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방황과 도전'<출판사 글이사는마을>은 나의 방황의 기록과 도전의 일기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인생에서 얻음과 잃음은 모두 자신의 선택과 생각에 의해 결정이 된다. 성공의 기준을 어떤 방식과 기준에 의해 설정하느냐에 따라 운명의 빛깔은 어둠과 빛의 차이점에서 평가를 달리하게 된다. 내 운명의 빛깔은 빛과 어둠의 조화였다.
나는 환한 빛을 쫓아 살아 왔지만 생의 전반은 어둠속에 빠져 지냈다. 방황은 실패라는 시간여행으로 나를 인도해 나갔고 도전은 실패의 마당에서 성공이라는 문턱을 오르도록 독촉했다. 나의 선택은 언제 나 옳치는 않았다.
무수한 실패의 그림자로 얼룩진 과거의 흔적이 이런 나의 결론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나이 50이 다 되어서야 진지한 성찰 속에서 내 인생 은 어둠을 빠져나와 불을 밝혀 길을 나서고 있다. 너무 많은 실패의 상처와 마주했던 항해이기에 나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나의 인생 살기는 무수한 시도와 변화 속에서 채워졌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은 나의 인생은 그래서 아직 여전히 도전의 과정 속에 놓여져 있다.
조용히 은둔의 길을 가지 않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열어가는 것은 나의 세상 읽기가 순탄하지 않았음을 대변하고 있으며 내가 선천적으로 꿈을 꾸는 인간임을 증명하고 있다.
실패의 크기만큼 나는 성공을 꿈꾸고 있다. 생의 중심부에서 마그마처럼 뜨겁게 용솟음치는 열정을 무기삼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통해 나는 부활을 거듭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여러 독자와 만남을 갖게 되었다.
내게서 방황의 흔적만을 알고자 하는 독자는 이 책을 가만히 제자리에 놓아두기 바란다. 그러나 나의 방황과 도전의 기록을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인생의 깊이와 상상의 세계를 배우려 한다면 이 책을 들고 곧바로 계산대로 달려가기를 바란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작자의 사고와 인생보다 글을 읽은 자신이 더 뛰어나고 뛰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러한 독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나의 책은 여러분에게 가장 커다란 선물이 될 것이다. 나는 여러 독자보다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여러 독자 분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것을 나는 확신한다. 논의의 전개는 여러분이 나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비쳐진 정당한 평가로 삼아나갈 수 있게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인생의 학습 조건
지난 과거의 흔적 가운데 오르다가 다시 굴러 떨어지고 달리다가 넘어졌던 일들을 돌아보면 모두 이런 성격 때문이었음을 알게 한다. 나는 재주가 매우 용렬한 사람이다. 없어도 있는 척 하고 가방끈 짧아도 긴 것처럼 하고 살아야 하는데, 나는 그런 허세가 없어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는게 흠이다.
나는 자유분방한 사고와 평소 글 쓰는 일을 좋아해서 삶이 힘들어 지쳐갈 때, 안장다리 걸려 넘어간 씨름선수가 다시 벌떡 일어나듯 위기와 당당하게 맞서 왔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위기가 오면 기회로 만들고 절망적이면 그 절망을 끌어안으면서 나는 길러졌다. 바위가 코 앞에 굴러와도 나는 꿈쩍하지 않은 의연함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조건이든 나쁜 조건이든 모든 것은 인생의 학습 조건이다. 인생은 돌과도 같은 것이다. 때로는 비탈길에서 구르기도 하고 때론 지나가는 행인의 발에 치이기도 하고 때론 사람이 주워 내던져 바닥을 구르는 돌과도 같은 것이다.
삶이 한결 같은 거라면 애당초 인생은 살 가치도 재미도 없는 것이다. 더 깊게 땅을 파고 더 많이 산을 깍아 내릴수록 인생은 살찌워져 가는 것이다.
