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운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
종은 종(從)이다. 윗사람이 가는대로 졸졸졸 따라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제 길이 있어도 가지 않고 주인이 가는대로만 따라간다. (* 종(從) ; (주인을) 따라가다. 앞사람(人)이 가는대로 뒷사람(人)이 그 발(止)을 보고 따라 걸어가다(彳).)
일본에 종이 대단히 많은데, 영주들이 3권을 쥐고 사람을 마구 죽이다 보니 눈치가 발달했다.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는 배경에 이런 역사가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는 덜 해서 오늘날 민주주의가 이처럼 발달했다. 종이 적은 편이라는 뜻이다. 적다고 해서 진짜 적은 건 아니고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1910년 민적법이 시작되기 전 조사에 따르면 당시 인구는 289만 명, 이중 양반 가구는 5.4만 호, 약 1.9%였다. 굉장히 많이 누락되어 이 통계를 믿을 수는 없지만, 대략 흐름은 이렇다. 1609년 울산 호적부에 따르면 이곳의 47%가 노비였다. 1606년 산음현(지금의 산청)은 41%, 1606년 단성현은 64.4%가 노비였다. 1690년 대구부는 44.3%가 노비다. 학자들은 조선시대 노비 인구 비율을 약 40~50%로 보고 있다. 나머지는? 65%가 바로 상놈이라고 불린 상민이다. 그래봐야 소작인이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계급이 완전히 무너졌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다 보니 노동 하층민으로 전락하여 고달픈 삶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전태일 열사 사건이 바로 조선시대에 양반 계급의 착취에 대항하던 일반 노비 + 상민의 생각과 일치한다. 동학혁명 등으로 이따금 분노를 표시해보지만 개틀링 기관총에 다 맞아죽는 아픔도 겪었다.
기업에서 사장이나 대주주에게 덤벼봐야 결국 안 된다는 것도 안다. 군대에서 상관에게 대항하면 진급 못하고, 심지어 영창 간다는 것도 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공천권 자에게 바른 말 해본들 불이익만 오더라는 것도 안다. 당 대표에게 바른 말하다가 공천 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
내가 종을 비판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대통령과 일반 국민이 1:1의 똑같은 가치를 지닐 때 민주주의가 빛나는 것이다. 아니, 민주주의는 그래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등가(等價)를 지닌 국민들의 토론과 합의로 이뤄진다. 하지만 집권당 대표가 반칙을 하고, 법무부장관이 제멋대로 한다. 이건 국민과 자신을 등가로 보지 않는 반칙이다. 국민을 종으로 몰아붙여 자신을 따르도록 요구하는 왕조 시대 발상이요, 독재자나 하는 짓이요, 자신을 귀족을 보는 봉건시대 잔재다.
지금도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등은, 자신들은 일반 국민에 비해 훨씬 더 값어치가 나가는 인간인 줄 착각한다. 누구나 해도 되는 주권대리인일 뿐인데 막상 자신에게 표를 준 유권자의 뜻을 묻는 놈이 거의 없다. 그저 4년 내내 제멋대로 지껄이거나, 유권자를 가르치기 바빠 여기저기 강연다니기 바쁘다. 그래 놓고 표를 준 유권자는 하대하고, 오직 당대표나 실세 의원이나 대통령에게만 충성하며 죽어라 꼬리친다. 도시의원은 또 이 국회의원에게 죽어라 꼬리친다. 사다리처럼 종놈이 종을 부리고, 종놈이 종에게 종질하는 격이다.
이런 더러운 악습을 버려야만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다. 문빠도, 태극기부대도 다 종이다. 이들은 주인이 뭐라고 하나 눈치만 보다가 빽빽 소리지르는 개떼들 같다. 개는 하루 종일 주인 눈치만 본다. 문빠들이 지금 그니가 뭐라나 귀를 기울이고 거기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제 생각이 없고, 가끔 하는 말이 억지요 궤변이다. 지령이 내려오면 일사불란한데 지금처럼 추미애에 대해 헷갈리는 신호가 내려오면 갈팡질팡한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 자기 뜻대로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다.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온갖 도전이 있고 시련이 닥친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주어진 운명을 스스로 극복해왔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거친 운명과 간난신고에 굴복했다면 우리는 정글에서 하루 종일 영양가 없는 열매나 따먹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초원에서 풀 뜯어먹으며 사자를 피해 헐떡거리며 달리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후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생각할 기회를 주기 위해 목숨 바친 육이오 때의 전사자들, 만주 벌판에서 생을 마친 독립군들, 왜군과 싸우다 죽은 수많은 조선시대 관군과 의병들, 그들은 우리에게 남의 종이 아닌 자주적인 삶을 살라고 자신들을 희생시켰다.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나에게는 육이오때 전사하고, 일제 때 독립운동하고, 임진왜란 때 왜구와 싸운 조상들이 있다. 그래서 죽어도 종질을 못하겠다.
칭기즈칸은, 쿠릴타이를 열면 천호장 만호장 뿐만 아니라 목동이나 말단 병사도 참여시켰다. 누구나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그리하여 단 한 명의 반대조차 거래와 협상과 약속으로 기어이 참여시켰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국민의 절반과 싸운다. 그들과 대화할 마음이 전혀없다. 그들은 토착왜구니 박멸해야만 한다고 으르렁거린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야당 등 집권여당을 반대하는 국민이 모두 토착왜구도 아니고, 집권여당이라고 해서 다 독립운동한 것도 아니다. 그들 중에도 친일파 후예가 드글드글하다. 그냥 전술일 뿐이다.
모든 백성이 다 참여하던 신라의 화백회의, 몽골의 쿠릴타이, 누구나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하브루타, 티벳 불교의 짱군최, 불교의 팔리사(한국불교에는 없다. 젊은 스님들이 토론하자고 하면 노승들이 도망간다더라) 등은 모든 구성원이 똑같은 자격으로 참여하는 토론법이다. 민주주의에서 민(民)은 다 같은 자격을 지녀야 하는데, 문재인의 나라에서 그 民은 오직 문빠 뿐이라는 게 문제다.
우리 모두 자주민이 되자. 살인범, 강간범, 도둑놈이라도 대한민국에서 징역 살고 나왔으면 어엿한 대한민국의 주권 국민이다. 백 명이면 귀를 백 번 열어야 한다. 토착왜구들아, 너흰 입 다물어, 그러면 안된다. 토착왜구의 말도 들어보는 그게 민주주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