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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발하는 샹데리아적 신문
저는 세가지 종류의 매체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일찍부터 신문과 인터넷, 즉 오프·온라인의 융합을 지향해 왔습니다. 주간신문인 '주간현대'와 '사건의 내막' 그리고 인터넷 신문인 '브레이크뉴스'와의 정보교류를 통해, 종이신문이 가진 깊이와 인터넷 신문이 가진 속보성을 결합, 공유해왔습니다. 융합은 분열보다 큰 힘이 나옵니다. 원자폭탄 보다 수소폭탄의 위력이 더 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프+온라인의 융합으로, 언론에게 짊어져 있는 정보전달과 비판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다 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고급 호텔 로비의 천정 등에 설치되어 있는 샹데리아는 사실 모난 투명 알갱이들의 집합입니다. 그런데 전등이 빛을 발하면, 모난 알갱이들은 서로가 서로의 장점을 비추입니다. 그리하여 밝음과 아름다움이 배가되는 하나의 신비로운 형체를 만듭니다. 제가 발행하고 있는 '주간현대' '사건의 내막'이라는 두 주간신문과 '브레이크뉴스(www.breaknews.com)'라는 인터넷 신문도 이 사회의 샹데리아적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샹데리아에 부착된 작은 모난 알갱이들은 그 자체로서는 미미하지만, 서로가 위해줌으로 인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조명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작은 매체이지만 이 사회의 다양한 정보를 신문지면과 인터넷 화상에 담아냄으로써 이 사회를 아름답고 환하게 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발행인으로서 매체를 이끌어가는 이념적 방향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세 신문은 일찌감치 중도주의를 지향해왔습니다. 극렬한 색깔이 득세하는 것을 보면서도 중도주의를 꿋꿋하게 지켜왔습니다. 이념적으로 좌우를 아우르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공존해 갈 수 있는 실용주의를 지면과 화상에서 넓혀가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대중 매체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 대중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대중이 숨 쉬고 있는 세상에서 열심히 취재를 하며, 독자들인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생존해가기를 원합니다.
사회의 전 부문이 위기인 시대에 신문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의 파도”가 급속하게 몰려오는 듯합니다. 이런 가운데 문자의 마력을 생각해봅니다. 문자는 창작을 가능케 합니다. 문자는 소설이나 시의 창작을 가능케 하는 도구입니다. 또한 문자는 신문을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도구입니다. 지금도 문자는 마력을 가지고 이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쉽게 잠들지 못해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실직, 집에서 쉬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업무상 조그마한 사무실이나 룸, 연구실, 대중교통수단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문자는 이런 이들에게 더욱 더 큰 힘이 됩니다. 종이·인터넷 신문은 이런 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신문위기의 시대에 이런 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봅니다. 지상, 지하철, 시외버스·고속 터미널, 공항, 편의점 등등 대중이 움직이는 곳에는, 주간신문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간신문은 무서운 신문(?)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국 주간신문의 약사를 브리핑하고자 합니다. 한국 주간언론은 최근에서야 꽃을 피우고 있는, 불행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했던 박정희·전두환 정권까지의 주간신문은 유력 일간신문의 부속품처럼 발행되어 왔습니다. 소위 제도권 언론사만이 발행할 수 있는 '제도권 언론매체' 였습니다. 그러다가 노태우 정권에 들어서서야 등록이 자유로워졌습니다. 1989년에 창간된 토요신문이 일간신문의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 발전된 '독립 주간신문'의 첫 주간신문으로 기록될 만합니다. 그 이후 소위 자유롭게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는 주간신문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됩니다.
노태우·김영삼·전두환·노무현 정권을 거치고 이명박 정권 2년차까지를 합하면 20여 년 간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성장해왔습니다. 근년과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비교하면, 김영삼 정권 이후 정권 시대야말로 주간신문이 자유의 물을 마음껏 마시면서 성장했던 발전의 시대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주간언론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질적·양적 성장기로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간신문은 한때 '옐로우 신문'의 대명사처럼 불리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정책의 강화로 인해 주간신문에서 옐로우 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성의 누드 사진조차 실을 수 없게 됐고, 이로 인해 옐로우 성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간 한국의 주간신문은 어쩌면 잡초 같은 대우를 받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를 적으로부터 지키라고 준 총칼로 국가권력을 찬탈한 군인들이 집권했을 땐 주간신문은 잡초처럼 만들어 졌습니다. 선데이서울, 주간경향, 주간중앙, 주간한국이 발행되던 시대의 주간지 지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자기들에 대한 비판이 두려워 주간신문을 통제했을 겁니다. 그 때문에 한국 주간신문들은 논두렁, 밭두렁, 아니 산야 그 어디든지 자라는 잡초나 잔디 같은 대우를 받고, 한스런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존재감 없이 생존해 왔을 것입니다.