당시 나는 장사를 돈을 버는 수단으로 삼기보다 인생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삶의 희락을 수확하겠다는 심산이어서 계속해서 장사를 하지 않고 얼마 가지않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럼 무엇때문에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장사를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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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내가 추구한 것은 재미이다.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하고 남들이 시도하지 않을 것을 찾아 그 안에서 무궁한 변화를 통해 삶의 희열을 만끽하여 온 것이다. 어느 때 부터인가 나는 이대입구에서 명물로 통했다. 내가 금욕주의에 빠진 것은 이때부터 였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각 5개 명문 대학생 간부들과 나라의 안위에 대해 토론을 즐겼다. 학생들의 저항은 너무도 아름다운 음악과도 같다. 음악은 악기가 없으면 소리를 낼 수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악기는 ‘사회가 갖고 있는 부조리’라고 말하고 당신들이 내는 음악은 사회 정화와 민주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을 들려줄 때 그 학생들은 열광을 하며 나를 반겼다.
머저리 깡통. 내가 주변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도대체가 현실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득바득 산다고 쌀 곳간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 지 않은가. 되는대로 살아가지는 않지만 철두철미하게 인생을 설계하는 일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을 두고 있지를 않았다.
나는 철이 바뀌면 먹이 군락지를 찾아 창공을 날아다니는 철새처럼 살아왔다. 당연히 방황하는 시절도 있게 되었다. 주머니에 먼지만 수북하게 살아갈 때도 많았고, 굶는 날도 없지않아 있었다. 엉덩이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한자리를 지키는 것이 현명하거나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공식이랄 수는 없지만 지금에 와서는 진득하게 한 우물을 파지 않은 것이 다소 후회가 되기도 한다.
나는 잠시도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언젠가 내 운명의 닻이 내려져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한가지의 전문성을 살려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변화와 개혁
아직 나의 인생 항해는 멈추지 않았고 성공적이었느냐 실패였느냐의 판단을 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다. 어찌되었던 지금의 항해는 예전에 비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 언젠가 또다시 굴러가는 바퀴가 빠져 방향을 잃어버릴지 모르지만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그 모든 것은 내가 오래도록 지켜보아야 할 인생의 거울이다.
나는 평소 발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머리 한 올보다 못한 재능을 가졌지만 9살의 나이에 손톱 깍을 때 손톱이 이리저리 튀어 날아다닌 것을 보고 옆에 안전장치를 부착하여 손톱이 날아다니지 않도록 개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으니 아이디어의 재능은 조금 있었던 모양이다. 그 뒤 10년이 지나서 내가 생각한 제품은 일본에서 출시되어 수입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거짓말을 하면 겨드랑이 털이 하나씩 빠지는 사람이라 거짓말을 못한다. 원인은 모르겠다. 왜 거짓말을 할 때마다 겨드랑이 털이 빠지는지 이말을 진짜로 믿고 겨드랑이 털 좀 보자고 만나자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이전보다 새로운 것, 이전보다 편리한 것, 이전보다 특별한 것을 찾아내어 이를 현실에 적용하고 구체화시키기 위해 많은 실험과 노력을 해 왔다. 아이디어는 경제활동의 동력이고 돈이 증식하는 기회를 무제한적으로 제공을 한다. 시장 흐름를 정확하게 예단한 아이디어는 투기보다 안전하고 수익예상이 덜 가변적이다.
아이디어는 대부분 신분상승의 조건이 되어주며 빈약한 영역에서 더 큰 세계로의 전망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나는 이 순간에도 이와같은 방법이 운명의 크기를 신장시킬 수 있는 불변의 법칙임을 굳게 믿고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 열등한 사람도 일약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될수 있도록 신이 인간에게 내린 공평한 기회인 것이다. 이것은 배우지를 못하고 가진 것이 없는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다 준 희망의 불꽃이다.
끊임없는 탐구정신은 나와 삶을 변화시키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모든 문명의 이기는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다. 나는 이러한 결론을 내 꿈을 구체화시키는 발상의 에너지로 삼아 나갔다.
그 덕분에 나는 창의력이 뛰어난 ‘아이디어 맨’이라는 칭호를 주변으로부터 들을 수가 있었다. 변변치 않게 사는 것을 보면 아이디어가 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해 준데 기여를 한 것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원과 엘지경제연구원분들에게 죄송한 말이지만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간혹 삼성과 엘지 연구원들을 앞지를 때가 많았으니 나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도 결과 때문에 조금이라도 내 자랑을 할 수밖에 없다.
