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열차에 탑승하기 위한 시도
서울에 오고 나니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고민하고 있을 때 건달세계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호텔 쪽과 관련된 사업을 하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그 쪽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자기들한테 영업권을 넘기라는 것이었다. 특허 출원비는 자기들이 투자를 하고 하청을 주지 않고 직접 생산 설비까지 짓겠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나에게는 일정부분의 이익을 챙겨주겠다는 것이었다. 대표권을 자기들에게 맡기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사업의 독점권한을 안겨 줄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대신 영업을 맡아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하자 등을 돌리고 가버렸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친구에게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 의류를 공수해 주면 자기들이 매매를 해서 자금을 보내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라고 여겨 아는 쪽에 연락을 해서 여성 의류 50벌을 비행기 편으로 보내주었다. 그런데 의류를 받은 친구는 한 달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다급해진 나는 곧장 일본으로 향했다.
나는 그들이 살고 있는 신주쿠를 찾아갔다. 나는 그곳 오락실에서 친구를 만날 수가 있었다. 일행이 3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명동 선배 이모 씨였다. 나는 그들이 있는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 모두 마약에 찌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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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나갔는지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나는 그 길로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수금을 하기 위해서 들어가 보기로 했던 것이다. 선배는 내가 여기서 머물고 있으면 돈을 마련해서 의류대금을 주겠다고 했다. 기다리고 있는데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들어서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화장실 벽면이 온통 시커멓게 불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나는 건너방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아는 선배가 드러누워 있었다. 그의 눈빛을 보자 나는 그가 마약에 취해 있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 수가 있었다. 그는 망치를 들고 색연필로 색칠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밖으로 뛰쳐나오려고 하는데 명동 선배가 길을 막아섰다. 곧 사람이 오기로 했으니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잠시 후 명동 선배 말대로 사람 하나가 들어섰다. 그런데 그는 일본 야꾸샤였다. 일본말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더니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놓았다 마약이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분위기상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마약을 보자마자 허겁지겁 거리면서 팔뚝을 걷어 마약을 투약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에게도 마약을 권했다. 일본 야꾸샤가 내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는 것이었다.
자살까지 결행하면서 수년 동안 마약을 끊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 왔지만 마약을 보는 순간 내 혈관이 자신도 모르게 꿈틀거리며 원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그들과 마약을 함께 투약을 하게 되었다.
마약이 다시 내 몸 속에 들어가자 서울의 일은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모든 것이 다시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선배는 내게 일본 야꾸샤로 부터 받은 마약을 덜어서 건네주었다. 나는 그 약을 받아 들고 신주꾸후린 게스타 호텔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그런데 선배 하나가 시마사끼라는 일본 야꾸샤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내게 소개를 시켜 주었다.
일본 신주쿠 오야봉이었다. 그는 나를 한국의 오야봉으로 소개를 하였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숙이고 방바닥에 무릎을 꿇은 다음 선배로 모시겠다고 했다. 나는 교도소 복역 당시 제 2외국어를 일본어로 선택을 해서 검정고시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약간의 일본말은 할 수가 있었다.
그는 내 앞에서 다시 약을 투약하고는 주사기를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내가 “야 왜 주사기를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넣느냐” 하자 이곳에는 아무도 올 수가 없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와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 명동 선배가 찾아와서는 아까 준 약이 남아 있으면 달라고 했다.
나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약을 꺼내 주었다. 그는 약을 들자마자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권총을 든 일본 형사들 여섯 명이 들이닥쳤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이 하자는 대로 순순히 응해 주었다.
그들은 먼저 시마사끼에게 권총을 겨누고는 그를 벽에 서게 한 후 한쪽 다리를 들고 있도록 총구로 지시를 했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털어 조금 전 그가 감추어 둔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그는 현장에서 증거가 들통이 난 것이다. 그들 중 한명이 다시 내게로 와서는 여권을 꺼내보라고 했다. 나는 순순히 여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물었다. 그는 재일교포 형사였다. 나는 그가 한국교포형사라는 것을 알고 내가 커다란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온 비즈니스맨이라고 대꾸를 해주었다. 그는 아주 예리한 눈으로 내 팔뚝에 있는 주사바늘 자국을 들여다보며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알레기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가 피식하며 웃었다. 자기는 전문가인데 그것은 마약을 투약한 증거라고 했다. 나는 완강하게 부인을 했지만 곧바로 그들과 함께 일본 경시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호텔 밖으로 나오자 경찰 기동대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차에 오르면서 명동선배가 나를 한국의 오야봉으로 소개한 점, 집으로 일본 야꾸샤를 불러들여 마약을 하도록 종용한 점, 주었던 마약을 다시 받아 간 점 등을 분석하며 이것이 소위 함정 수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계획대로 이끌려 가다가는 한국에 영원히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차에서 내려 지하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두 명이 옆에 바짝 붙어서 나를 감시했다. 옆에 있던 경찰이 나를 보고 마약 냄새가 난다며 눈을 흘겼다. 나는 매서운 눈으로 쏘아 주었다. 지하 수사실로 연행되어 가면서 어림도 없다는 나의 강경한 태도에 그들은 어이없어 했다.
비록 죄를 지었지만 나는 민족적인 감정이 되살아나 이들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리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려서자 조그만 취조실이 10개 정도가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시마사끼는 보이지가 않았다.