필자가 쓴 시 가운데 '잔디'라는 시가 있습니다. 어쩜 잔디는 주간신문을 발해해온 저 자신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긴긴날 뜨거운 태양아래 무성하게 자란 내 몸 위로/여러 사람이 밟고 지나다녀 잔디 길이 생겼네요.//내가 당신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더라도/소리치거나 아파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이유는//당신이 황홀한 생각에 빠져 산책을 하던/족적 모두가 고스란히 내 몸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입니다.//밖으로 보이는 나의 모든 것이 으스러지더라도/끝내 뿌리만은 살아남아서/그대를 언제든 받아들일 각오로 살고 있습니다.//당신의 깊고 깊은 생각이/당신 자신과 이 세상을 바꾸는데 유용하다면//난, 끝내 참아 견디며/당신이 내 몸 위로 기꺼이 걸어주기를/내 푸릇푸릇한 몸이 지끈지끈 마모되는/순간순간에라도 다소곳이 수용할 겁니다.//유약하고 연약한 잔디의 가녀린 아우성을 들으며/당신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의 족적이/당신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부디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필자의 시 '잔디'의 전문)”
잔디와 같던 주간신문은 쉬운 말로, 주간신문은 1차 독자에 국한되지 않고 더 많은 독자가 있다고 합니다. 주간신문을 처음 사본 사람이 1차 독자이고, 집에 가져가면 식구가 2차 독자, 사무실로 가져가면 사무실 동료들이 2차 독자랍니다. 화장실에 놓아두면 또 다른 독자가 생기겠지요. 그리고 주간신문에서 본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풀어놓으면 간접독자까지 생깁니다. 재미있게 구성한 주간신문 기사는 구전으로 전하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이제 한국의 주간신문은 무서운 신문(?), 힘 있는 신문이 되었습니다.
인터넷 언론의 내적 에너지
인터넷 언론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브리핑하고자 합니다. 한국은 정보-통신(it) 강국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이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인터넷 신문은 it강국 대한민국의 자존심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집권과 그 시대, 인터넷 신문의 활약에 따라 부상하기도 했지만, 지나친 색깔지향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인터넷 언론의 자성론이 일고 있고, 일면 거품이 빠지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뉴미디어로서의 인터넷 신문은 발전할 여지가 많을 것입니다. 언론의 대변화와 혁신 유도도 인터넷신문이 가지고 있었던 내적 에너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브레이크뉴스는 인터넷 언론의 중심에 서서 의연한 길을 가겠습니다.
주간신문 스스로 시장을 개척
제도권 신문에 머물던 주간신문은 근년 들어 독립 민간신문으로 잘 정착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신문의 '위기시대' 입니다. 신문의 쇠퇴현상이 눈에 확연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주간신문에 다가오는 어려움도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우선 제도권 언론일 때와 판이하게 생존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시장 의존적이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논조를 가진 여러 주간신문들은 자유경쟁을 하며 생존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뉴미디어·대체 미디어들이 독자를 잠식, 주간신문의 구독자가 나날이 적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가하면 일간 무료신문들이 속속 등장, 무료로 신문을 볼 수 있는, 공짜신문들의 전성시대가 구가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최고의 미덕은 생존일수 있습니다. 매체가 살아 있는 것이 최고 미덕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의 이명박 정권의 대 언론정책은 거의 완벽한 시장주의 인 것 같습니다. 거대 방송이나 일간신문들도 공통으로 경영에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는 구정권들과 다른 언론정책에서 기인된 듯합니다. 시장이 언론의 경영주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부 혹은 특정 재벌이 배경이 되거나 지원하는 것보다는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시장 우선주의로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향후 많은 매체들이 사라질지 모릅니다. 지금은 쇠퇴하는 종이신문 시대입니다. 이로 인해 종이 일간신문이나 주간신문이 여기에 해당될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제가 발행하는 주간신문이나 인터넷 신문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으면 합니다. 살아서 이 사회를 위해 무언가의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기를 바랍니다.
일간신문과 주간신문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한국의 본격적인 독립 주간신문의 역사는 아주 짧습니다. 언급하다시피, 20년 정도 였습니다. 이로 인해 주간신문에 대한 편견이 심합니다. 지난 20여년 간 주간신문에 대한 국가차원의 지원도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오로지 주간언론 종사자들의 뼈아픈 고통을 통한 제작참여로, 이 정도의 주간신문 시장으로 성장시켜 놓을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간 언론도 규모는 작지만 주간신문 스스로 시장을 개척, '주간언론 산업시대'를 열었습니다. 대중이 있는 전국의 어느 곳이든 주간신문들이 배치되어 있을 정도로 성장되었으니까요. 주간언론을 생존케 해주는 생존의 틀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신문판매 대금이고, 또 하나는 기업이 주는 광고비입니다. 근년 들어 판매수입이 주간신문 경영에 미치는 비중보다는 기업의 광고비중이 더 커졌습니다.
