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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가 분리된 이유 (上편)

독립파 밀로 주카노비치(Milo Đukanović)의 등장, 그의 전횡과 유고 내전 시기의 몬테네그로에 대해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

정길선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4/05/21 [01:31]

▲ 정길선 박사     ©브레이크뉴스

유고슬라비아가 1992년에 붕괴되면서, 유고슬라비아에 남은 2개의 공화국인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과 몬테네그로 사회주의 공화국은 마침내 공산주의를 포기했다. 이 때도 국민투표가 펼쳐지게 되는데 이 때의 국민투표는 예상과 다르게 매우 평화롭게 진행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에 기초하게 된다. 이리하여 세르비아 공화국, 몬테네그로 공화국으로 구성된 새로운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결성되면서 신(新) 유고슬라비아로 불리게 되었고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이라 불리며 국제 무대에 정식 승인되었다. 

 

몬테네그로 지역은 1992년부터 벌어지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 전쟁, 보스니아 내전 등을 피해갈 수 있었으며 이는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와 달리 실제 전쟁을 통한 이해 당사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몬테네그로 사회주의 공화국은 신 유고슬라비아 구성 국가들 중 유일하게 유고슬라비아 연방 유지를 지지했던 국가였다. 이어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92년 국민투표에서도 96%가 유고슬라비아 연방 잔류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 때에도 보스니아나 크로아티아의 영향을 받은 독립파는 국민투표를 보이콧 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분열할 가능성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와의 전쟁과 보스니아 내전, 이후에 발생한 코소보 전쟁에서 신유고슬라비아가 매우 실망스런 행적을 보이게 되면서, 내전으로 인해 경제가 완전히 피폐해지자, 몬테네그로의 독립파들은 이를 근거로 세르비아와의 연합파를 공격하는 테러를 저지른다. 이 사건은 티토그라드 (현 포드고리차)의 국영 우체국과 인근 경찰서에 총격을 벌이는 테러를 저지른 것인데 이로 인해 보스니아 지역에 비해 치안이 그나마 안전한 몬테네그로으 민심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세르비아와의 연합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지지했던 모미르 불라토비치(Momir Bulatović) 몬테네그로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를 받아 경제적인 형편이 나아지지 않자 국민들 다수가 독립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독립파의 중심 인물인 총리 밀로 주카노비치(Milo Đukanović)는 세르비아를 버리고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처럼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밀로셰비치 정권과 협력했으나으로 밀로셰비치 정권의 지지가 약화되고 블라토비치도 지지력이 떨어지자 독자행동으로 노선을 갈아탄 것이다. 

 

사실 몬테네그로의 기원을 따지고 보면 세르비아인과는 같은 민족이었으며 같은 문화도 향유했다. 그러나 여기에 민족적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근대 시대부터로 알려져 있는데 크로아티아와 같이 이탈리아와 가까이 했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이탈리아 왕국의 직할령으로 지배를 받았다. 즉 정체성이 세르비아와 이탈리아, 양 국가 및 민족에서 혼선이 빚어진 셈이다. 특히 몬테네그로 남부, 쉬코데르 호수 일대 거주민들은 알바니아계가 많았기에 사실상 몬테네그로의 정체성은 어디에다 특정지어야 할지 명확한 결론조차도 없다. 

 

유고슬라비아 연방 시절 때는 세르비아인이어도 몬테네그로에 살면 몬테네그로인이라는 식으로 인구 조사에 응답하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다.  그러니까 딱히 세르비아인이라는 판단보다는 지역적, 속지주의적(Territorial principle)인 입장을 상당수가 고수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본인 정체성을 세르비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몬테네그로 인구의 30% 가까이 되지만 나머지는 속지주의적 정체성을 고수해 몬테네그로 토착민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집단 서방의 제재로 인한 경제 위기는 자주 교역하던 이탈리아의 관계도 끊기게 되었고 이는 오히려 세르비아보다 상황이 더 나빴던 것으로 보인다. 

 

보스니아 내전으로 인한 집단 서방의 제재는 몬테네그로 내 지독한 인플레이션으로 어디에도 지원 받지 못한 채,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이 때 주카노비치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내세운 것은 그동안 사용해 온 화폐인 유고슬라비아 디나르를 버리는 것이었다. 당시 신유고슬라비아는 1994년부터 화폐 개혁을 통해 노비 디나르(Novi Dinar)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예 고정환을 독일 마르크로 정하고 통화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방지했다. 그로 인해 통화가 부족하여 한동안 이로 인해 은행 앞 집단 시위로 혼란을 가져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하이퍼 인플레를 방어하는데는 성공한 화폐가 되었다. 

 

그러나 1994년에 무려 500,000,000,000디나르 지폐까지 나오고 두 달 뒤에 정상적으로 화폐의 단위를 내렸지만 이 또한 20일 밖에 운영되지 못하고 디나르 화폐를 다시 도입하는 등, 혼란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는지라 주카노비치 총리 입장에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결국 1996년 주카노비치는 독일로 가서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를 만난다. 그 자리에서 주카노비치는 몬테네그로의 화폐 단위로 독일 마르크를 전격으로 도입하기로 합의를 보고 독일을 위시한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이에 지지의사를 밝혀오면서 결국 독일 마르크가 몬테네그로의 고정 화폐가 된다. 

