만, 일제의 징용과 스탈린의 강제이주를 이기고 다시 돌아와 너를 기른 것은 사할린이지만, 너의 혼은 백절불굴의 대한국인의 표상이란다. 네가 부른 “명예”라는 축가를 다시 읊조리며 모국에서 너와 닮은 수만은 국민들이 너와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되도록 한국에서 TV를 보지 말고 친구들과 길거리를 쇼핑하거라. 딱정벌레처럼 무장을 한 경찰들이 보이면 얼른 채널을 돌려라. 짧은 모국여행에서 좋은 추억만 가지고 사할린으로 편안하게 돌아가거라.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어른으로서 미안하기만 하구나. samsohun@hanmail.net
*필자/삼소헌 이래권. 작가.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