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병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후 그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을 앓게 됐고 이로 인해 지난 14년 간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살고 있는 박동만씨, 선임병들의 폭언과 구타에 시달리다 결국 분신자살을 시도했던 김경욱씨, 군 복무 중 악성림프종, 급성림프구성 백혈병 등 중병이 발병했으나 입대 1년 미만자라는 이유로 공상에서 제외된 고(故) 김재민.정하늘씨와 홍정호씨 등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군대의 폐쇄성과 조직문제를 지적하며 조속히 해결책을 마련해 줄 것을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엄격한 규율과 명령체계에 의해 움직이는 권위주의식 군(軍) 문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선임병들의 구타도 관행처럼 자행되는 등 개선노력은 미비하기만 하다.
군 복무 중 선임병들에게 폭행을 당한 후 그 충격으로 조울증 등 정신병을 앓게 됐다는 임진호(30, 가명)씨의 사연은 이러한 상명하복식 군대문화가 낳은 비극적 결정판이다.
전경으로 복무한 임씨는 선임병들의 상습적인 구타와 따돌림으로 인해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선임병에게 군홧발로 얼굴을 폭행 당한 후 가슴속에 억눌렸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정신병원에 감금됐고 7년이 지난 지금도 정신병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당시 부대에서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내가 돌에 찧어 다친 것처럼 말하도록 종용, 부대원들을 회유해 ‘개인과실’로 몰아갔다”고 분개했다.
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은 7년 간 정신병원을 전전했던 임씨의 안타까운 사연과 부대 내 폭행사건을 둘러싼 관련자들의 입장을 들어봤다.
“지난 7년 간의 시간은 생지옥이었다. 군대에서 고참들에게 당한 폭행 후유증으로 나는 졸지에 정신병자가 됐고 일방적으로 정신병원에 감금돼 세상과 격리됐다. 한때 아이들이 좋아 국어선생님을 꿈꿨는데 군대가 나와 내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하지만 이를 책임져야할 군부대에서는 마치 내가 미쳐서 돌로 얼굴을 쳐 상해를 입은 것처럼 말할 것을 종용, 협박하고 부대원들의 입을 막아 사건을 은폐시켰다. 또한 ‘의병제대’를 못하도록 어머니를 회유해 나를 정신병원에 넣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한 개인의 삶을 무참히 짓밟은 그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
전경 폭행사건 내막
지난 8월26일 부산역 인근 커피숍에서 임진호씨를 만났다. 올해 7월11일 정신병원을 퇴원했다는 임씨는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면서도 “어느 순간에 돌변할지 내 자신도 장담할 수 없다”고 불안감을 나타냈다. 그는 치료를 계속 받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월 10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도저히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임씨는 초등학교 5학년(12세)부터 부모님의 별거로 친할머니의 손에 길러졌으며 군대 폭행사건 이후에는 병원비의 대부분을 어머니가 부담해 왔다. 횟집과 다방 등에서 주방 일(하루 3만원)을 하는 어머니는 빚을 져 병원비를 대왔고, 아버지는 영업택시를 하다 한동안 노름에 손을 대 집을 날리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하다 현재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며 경제적으로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굳이 경제적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는 폐쇄된 병원에서 독한 약물에 취해 지낼 생각을 하면 치가 떨린다고 몸서리를 쳤다.
임씨는 생각보다 건강해 보였다. 대인기피증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등산을 하며 운동에 열중하고 있다는 그에게서 별다른 특이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털어놓은 7년 간의 인생이야기는 고통과 분노로 가득했다.
그는 “군에 입대해 훈련을 받던 중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전경으로 차출됐고 선임병들에게 상습적인 구타를 당했다”며 “제대를 5개월 앞둔 2001년 3월에는 부대 체육대회 회식 후 술에 취한 선임병에게 군홧발로 얼굴을 차이는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 임씨 “선임병들의 상습적인 구타와 따돌림으로 군 부적응 겪었다. 군홧발 폭행사건을 계기로 조울증 등 이상증세 보여 정신병원에 감금, 7년이 지난 지금도 정신병원 신세 면치 못해” 주장 |
임씨는 1999년 6월 입대했다. 그의 나이 21살, 경남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 1학년을 마친 후였다. 입대 후 ××××전경대로 차출된 그는 경찰서에서 교통정리와 음주단속, 방범근무 등을 수행했다. 그는 업무가 힘든 것보다도 선임병들의 잦은 구타로 정신적?육체적 고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고 토로했다.
사실 전경 내에서 행해지는 선임병들의 구타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그에 따르면 자대배치를 받은 지 얼마 안 돼 훈련을 받던 중 임씨를 다른 사람으로 오인한 선임병(말년 고참)이 “땀 냄새가 심하다”는 이유로 “1분 안에 빨리 씻고 꺼지라”며 목욕탕에서 샤워기로 얼굴에 물을 쐬고 탕에 머리를 집어넣는 등 폭행을 가했다는 것. 그러나 동기가 아닌 것을 알고는 미안하다는 말만 던지고 나갔다는 것이다.
