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과 도전의 기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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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방황과 도전'<출판사 글이사는마을>은 나의 방황의 기록과 도전의 일기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인생에서 얻음과 잃음은 모두 자신의 선택과 생각에 의해 결정이 된다. 성공의 기준을 어떤 방식과 기준에 의해 설정하느냐에 따라 운명의 빛깔은 어둠과 빛의 차이점에서 평가를 달리하게 된다. 내 운명의 빛깔은 빛과 어둠의 조화였다.
나는 환한 빛을 쫓아 살아 왔지만 생의 전반은 어둠속에 빠져 지냈다. 방황은 실패라는 시간여행으로 나를 인도해 나갔고 도전은 실패의 마당에서 성공이라는 문턱을 오르도록 독촉했다. 나의 선택은 언제 나 옳치는 않았다.
무수한 실패의 그림자로 얼룩진 과거의 흔적이 이런 나의 결론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나이 50이 다 되어서야 진지한 성찰 속에서 내 인생 은 어둠을 빠져나와 불을 밝혀 길을 나서고 있다. 너무 많은 실패의 상처와 마주했던 항해이기에 나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나의 인생 살기는 무수한 시도와 변화 속에서 채워졌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은 나의 인생은 그래서 아직 여전히 도전의 과정 속에 놓여져 있다.
조용히 은둔의 길을 가지 않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열어가는 것은 나의 세상 읽기가 순탄하지 않았음을 대변하고 있으며 내가 선천적으로 꿈을 꾸는 인간임을 증명하고 있다.
실패의 크기만큼 나는 성공을 꿈꾸고 있다. 생의 중심부에서 마그마처럼 뜨겁게 용솟음치는 열정을 무기삼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통해 나는 부활을 거듭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여러 독자와 만남을 갖게 되었다.
내게서 방황의 흔적만을 알고자 하는 독자는 이 책을 가만히 제자리에 놓아두기 바란다. 그러나 나의 방황과 도전의 기록을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인생의 깊이와 상상의 세계를 배우려 한다면 이 책을 들고 곧바로 계산대로 달려가기를 바란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작자의 사고와 인생보다 글을 읽은 자신이 더 뛰어나고 뛰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러한 독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나의 책은 여러분에게 가장 커다란 선물이 될 것이다. 나는 여러 독자보다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여러 독자 분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것을 나는 확신한다. 논의의 전개는 여러분이 나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비쳐진 정당한 평가로 삼아나갈 수 있게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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쪹깨진 양은대야
나는 14살 때 처음 교도소와 인연을 맺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그다음 해에 어린동생을 양자로 보내고 나서 기거할 거처를 찾다가 찾아든 곳이 삼양동에 있는 한국일보 신문보급소였다. 그곳에서 신문 배달을 하며 생을 연명했다. 어둠의 마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새벽에 신문 100부를 왼팔에 끼고 지리산 타잔같이 등성이를 오르내리며 신문배달을 했다. 땀을 흘리며 신문을 돌리고 나서 보급소로 들어올 때쯤 아침의 광명은 기지개를 펴서 나를 위로해 주곤 했다. 휴일엔 신문지를 들고 구역 확장에 나섰다.
“아주머니, 아저씨! 이 신문은 4대 일간지로서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보다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인 정보를 가장 빠르고 신속하게 전달해 주는 대한민국 제일의 신문입니다. 신문 배달사고 전혀 없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지지 않고 신문을 배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고놈 참 어린 녀석이 말을 잘한다며 신문구독을 해 주셨다.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보다 신문 확장을 더 많이 했다. 용돈도 많이 벌고 귀여움도 많이 받으며 민생고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잠시나마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2학년 선배가 자위행위를 하기에 저놈 별 희한한 짓을 다 한다고 짐승취급을 했더니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러 대었다. 난생처음 성기를 세워잡고는 용쓰는 모습을 보았으니 내가 그를 이상한 놈으로 취급을 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놈은 그런 나의 행동이 비위가 상했던 모양이었다.
어릴 적부터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갖고 있던 나는 너무도 자존심이 상해서 고래 고래 소리치며 저항을 했다. 그 선배는 태권도 도장을 다녔었고 덩치가 꽤나 큰 편에 속했다. 나는 당당하게 선배에게 도전장을 내었다.
“야 새끼야.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 해. 그럼 한번 붙어 보자.”
그러자 그가 피식 웃으면서 얼마든지 좋다고 했다.
나와 그는 한국일보 보급소 앞에서 서로 대결을 했다. 나는 조막대기만한 주먹을 쥐고 그놈의 동태를 살피며 적의를 불태웠다. 그는 웃으면서 나를 향해 발길질을 해대었다.
선배의 발길은 태권도를 배웠기 때문인지 나의 턱에 정확하게 내리 꽂혔다. 나는 그대로 뒤로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엉겨붙었다. 그렇게 십 수 차례 나가 떨어지고 나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나는 울지를 않고 더욱 앙칼지게 대들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표정이 굳어지면서 발길질을 멈추었다. 나는 계속하자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는 나를 놓아두고 보급소 사무실로 올라가 버렸다. 애당초 게임이 안되는 싸움이었지만 나는 자존심이 상해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선배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것이 한국일보 보급소를 떠나는 것이었다. 그 선배 얼굴을 보면 적의가 불타올라서 얼굴을 대면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역겨웁고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반기지 않은 생의 강길을 따라 거니는 그날은 유독 어둠이 일찍 찾아왔다. 얼굴에 달라붙는 바람이 몹시 차갑게 느껴지던 한 겨울 이 골목 저 골목을 배회하며 따스한 온기를 찾아 보았지만 나를 감싸줄 따스한 처소는 없었다.
