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재보선이 비록 미니멈급 선거에 불과하지만 품고 있는 남다른 의미다. 여야 어느 쪽에 ‘당근’을 주던 ‘채찍’을 가하던 그 여부는 유권자들 각자 고유 권리이자 선택이며 존중돼야 한다. 각기 정치성향을 한 표 행사를 통해 표출하고 선거결과에 수긍하는 게 민주주의의 원리다.
하지만 작금의 정치무대는 우려를 떠나 연민마저 일 정도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파동은 차지하고라도 모순투성이인 의료보험법 개정 등조차 지지부진한 채 표류하고 있다. 정치성향을 떠나 대다수 국민들이 수긍하는 딱 부러지는 정치를 못하고 있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야 각기 내외부적으로 ‘프레임’ 가르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번번이 국민들을 앞세우지만 실상 고질적 병폐인 ‘자신들만의 리그’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독선적인 여당과 행동 아닌 말로만 견제 모양새를 취하다 결정적 부분에선 슬그머니 야합해 넘어가는 야당의 모습에서 주권자인 국민들은 아예 안중에 없는 양태를 본다. 이 같은 이율배반이 유권자들의 외면과 분노를 자초하고 있다.
심부름꾼이자 단기권력 위임체인 여야정치권이 유권자들을 제대로 대변 못하고 있다는 건 명백한 직무유기다. 선거 때만 ‘당근’을 달라고 고개 조아려 읍소하다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들만의 ‘무대’를 연출하는 정치권이다. 그들의 어설픈 ‘연극’에 번번이 기만당하는 건 유권자들의 잘못된 선택 탓일까 아니면 이 사회의 오랜 고질적 업보일까.
여야로 무늬만 달리할 뿐 정치종사자들 대부분이 이 사회의 소위 좀 가진 기득권층에 속한다.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진 기대하는 건 무리란 생각이 드는 건 지난 역사가 말해준다. 그렇다면 최소한 뽑아주고 권력을 손에 쥐어준 유권자들의 의사만큼은 정확히 대변해야한다. 또 우리 사회 대다수 서민들과 힘든 계층에 대한 배려와 포용을 잊지 않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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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지난 총선과 대선을 통해 여야에 각기 나름 ‘당근’을 쥐어줬다. 하지만 받아먹은 여야는 제 역할을 제때 제대로 못하고 있다. 각기 ‘방향’을 정해줬는데 제대로 못가면 ‘채찍’밖엔 없다. 경고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울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이독경’은 정치권의 오랜 고질적 병폐다. 잘하면 ‘당근’을 더 주는 게 맞다. 아니면 ‘채찍’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 ‘선택-몫’이 늘 함께인 선거지만 ‘자업자득’이 만고의 이치이자 순리임을 제대로 각성시킬 필요는 있다. 모는 ‘말’을 잘 길들이고 주인을 제대로 인지시키려면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배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명령을 잘 안 듣거나 듣는 척하다 딴 짓하는 ‘말’은 갈아야 마차가 제대로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