또한 2000년 겨울, 음주단속을 하기 위해 1조 고참과 근무를 섰을 때는 사소한 문제로 시비가 붙어 싸움으로 번졌는데 자기를 때릴 경우 선임병들에게 ‘하극상’으로 이르겠다고 협박해 일방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임씨는 “얼굴만 안 다쳤을 뿐 발에 수없이 짓밟히고 머리를 벽에 박는 등 먼지가 나도록 맞아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러한 크고 작은 구타와 폭행은 비일비재했지만 부대 특성상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항의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고 했다.
때문에 군 생활에 부적응을 겪었고 선임병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고문관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맡겨진 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했고 학창시절 배웠던 사물놀이와 대학 동아리에서 탈춤 등을 배운 덕에 부대 행사에 참가해 상을 받기도 하고 동기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2001년 3월 제대를 5개월 앞둔 무렵 문제의 사건이 발생했다. 그에 따르면 부대에서는 매달 체육대회를 했는데 그날도 행사 후 회식을 갖고 취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회식자리에서 마신 술로 대원들은 술에 취해 있었고 임씨도 술기운을 빌려 어려웠던 가정환경을 이야기하며 어린 자식을 방치, 별거 중인 부모님을 욕하게 됐다는 것.
그러나 이를 들은 이모 고참이 다짜고짜 앉아 있던 임씨의 얼굴을 군홧발로 차 입술 아래에 구멍이 날 만큼 심한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다. 임씨는 당시 다쳤던 상처 흉터를 보여주며 “입술 밑이 헐고 퉁퉁 붓는 등 피로 범벅이었지만 다음날 어머니가 오시기 전까지 어떠한 치료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상을 당한 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다만 당시 40여 명의 부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선임병에게 폭행을 당해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이후 한동안 횡설수설하거나 자신도 알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는 “부대에서는 자신의 정신상태가 온전치 않고 이러한 원인이 폭행사건으로 비롯됐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오히려 자신에게 돌에 찧어 다쳤다고 말하도록 했고, 부대원들을 회유, 입단속을 시켜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지 못하도록 했다”며 사건은폐 의혹을 강하게 주장했다.
부대 사건은폐 의혹
임씨는 다음날 어머니를 따라 부대 인근에 있는 △△병원(일반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안면부 열상’으로 상처를 꿰맸다. 병원 담당의는 임씨의 정신적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보고 정신과에 데려가 치료를 받도록 권유했다.
그는 “상처를 봉합한 후 집에 갔는데 부대에 다시 복귀해야 한다는 어머니 말에 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나타내고 도망을 갔던 걸로 기억한다”며 “이후 부모님과 같이 진해에 갔다가 고향인 마산을 들렸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정신병원에 넣으려고 해 승강이를 벌이다 내가 입에 거품을 물고 졸도를 했다고 하더라. 아버지는 그런 나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고 깨어보니 병원 침대 위에 온 몸이 묶여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병명은 조울증이었다. 임씨는 자신을 일방적으로 정신병원에 넣은 부모님을 원망했고 그곳에서 죽기보다 싫은 일들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그에 따르면 병원에서 대부분 묶여 지냈고 독한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수염을 깎으라고 준 면도기로 머리를 밀어버렸고 다른 환자들에게 맞기도 했다고 한다.
임씨는 “처음 입원했을 때는 약이 너무 독해 눈도 풀리고 혀가 꼬여 말도 잘 못했다. 약물 부작용으로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했는데 면회를 온 아버지가 이를 보고 보름 만에 퇴원시켰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임씨는 그렇게 두 번을 ◇◇정신과에 입원했고 월 100여만원이 넘는 병원비 부담으로 ☆☆국립정신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사고가 발생했다. ◇◇정신과를 퇴원한 후 국립병원에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그 사이 임씨가 바람을 쐬겠다며 무작정 수원으로 갔고 돈도 없이 미용실에서 염색을 하다 주인의 신고로 파출소에 가게 된 것. “이 사건으로 부모님은 물론 부대의 중대장과 소대장이 와서 사건을 무마시켰다”고 임씨는 말했다.