많은 아이디어 중 실버폰은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핸드폰 숫자를 누를 때 울려 나오는 숫자음은 내가 2001년도에 이미 최초로 국내 특허를 받은 아이디어이다. 지금은 모든 국민이 사용하는 중요한 기능이 되었지만 나는 특허보존료를 지불하지 않아 특허권리가 상실되었다. 사전에 꼼꼼히 살펴서 대처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지만 그야말로 삭발하자마자 새똥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특허보존료를 납부하지 않아 특허권리를 상실하는 과정에 놓여져 있는 사이 대기업에서 특허를 출원하여 제품을 생산하기에 이른 것이다.
머리가 도는 건 꼭 외부에서 충격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 때는 정말 지구가 도는 건지 내가 도는 건지 구분이 가지않을 정도로 도통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고구마 먹다가 땅바닥에 떨어뜨린 것도 아니고 눈뜨고 황금 창고 털린 기분이니 나의 실망감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정말 목구멍에서 ‘끙’하는 앓은 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때 일을 더듬으며 글을 쓰고 있자니 또 한숨이 튀어 나온다. 그래서 이참에 특허청장 님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단계적인 절차와 심사를 거쳐 특허를 받은 것을 정보가 부족하여 특허보존료를 지불하지 않았다고 이미 받은 특허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덕분에 나는 돈을 벌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그깟 보존료가 얼마나 된다고 특허권리를 박탈하여 원점으로 돌리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박의 전조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특허를 받아놓고 보존료를 지불하지 않았을 때는 무슨 피치 못할 사유가 있을 텐데 그러한 사유를 충분히 변론하여 타당하면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되어야 선진제도가 아닌가 합니다.
심의등록을 필하지 않고 심사과정에 놓여있는 것이야 어쩔수 없다고 해도 이건 순산한 아이를 다시 집어넣는 것과 같다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래가지고 어디 석죽어서 아이디어 발굴하고 싶겠습니까? 국민들 개개인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여 국가 경쟁력의 재고에 활용하려면 이와 같은 비합리적인 제도는 당장 개혁을 해야한다고 보는데 청장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때 이후 제게는 특허를 출원하는 의욕이 없어졌습니다. 너무나 비합리적인 제도에 비위가 상했기 때문입니다.
지적재산권 보호정책이 이렇게 허술해서야 창의적 인재발굴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습니까. 길가다가 소가 웃을 일입니다. 이제부터라도 과감한 변화와 개혁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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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흑염소
나는 나의 발상으로 인해 세상이 더 나은 단계로 올라서고 삶의 편의가 증진되는 일이라면 소득에 관계없이 일을 벌려 나갔다. 창의하여 시도한 일이 내게 수익을 안겨다주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의 삶의 편의가 증진될 수 있다는 이점을 얻어낼 수 있다면 손발을 걷어붙이고 실행해 나갔다. 지적재산권의 가치가 분명한 일도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안되면 그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사회에 유익을 주는 길을 열어 나갔다.
내 머리 속에서 나와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제품이 만들어지고 상용화에 성공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뛸듯이 좋아했다. 그런 열정덕분에 꿈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적이 수백 번은 넘으니 얼마나 개발에 매달려 왔는지 짐작을 하리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건 먼저 시도하고 결과를 만들어 갈 때 나의 창의력은 열광적으로 활동을 해나갔다.
그 때가 1992년도의 일이다.
민속흑염소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대일 약제 수출을 할 때였다. 그 당시 흑염소와 개소주를 일본에 수출하여 꽤나 재미를 본적이 있다. 일본지도 하나에 의지하며 차량을 끌고 한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몰고 다녔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계은숙 씨가 살던 집이 일본 현지 사무실이었다. 한국최초로 사진명함을 제작하여 일본에 뿌린 것만 수만장이었다.
