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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꽃그림자놀이’ 출간

지은이 박소연...소설을 금지하던 시대 소설로 새 세상 꿈꾼 사람들 스토리

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15/04/30 [14:20]

▲ 꽃그림자놀이     ©브레이크뉴스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박소연 작가의 『꽃그림자놀이』가 최근 출간(나무옆의자)됐다.

 

이 책은 정조 치세기인 18세기 조선 사회를 배경으로 변화하는 시대상과 개인들의 욕망을 ‘소설’이라는 표현 양식을 중심으로 펼쳐낸 미스터리 소설. 귀신이 나온다는 폐가의 비밀스러운 내력을 파헤치는 표면적인 줄거리 속에는 문체반정으로 소설이 금지된 시대에 소설로 행복을 얻고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박혀 있다. 그것은 소설 속에 들어 있는 여러 편의 소설로 구체화된다.


작가는 아홉 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왜 이야기에 빠지는지, 오늘날 소설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다. 이 소설은 작가의 주장처럼 한국식 『천일야화』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여기저기서 출판의 불황과 한국소설의 위기를 진단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소설의 의미를 날카롭게 캐묻는 작가 박소연의 질문은 명백히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빈집에 출몰하는 귀신의 수수께끼와 위험한 책

 

서울에 와 친구 집을 찾던 시골 선비 조인서는 눈보라로 방향을 잃고 헤매다 어느 집에 때 이르게 핀 매화꽃을 보고 마음을 빼앗긴다. 뜻밖에도 그 집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면서 폐가가 된 곳이었다. 귀신 이야기에 숨은 내막이 있으리라 확신하던 조인서는 때마침 교리로 불리는 한 노인에게 내기 제안을 받는다. 빈집에 들어가 살면서 소문이 거짓임을 증명하면 백 냥을 내놓겠다는 제안이었다. 노인의 속셈이라며 친구가 만류했지만 조인서는 폐가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빈집에 들어가기로 마음먹는다.


조인서는 ‘유현당((幽玄堂)’이라는 현판이 걸린 서재와 대숲에 매료돼 한동안은 빈집에서 호기롭게 지내지만 동네사람들은 귀신 나오는 집에 사는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이 궁핍해진 그는 소설을 써 세책점에 팔거나 중국 소설을 번역하면서 생계를 꾸린다.


그러던 중 해마다 귀신이 폐가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날 밤 빈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조인서는 불을 땐 흔적을 찾아 아궁이를 뒤지지만 귀신의 정체를 밝힐 만한 단서는 잡지 못하고 불에 그슬린 소설책 한 권을 발견한다. 그 일을 계기로 조인서는 빈집에 얽힌 내력과 함께 유현당이 누구인지, 교리가 왜 자신을 빈집에 살게 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유현당은 서울의 조정 정치는 잘 모르는 시골 선비조차 전말을 들어서 아는 역모사건의 당사자였다.


조인서가 귀신의 실체에 점점 접근해갈 무렵, 유현당 집안의 이야기를 다룬 『아수라』라는 소설이 장안의 화제가 된다. 소설의 인기는 유현당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이는 작가가 누구냐는 의혹을 낳으며 반대 세력인 노론을 자극한다.


마침내 조인서는 귀신과 대면하고 전율하지만 더 큰 비밀과 위기가 그의 앞에 도사리고 있다.

 

소설은 재앙이 아니라 꿈이다

 

이 소설에는 당시 소설에 대한 민과 관의 상반된 인식이 흥미롭게 드러난다. 임금은 궁궐 서고에 있는 소설을 모두 불태우고 선비가 소설 읽는 걸 금지했다. 과거시험에서도 소설 문체가 보이면 아무리 문장이 뛰어나도 낮은 점수를 받았고, 문체가 고쳐지지 않으면 과거길이 막혔다. 한 학자는 소설을 탐독하느라 재상이 나랏일을 잊고 부녀자가 길쌈을 폐한다며 소설을 재앙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금하고 죄악시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욕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조정 대신 중에도 소설 폐인이 있다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고, 소설의 수요는 갈수록 늘었다. 세책점(책 대여점)이 성업했고, 신간 소설을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사람들은 소설에서 시대정신을 읽었고 꿈을 좇았다. 그럴수록 소설에 자신의 꿈, 자신의 목소리를 담으려는 욕망도 커졌다.


『꽃그림자놀이』의 인물들 역시 각자의 처지와 사연에 따라 소설에 이끌리고 자신의 소설론을 피력한다.


