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말로 사수와 부사수로 임명하여 왜국의 노략질의 원인이 국력상승인지, 찢어지게 가난하여 제도권을 벗어난 해적질로 생계형 범죄를 일으키는지는 알아보기 위해 도요토미 관백에게 보냈던 것이다. 가을 고구마 밭을 습격하는 멧돼지 해적질을 관리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실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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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와 기모노 유카다 환대와 조선의 양물을 실컷 누정(漏精)하고 대접받은 김성일은 도요토미 휘하들의 접대에 그만 정신이 혼미하여 귀국 후 선조에게 왜놈은 아직 미개하고 훈도시로 겨우 음곡양봉의 치부를 겨우 가리는 족속이라 전쟁을 일으킬 힘이 없으니 궁녀나 끼고 주색잡기를 계속해도 무방하다 보고하였다. 깐깐한 황윤길은 대마도에서 서양의 신무기를 개조한 조총을 두 자루를 가지고 돌아왔다. 또한, 왜놈들이 조선의 궁수를 무력화할 가공할 신무기를 득템했으니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상기하여 군사력 증강을 목이 쉬도록 간언하였다. 그러나 선조는 영계 궁녀들 치맛자락과 예스맨 노프러브럼형의 해바라기 손바닥 싹싹 비비기 간신들의 간언에 그만 정신을 놓고 말았다.
때는 1590년이었고 임진왜란 이년 전이었다. 조선은 명(明)에 빌붙어 사대의 예를 갖추고 빅브라더에게 처녀와 특산품을 바치며 손바닥만한 조선 땅에서 온갖 우물안 개구리왕 노릇에 재미나게 호령하는 군주의 역할에 흡족해했다. 이에 반하여 왜는 포르투갈 화란 상인들에게 서양의 항해술과 첨단 화약 총포술을 속도전으로 발전시키던 때였다.
이 시절에 임진각 중류 연천쯤에서 대대로 뱃사공을 내림으로 가업을 이어온 무지렁이 백성 천 씨가 살고 있었다. 가세가 오를 것도 내릴 것도 없는 천 씨에겐 다섯 남매가 있었으나 장질부사 역병으로 다 죽고 꼽추 아들이 서른이 넘도록 아랫도리를 풀지 못하여 대가 끊길 지경에 이른 애물단지 독자 아들과 부자 뱃사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겨울에는 강바닥이 얼어붙어 백성들은 뱃삯을 아끼기 위해 깡다구로 가을 넘어지다 일어서다 건너는 통에 벌이가 시원찮아서, 여름 가을에 잡아놓은 임진강 참게장과 잉어말린 것을 시래기에 된장을 풀어 연명하며 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빈궁한 삶이었다. 애비 천 씨는 아들의 몰골과 허천나게 가난한 뱃사공의 아들이자 꼽추인 아들의 후세를 잇는 일이 평생 가슴앓이로 괴롭혔다. 누구에게 혼처를 부탁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해서 지참금을 듬뿍 얹어주며 처자를 사오기도 먼지 풀풀날리는 궁색한 살림이라, 이마에 늘어가는 흰머리처럼 고민은 깊어갔다. 흐르는 강물처럼 왔다가 그냥 갑니다. 울어줄 사람 하나 없는 부자 몽당귀신으로 가니 조상님들이여 굽어 살피소서. 라며 허공의 새벽과 밤하늘에 두손 합장하여 부질없는 강복을 빌며 살아가는 무지렁이 백성에게도 간절한 바람을 천지신명이 들어줄 것이라며 십여 년 넘게 허투루, 한편으론 진심을 담아 어둠의 하늘에 총총한 별들에 소원을 빌었다.
세월이 조금 흘러갈 즈음, 관록의 서인 황윤길의 말대로 왜군은 고니시 유키나가 제일선봉장 카토 유키나가 제이돌격대, 와카자키 야스하루를 수군대장을 삼아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하고 경복궁을 불태우고 속도전으로 북진하여 명나라와 한판 벼르며 올라왔다. 왜군의 쾌속북진 소문은 금세 임진강 천 씨 부자에게도 당도했다. 천 씨는 고민했다. 배를 버리고 도망치자니 현감의 현 위치 옥쇄명령을 거부하면 전란 후 능지처참 당할 것이요, 명을 따르자니 사람을 죽여 코와 귀를 베어 나무궤짝에 소금에 절여 가져간다는 전율스런 왜군의 포악성을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천 씨는 고심 끝에 몇 년 전 임진강을 공짜로 도강하면서 한마디 금과옥조를 건넨 스님의 말을 기억해냈다. 생로병사 흥망성쇠를 피할 자 그 누구이던가? 죽어도 살고 살아도 죽는 일체유심조를 상기하시오. 라는 고승의 백발을 날리며 턱의 수염을 쓰다듬던 말을 상기하며 결심했다. 그래! 죽어도 반역은 아니고 충성스런 백성으로 짱돌비석이라도 얻을 것이지만, 도망치면 부관참시 삼대 혈족이 화를 면치 못한다는 현감의 토담길 포스터를 본터, 그래 죽자! 용기를 냈다.
