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자라는 것은 다른 나무와 영양분을 나누기 때문이다. 산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도 모두 다른 방식으로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샘솟는 헌신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고 자기 자신까지 감동받게 한다. 어떤 신문에서 이런 글귀를 보았다. ‘아직도 세상에는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들이 많다.’ 라는 기사다. 그래서 사회가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이 길은 우리보다 앞서 살던 사람들이 개척해 놓은 길이다. 산을 오르다보면 어떤 길은 사람들의 수많은 발자취로 인해 선명하지만, 어떤 길은 우거진 풀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다녔던 길은 그렇지 않은 길보다 안전하고 편하다. 그러나 안전한 길로만 다니면 산 정상에 떠 빨리 오를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가 처음 출범하면서 제시한 국정철학이 개혁과 창조였다. 개혁이란 무언가 지금까지 관습에 젖어 있던 것을 새롭게 바꾸는 과정에서 누적된 적폐를 폐기하고 새로운 경영마인드로 바꾸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이나 지금이나 개혁은 진행되지 않고 있으며, 창조는 아예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대통령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참모들이나 정부, 국회에서 뒷받침을 해 주어야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지지부진하다.
이런 개혁을 대구부터 시작 하자는 것이다. 개혁과 창조는 우선 나와 반대에 섰던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뜩이나 보수꼴통이라고 비평을 받고 있는 이곳 대구에서 모두가 자기편만을 고집하면 결국 지금의 정부가 곤혹을 치르는 개혁 정책과 다를 바 없다. 상대를 받아들이는 정책은 공존을 의미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개혁과 창조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정부는 개혁과 창조를 외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 들였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와 국민들과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보듬어 안고 정치를 하고 있는가.
몇몇 사람들이 대통령을 보좌한다고 둘러앉아서 오히려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성해 볼 일이다. 대한민국 공직사회에서는 늘 관습에 젖어있어 쉽게 바꾸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복지부동’이나 ‘철밥통’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이란 관습에 젖어 있는 마인드를 과감하게 바꾸어 보는 것이 개혁이다. 창조도 혼자 고집스러운 것보다 더불어 사는 진리를 펼치는 것이 창조의 지름길이다.
지금껏 스스로 길을 만들기 보다는 남이 먼저 만들어 놓은 길을 이용하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한 번쯤 습관처럼 몸에 밴 모든 것을 거꾸로 생각해 보는 것도 개혁과 창조의 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이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겠지만, 때로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개혁이고 창조의 꿈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대구에서 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시선을 조금 더 다른 쪽으로 돌려보자. 아이들 말 중에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되나’라는 말이 있다. 바로 순수를 망각한 기성세대에 대한 비아냥거림이다. 바꿔야 한다. 제일 먼저 공직사회부터 바꿔야 한다. 한때 마음을 비운다는 말이 대 유행을 했다. 물론 전혀 마음을 비우지 않는 정치인들로 인해 지금은 냉소적 짙은 우스개로 떨어진 감은 없잖아 있지만, 얼마나 좋은 말인가. 마음을 비우는 것이나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이 얼마나 개운하고 깨끗해지는가.
또 ‘남의 말을 좋게 합시다.’라는 슬로건으로 언론사들이 범국민적으로 내걸은 말이 있었다. 남의 이야기를 좋게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남의 이야기를 좋지 않게 했다는 이야기다. 이 얼마나 웃기는 얘기 인가. 요즘 세 사람만 모여도 한 사람이 화장실을 못 간다는 우스갯말도 있지 않은가. 남은 두 사람이 화장실 간 사람을 욕할까봐서란다. 참으로 씁쓸한 조크가 아닐 수 없다.
원본 기사 보기:
브레이크대구경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