 

블라토비치 대통령과 세르비아계는 이에 집단반발했다. 세르비아계는 주카노비치가 독일과 프랑스, 영국을 배경으로 신유고슬라비아 자채를 해체시키며 근간을 흔들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주카노비치의 조부인 블라조 주카노비치(Blažo Đukanovic)의 전쟁 범죄 이력까지 공개하며 "아직도 나치를 끊지 못하고 있다(Још увек не може да престане да буде нациста)."며 적극 비난했다. 이 얘기가 나온 이유는 블라조 주카노비치(Blažo Đukanovic)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체트니치에 속한 상태에서 수많은 유태인과 크로아티아인을 학살하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체트니치 소속의 중장 계급이었고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몬테네그로를 점령했던 당시 고위 협력자였다. 그 이유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베오그라드 전범재판에 기소되어 사형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 이러한 체트니치에서 활동 이력은 연좌제처럼 대를 이어 손자인 총리, 밀로 주카노비치(Milo Đukanović)에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유고로부터 독립에 찬성하는 독립파들은 독일의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고 이에 항변한 불라토비치 대통령은 1998년에 총리 주카노비치에 의해 밀려나 대통령을 사임했다. 

 

주카노비치가 대통령이 되면서 몬테네그로는 독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지만 여기에서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경제적으로 최악인 상태에서 이를 해결해 보기 위해 산업 민영화 정책을 시행했다. 1998년 당시 가치가 45억 달러로 추정되었던 몬테네그로의 산업은 결국 총 7억 3500만 달러에 매각되었고 이 매각한 개인 자본은 영국과 미국, 독일이 다시 사들였다. 결국 몬테네그로의 산업 민영화로 인한 국고 충당은 영국과 미국, 독일에게 대부분 저당 잡히고 만 것이다. 1998년에서 2014년 사이에 민영화된 198개 기업 중 176개가 파산했다. 

 

국가 노동력의 4분의 1이 일자리를 잃었고 빈곤이 극에 달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있는 동안, 주카노비치의 재산은 눈덩이 불듯 불어났다. 2010년 5월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주카노비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도자 20인 중 하나로 선정되었는데 그와 같은 부의 축적이 시작된 것 또한 1998년 몬테네그로 산업 민영화 사태 때부터였다. 인디펜던트에 의하면 주카노비치의 약 1,000만 파운드에 달하는 부의 출처를 "신비적"인 일이라고 설명했을 정도니 얼마나 급격히 재산이 불어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주카노비치의 민영화 과정에서 그의 친인척들과 그와 유착된 몬테네그로 마피아들에게 많은 국가 자산이 넘어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몬테네그로의 검은 돈은 돌고 돌아 판도라 페이퍼스(Pandora papers)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같은 상황은 현재 우크라이나와 다를게 없다. 다만 지금은 몬테네그로에서 그러한 악습들이 많이 없어졌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lukybaby7@gmail.com

 

*필자/ 정길선.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Why Montenegro and Serbia were separated (Part 1)

Gil-seon Jeong, columnist

 

When Yugoslavia collapsed in 1992, Yugoslavia's two remaining republics, the Socialist Republic of Serbia and the Socialist Republic of Montenegro, finally abandoned communism. At this time, a referendum will also be held, and contrary to expectations, the referendum will be held very peacefully and will be based on true democracy. As a result, the new Yugoslav Federation, consisting of the Republic of Serbia and the Republic of Montenegro, was formed and was called New Yugoslavia, and was officially recognized on the international stage as the Federal Republic of Yugoslavia.

 

The Montenegro region was able to avoid the Serbia-Croatia War and the Bosnian Civil War that began in 1992 because, unlike Bosnia, Croatia, and Serbia, it was not a stakeholder in the actual war. The Socialist Republic of Montenegro was the only country among the new Yugoslavia that supported the maintenance of the Yugoslav federation. As mentioned earlier, in the 1992 referendum, 96% supported remaining in the Yugoslav Federation. However, even at this time, the independence faction influenced by Bosnia and Croatia boycotted the referendum, so there was a possibility of division at any time.

 

However, as New Yugoslavia showed very disappointing performance in Serbia's war with Croatia, the Bosnian civil war, and the subsequent Kosovo war, and the economy was completely devastated by the civil war, Montenegro's independence faction used this as a basis to form an alliance with Serbia. Commit a terrorist attack against the group. This incident involved a terrorist attack on the state-run post office and nearby police station in Titograd (now Podgorica), which also began to shake public sentiment in Montenegro, which is relatively safe compared to Bosnia.