그는 “사건이 커지면 부대에서 행한 일들이 알려지게 될 것이고 이를 묵인, 방조한 상관들이 징계를 받아야 하니까 중대장 등이 빨리 손을 쓴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6월11일 ☆☆병원에 입원한 그는 두 달 후인 8월21일 퇴원해 22일 부대에 입소했고 23일 만기전역했다고 한다.
| 임씨 아버지 “군관계자가 사비로 치료받지 않으면 의병제대를 시킬 수밖에 없다고 해 짧은 생각에 아들의 장래 위해 만기제대 고집, 선임병 부모 만나 치료비 받고 합의서 써줘…군 당국에 책임 묻기 위해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신청” |
임씨는 “부대에 가니까 소대원들과 얘기를 할 수 없도록 철저히 격리시켰고 다른 대원들보다 먼저 연병장에서 홀로 제대하도록 했다”며 “제대를 하고 나오면서 갑자기 사람들이 무서워졌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제대 후 바로 복학신청을 했지만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결국 아버지를 통해 자퇴서를 냈다. 이후 1년여 간 동생 집에 얹혀살면서 대부분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그러다 보니 84kg까지 체중이 급격히 늘었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면서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자살을 시도하려고 캡슐에 든 약(정신질환 치료제)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기도 했다.
2002년 후반부터는 다시 정신을 차려 등산 등 운동을 통해 건강을 되찾고 인력시장에 나가 일을 시작했다. 6개월간 일을 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몸 상태가 나아지자 아버지는 다시 공부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그는 이를 받아들여 대학에 2~3차례 재입학을 신청했다. 하지만 1학년 때 동아리 활동에 열중하며 학점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탓에 번번이 재입학이 불허됐다.
학교에 돌아갈 수 없게 되자 그는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급이 5000원 이상으로 다른 곳보다 높다는 말에 찾아갔지만 다단계 회사였다. 자본 없이도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화장품과 휴대폰 등을 받아 판매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 지 4개월 지났을 무렵부터 조울증이 재발했고 일주일 간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를 찾아가 잠을 잘 수 있도록 정신병원에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5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자신을 길러준 친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에 정신적 충격을 받고 집안에서 또다시 은둔생활을 했다.
그는 병을 이기기 위해 등산을 하며 노력을 기울였지만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없어 부산 □□병원에 입원해 50일 간을 치료받았다. 임씨는 “퇴원 후에도 맘을 못 잡고 사고를 많이 쳤다. 무더운 여름에도 춥다고 파카를 입었고 도로 한가운데를 돌아다니고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이유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때리기도 했다. 이는 일부분일 뿐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2006년 5월부터 다시 맘을 잡고 인력시장에 나갔다. 그곳에서 인테리어 목수(개인사업자)를 만나 그 밑에서 9개월 이상 일을 배웠고 올해 4월 초까지 목수들을 따라 다니며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목수들은 약속과 달리 턱없이 낮은 일당을 주거나 돈을 떼어먹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진해에 있는 냉동공장에서 일을 할 때는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4명이 장판을 깔고 벌벌 떨며 잤는데 한 달 넘게 일하도록 돈을 주지 않았고 돈을 달라고 재촉하자 당초 9만원(일당)에서 7만원으로 삭감해 임금을 줬다는 것. 아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사업을 운영해보라는 말에 공사를 직접 따기도 했지만 결국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 일도 있었다고 분개했다.
그는 다시 ☆☆국립정신병원에 입원했고 7월11일 퇴원한 후 지금까지 집에서 쉬고 있다. 임씨는 “8월 초까지 상태가 안 좋았다. 아이들과 잘 놀다가도 머리가 멍해져 허공을 바라보거나 환청도 경험했다. 지금은 조울증이 나타나지 않지만 갑자기 돌변해 이상한 짓을 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자해했다고 종용, 만기제대 회유”
그는 최근 부모님으로부터 폭행사건 당시 군 부대 측과 어떤 얘기가 오고갔으며 자신이 어떻게 정신병원에 가게 됐는지 듣게 됐고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고 한다.
임씨는 “부대에서는 어머니에게 내가 자해를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한편 아버지는 따로 만나 가해자 측으로부터 치료비로 300만원을 받고 합의서를 쓰게 해 사건을 무마시키려 했다”며 “의병제대를 할 경우 폭행사건이 드러날 테고 그러면 자신들이 옷을 벗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아들의 장래 운운하며 만기제대를 하도록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당장 인권위원회에 제소하고 싶지만 아직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관련자료와 당시 사건을 목격했던 부대원들을 찾고 있다”며 “이 기사를 본 전우들이 꼭 연락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임씨의 어머니 정모씨는 당시 아들이 폭행을 당한 후 부대 측과 나눴던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2001년 3월21일경 군관계자로부터 아들이 다쳤다는 연락을 받고 부대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당시 중대장과 소대장을 만났다고 한다.
