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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수많은 아이들의 합창소리"

수채화 가득한 <박종규의 글 세상> '아름다운 폐교'

박종규 에세이스트 | 기사입력 2009/03/29 [22:15]
나는 그곳에서 귀신 꿈을 꾸고야 말았습니다. 빼곡한 주목들이 밭과 경계를 짓고 있는 폐교된 운동장, 바위 깨진 부스러기들이 무덕무덕 쌓여있어서 무슨 공사장 같으면서도 을씨년스러웠던 곳, 그러나 그곳이 바로 파라다이스로 들어가는 입구였습니다.
  
교사(校舍)로 오르는 계단 옆으로는 맑은 물이 쫄쫄 흘러내렸습니다. 이 물줄기는 조그만 물레방아에 물을 실어주었고, 계단 주변은 온통 마가렛 꽃들이 무성하여 지천이 꽃, 꽃, 꽃밭이었습니다. 계단 끝에 올라섰을 때 무릎 밑으로 키 작은 싸리 울타리 밖에 넘쳐났던 마가렛 꽃들의 향연은 그곳에 뒹굴던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처럼 살가웠습니다.
 
교실이었던 단층 목조건물은 파릇파릇한 담장이넝쿨이 온통 휘감았고, 그 뒤로 숨 가쁘게 펼쳐 오르는 드높은 산마루, 그곳은 여귀산의 끝자락이 그 치마폭의 가장자리를 펼쳐 두른 곳이었습니다.
 
고운 잔디로 다듬어진 교사(校舍) 뒤뜰엔 지름 20미터 정도의 둥그런 연못에 푸른 하늘이 담겨있고, 연못 가운데에는 돌로 가장자리를 쌓은 인공 섬이 동그랗게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그 섬 정수리에 꽂혀있는 향나무의 용틀임은 가장 자연스럽게 스스로가 살아 있음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섬으로부터 쪽다리로 연결된 흙벽에는 넓은 전망창이 담장이 틈새에서 하늘바다를 반사시키고 있었습니다. 아담한 응접실에는 담장이가 멋대로 비집고 들어와 실내에 넝쿨 가지를 넓히고 있었습니다. 마침 우리를 따라 들어온 나비 두 쌍이 천연덕스레 식탁에 앉더니 몇 마디 주고받는 소리를 듣고는 날개를 끄덕이며 날아 나갔습니다.
   
넓은 교실은 화실이 되었고, 발자국 따라 삐거덕거리는 마루판자소리가 옛 교실의 정취를 더했습니다. 그곳의 주인인 나절로 선생은 비로소 귀신이야기를 끄집어 내 놓았습니다. 안 그래도 이곳에 오기 전 귀신 나오는 학교라는 말을 들었던 일행은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혼자 일구어 내고 감당해 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작은 체구였습니다.
 
 “어떤 학교든지 처음 세울라치면 부지 정지작업을 하게 되고, 무덤 두어 개는 파헤치게 마련이어라. 그러다 보니 때로 귀신이 나타나서 ‘내 자리 내 놓아라’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고라. 나도 밤새도록 싸웠지라!
 
동네 사람들은 이곳을 귀신들이 사는 곳이라 했고, 내 몸은 겁나게 수척해져서 다들 오래 못살고 죽든지, 지발로 여그서 나갈 것이라고들 했습니다. 그래도 난 용케 이겨냈지라.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알아라. 지금도 이따금 손님들한테 밤에 나타나곤 한께 조심 덜 하시오.”
 
 “아니, 그럼 오늘 밤도 나타날지 모르겠군요?”
 
 “그라 지라. 12시가 넘으면 바깥출입을 안 해야 써라. 그 시간부터는 귀신 자그덜 시간 잉께! 귀신들과도 자연스레 어울려 살아가야 안 하것소. 귀신들이 오늘 밤을 지켜드릴텡께 편히 들 주무시쇼. 난 읍에 좀 나갔다가 아침에 돌아 올라요.”
 
거짓말 같기도 하고 참말 같기도 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마지막 말의 꼬리가 여간 길지 않았습니다. 우린 늦은 밤, 밤새도록 귀신이야기에 홀리다가 결국은 귀신 꿈들을 꾸고 말았답니다.
 
 삐그덕 삐그덕!
 깜깜한 밤인데 누군가가 복도로 걸어오는 소리였습니다. 지금은 분명히 귀신들의 시간인데 간 크게도 복도를 걷는 사람은 누군지…….
 
이튿날 그 소리를 모두 같이 들었다고 하였지만 일행 중 아무도 복도에 나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인인 나절로 선생은 외박 중이었고요. 우리는 정말 귀신들의 보호아래 잠이 들었던 것일까요?
 
 아침에 맞았던, 마가렛의 향기와 눈부신 햇살을 받은 꽃잎들의 아우성! 그 속에는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아이들의 합창소리가 스며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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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 진솔하게 풀어내는 1949년 진도생의 박종규 작가는
 
14세에 이미 원고지 2,000매를 써 문학의 길을 예비했지만 서울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미술학도였다. 그 원고지가 ‘주앙마잘’ 이라는 소설로 태어난 것이 1995년, 글이 잉태된 지 32년만이었다.
 
2001년에는 의문사를 다룬 2부작 장편소설 ‘파란비’를 출간하여 추리적 기법과 반전의 묘로 화제를 모았다.
 
2007년 발간된 에세이집 ‘바다칸타타’는 독특한 편집과 이벤트성 퍼포먼스로 수필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표지가 없이 출간된 책, 들려주는 낭독수필집, ‘수필계의 게릴라’ 외에도 휴머니티를 실천하는 작가라는 평에 걸맞게 문화소외계층을 찾아다니며 벌리는 퍼포먼스는
한 작가의 역량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국립군산대학에서 광고디자인을 강의하는 그는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며, 에세이스트문학회장을 역임했고, 문학동인 글숲을 이끌고 있다.
박종규 에세이스트  pparao1@hanmail.net, blog.naver.com/badacant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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