 

In particular, President Momir Bulatović of Montenegro, who considered the union with Serbia important and supported it, began to question whether the majority of his people should become independent as their economic situation did not improve due to Western sanctions. It started to boil. Prime Minister Milo Đukanović, the central figure of the independence faction, argued that Serbia should be abandoned and become independent like Croatia or Slovenia. From the late 1980s to the early 1990s, he cooperated with the Milosevic regime, but as support for the Milosevic regime weakened and Blatovic's support also decreased, he changed his route to independent action.

 

In fact, if you look at the origins of Montenegro, they were the same people as the Serbs and enjoyed the same culture. However, it is known that doubts about national identity began to be felt in the modern era. Like Croatia, it was close to Italy and was ruled as a direct territory of the Kingdom of Italy during World War II. In other words, confusion arose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ethnic groups, Serbia and Italy. In particular, since many of the residents in the southern part of Montenegro, around Lake Shkoder, are of Albanian descent, there is actually no clear conclusion as to where Montenegro's identity should be defined.

 

During the time of the Yugoslav Federation, even if you were a Serb, if you lived in Montenegro, you would often respond to the census by saying you were a Montenegrin. In other words, a significant number of people adhered to the regional and territorial principle rather than judging that they were specifically Serbs. Even today, close to 30% of the population of Montenegro still identifies as Serbian, but the rest adhere to their territorial identity and perceive themselves as indigenous people of Montenegro. Meanwhile, the economic crisis caused by collective Western sanctions led to the severance of relations with Italy, with which it had frequently traded, and the situation appears to have been worse than that of Serbia.

 

Collective Western sanctions resulting from the Bosnian civil war put Montenegro in the worst possible situation, with no support from anywhere due to severe inflation. At this time, Djukanovic's desperate solution was to abandon the Yugoslav dinar, the currency that had been used so far. At the time, New Yugoslavia had been using the Novi Dinar through currency reform since 1994, and set the peg as the German mark to prevent currency leakage. As a result, there was a shortage of currency, which caused chaos for a while due to mass protests in front of banks, but ultimately it became a successful currency in preventing hyperinflation.

 

However, in 1994, a whopping 500,000,000,000 dinar banknotes were issued and the denomination of the currency was lowered two months later, but this only lasted for 20 days and the dinar currency was reintroduced. As the chaos was reaching its worst, Prime Minister Djukanovic was in a special situation. action was needed. Eventually, in 1996, Djukanovic went to Germany and met Chancellor Helmut Kohl. At the meeting, Djukanovic agreed to suddenly introduce the German mark as Montenegro's currency unit. Not only Germany, but also France and the United Kingdom expressed their support for this, ultimately making the German mark the fixed currency of Montenegro.

 

President Blatovic and the Serb community collectively protested against this. Serbs accused Djukanovic of trying to shake the foundations of New Yugoslavia by dismantling it under the influence of Germany, France, and Britain. They even revealed the war crimes history of Djukanovic's grandfather, Blažo Đukanovic, and actively criticized him, saying, "We still can't quit the Nazis." The reason this story came about is because Blažo Đukanovic helped massacre numerous Jews and Croats while belonging to the Chetnichi during World War II.

 

He was a lieutenant general in the Chetnichi and a high-ranking collaborator during the Italian fascist occupation of Montenegro. For that reason, after the end of World War II, he was indicted at the Belgrade War Crimes Trial, sentenced to death, and executed. This history of activity in Chetnici was passed down through the generations to his grandson, Prime Minister Milo Đukanović, as was his guilt by association. However, independence activists in favor of independence from Yugoslavia did not hesitate to support Germany, and President Bulatovic, who protested, was pushed out by Prime Minister Djukanovic and resigned as president in 1998.

 

When Djukanovic became president, Montenegro began moving toward independence, but it was here that it made its worst mistake. To solve this problem in the worst economic situation, an industrial privatization policy was implemented. Montenegro's industry, which was estimated to be worth $4.5 billion in 1998, was eventually sold for a total of $735 million, and the private capital from this sale was bought back by Britain, the United States, and Germany. In the end, most of the national treasury due to Montenegro's industrial privatization ended up being mortgaged to Britain, the United States, and Germany. Of the 198 companies privatized between 1998 and 2014, 176 went bankrupt.

 

A quarter of the country's workforce lost their jobs, and poverty reached its peak. During this process, while companies were going bankrupt, Djukanovic's fortune grew like a snowball. According to the British newspaper The Independent in May 2010, Djukanovic was selected as one of the 20 richest leaders in the world, and his accumulation of wealth also began during the privatization of Montenegrin industry in 1998. According to the Independent, the source of Djukanovic's wealth of approximately 10 million pounds was described as "mysterious," which shows how rapidly his wealth has increased.

 

Additionally, during Djukanovic's privatization process, many state assets were transferred to his relatives and the Montenegrin mafia affiliated with him. That's not all. This Montenegrin black money circulated around and was even listed in the Pandora papers. This situation is no different from the current Ukraine. The only difference is that although many of those bad practices have now disappeared in Montenegro, they are still ongoing in Ukraine.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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