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파동’이 연내 마무리 형국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검찰수사의 방점이 ‘문건유출, 박관천 경정-고 최 경위-한 경위’로 찍히는 양태다. 막판 JTBC의 한 경위 관련보도가 새 쟁점으로 부상했고, 청와대의 ‘가이드라인’ 논란과 함께 일말의 여지를 남긴 상황이다. ‘진실’공방이 지속될 개연성이다. ‘책임’소재를 다툴 일 역시 남았다.
검찰수사에 대한 ‘납득’ ‘신뢰’ 여부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청와대가 ‘정윤회 문건’의 고소주체인데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찌라시’로 일축한데 따른 것이다. 더욱이 청와대는 사태 초부터 사실상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문건작성·유출배후로 지목해 압박했다. 또 청와대를 중심으로 조 전 비서관을 중심으로 한 ‘7인 모임’이 문건유출을 주도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검찰이 ‘7인 모임’은 없는 걸로 잠정결론 내면서 그 실체의 부재가 확인됐다. 청와대의 공세는 무위로 돌아간 데다 도덕성마저 상처 입게 됐다. 청와대의 초반 부실한 위기대응이 결국 의혹과 불신을 키운 결과를 초래한 형국이다. 검찰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통령이 관련 언급을 이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청와대가 흠집과 불신을 자처한 ‘자충수’를 둔 꼴이다.
‘정윤회 파동’의 핵심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의혹이다. 항간의 ‘설(說)’로만 회자되던 이 사안이 관련문건유출 및 언론보도로 정국을 뒤흔든 결과를 초래했다. 뒤따른 관련자들 간 진실공방 와중에 유출혐의를 받던 고 최 경위의 자살이란 파국마저 불렀다. 고 최 경위-한 경위에 대한 청와대의 ‘회유’ 의혹마저 불거졌으나 JTBC-청와대 간 공방 속에 진실은 여전히 베일 속에 머물고 있다.
검찰의 수사포커스 역시 문건유출자 및 과정에 맞춰진 채 마무리될 상황이다. 하지만 세간의 의혹과 불신은 여전한 채 논란이 숙질 분위기가 아니다. 과연 검찰수사대로 ‘박-최-한’ 세 사람에 책임을 묻는 걸로 논란과 의혹 등이 마무리될지 여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부호가 찍힌다. 당초 문건유출 진원지이자 관리주체인 청와대는 과연 책임선상에서 빠져야 하는 걸까.
대통령 지근 권력암투의혹 불씨가 된 ‘정윤회 문건’을 박 경정이 작성한 건 올 1월6일이었다. 열 달 후인 지난 11월28일 ‘세계일보’가 해당문건을 보도하면서 불씨는 초대형 폭탄이 돼 터졌고 연말 정국을 뒤흔든 폭풍이 돼 돌아왔다. 문제는 청와대가 지난 1월 당시 이미 문건의 존재 및 내용을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 후 4~6월 민감한 문건들이 유출된 사실을 파악하고도 제대로 대응을 않았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청와대가 조기에 의혹불씨를 규명 않은 채 묵살하다 스스로 폭탄으로 키운 형국이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검찰수사결과가 나오기도 전 “문건은 찌라시”라고 성급하게 단정하면서 마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모양새가 됐다. 더해 청와대 일부에서 ‘7인 모임’ 배후 의혹설을 제기하는 자충수를 뒀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여론불신을 증폭시킨 단초를 제공한 양태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지난 1월 당시 ‘문건(정윤회가 청와대 십상시와 밀착해 국정을 농단한다는 동향정보가 담긴)’을 보고받았다. 하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사실상 묵살했다. 청와대는 “허무맹랑한 얘기에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검찰 수사에서 해당 문건은 박 경정이 미확인 항설들을 취합한 수준인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하지만 문건내용은 극도의 민감한 사안이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청와대의 단순 묵살은 불신을 두고두고 키운 치명적 패착이었다. 최소한 사실 확인 등을 통해 해당 문건의 사후 조치보고서를 남겼다면 작금의 큰 혼란을 키우진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 문건유출 상황에 대한 청와대의 관련대응 역시 부실로 점철됐다.
청와대 문건 대량유출이란 초유 사태 속에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은 오창유 전 행정관으로부터 지난 6월 초께 외부로 유출된 128쪽짜리 청와대 문건사본을 전달 받았다. 문건엔 박지만 EG회장과 부인 서향희 씨 관련 민감한 사안들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대대적 조사를 통해 유출주체 및 경위 등을 밝히는 대신 사건을 조용히 덮었다.
“오 전 행정관이 문건출처를 밝히지 않아 방법이 없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의혹불씨를 살려둔 청와대의 실책이었다. 진위여부와 무관하게 민감한 사안이 담긴 문건이 내부에서 생산된 데다 외부로 유출됐는데도 안이한 대응이 이어진 것이다. 특히 청와대 세계일보 보도 직후 언론사를 검찰에 고소하는 강수를 뒀다.
검찰수사를 통해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함의였으나 수사결과가 나오기도 전 ‘꼬리표(짜 맞추기 수사)’가 붙었다. 대통령 지휘 아래 있는 검찰에 박 대통령이 ‘터무니없는 찌라시’로 규정하고 일축한데다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두둔하는 등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는 논란을 자초한 결정적 실책으로 보인다.
향후 검찰수사가 어떻게 귀결돼 던 ‘정윤회 파동’ 논란 및 불신기류는 좀체 숙지지 않을 전망이다. 더불어 국정컨트롤타워로서의 청와대 도덕성도 상처를 피할 수 없게 된 형국이다. 박 대통령의 리더십 역시 일말의 훼손이 불가피해진 모양새다. 이번 사태의 근본해결책인 인적쇄신과 청와대 인사시스템개혁 등 논의여부도 불투명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