조인서는 원래 소설반대론자였으나 점차 소설에 대한 반발심이 사라지면서 소설을 쓰고 청나라 소설을 번역할 뿐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일에 위험을 무릅쓴다. 조인서의 친구 최린은 “소설은 보잘것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것의 힘을 증명하려는 문장”이라며 조선의 변화를 소설로 기록하겠다는 뜻을 품는다. 그는 과거공부를 접고 소설을 길을 가려한다. 기생 계심에게 소설 읽기는 공허와 황폐함을 이겨내는 힘이다. 그녀는 자신의 청루를 작가를 후원하고 소설을 마음껏 읽고 토론할 수 있는 문화 사랑방으로 만드는 꿈을 꾼다. 최린의 누이동생 란은 한글로 소설을 써 수컷이 지배하는 조선의 문체를 바꿔보겠다고 야심차게 선언한다. 그녀는 소설을 돌려보고 신간 정보도 나누는 동아리까지 꾸리며 소설 폐인으로서 열성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보이지 않는 작가가 있다. 이들은 모두 소설을 통해 변신하고 변화하는 꿈을 꾼다.

 

“이젠 다른 꿈이 생겼어요. 이 청루가 조심스럽게 그런 꿈을 꿔요. 작가들을 조용히 후원하면서, 독자들이 툭 터놓고 소설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고 싶어요. 소설과 독자는 늘어나지만 소설을 마음 놓고 이야기할 공간은 마땅히 없으니까요.” (84쪽)

 

“이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조선 사내들은 한글을 암글이라 부르며 천시하지만, 언문은 조선 말소리와 생각을 표현하는 데 막힘이 없어요. 그들이 만만히 보는 암글로 소설을 써보려고요. 조정에서 주도하는 문체반정과는 다르게, 수컷이 지배하는 조선의 문체를 바꿔보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182쪽)

 

설화, 민담, 역사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꽃그림자놀이’, 소설에 바치는 소설

 

소설 속에는 중심 사건의 전개와 발맞춰 주요 등장인물들이 쓴 소설을 비롯해 아홉 편의 소설이 등장한다. 도깨비감투, 온달과 평강, 도미 설화, 삼별초, 이어도 이야기 등 여러 설화, 민담, 역사를 다양하게 변주한 이 소설 속 소설은 상대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되기도 하고 앞으로 전개될 사건을 암시하기도 하며, 더 크게는 왜곡된 진실을 드러내는 무기로 쓰인다. 이들에게 소설은 “일종의 그림자놀이”다. “현실이 실체를 드러낼 수 없으니, 대신 그림자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 싸움과 탐욕으로 무고한 사람을 역모죄인으로 고발하는 아수라 같은 현실을 비추는 것도 소설을 통해 가능하다.

 

‘꽃그림자놀이’란 옛 선비들이 즐겼던 풍류 중의 하나로 빈 벽에 꽃 화분을 비추어 그림자를 연출하는 놀이다. 이때 조명과 화분의 위치 및 방향에 따라 다채로운 형상이 나타나는데, 참가자들은 그 그림자꽃을 보며 돌아가면서 시를 짓는다.


꽃그림자놀이는 이 작품에서 소설을 상징하는 비유로 쓰이는 동시에 실제로 소설 속에서 절묘하게 이용되어 스산하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작가 역시 꽃그림자놀이를 하듯 탁월한 이야기꾼의 솜씨로, 우아하고 날렵한 문장으로 이 소설을 빚어냈다.


작가 박소연은 소설 속 소설이라는 이 이야기들의 파노라마를 통해 소설의 본령에 다가가려 한다. 그는 “『꽃그림자놀이』를 쓰면서 나는 다른 어떤 장르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설로 읽지 않고서는 특유의 맛을 음미할 수 없고 본연의 향기를 맡을 수 없는, 소설이라는 묘령의 장르를 온전히 독자들에게 돌려주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이 이야기들은 소설의 위기 또는 소설의 죽음 앞에서 소설에 바치는 이야기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첫날밤을 치른 뒤 신부를 죽이는 왕에게 『천일야화』 속 셰에라자드가 하룻밤 목숨을 걸고 이야기하듯 나는 이 소설을 썼습니다. 문학의 가치를 재단하려는 이 시대에 맞서, 나는 온달과 평강을 불러내고 전설 속 이어도를 되살려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는 사랑과, 현실이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이상향의 별밭을 나는 마치 ‘꽃그림자놀이’가 빚어내는 파노라마처럼, 역사와 설화 속의 원천을 다양하게 변주해 오늘 이곳의 이야기로 재현하려 했습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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