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욕=AP/뉴시스]지난 4월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와이코프 하이츠 병원에서 전신 보호복을 입은 의료 종사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시체 안치소로 임시 사용하는 냉장 트레일러로 운반하고 있다. |
한반도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간 전쟁을 치렀다. 남북 민족 간 내전이다. 여기에 국제연합군(UN), 중공군까지 가세했다. 이 전쟁과 관련 350만명이 사망,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이때 기독교의 신(하나님)은 과연, 어디에, 누구와 함께 했을까? 종전 이후 남한에는 기독교가 번창했다. 회개기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새벽, 통성-묵상기도가 이어졌다. 신에게 매달렸다. 그런 결과, 오늘날 기독교 성당-교회당이 없는 마을이 없게 됐다. 신의 축복이다. 신의 축복이 성당 교회당과 함께한 셈이다. 성당-교회당의 발전만큼 국가도 발전했다. 교인 분포로 따질 때, 한국은 기독교 국가라고 말할 정도가 됐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성 괴질이 찾아든 올 1월부터 6월 현재까지 한국 기독교,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본다.
코로나19는 총 한방 안 쏘고 전 세계 인류 41만 명(6월11일 현재)을 죽였다. 지난 6월 11일, 인도에서는 하루에 코로나19의 확진자가 2만 명이나 발생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머지않아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60만 명을 넘어설 것이다. 60만 명이란 수효는 대한민국의 국군 수효와 맞먹는다.
그동안 종교, 특히 기독교는 구원을 주장해왔다. 그런데 코로나19 시국에서는 일부 교회가 코로나19를 번창 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함으로써 구원이 아닌 사망의 중개자가 되었다. 과한 표현으로, 교회가 '애물단지'가 됐다. 정부나 지자체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모임을 자제하라고 권고했고, 일부의 종교시설을 폐쇄하기도 했다.
코로나19 괴질의 번창 시기, 이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면, 한국 종교는 난리가 났다고 말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괴질로 인해 인류가 죽어가는 현상을 보면, 신의 은총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1970-1990년대 미국의 기독교는 쇠퇴했다. 물질의 풍요에 속에서 교회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 당시 뉴욕 일대의 교회당을 가보면 텅텅 비었다. 교인이 오지 않는 교회당은 적막에 싸였다. 텅빈 건물로서의 교회, 교인들은 교회가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났기에 교회가 텅텅 비었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코로나19 시국에서 건물로서의 교회가 큰 타격을 입었다고 예단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성당-교회당에 밀집 하는 것을 금하는 권고를 해왔다. 이러한 순간, 교인들은 교회에 갈 이유가 무언지를 고민하게 됐다고 본다. 교회 예배에 가서 괴질을 옮아 올 수도 있는데, 꼭 교회에 가야하는가, 이 물음이 싹텄다. 힘들게 벌어 바친 헌금이 신의 사업에만 쓰였을까? 이런 회의가 밀려들었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기독교인들에게 진정 교회 내에만 구원이 있는가? 괴질 전염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교회에 가지를 말라고 하는데, 기독교가 말해온 구원(救援)과 치유(治癒)가 과연 교회 내에만 있는 것인지? 교회 밖에 구원과 치유가 있는 것인지? 이런 류(類)의 고민이 뒤따랐을 수 있다.
한 때 기독교는 대 회개운동을 통해 신도를 끌어 모았다. 그런데 코로나19 시국은 탈(脫) 교회 현상을 부채질 했다. 교인들을 교회 밖으로 이등케 하는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냈다. 향후 교회의 사역자들은 탈 교회하는 신자들을 어떻게 붙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코로나19와 인류 간의 전쟁에서 인류는 이미 패(敗)했다. 코로나19를 이기려면 백신과 치료제 개발, 그리고 대량생산-보급만이 답인 처지가 됐다.
이쯤해서 고민해보는 것은, 신이 인류에게 어떤 구세주를 보내줄 것인가이다. 지금이야말로 구세주가 나타날 때이다. 기독교는 구세주(救世主)를 대망해왔다. 기독교가 말한, 구세주란 세상을 구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대망했던 구세주(救世主)는 어떤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절절해졌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죽어간다. 미국의 경우, 죽어간 사람들이 냉동고에 실어 외딴 섬에 파묻고 있다. 사자(死者)들,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이승을 떠난다. 괴질 차단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런 시국에서 과연 구세주란 무엇일까? 코로나19 관련 백신과 치료제를 만드는 과학자나 의학자가 이 시대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구세주가 빨리 나타났으면 한다. 대망(待望)한다. 기다린다. 종교적인 구세주가 아니라, 의학적인 과학적인 구세주가 나왔으면 좋겠다.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지금, 인류를 구할 구세주가 빨리 출현했으면 합니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