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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대의 변수 김평일 행보 주목하라!

김평일, 1998년부터 폴란드 대사로 임명돼 현재까지 대사직 수행

박관우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4/08/05 [11:25]

필자가 브레이크뉴스에 최초로 칼럼을 기고한 시기가 2008년 9월인데, 현재 폴란드 주재 북한대사로 있는 김평일 관련 칼럼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김평일이 1998년부터 폴란드 대사로 임명되어 2014년 8월 현재 변함없이 대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대사라는 직책이 고위 외교관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동일한 국가에서 1,2년도 아니고 무려 16년 동안 재임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고 생각된다. 

 

▲ 김평일     ©브레이크뉴스

 

김평일은 필자가 북한의 인물들 중에서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와 필자의 생일이 같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김평일은 1954년 8월 10일생이며, 필자는 1963년 8월 10일생이라는 점이다.

 

이런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 기사를 통하여 김 대사의 사진을 처음 본 순간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한눈에 파악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복형이 되는 김정일 위원장이 2011년 12월 17일 사망하였으니 어느 덧 세월은 흘러 3주기를 앞두고 있다.

 

그 오랜 세월 북한의 최고지도자로서 무소불위의 위세를 떨쳤던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막내아들인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면서 그야말로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3대 세습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본래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김정은 보다는 김평일이 되기를 희망하였다.

 

그 이유는 김정은은 나이가 젊은데다가 엄밀히 말하여 김일성의 손자,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점 이외에는 지도자로서 특별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북한의 최대의 변수는 김평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김평일은 누구인지 예전의 관련 칼럼을 통하여 언급한 바 있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한번 소개한다.

 

김평일은 1954년 8월 10일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성애 사이에 2남 1녀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는데 위로는 누나인 오스트리아 주재 북한대사 김광섭의 부인 김경진이 있으며, 아래로는 남동생으로 독일주재 북한 대표부 참사관으로 재임하다가 2000년 5월에 사망한 김영일이 있다.

 

특히 김경진은 1952년생으로서 사진이 전혀 공개된 적이 없을 정도도 베일에 쌓여 있는 여성이라 할 수 있는데, 그나마 유일한 정보는 생모인 김성애를 닮아서 키가 크고 서구적인 미모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김평일이 그동안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기로 하자.

 

1970년 남산고등중학교를 졸업한 것을 시작으로 1977년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였으며, 1978년 인민무력부 군관을 거쳐 1978년 ~ 1981년 8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였으니 이 정도면 군사학의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 1981 ~ 1983년 최초의 해외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 첫 소임은 유고 주재 북한 대사관의 부무관이었는데, 이는 장차 다가 올 오랜 외국생활의 전주곡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그 이후의 행적인데 1984 ~ 1988년 인민무력부 작전국 부국장의 직책을 맡은 것인데, 대좌급으로 알려져 있으며, 군부의 핵심요직이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군부에서 김평일에 대한 신망이 투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 주석도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김평일을 신임하였다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김일성 생전에 군부를 김평일에게 일임하려고 하는 구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 대사가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게 된 계기는 1980년 제6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일이 공식적인 후계자로 확정이 되면서 후계자 경쟁에서 결국 밀려 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김정일로부터 김성애와 함께 곁가지로 분류가 되었으며, 일정기간 군부의 여러 요직을 맡기도 하였으나 결국 1988년 8월 헝가리 대사를 시작으로 공식적으로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그 이후 불가리아,핀란드를 거쳐 1998년 1월 폴란드 대사에 재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가 외형적으로 보기에 대사의 소임을 다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실상 유베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문제는 김정일의 집권시에는 후계자 경쟁에서 밀렸으니 그런 결과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에도 변함없이 해외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대사는 김일성의 젊은 시절을 연상할 정도로 많이 닮았으며 더불어 5개국어를 소화할 정도로 유창한 어학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오랜 해외생활에서 터득한 경험으로 인하여 국제정세에도 밝은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으니 이 정도라면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김 대사도 필자가 파악하지 못한 단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현재 집권하고 있는 김정은 보다는 지도력에 있어서 안정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브레이크뉴스를 통하여 여러 차례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하여 그의 평양귀환을 촉구한 바 있으나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김평일의 가족관계를 소개한다면 부인 김순금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김인강이며, 딸은 김은송인데, 북한의 장성과 혼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그의 부인이 되는 김순금에 대하여 언급한다면 한마디로 신비의 베일에 쌓인 여성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 그동안 언론에 공개된 적이 전혀 없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정보는 김평일의 부인으로서 같은 나이인 1954년생이라는 점이다.