그 당시 흑염소와 개소주를 일본사람들에게 수출한 전례가 없었던 지 사업은 순탄하게 이어져 갔다. 그러던 찰나 나는 일본현지 사무실에 나가있는 동안에 서울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가 내가 아는 선배가 우리 회사 이름을 걸고 술값을 외상하고 그것도 모자라 용돈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식사를 제공하고 마음놓고 전화까지 사용하게 하며 배려를 했는데 나에 대한 뒷얘기를 나쁘게 늘어놓는다는 말을 전해듣게 되었다. 나는 괄괄하고 원칙적인 성격탓인지 그런 선배의 태도를 이해하고 포용할 자신이 없어졌다. 그 즉시 선배와 통화를 한 후 입국을 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열심히 살아가는 후배를 돕지는 못할망정 피해를 주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입국을 하여 연락을 했지만 그로부터 1달 동안 선배는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추석 다음날 그 선배는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오래 전 일이니까 잊어버리고 용서를 할만도 한데 그것은 그쪽의 생각이었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화부터 내고 주먹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도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선배로서 도리를 저버린 그를 가만히 놓아두면 안된다는 생각에 저돌적으로 싸움에 임했다.
그런 그가 힘에 부치었는지 문을 열고 도망을 쳤다.
나는 그 상태에서 그만두어야 하는데 당시 성격이 그러지를 못했다. 원칙을 져버린 상대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공격을 가해왔던 터라 물불을 가리지를 않았다. 나는 선반 위에 있는 칼을 들고 그의 뒤를 쫓아 갔다. 계단으로 단숨에 뛰어 내려가니 그가 막 건물 밖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등을 잡아채서 세운 다음 칼로 얼굴을 그어 버렸다.
그의 얼굴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그는 다시 뛰어서 도망을 쳤다. 나는 아차하는 순간에 대형사고를 치게 된 것이다. 나는 내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에서 도망을 가지않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있자니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는 도망을 칠수도 있었지만 나는 비겁하게 도망을 치고싶지 않았다. 담배 한 개피를 물고 피가 뭍은 옷을 갈아입고는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는데 문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구멍으로 내다보니 경찰이 권총을 들고 동태를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문을 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옆에 보니 선배가 피를 흘리면서 서서 있었다.
나는 저 자식을 다른 데로 보내야 문을 열어 준다고 했다. 아니면 이곳에서 떨어져 죽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하자 일행 중 한명이 선배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선배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사고를 치고서도 너무도 태연하게 행동하고 스스로 문을 열어주는 내 행동을 보고는 너무도 뜻밖이라 그런지 들어오라고 해도 언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내가 무슨 함정이라도 파놓은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런 사고를 치고 도망가지 않은 사람은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럴 수가 있었던 것은 비겁해지기 싫어하는 내 성격 때문이었다. 그는 내 어깨를 붙잡고 연행을 하려고 했다. 나는 완강하게 뿌리쳤다. 스스로 문을 열고 동행하려고 하는 사람을 무엇 때문에 잡고 가느냐는 게 내 생각이었다. 파
출소에 갔더니 선배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그들이 나를 보고 야유를 보내길래 한마디 쏘아 주었다. 그들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조금 있으니까 선배가 치료를 받고 들어왔다. 그는 나를 오래도록 콩밥을 먹게 해 주겠다고 대들었다.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더 두둘겨 맞지 않으려면 입을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합의를 보았지만 그는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그 일로 나는 구속이 되었다. 출소 후 6년 만에 나는 다시 교도소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두 번 다시는 교도소에 발을 들여 놓치 않겠다고 맹세하고 살아 온 지난 날의 노력이 한 순
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내가 구속이 되자 일본에 있는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수금을 해주지 않았다.
집행유예를 받고 출소하여 일본에 들어가 수금을 하러 다녔지만 이미 자취를 감춘 사람들도 꽤나 되었고, 장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내게 알아서 수금을 챙겨줄 사람은 없었다. 종국에는 회사 문을 닫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건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내게 내린 실패라는 형벌이었다.
벙어리 이태리타올
다시 시작하리라. 다시 태어나리라.
내 앞에 놓인 어둠을 뚫고
희망의 불을 지피운 채
어느 누군가 내게 준 시간여행을
다 채울 때까지 나는 다시 태어나리라.