그놈이 명동선배와 짜고 나를 함정에 빠뜨린 정보원이라는 전후 사정을 알고 있는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들이 소변 통을 가져 와서는 소변을 보자고 했다. 나는 완강하게 거부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나는 한국의 남자이다 내가 만약 죄를 지었다면 한국 법에 따라 죄를 받을 것이다. 나는 절대로 너희들의 조사에 응할 수가 없다 보아하니 이건 함정수사이다. 전후 사정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일본은 외국인을 상대로 함정수사를 하는가. 이렇게 해서 일본에 만연되어 있는 마약을 없앨 수가 있다고 보는가. 일본경찰이 이정도 수준밖에 안되다니 어이가 없다. 어서 재일 교포 형사를 만나게 해 달라. 책상에 두 손을 올리고 조금도 기가 꺽히지 않은 꼿꼿한 자세로 응대를 하자 그가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면서 밖으로 나가더니 한국교포 형사를 대리고 왔다.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충고 한마디 하겠소. 민족적인 동질성을 내세워 나의 죄를 감추고 싶지는 않소. 나는 이곳에 와서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으나 만약 내가 마약을 하였다고 해도 일본에 와서 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했으니 한국으로 돌려 보내주어 한국 법에 따라 심판을 받게 도와달라고 했다. 그는 내말을 듣더니 더 이상 나를 취조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한국에 언제 들어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래도 의류대금을 받아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며칠 있다가 들어가겠다고 했다.
나는 경시청을 빠져나와 다시 게스타 호텔로 향했다. 시마사끼는 예견한 대로 게스타 호텔에 있었다. 나는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시마사끼를 불렀다. 그리고 다짜고짜 그의 멱살을 잡아채었다.
한국사람 알기를 우습게 알어. 개자식아. 너하고 나하고 같이 죽자. 나는 그의 몸을 잡아 끌고 창 쪽으로 밀쳐버렸다. 그가 사람 살리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오해라고 한국말을 늘어놓았다. 그가 비록 야꾸샤 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눈에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가 수화기를 다급하게 들더니 일본말로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이곳에 더 이상 있다가는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뒷모습을 보이며 줄행랑을 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넥타이도 매고 양복을 걸친 다음 너는 오늘 내가 죽일 수도 있지만 불쌍해서 그냥 간다라고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고 유유히 호텔을 빠져나왔다.
나는 그길로 친구한테 간다온다 말도 없이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본금을 마련해 보겠다고 애를 쓰던 일로 인해 너무나 엄청난 일을 경험한 나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사무실로 향했다. 몸속에 마약의 기운이 흐르고 있는 상태에서 사업을 신경 쓴다는 내 자신이 너무나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고 일에 매달리기로 했다.
그렇게 지내는 며칠 동안 사무실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일본에 수금을 하러 간 대표가 오지를 않자 경리사원은 그만 둔 상태였다. 영업 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도 있었지만 차마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좀 더 다른 아이디어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호텔침구 사업은 중도에 잠시 그만두기로 했다.
광고테이프 기획안
내가 다시 시작한 일은 공 테이프에 광고를 녹음해서 택시기사가 하루에 세 번씩 틀어주는 사업이다. 라디오 광고에서 착안을 하게 되었다. 영세기업들이 광고를 하고 싶어도 라디오 광고 또한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쉽게 할 수가 없다는 점에 착안 하였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효과는 라디오 광고만큼 보게 하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문제는 영업용 택시노조와 협의하여 사업권을 받는 게 과제였다. 만약 우리업체와 손을 잡고 광고 사업을 진행한다면 노조도 수익을 올려 조합원들의 후생복지에 사용할 수가 있으니 협의를 마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을 하고 기획안을 작성한 후 잠실에 있는 전국 택시노련을 찾아갔다.
노조사무실이라 분위기가 여간 탁한 것이 아니었다. 비 간부 요원을 만나 일단 사업 내용에 대해 취지를 말했다. 그는 내얘기를 듣고 위원장 앞으로 안내했다. 위원장은 나이어린 나와 마주앉아 사업얘기를 듣는 일 자체를 자존심상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나대로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속으로 부아가 치밀어 올라 있었다. 나는 조목조목 본 사업권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본 사업권은 노조의 복지 증진해도 기여를 할 뿐 아니라 크게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자생력을 신장 시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진행하는 일은 간단합니다. 기업들이 자사상품을 녹음한 광고 테이프를 기사분이 하루에 세 번만 틀어주면 됩니다. 그러자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위원장이 가소로운 표정을 짓다가 귀가 번쩍 뜨이는지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는 아이디어는 좋은데 아직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실내광고 방송법 안이 이번에 통과가 되니 다음에 대화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어차피 실내광고법이 통과가 된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하지 않느냐며 몰아 붙였다.
그런데 뒤에 나온 말이 나의 비위를 건드렸다. 나중에 하면 되지 벌써부터 준비할 필요가 있나. 그리고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어떻게 일을 진행한단 말이요. 하더라도 우리가 직접 해야 하지 않습니까.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언성을 높이고야 말았다. 그러자 노조원들이 떼거지로 달려들었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대응했다. 나중에는 집기를 집어던지고 좀 심하게 소란을 피우게 되었다.
그들은 경찰에 신고를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강동경찰서로 연행이 되었다. 죄명은 기물파손과 업무방해였다. 자존심이 상한 위원장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구속을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아는 지인들이 찾아와 사과하고 나서야 그는 화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합의를 해 주었다.
<계속>
cs2460@naver.com
<저자 이찬석 프로필: '어느 ceo의 누드경영' 저자 겸 (주)동부실버라이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