 

물론 현재 김순금이 권력핵심층에서 멀어져 있는 입장이라는 측면도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신분상의 위치로 볼 때 김일성의 며느리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에 비하여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는 대외적으로 공개행보를 활발히 하고 있는데 과연 언제 김일성의 딸 김경진과 더불어 김순금의 사진이 공개될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김정은이 김정일의 뒤를 이어서 권력을 승계한지 3년차가 되어 가고 있는 시점인데 무엇보다도 북한과 중국의 이상기류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김정일 시절에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라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그동안 북한의 강력한 후원국으로 알려져 왔던 중국이 시진핑이 국가주석이 된 이후로 북중관계에 있어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초에 시진핑 주석이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1박 2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이미 방문한 바 있지만 놀랍게도 그가 아직까지도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결코 예사롭게 볼 수 없는 사안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김정은 역시 집권 3년차에 이르도록 중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는 기회만 되면 중국을 자주 방문하였던 김정일의 행보와 대조적인 모습이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으로 보는데 무엇보다도 양국의 정상이 회담을 하기에는 그 레벨이 맞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시진핑은 1974년 공산당에 입당한 것을 시작으로 저장성과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를 거쳐 2007년 중앙정치국상무위원회 위원,공산당 중앙당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2008년 3월 ~ 2013년 3월 중국 부주석을 역임하였다가 결국 공산당에 입당한지 39년만인 2013년 3월 중국최고지도자인 국가주석의 자리에 올랐으니 그야말로 정치인으로서 다양한 경력을 쌓은 끝에 이루어진 정상적인 절차를 밟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비하여 김정은은 2009년 1월 8일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초고속 승진을 하여 2010년 인민군대장을 시작으로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는데 이는 경력의 결과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형식상에 불과한 직책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고 결국 2014년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되면서 실질적인 권력을 승계한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정상적인 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에 의하여 국가주석까지 오른 시진핑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본다. 

 

이러한 요인에다가 시진핑이 여러차례 핵무기의 폐기를 요구하였지만 거기에 대하여 거부의사를 밝히고 있으니 이런 북한의 지도자를 시진핑이 좋게 보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거슬러 올라가서 필자가 김평일 관련 칼럼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2008년 8월중순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진 것으로 부터 비롯되었다.

 

김정일이 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후계구도의 물망이 떠오를 때 거기에 김평일이 포함되었던 것은 당시 그의 위상이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결국 김정일의 후계자는 최종적으로 그 이듬해인 2009년 1월 8일 현재의 김정은 제1위원장으로 내정되었던 것인데 필자는 요새의 북한 정세를 분석하면서 만약에 당시에 김평일이 후계자가 되었다면 중국이 북한을 먼저 방문하지 않고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그런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으로 본다.


필자는 김평일이 비록 후계자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김정은이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사적으로는 숙부가 되는 김평일을 폴란드에서 조속히 평양으로 귀환시켜 개혁-개방의 진두지휘를 맡겨야 한다고 누차 주장하였지만 전혀 반영되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지난 7월 30일자 브레이크뉴스에 “북,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 고통 잊지말자!”제하의 칼럼이 게재된 바 있지만 만약에 김평일이 집권하였다면 북한인권유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정치범수용소가 해체까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의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성품으로 볼 때 어떤 식으로든지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김평일이 우리나라 나이로 61세가 되는데 그야말로 중년 시절은 거의 외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가 북한에서 주민들을 위하여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북한의 장래를 생각하여 볼 때 아쉬운 심정 금할 수 없다.

 

여기서 그의 나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은 시진핑이 김평일보다 한 살 위인 62세가 되니 이런 것으로 보더라도 만약에 시진핑과 김평일이 정식으로 회담을 하게 된다면 양국의 발전을 위하여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필자는 김평일에 대하여 과거 군부에서 신망이 두터웠다는 사실을 결코 예사롭게 보지 않으며,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현재 북한 어딘가에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은 그의 지지세력이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한 이후 3년이 지난 현재의 북한 정세를 보면 한마디로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구체적으로 2013년 12월 김정은의 고모부로서 그동안 후견인의 역할을 하였으며, 중국과 각별한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던 북한의 2인자 장성택이 처형당하고 더불어 그의 고모로서 북한이 내세우는 백두혈통의 상징적인 존재인 김경희가 심지어 사망했다는 설이 나오는 것을 통하여 볼 때 북한은 현재 정상적인 상황이라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와 더불어 북한의 최고 권력자라 할 수 있는 김정은을 풍자한 동영상이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예전의 김일성,김정일 시절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김정은의 현재의 권위가 김일성, 김정일이 가지고 있던 권위에 비하여 현저히 실추되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유력한 증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김정은은 이제 더 이상 기존의 노선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최대의 위협이 되고 있는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오기를 촉구한다.

 

덧붙여서 필자가 북한의 최대 변수라고 생각하는 그의 숙부 김평일을 더 이상 폴란드 대사로 머물게 하지 말고 과감히 평양으로 귀환시켜 그에게 개혁-개방의 전권을 위임하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김정은이 김평일이 김일성의 아들들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상징적인 존재라는 점을 직시하고 16년 동안 폴란드 대사로 재임하고 있는 그를 과감하게 중용하여 북한 개혁-개방의 전권을 위임하기를 재차 촉구하며, 그렇게 하는 것만이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새롭게 변신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확신한다. pgu77@hanmail.net

 

*필자/박관우.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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