실패의 책임은 현재의 몫이다.
미래의 시간까지 책임을 묻지 마라.
애초에 인간은 다시 태어나게 되어 있다.
허물을 벗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은 없다.
나는 그렇게 나를 독려하며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자본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기도 하지만 나는 워낙 맨땅에 헤딩을 즐겨하는 사람이었는 지라 땡전 한 푼 없는 상태에서 다시 뭔 일을 해보려고 모진 애를 쓰고 있었다.
돈이 없이도 아이디어만 좋다면 자본은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다는 신념이 내재되어 있던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이디어를 찾아 연구에 몰두했다. 나의 염원이 간절하였던지 새벽 2시가 되어 아이디어 하나가 불쑥 뇌리 속에서 튀어나왔다. 이걸 보고 신기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벙어리장갑 타올을 만들자.
번개가 지나가듯 머릿 속이 뇌파가 요동을 쳤다.
햐! 요거 괜찮네 나는 쓸 만한 아이디어를 생산한 나의 머리를 칭찬을 해주었다. 기존의 벙어리 타올은 사각으로 제작이 되어 있어 몸의 때를 밀려면 이태리타올과 손바닥이 분리가 되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벌려서 무리하게 힘을 주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때를 밀고 나면 손바닥이 굳어질 것 같은 힘겨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누구나 경험을 해 본적이 있으니까 내가 하는 말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하지만 벙어리 이태리타올은 손바닥과 밀착이 되기 때문에 때를 밀어도 아무런 힘이 들지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옳코니~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생각하라 떠오를 것이다.
나는 손바닥을 치며 벌써부터 대박의 꿈을 펼쳐 보았다.
아시아 문화권 중에서 유독 한국 사람들만 때를 밀기 때문에 수출을 할 수가 없어 시장의 규모는 적을지 몰라도 이태리타올을 사용하지 않는 가정이 단 한군데도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는 아이디어로 판단이 들었다. 칼집에 칼만 꽃고 다닌다고 무사가 아니다. 칼집에 꽃혀 있는 칼이 능히 호박이라도 벨 수 있어야 무사라고 인정을 받을 수가 있다.
나는 즉시 머릿속에서 선물해 준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새벽 4시에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이태리타올을 다섯 장이나 샀다. 그 가격이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차비도 없이 물집이 트도록 걸어서 일을 보고 다니는 시기였으니 그 당시로서는 거금의 자본이 투자가 된 것이다.
새벽이슬 벗삼아
아침을 걸어가는 산자의 행렬,
해가 지면 돌아오지 않을
인생의 대열 속에
너는 고목나무처럼
기개가 높다.
나는 평소 내가 지은 시를 읊조리며 이태리타올 실밥을 뜯어내어 펼친 다음 편편하게 다림질을 했다. 손바닥을 펴서 이태리타올에 올려놓고 볼펜으로 그린 후 벙어리 장갑모양 대로 잘라내었다. 크기를 달리하여 하나는 여자용 하나는 남자용 두 개의 모양을 뜬 다음 바느질을 했다. 바느질이 끝나자 벙어리 이태리타올이 완성이 되었다. 이태리타올은 황금같이 빛나 보였다.
하, 요것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구나. 죽으란 법이 없다는 속담 누가 만든 것인지 하나도 안 틀리네 혼자 중얼거리던 나는 실험을 위해 곧바로 목욕탕을 향했다. 새벽은 어둠의 비늘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며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뜨거운 물속에 몸을 집어넣고 불린 다음 앉아서 때를 밀어 보았다. 예상한 대로 온몸을 구석구석 밀고 났는데도 하나도 힘이 들지가 않았다. 상품의 장점이 기존제품과 비교해서 많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증명이 된 것이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다. 그 순간에는 갑자기 어떤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 효과가 있는 제품이라면 온 국민이 벙어리 이태리타올을 사용 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나를 들뜨게 했다. 온 국민이 하나씩 구매를 하면 흐흐흐 순식간에 높은 빌딩이 상상 속에서 지어졌다 부서졌다 를 반복했다. 못 건져도 집 한 채는 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있는 돈들이 나를 향해 초고속의 속도로 날아오는 것 같았다. 성공이 이렇게 간단하다니 나는 개선장군이 되어 목욕탕 문을 나섰다.