한양에서 올라오는 소문은 시시각각으로 공포의 핵분열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양반들이 엽전과 은전 포목을 건네며 임진강을 건네달라고 읍소작전과 뇌물로 천 씨 부자를 어르고 협박했다. 천 씨는 알고 있었다. 그 많은 명군의 침습도 일이년이면 끝나고 평화는 새롭게 시작되었다. 그래. 죽지만 말고 개기며 어떻게든지 살아남자. 게다가 천 씨 부자는 나루터 뒷산 동굴이 있어 여름철에 말린 물고기를 저장하는 은밀한 동굴이 있었다. 천 씨는 부자들이 건네는 도강료 금은보화를 꼽추 아들에게 건네 동굴 깊이 숨겨두라 일렀다.
계절이 바뀌어 임진강물이 불어나는 홍수철이 되었다. 빗줄기를 뚫고 달랑달랑 금세라도 꺼질 듯한 횃불과 함께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네 이놈! 어서 후딱 배를 비워 폐하를 모셔라!”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호위대장이 천 씨 부자 앞에 나섰다. “뉘신 가요? 손님들을 순번대로 태우고 있으니 쬐끔 기다리쇼!” 이미 나루터엔 목숨을 건 백성들이 도강료를 준비한 채 아귀다툼으로 배에 덤벼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원 8명인 나룻배가 뒤집어져서 왜놈의 추격 화살과 창검에 참새구이로 전락할 판이었다. “죽고 사는데 지휘고하는 없는 법이요. 우선 어린애와 노인들을 먼저 보내고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들은 나중이요. 이것이 위민정사요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맞으니 기득권 버리고 살려거든 줄서시오 줄!”
뱃사공은 용기를 내어 호위무사의 창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자 호위무사들이 백성들을 베고 찌르기 시작했다. “무엄하기가 황천에 이르렀구나. 이런 불학무식한 천덕스러운 무리들 같으니라고…….” 선조의 호위무사 새치기 무력에 백성들은 잠시 흩어지며 짱돌을 집어 들고 호위무사들을 공격했다. 아무리 창검으로 무장했으나 인해전술로 덤벼드는 짱돌공격에 말들이 놀라 무사들이 땅에 떨어지고, 가운데서 비 맞은 생쥐같은 선조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다들 그만 두어라. 민주시민답게 우리들도 줄을 서자꾸나!” 선조가 비틀거리며 호위무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잠시 혼란스런 나루터가 진정되었다. “다 짐의 부덕의 소치이니라. 백성을 더 이상 다치게 하지 말라.” 호위무사들과 따르던 궁녀들이 목 놓아 울어댔다.
“내 비록 임진각 쪽배 뱃사공이지만 폐하를 어찌 왜놈 손에 죽게 하여 종묘사직을 파하게 하는 대역죄를 지으리오. 폐하 어서 오르시지요. 정원은 8명이니 충신 순서대로 냉큼 타시오.” 왕과 문무백관들이 순서대로 나룻배에 올랐다. 임진강을 오르내리는 동안 열 받은 투사형 백성들은 왕의 무리에 짱돌을 던졌다. “ 선조의 이마에서도 피가 흘러내렸다. ”시방구리들! 주지육림 하다가 지네들만 살겠다고 로케트로 토껴? 저런 자를 군왕이라 문무백관이라 모셨으니 다 우리가 무능한 탓이여. 이 난이 끝나면 성군을 새로 뽑아야 갰구먼....“
왕의 무리가 다 도강하고 쪽수 정수에 밀려 가슴에 보자기를 안은 상궁 하나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러댔다. “나만 살면 뭐해유? 열넷에 입궁하여 허벌라게 수라간 쫄따구 상궁으로 불만 때고 살아왔는디, 오늘 상전들을 보니께 겁나 실망스럽구먼요. 늙은 부모님은 한양 도성 밖에서 포목점을 하시는디 아마 왜놈들 손에 돌아가셨을 거예요. 불타는 저잣거리를 멀리서 보고 왔으니, 부모도 못 모시는 불효에 문무백관을 모셔야 불때기 상궁밖에 더 되겠는가요? 오늘 내가 죽어 부모님 곁으로 갈테니 잘들 계시오.”
