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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대전의 원흉 아돌프 히틀러 |
2차 대전 유태인 학살의 원흉 히틀러의 10대 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아우구스트 쿠비체크가 쓴 「내가 본 젊은 히틀러」(the young hitler i knew)의 영어판 완역본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내용은 히틀러가 10대 시절 스테파니 이삭이라는 소녀에게 홀딱 반해있었다는 부분으로, 히틀러가 당시까지만 해도 유태인에 대한 혐오 같은 관념이 없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며, 특히 그녀를 납치해 동반 자살하는 상상까지 했다는 내용에서는 결국 생의 끝을 동반자살로 마무리한 그의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엿보게 된다.
한 눈에 반한 금발머리 아가씨 4년 간 짝사랑
쿠비체크는 스테파니에 대한 히틀러의 심취 - 16살 초반부터 4년이나 지속된 - 에 대해 기록했다.
1905년 봄 어느날 저녁 그들은 린츠시의 란트슈트라세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아돌프는 내 팔을 잡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건너편에 모친의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날씬한 금발의 소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으며, 단호하게 덧붙였다. '알아둬. 나 그녀를 사랑하게 됐어'라고…"
쿠비체크는 스테파니 이삭에 대해 - '이삭'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로, 쿠비체크는 제3제국 시기 출판된 초판본에서는 유태인으로 추정되는 그녀의 성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음 - '기품 있는 외모의 소녀로, 키가 크고 날씬했다'며, "밝고, 감정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눈이 매우 아름다웠으며, 눈에 띄게 갖춰 입은 옷과 태도는 그녀가 좋은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회고했다.
이것이 두 십대 소년이 스테파니에 대해 처음 알게된 전부였지만, 그들은 매일 저녁 5시 경 거리 근처에 서서 그녀가 다리를 건너 큰길로 오는 것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스테파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어쩌면 부적절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둘 다 그 아가씨와 인사 한 번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돌프는 어느 날 그녀와 눈인사를 한번 나누게 되었고, 그녀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으며, 그 순간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부르주아지들의 습속에 대해 경멸과 비난을 쏟아내고는 하던 히틀러는 그것이 스테파니와 관련된 일인 경우에는 수줍음 때문인지 너그러워지고, 부드러워졌다고 쿠비체크는 회상했다.
란트슈트라세 거리는 린츠에 살던 시절 두 친구가 자주 만나는 곳이었는데, 그곳에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작업을 거는 젊은 군인들이 많았고, 히틀러는 젊은 군인이 스테파니에게 수작을 거는 모습을 볼 떼면 격렬히 분노하고는 했다.
쿠비체크는 이런 그의 분노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가난하고 헬쓱한 얼굴의 젊은이였던 아돌프로서는 말쑥하게 제복을 차려입은 군인들과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경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히틀러는 자신의 매력과 유머감각을 키워서 그녀의 관심과 주목을 끄려고 시도하는 대신 뒤에 숨어 안달만 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라이벌들을 두고 "잘난 체하는 돌대가리"라고 뇌까리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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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아래)와 그가 연모했던 스테파니(위) |
쿠비체크는 그들에 대한 증오심이 히틀러에게 장교 집단 전체, 그리고 군대라는 집단의 모든 것에 대해 강고한 적의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히틀러는 그들이 코르셋(교정속옷)을 입고, 향수를 뿌리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바보들이 스테파니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것을 견딜 수 없어했다.
히틀러의 장교집단에 대한 혐오감과 불신 - 장군들에 대해 특별히 - 은 이후 그의 일생을 따라다녔다.
다행스럽게도 스테파니는 자신이 히틀러의 연모 대상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말 한번 못하고 머릿속으로만 죽였다~살렸다~
쿠비체크 회고록 「내가 본 젊은 히틀러」화제
"스테파니는 아돌프의 그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전혀 몰랐다. 그녀는 히틀러에 대해 조금 수줍지만 대단히 기억력이 좋고 충실한 숭배자의 한 사람 정도로만 인식했다."
"언젠가 그녀가 히틀러의 시선에 반응을 보이자, 그는 행복해 했고, 이전에 본적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스테파니가 평소처럼 그의 시선을 차갑게 외면할 때면 그는 이내 좌절하고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 전체를 파괴해버릴 준비에 들어갔다."