나오면서 카운터 주인아주머니에게 내가 만든 벙어리 이태리타올을 보여 주었더니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참 고거 특이하네요. 아찌 그거 어디서 샀어요.”
“제가 만든 거예요. 곧 출시가 되면 납품을 해드릴까요?”
“좋아요. 저희가 들여놓을 게요.”
벌써 날은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지천의 모든 생명체가 깨어난 그 시간까지 나는 흥분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평소 사람의 머리가 돈이라는 생각을 믿고 있던 나의 신념이 들어맞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다음 날 제품의 장점과 기본제품의 단점을 비교한 제품설명서를 들고 이태리타올 영업이사와 통화를 했다. 특허를 출원하고 일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몸을 뉘일 곳이 있다는 것 말고는 노숙자와 같은 빈곤한 처지였으니 특허출원은 감히 꿈꿀 수 없는 일이라. 이태리타올 회사로부터 원단을 지원받아 제품생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태리타올 업체와 단판 승부를 걸려고 영업이사를 만나기로 했다. 영업이사는 한번 만나자는 나의 제안을 듣고 어떤 아이디어인지 말해주지 않는다면 자기도 나를 만나주지 않는다고 힘겨루기를 했다. 스포츠운동화끈 졸라매고 있는 판에 내가 누군데 달려가지 않겠는가.
“영업이사님 이태리타올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는 엄청난 아이템입니다. 지금까지의 이태리타올은 타올 축에도 끼지를 않습니다. 만약 저의 아이템과 손을 잡고 일을 벌려 나간다면 그 공로를 인정받아 바로 전무로 등극을 하실 것 입니다. 기회를 놓치는 것은 잠깐이지만 고생은 영원합니다.”
“먼저 정보를 말씀해 보세요.”
“아니 영업이사님. 패 들어온 거 보여주며 고스톱치는 거 보았습니까? 웃는 입 비틀어 금니 뽑아가는 게 요즘 세상 인심인데 어떻게 정보를 미리 말씀 드리겠습니까? 그렇게는 안되겄는데요.”
“그럼 한 번 다녀가시지요.”
“영업이사님 낚시터에도 가지 않고 고기를 낚으려고 하시면 안 되지요.이번일은 어물쩡 넘기시다가는 큰 기회 놓치십니다.”
“알았습니다. 그럼 제가 그리로 넘어 가지요.”
영업이사는 단숨에 사무실로 찾아왔다. 사무실에 들어선 이사에게 아이디어 정보는 감추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다음 몇 가지만 물어 보겠습니다.”
“이태리타올에 대한 재질의 특허권은 이태리타올 회사가 독점하고 있습니까?”
“그렇치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나 이태리타올을 만들 수가 있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발명 특허 권리행사 기간이 경과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여러 영세 기업에서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그럼 귀사에서 이태리타올 원자재를 공급받아 독자적으로 생산하여 판매할 수 있습니까?”
“그럼요.”
“영업이사님 그렇다면 첫 거래부터 이런 말씀 드리는게 결례인 줄 알지만 저한테 원자재를 외상으로라도 공급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와 같은 거래는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거래가 있어 왔다면 문제는 다르지만요. 어찌되었던 우선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합시다. 듣고 나서 결론을 내리기로 하지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한 아이템은 이태리타올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
아무래도 불안한 나는 뒤이어 사실을 말하지 않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참 그러니까 이태리타올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 아이템이 뭐냐구요? 계속해서 역사 역사하니까. 웃음도 나고 제가 일부러 여기까지 왔으니까 속 시원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는 내가 하는 역사라는 말은 안중에도 없고 다짜고짜 아이디어를 말하라고 독촉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쉽게 아이디어를 입 밖에 내 보일 수가 없었다.
“아뇨 어떤 아이디어인지 아직 말씀을 드리지 못합니다.”
“그럼 대화의 요지가 무엇인가요.”