경제 위기 속에서 주간신문도 생존위기에 직면해있지만, 예측을 해보면 주간신문 시장은 더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기업들도 기업의 미래를 위해 주간신문에 더 많은 배려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주간신문은 인체에 비교하면 혈액과 같습니다. 공산주의 체제가 아닌 이상, 자유 민주주의, 특히 발달한 자본주의에서는 정보의 원활한 유통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통제받지 않은 정보의 자유유통 사회만이 자본주의의 생명입니다.
훈훈한, 사람냄새 물씬나는 신문
한국언론재단이 최근 펴낸 “프랑스 미디어 발전 전략에 관한 보고서 및 논평”에는 “자유로운 미디어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우리 민주주의의 근본원칙 중의 하나”라면서 “정보의 질은 규제 받거나 통제될 수 없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유로운 미디어와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게 기업의 생존과도 직결됩니다. 이 논리는 주간신문의 생존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답도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다양한 언로에 의한 다양한 정보전달의 사회를 의미할 것입니다. 가정이지만, 경제위기에 견디지 못하고 언론사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경우, 기업들이 그 언로를 부활시키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자되어야 할 것입니다. 언로가 열리지 않는 한 자본주의는 활기차지 않을 것이고, 자본주의가 활기차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존도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가령 기업이 하나의 주간신문을 운영할 경우라도, 고비용이 지출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언론 산업의 건재나 발달은 기업 발전의 직접적인 토양입니다. 언론이 정보 전달에 충실, 사회현상을 반영하거나 리드해감으로써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종국적으로는 기업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입니다.
제일기획은 지난해 12월 21일 눈에 띄는 보고서를 하나 내놨습니다. 외환위기 때 광고비를 많이 지출한 회사가 광고비를 줄인 기업보다 더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조사대상은 2백개 기업이었는데, 불황인 1998·1999년에 광고비를 증액한 기업은 매출이 2배정도 증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광고비를 축소시킨 기업은 매출이 94%로 하락했다는 것입니다. 불황 때 마케팅 비용을 늘린 회사는 3년 후에 매출이 3배로 늘었다는 덧붙임 입니다. 이를 분석하면, 기업의 성장은 곧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매체를 통한 끊이지 않은 정보전달이나 pr이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큰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대중에서 멀어진 기업은 물에서 멀어진 물고기와 같다는, 비유가 어울릴 것입니다.
이름난 경주 최부자집은 1600~1900년까지 300년 동안이나 부자로 살았던, 부의 대물림(12대) 집안이었습니다. 만석군이라는 부의 전통을 오랜 기간 이어왔습니다. 그 비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가훈에서 약간이나마 그 비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집안은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 없게 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지 말라 △재산은 1년에 1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 △가문의 며느리들이 시집오면 무명옷을 입혀라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 하라는 등의 가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가훈은 이름난 부자기업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지 모릅니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 없게 하라”는 가훈은 자본이 축적된 오늘의 사회에서도 심금을 울리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최부자 집안의 길고 긴 부의 대물림 이면을 보면, 정보입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론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권력 가까이 가지 않거나, 굶는 사람을 보살피거나, 흉년에 재산을 늘리지 않거나, 과도하게 재산을 축재하지 않거나, 집안사람들에게 옷차림을 조심시키거나, 나그네를 후하게 접대하는 것들이 모두 여론에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들입니다. 오늘의 기업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예시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기업은 사업을 잘하면 할수록 다수의 고용을 창출 합니다. 기업이 신문에 주는 광고료는 결과적으로 고용창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국에는 수천 개의 신문 판매대가 있습니다. 주간신문은 가판대에 종사하는 분들의 일자리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비좁은 가판대에서 추위에 떨며, 신문판매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터넷 신문도 정보전달 기여면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의 광고료가 또 다른 고용창출의 직접자본이 되고 있다는 것을 기업들이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선진 국가는 공통적으로 힘 있는 주간신문 & 인터넷 신문이 발행되고 있습니다. 힘 있는 주간신문 & 인터넷 신문이 그 사회에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선진 국가 일수록 사람이 희망인 사회입니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저 역시 2009년 한 해도 선진국형 주간신문 & 인터넷 신문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인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기여하는, 훈훈한,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신문을 제작·보급 하겠습니다. moonilsu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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