히틀러는 쿠비체크에게 스테파니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을 모두 알아내 달라고 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미망인이었으며, 그들이 사는 곳은 우어파(urfahr) 거리 근처로, 그녀의 오빠는 비엔나에서 법률 공부를 하고 있었다.
모든 여성성의 현현?!
16살부터 20살까지 4년 간 '아돌프에게 있어 스테파니 외에 다른 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스테파니는 모든 여성성의 현현'이었다.
히틀러는 자기가 좋아하는 오페라 가수와 스테파니를 비교하고는 했는데 그녀가 위대한 오페라에 출연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목소리와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고 간주하면서 "발키리*를 닮은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매혹되고 뜨거운 열정으로 타올랐다." *북유럽 신화에서 주신 오딘을 섬기는 싸움의 처녀들. 전사자를 고르는 자라는 뜻.
히틀러는 이러한 열정에 의해 'hymn to the beloved' 같은 사랑의 시를 셀 수 없이 많이 지었다. 어쩌면 그 시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이겠지만, 쿠비체크는 히틀러가 암송한 시 한 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스테파니, 고귀한 태생의 숙녀, 짙은 파란색의 하늘하늘한 벨벳가운을 입은 채 백마를 타고 꽃이 핀 들판을 건너는, 풀어헤친 금발은 그녀의 어깨로 흘러내리고. 맑은 파란 하늘이 위에 있네. 모든 것이 순수하게 빛나는 기쁨"
쿠비체크는 시를 낭독하는 아돌프의 얼굴이 강렬한 흥분으로 빨갛게 된 것을 기억했다.
4년 동안 내내 스테파니를 찬미했지만, 히틀러는 그녀에게 단 한마디 꺼낼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그녀를 만날 때 한마디도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
히틀러는 쿠비체크에게 자신이나 스테파니처럼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입을 통해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이 필요 없다며, 자기들처럼 특별한 사람들은 직감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자신의 시선과 생각들을 스테파니가 알고 있는 것은 물론 열심히 공유할 것이라고 히틀러는 확신했으며, 이러한 확신은 그가 자신을 모르는 여자 - 텔레파시를 교환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 에게 매달리는 힘이 되었다.
히틀러의 주장에 대해 쿠비체크가 '그렇다면 말 한번 나눠보지 않아도 스테파니가 특정 사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냐'고 의구심을 표하자 히틀러는 노발대발하면서 소리쳤다. "넌 특별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는 거야".
어쨌든 히틀러는 쳐다보는 것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고, 스테파니가 자신에 대한 격렬한 감정을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 다른 남자들에게 흥미를 가장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한 태도는 끓어오르는 질투심에 길을 터주었다.
히틀러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이 책을 소개한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당시 떠돌이 화가였던 히틀러가 엄마들에게 있어 남자의 직업은 그 남자의 이름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거절당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차라리 '스테파니는 자신이 다가와 그녀에게 청혼하기를 기다리는 것만을 바라고 있다'고 상상하는 쪽을 택했다고 해석했다.
그래도 춤만은 견딜 수 없었다
한편, 사랑에 빠진 히틀러가 가장 동요했던 순간은 스테파니가 즐겁게 춤추는 모습을 봤을 때. 스테파니의 취향이 자신과는 정반대의 특성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쿠비체크는 반 농담조로 댄스교습을 받으라고 말했다가 호된 비난을 들어야했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연회장을 상상해봐. 너는 귀머거리이고, 사람들이 움직임을 맞추고 있는 음악을 들을 수 없어. 그리고 목적도 없이 무감각하게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생각해봐. 미친 것 같지 않아?"
쿠비체크가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려 하자 히틀러는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아니. 절대로! 난 절대 춤추지 않겠어! 알아? 스테파니가 내 부인이라면 그녀는 춤을 추려는 일말의 욕망도 갖지 않게 될 꺼야"
스테파니가 춤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히틀러에게 압박감으로 작용했고, 갑자기 미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스테파니 납치를 진지하게 고려한 것이다. 그는 상세한 계획을 설명했고, 쿠비체크에게도 역할을 지정해줬다. 쿠비체크의 임무는 히틀러가 그녀를 납치하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에게 말을 걸어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이었다.
유태인 혐오는 단순한 정치적 도구에 불과했나
군인·군대 조직에 대한 혐오감이 더 두드러져
사랑의 도피 계획이 실행 자금의 부족으로 무산된 이후 히틀러는 자살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쿠비체크에게 "다뉴브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려고 한다"며,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하지만 스테파니도 나와 함께 죽어야한다"고 말했다.