“만약 제가 이태리타올 매출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걸 믿고 이태리타올 원자재를 밀어줄 수 있습니까.”
“밀어주고 안밀어 주고는 우선 내용을 알아야 판단을 하지요. 먼저 말씀을 하지 않으면 대화가 진전될 수 없습니다.”
상대는 나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어떻게든 알아야 하겠다는 태도를 고집했다.
먼 길을 달려온 상대에게 어떤 내용인지 말은 들려주어야 도리이고 협상을 하려면 거쳐야 하는 순서인 걸 알지만 모처럼 기회를 잡았다고 앞서 생각한 나로서는 괜히 입 밖에 내어 놓았다가 다 된 밥에 생쌀 부어버리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심이 일어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저는 일어나겠습니다. 정히 원자재가 필요하면 대금을 마련한 이후에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그렇게 말을 하고 자릴 털고 일어났다. 영업이사가 원하는 대로 아무런 말도 들려주지 않은 나로서는 그를 더 이상 붙잡을 수가 없었다.
상담 결과 자본만 있으면 이태리타올은 누구나 생산할 수 있는 상황 이었다. 원하는 원단을 지원받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얻은 것이 있었다. 자본만 있으면 사업은 원활하게 진행할 수가 있었다. 일은 더더욱 쉬워졌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성국이라는 친구에게 연락을 하여 이 같은 사실을 전했다. 그는 만사 제쳐 놓고 나를 찾아왔다. 친구를 통해 소개받은 투자자는 하필이면 북한에서 귀순한 사람이었다. 아이디어를 들어보더니 더 이상 뜸들이지 않고 정부에서 보조금과 정착금을 받은게 있는데 사업에 투자를 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에서 넘어 왔어도 세상물정은 아는 사람이었는지 그는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 갔다. 모든게 일사천리로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자금이 유입될 때까지 나는 사업 기획안을 작성했다. 별도의 투자자를 영입해야 하니 기획안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획안은 그들의 손에 넘어갔다. 그런데 약속한 날짜에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원하게 대변을 다 보고 화장지를 준비하지 않은 것 같이 나는 잠시실망감에 빠져 있어야 했다. 처음 느낌에 정보만 가지고 자기들끼리 진행을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는데 그러한 염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치않게 신문 속에서 삼손이라는 이태리타올이 출시되어 대리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접하게 되었다. 제품의 장점에 대해 내가 그들에게 전달해 준 그대로 똑같았다. 단지 엄지손가락 하나인 벙어리장갑이 두 개로 바뀐 것 예외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았다. 실웃음이 입에서 흘러 나왔다.
돈 앞에선 누구나 장님이 되고 사랑의 독에 감염되면 정신차리고 사는 사람 없듯이 그들은 이익 앞에서 신의를 내동댕이치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했던 것이다.
바보천치들!
삼손이 이태리타올은 착용하기가 간편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 안된다. 망해라 제발 망해라 내가 부처님이 아닌 이상 신의를 구긴 그들의 일이 잘되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의 예견은 딱 들어 맞았다. 삼손이는 시장에서 출시되자마자 곧바로 자취를 감추었다. 벙어리 형태로 생산을 하여 법적인 소송을 피해보고 이익을 독점해야겠다는 욕심때문에 손가락 하나를 더 추가하여 생산했지만 시장 판독이 안된 제품이 판매될 리가 없었다. 아무리 목말라 우물물이 욕심이 난다고 해도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먹지를 않고 입으로 마실려고 하다가는 빠져버리는 수가 있듯이 모든 일을 추진하는 데는 바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차라리 그때 신의를 지키고 함께 일을 추진했다면 벙어리 이태리타올이 일본에서 생산되어 한국으로 수입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돈 버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거리와 편의점에서 심심치않게 벙어리장갑을 보게 된다. 그때마다 귀순용사 친구들이 불쑥 생각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이태리 벙어리장갑은 내가 최초로 바느질해서 만든 제품이라는 자긍심이 있기에 위안을 삼게 된다.
지금 그들은 어떻게 민생고를 해결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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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찬석 프로필: '어느 ceo의 누드경영' 저자 겸 (주)동부실버라이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