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배식 장소가 바뀌었지 않았나 싶었다. 하지만 화단 두개 너머에 우리가 찾던 모습들이 고스란히 전개되고 있다. 통나무로 엮은 구조물 천장에 비닐을 얹어 비를 피할 수 있게 했고, 봉사회 부인들 너 뎃 명이 열심히 배식을 하고 있다. 그 뒤로는 이백 여명을 헤아리는 어르신들이 길게 줄을 서서 순서를 하나하나 쫒고 있다.
집 사람은 재빨리 앞치마를 두르더니 배식에 열중인 부인들 틈에 끼어들었고, 나는 회원들과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배식 판을 들고 서 있는 할아버지에게로 가서 우산을 받쳐 빗방울을 막아드렸다.
맞은편에 있던 봉사회장이 씽긋 웃는 얼굴로 눈인사를 하며 내게 비닐장갑을 건네주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자수성가하여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고, 지금은 땀으로 이룬 것들을 조금씩 풀어내어 가치 있는 일에 쾌척하고 있다. 쫄쫄쫄 흘러내리는 물을 효과적으로 가두었다가 요긴할 때 적절한 수위로 내려 보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욕망에는 끝이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 물이 차고 넘쳐도 더 많이 가두기 위하여 둑 만 쌓아 올리다가 결국은 수압 때문에 터져버리거나 고인물이 썩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지혜로운 사람은 욕망의 수위를 적절히 조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비가 오는 종묘공원은 다른 날보다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화단 경계석에 붙박이로 둘러 앉아있던 어르신들이 자리를 옮겼고, 공원에는 사람들이 적어서인지 제법 여유로운 공간들이 보인다. 식구가 적었기 때문에 식사를 하는 어르신들도 전에 없이 느긋하게 배식을 받는 분위기다.
여느 때 같으면 칠백 명을 넘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을 것이다. 배식 판에는 국, 김치, 불고기, 밥 순서로 채워지고, 남기지 않을 만큼 찬과 식사의 량을 조절하는 것이 노하우이다. 식사를 마치고 식판을 반납하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간식으로 빵과 캔에 담긴 식혜를 준다.
어르신들은 고마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며 포만감 이외에 또 다른 만족감을 나타내곤 했다. 그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분들과 우리 봉사단원들만의 순수한 교감이었다.
“그렇게 받치고 계시니까 미안해서 식살 빨리 햇수다. 고맙소!” 내가 우산을 받치고 서 있는 밑에서 식사를 하던 어르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식사를 마치면서 계면쩍은 미소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괜찮은데, 천천히 드시지 그러셨어요?” 다른 두 사람은 먼저 시작했는데도 아직 식사 중이다. 앞쪽 화단에는 전나무 서너 그루 외에도 제법 나이 든 나무들이 있어 그늘 공간이 만들어져 있는데 파릇파릇한 잔디들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머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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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으로 아주 작은 참새 두 마리가 삐죽삐죽 날아들더니 총총총 할머니의 식판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참새들은 비가 내리면 둥지에서 비를 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얘들은 비 피할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면 모이가 없어서 모이 동냥을 나섰는지 이 녀석들은 유난히도 말라 보였다.
그 때, 할머니가 밥을 한 숟갈 잔디밭으로 던져주었다. 참새들은 밥덩이를 익숙하게 풀어헤치며 한 입씩 물고는 서너 발짝 물러서 부리 속으로 집어넣은 뒤 다시 밥덩이에게로 접근하곤 했다. 새들은 어느새 열 두어 마리로 불어났다. 게 중에는 할머니 곁으로 스스럼없이 다가가 발을 콕콕 쪼는 녀석도 있었다.
나는 참새들에게서 눈을 쉽게 뗄 수가 없었다. 먹을 것이 없는 대도시, 참새들은 비를 맞으며 사람을 찾아 나섰고, 할머니는 참새들에게 또 다른 봉사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할머니는 자연에서 얻은 곡식에 대한 고마움을 새들에게 되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새들은 차츰 마릿수가 불어나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번에는 서울의 새들이 모두 모여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에게도 좋은 소문은 빠를 것이기에.
봉사도 전염되는가, 봉사는 또 다른 봉사를 낳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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