"일단 한가지 계획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낸 이후 소름끼치는 비극의 각 단계 마다에 대한 설명이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쿠비체크는 회고한다. 그리고, 잘 알려졌다시피 40년후 히틀러는 자신의 일생에 있어 단 한 명의 배우자였던 에바 브라운과 동반자살을 결행한다. (사망 전날 결혼식을 올렸음)
꽃 한 송이로 생명을 구하다
히틀러가 동반자살을 꿈꾸던 어느날이었다. 스테파니에 대한 자포자기 상태에서의 계획이 결행에 들어가기 전에 히틀러가 다시 밝은 기분을 되찾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1906년 6월 린츠 꽃 축제에서였다. 축제가 열린 근처 거리로 나선 두 친구 바로 옆으로, 수많은 젊은 여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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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비체크의 기억에 의하면 스테파니의 꽃바구니에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장미 대신 붉은 양귀비, 나무쑥갓, 파란 수레국화 등 수수한 야생 꽃들이 가득했다. 환한 얼굴이 아돌프에게로 향했고, 스테파니는 그에게 내리쬐는 듯한 미소와 함께 가방에서 꽃 한 송이를 빼더니 그에게 던져줬다. 아돌프에게 나타난 효과는 가히 변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순간만큼 행복해 하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히틀러는 친구에게 말했다.
"그녀가 날 사랑해! 봤지.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있어!"
스테파니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녀의 타고난 관대함에서 비롯된 단순한 행동 하나가 그녀 자신을 납치 살해의 어두운 환상의 제물에서 구해냈다.
히틀러는 이후 몇 년 동안이나 그녀에게서 받은 꽃을 로켓(장신구의 일종)에 간직했다.
어쨌든 이일로 그는 다시 그녀 근처에 몰래 다가가 대화를 엿듣던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느날 그는 쿠비체크에게 '몇번 그녀 가까이로 따라가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스테파니가 괜찮은 소프라노 음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완전히 미친 것으로 보여질 히틀러의 말들에 대한 쿠비체크의 코멘트는 '그 사실이 아돌프를 얼마나 행복하게 했던지'였다.
히틀러는 스테파니와 결혼한 다음에 살 르네상스 스타일의 집을 스케치했는데, 완벽한 음향상태로 조율된 피아노룸을 갖추었다는 설정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일상적인 미소를 보게되리라는 희망에 거리를 서성였고, 린츠를 떠나있을 때는 엽서로 스테파니에 대한 정기 보고서를 보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히틀러는 언제나 '내일은' 그녀에게 말을 걸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내일은 결코 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 몇 달 몇 년이 지나도록 전혀 진전이 없었고, 그런 상태는 그를 너무나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한번이라도 대화 나누었다면?
물론, 만일 히틀러가 이삭 양에게 실제로 말을 걸어봤다면 그는 그녀가 자신이 상상하고 기대하고 평가했던 것처럼 '발키리의 화신'이라기보다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을 것이다.
예쁘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는 오스트리아 십대 소녀에 대해 그가 바쳤던 불합리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상화에 대해 쿠비체크는 '심상과의 미세한 차이가 발견되었어도 그는 말할 수 없을 실망으로 가득하게 됐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사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스테파니는 이삭이라는 성에도 불구하고 유태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까지 히틀러와 쿠비체크는 그런 사실은 몰랐고, 훗날 홀로코스트(대학살)를 벌이게 되는 그 남자가 젊은 시절에는 유태인에 대한 적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데일리메일>은 지적한다.
그의 유태인에 대한 증오는 단순히 1차 대전이후의 독일 정세에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명해낸 것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식의 해석은 그가 반유대주의를 선택하게된 과정과 관련해 떠도는 다른 어떤 가설과 비교해도 가장 극악무도한 것이다.
그녀 자신에게는 비극적인 일이겠지만 만일 스테파니가 그와 사랑에 빠졌다면 1945년 4월 베를린의 벙커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죽은 에바 브라운의 자리를 스테파니가 차지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녀는 육군 장교와 결혼해서 2차 대전이 끝난 후까지 비엔나에서 살았는데,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한 남자가 자신에 대해 연모의 정을 품었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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