상궁이 임진강물에 뛰어들었다. 서서히 회오리치며 강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천 씨 뱃사공은 순간 깨달음을 얻었는지 아들에게 소리쳤다. “이놈아 뭐해! 어서 저 상궁을 구하지 않고?” 꼽추 아들은 등은 굽었을지언정 꼬맹이들 개구리수영 보다는 조금 나은 실력을 굽은 등 안에 감추고 있었다. 나름, 패럴 올림픽에 나가면 3등은 할 상이었다. 부친의 말이 무섭게 상궁을 향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을 연거푸 내뿜던 상궁은 축 늘어진 몰골로 강가로 끌려나왔다. “애비 걱정 말고 어서 저 상궁님을 동굴로 모시거라!” 상궁과 꼽추 아들은 동굴로 가고 한참 후에 아들이 돌아왔다. “아부지 잘 데려다 놓았구만요. 포목으로 옷을 감싸고 생쌀이 있으니 물에 불려먹고 꼼짝 말라고 했으니 됐지요?” “잘혔다! 태어나서 밥값 한번 제대로 했구나!”
이여송의 4만5천 일차 구원병으로, 의주까지 줄행랑쳤던 선조는 다시 임진강 천 씨 나룻배를 타고 한양으로 은 이십 냥을 뱃삯 구명금으로 후사했다. 또한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와 카토 기유마사는 천 씨 부자 뱃사공을 죽이지 않고 역시 포목으로 촌지를 건넸다. 늙은 사공과 꼽추 아들을 굳이 죽여 진퇴로 발길을 막는 어리석음을 자청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경복궁 불때기 상궁은 어찌된 영문인지 임진강 뱃사공 부자를 떠나지 않았다. 도강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밥을 해놓고 꼽추부자에게 “진지 드시지요?” 라며 극진한 예를 갖추었다. 늙은 백사공은 속으로 작전성공에 쾌재를 불렀다. 임란이 끝나고, 동굴에 숨겨 두었던 포목과 은전을 처분하여 전답을 사고 기와집을 지었다. 꼽추 신랑과 수라간 불때기 상궁은 임진강 농어민들의 축복과 선조의 축복 아래 奉國君(봉국군) 이란 칭호를 받고, 후손들이 출사하여 그 직위가 진사에 이르렀다.
선조는 문무백관을 거느렸으나 왜국에 나라를 내주고 멍의 이여송 덕에 겨우 조선의 종묘사직을 회복했다가,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한일합방이란 치욕과 일제 36년 식민지 개돼지 백성과 친일 간신들을 만들어 오늘의 사대와 궁궐정권 폐쇄적 정사로 불통의 시대를 잇게 했다.
십상시 문고리 3인방, 불통으로 구호만 요란하고 벌서부터 차기정권을 놓고 내분의 대립과 분열의 새누리당에 국민들이 분개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기인한 봉건적 패권주의에서 시작된 것이다. 늦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대통령의 권력분할과 전문가그룹이 운영하는 책임총리제를 놓고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다. 백성은 더 이상 무능한 견인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이 정권을 염려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황윤길과 김성일을 가려내어, 신내각을 꾸리는 것이 박근혜 정권의 국민통합과 당정청 소통과 여야합의로 통일과 번영의 미래를 열 수 있는 전제조건임을 명심할 일이다. 임금인 선조도 백성들에게 짱돌을 얻어맞았다. 무식한 임진각 뱃사공만도 못한 청와대 내에 득실거린다는 여론이다. 5대 권력기관장을 휩쓴 멀티 영남 득세에 밀린 팔도의 신민들이 반기를 들어 대통령 지지율이 35%로, 임기 중반도 지나기 전에 레임덕의 전조다. 신속히 내각 개편으로 민심을 위한 정부로 거듭나길 기원해본다. samsohun@hanmail.net
*필자/삼소헌 이래권. 작가.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