너무도 막막한 겨우살이의 하루를 길거리에서 신문지를 펴서 이부자리삼아 오들 오들 떨면서 밤을 지새웠다.
걸으면 살리라.
추위를 이기는 데는 걷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밤새 추위에 떨었기 때문인지 몸이 얼어붙은 듯 뻣뻣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삼양동에서 경동시장 근처까지 걸어갔다. 갖가지 음식냄새가 나를 반겨 주었다. 그 순간 어머님이 차려주신 밥상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허기진 배를 참기도 힘이 든 지경이었는데 어머님의 얼굴까지 떠오르니 정말 견디기 힘든 슬픔이 나를 울먹이게 했다.
나는 그 많은 거리의 음식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어머님을 찾았다. 그러자 허기진 배는 더욱 허기졌고 지독한 외로움이 내 영혼속에 보태어 졌다. 날은 밝았지만 다시 찾아 올 어둠을 어떻게 지내야할까 생각하니 그대로 주저앉고만 싶었다. 우선 무엇인가 먹고 싶었다. 배를 채우지 않고서는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 담벼락에 세워져 있는 깨진 양은 대야가 눈에 들어왔다.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주인이 버린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서 대야를 들었다. 제법 무거운 대야였다. 마침 강냉이, 엿 장사 아저씨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신속하게 그곳으로 다가갔다. 군침을 삼키며 흥정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방범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오금이 저리는 엉뚱한 말을 했다.
“너 그거 어디서 난 거니?”
“우리 집 건데요. 대야가 깨져서 강냉이 바꾸어 먹으려구요.”
나는 너무도 무서웠다. 죄를 짓지 않고도 사람의 심장이 이렇게 뛸 수가 있다니...
“너희 집이 어디인데?”
“마포구 염리동 이예요.”
“그럼 염리동에서 그걸 가지고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냐?”
그는 나의 앞뒤 안 맞는 설명을 듣고 내가 이 물건을 훔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너무도 긴장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너 그거 훔친 거지?”
“아뇨 훔치지 않았어요. 저기 담벼락에 버려져 있었어요.”
그러자 그는 다짜고짜 내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채려 하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앞만 보고 내달렸다.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파고 들었다. 그 방범 아저씨가 쏟아내는 말은 너무도 무서운 말이었다. 훔치지 않은 것을 훔쳤다고 강요하는 그 말이 나를 앞만 보고 달리게 했다.
세상에 첫발을 밟은 이후 신문보급소에서 구타를 당할 때보다 더 무섭고 자존심이 상하는 말을 들은 나는 그만 기운이 빠져 꼬꾸라질 것 같았지만 멈추지 않고 달렸다.
뒤에서 호루라기 소리까지 들려 왔다.
도둑 잡으라는 소리도 들려 왔다.
하루 종일 굶고 있던 나는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느끼는 가 싶었는데 결국 얼마 못가 덜미를 잡히고야 말았다.
“이리와 임마.”
나는 완강하게 저항을 했다. 나는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파출소에 연행이 되었다. 일행들이 피식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무언가 말을 주고 받더니 다그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너 그거 훔친 거지.”
“아니예요.”
“그럼 집이 염리동인데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너 혼나봐야 솔직히 말 할래”
“훔치지 않았다구요.”
“임마 어린 놈이 나쁜 놈이네. 솔직히 말해 용서해 줄테니까.”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으려고 작정을 했는지 나의 말은 듣지를 않았다.
어차피 갈 데도 없는 처지였기에 나는 그들이 조서를 꾸미는대로 가만히 두고 보았다. 언뜻 조서 내용을 보니 나는 웃음이 나왔다.
(피고 이성근은 남의 집에 들어가 대야를 훔쳐가지고 나와서 강냉이와 바꾸어 먹으려고 하다가 방범 아저씨에 의해 발각이 되었다)
세상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나를 붙잡아 넣으려고 하는 상대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부하지 않는 것만큼 더 치열한 저항은 없다. 나는 그길로 구치소에 수감이 되었다. 검사 앞에 가서 많이 울었다. 왠지 그들은 나의 진실을 알아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가 방범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호되게 꾸짖는 것을 보았다. 나의 두려운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어떻게 이런 일을 갖고 애들을 구속시키려고 하였느냐는 말이 계속 이어지고 나서 나보고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잘못도 하지 않은 일에 반성문을 쓰라고 하니 다시 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반성문을 쓰지 않으면 내보내 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반성문을 썼다.
작은 손가락에 빨간 인주를 묻히고 엄지 손가락을 서명란에 꾹 눌렀다. 조사를 받고 나와 사방에서 드러누워 생각하니 여간 심난하지가 않았다. 나는 그때 세상의 부조리를 보았다. 깨진 양은대야는 내 운명의 판도를 바꾸어 버리는 불행한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계속>
<저자 이찬석 프로필: '어느 ceo의 누드경영' 저자 겸 (주)동부실버라이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