정씨는 “그들은 ‘아들이 돌에 얼굴을 찧어 자해를 했다’며 정확히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들이 머리도 좋고 장래도 촉망되는데 의병제대를 하면 향후 사회생활에 지장이 많으니까 원칙대로 만기제대를 시켜주겠다’고 회유하고 ‘아들을 데리고 올 테니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 받아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시간 30분을 기다린 끝에 아들을 볼 수 있었는데 얼굴에 피멍이 들고 입술 아래는 퉁퉁 부어 있었으며 헛소리를 하는 등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한다. 배가 고플까봐 밥을 사주려 했지만 아들은 고통을 호소했고 입 안을 들여다보니 구멍이 날 정도로 찢어져 있었다고 분개했다.
이에 대해 부대원들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시선을 피해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고. 그래서 정씨는 아들을 진정시켜 어떻게 다쳤는지를 묻자 처음에는 “돌에 찧었다”고 답했지만 아무래도 수상해서 계속 다그치자 이내 “고참이 3일 동안 자신을 가둬놓고 두드려 팼다”고 실토했다는 것.
정씨는 화가 났지만 아들의 상처치료가 급하다는 판단 아래 △△병원으로 데려갔고 담당의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상처를 꿰맨 후 집으로 데려갔지만 아들은 횡설수설하며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고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는 얘기를 꺼내자 급기야 도망을 쳤다는 것. 결국 아버지를 통해 정신병원에 입원시켰고 지금까지 빚을 들여 아들의 병원비 등을 부담해 왔다고 한다.
정씨는 “진호를 제대 전에 두 차례에 걸쳐 ◇◇정신과에 입원시켰지만 병원비 부담이 커 잠시 집에 데려온 적이 있었는데 일을 나간 사이 진호가 말도 없이 수원에 가서 사고를 쳤다. 파출소에서 연락을 받고 애 아버지와 함께 가보니 군 관계자들도 와 있었다.
이들은 진호가 밖에서 사고를 치면 자기들이 곤란해진다며 병원비가 싼 ☆☆국립정신병원을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고 당시 군 관계자들도 진호의 상태를 알고 있었지만 이를 나몰라라하며 치료비 한 푼 주지 않았다. 엄마로서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따졌어야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었다”며 “지금이라도 애 아버지가 나선다고 하니 국가에서 책임을 지고 아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임씨의 아버지가 가해자 측으로부터 치료비와 합의서를 쓴 것과 관련해서는 “애 아버지가 당시 군 관계자와 만난 것은 알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최근에 알게 됐다”며 “아이의 장래를 생각했다면 그 돈을 받지 말고 끝까지 책임을 추궁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 경찰청 “관계병원에 질의회신 보내고 당시 상관이었던 중대장에게 자료요청,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의 목격자 진술도 필요하기 때문에 신변조회 해놓았다. 아직 판단 서질 않아 조사 계속” 밝혀 |
진호씨의 아버지 임모씨는 정씨와 일부 상반된 주장을 폈다. 당시 폭행사건과 관련해 임씨는 군 관계자와 두 차례 만났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아들이 다친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이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인 줄 몰랐다고 고백했다.
때문에 중대장이 의병제대를 해주겠다고 했지만 애비 욕심에 의병제대를 하면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을까 싶어 만기제대를 시켜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중대장은 만기전역은 시켜주겠지만 치료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고 임씨는 그러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대장의 중재로 아이를 때렸던 선임병의 부모와 만나 치료비 3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합의서를 써줬다는 것.
정씨가 군 관계자로부터 진호씨가 자해를 했다고 들었다는 주장을 한데 반해 임씨는 군 관계자들이 가해자 측 부모와 합의를 주선했다는 엇갈린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임씨는 “애 엄마와 자세한 얘기를 나누지 못했고 군 관계자들의 회유에 속아 합의서를 써준 것”이라며 “군대서 발생한 사건임에도 군 관계자가 사비로 치료받지 않으면 의병제대를 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고 짧은 생각에 아들의 장래를 위해 그러겠다고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경솔한 짓이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임씨는 “아들의 상태를 보니 제정신이 아니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는데 시간이 지나도 증세는 완화되지 않았다”며 “애 엄마가 병원비를 모두 부담했는데 이제까지 2000만원이 넘는 빚을 졌다고 하더라. 아들을 장애자로 만든 군 당국에 책임을 묻고 향후 치료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난 7월3일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보훈처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만약 비해당 판정이 나올 경우 국가인권위에 제소하고 민사소송을 통해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임씨의 국가유공자 신청과 관련해 마산보훈청 보상과 관계자는 “현재 경남지방경찰청에 요건의뢰 해놓은 상태”라며 “경찰청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 서류를 넘겨주면 서울 보훈청에서 심사한다”고 밝혔다.
경남지방경찰청 작전전경계 최모 경사는 “자료를 수집 중”이라며 “관계병원에 질의회신을 보냈는데 아직 판단이 서질 않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경사는 “당시 상관이었던 중대장에게 자료요청을 했으며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의 목격자 진술도 필요하기 때문에 신변조회를 해놓았다”고 밝혔다. bravo159@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